곧 다른 메시지가 떠올랐다.
[거듭된 부하의 죽음으로 서치 전사가 광기에 빠져듭니다]
서치 전사의 두 눈이 붉어졌다. 파공성이 섬뜩할 정도로 빨라진 공격.
[체력 -180!]
쥐고 있는 서치의 체력이 단숨에 쑹덩쑹덩 잘려나갔다.
‘또 두 방이냐.’
이거야 원, 맞으면 억 소리가 절로 날 지경이다. 지도를 보면서 다시 쇼크웨이브로 날려 버렸다.
- 꿀꺽!
쥐고 있는 녀석을 삼켜 완전 회복.
광분한 서치 전사가 오기 전에 잽싸게 이동했다.
“죽어! 죽어! 죽어라!”
“케엑!”
칼질할수록 엉뚱한 부하들만 죽어나가는 상황.
서치 전사가 아예 게거품을 물었다.
“벌통?”
그 사이 맞으며 이동한 나는 녹색의 점, 비선공 몬스터에게 당도했다.
윙윙거리며 날아다니는 꿀벌들은 멀리서는 괜찮았지만, 점차 다가갈수록 녹색에서 서서히 분홍색으로 변할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군 적군 구분 없이 그들 영역에 들면 일제히 벌들이 쏟아져 나올 기세.
‘딱 좋다.’
녹색의 점이 연분홍으로 보일락 말락 하는 그 지점에서 섰다.
후웅!
뻑!
[체력 -190!]
“캥!”
전사의 공격에 쥐고 있던 서치가 몸을 떨었다. 말을 할 정도의 이성이 있으니만큼 정상이었다면 이상함을 눈치챘겠지만 1%의 제한된 자유도와 서치 전사가 광기에 빠진 덕에, 녀석들은 정해진 공격만을 하고 있었다.
‘좋아.’
공격 직후. 나는 몸을 돌려 서치 전사와 내 위치를 바꾸었다. 그리고 녀석이 정확히 벌통을 가리게 되자 왼손을 뻗었다.
“쇼크웨이브.”
충격파가 작렬하자 서치 전사가 훌쩍 뒤로 날아갔다. 여전히 피해를 주지 못하는 공격이건만 이번에는 결과가 달랐다. 주르륵 미끄러진 서치 전사의 등이 벌통이 달린 작은 나무를 크게 흔든 까닭.
비록 나무가 꺾이지는 않았지만, 안에 있는 벌들에게는 큰일이 난 상황이다.
부웅! 붕!
위기를 느낀 벌의 날갯짓. 곧 사방에서 서치 전사에게 벌들이 날아들었다.
벌의 이름은 [르피르 일벌]
레벨 17의 벌들이 최하 50마리였다.
“키에에엑!”
다닥다닥 달라붙는 르피르 벌들은 서치 전사가 매섭게 검을 휘두르자 뭉텅뭉텅 떨어졌다.
‘레벨만 높은 건가?’
벌의 체력은 많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나 서치 전사도 절대 여유롭지만은 않았다. 필사적으로 검을 휘두르지만,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벌들 때문에 공격을 허용 당했다. 두 눈은 물론 드러나는 모든 피부가 찔리니 치명적인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집을 부숴!”
허우적거리던 서치 전사가 소리치자 서치들이 달려들어 연신 벌들이 쏟아져 나오는 벌통을 공격했다. 더욱 난리를 피우는 벌들. 하지만 마구잡이 침입자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수십 대를 쏘여 퉁퉁 부으면서도 가열 차게 휘두른 검!
그 검에 때려 맞은 나무가 기우뚱했다. 이윽고 흔들거리던 벌통이 쓰러져 버렸다. 그런데 의외인 것은 서치들의 행동이었다. 전부 내팽개쳐두고 무언가를 열심히 찾고 있던 것이다.
“찌직! 찍!”
기쁨의 외침. 벌집을 헤집어서 찾은 것은 바로 그 안에 담긴 꿀이었다. 서치들은 그 꿀을 몸에 바르고는 쓰러진 서치 전사에게 먹이고 발라주었다.
그 과정 중 죽어나가는 서치가 5마리.
하지만 효과는 놀라웠다. 퉁퉁 부어오르던 서치들의 몸이 가라앉았고 쓰러졌던 서치 전사마저도 꿈틀거리며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 까닭이다. 몬스터들끼리 적대 관계가 있느니만큼 그들에게는 그들 나름의 사냥방법이 존재하는 듯했다.
“뭐 어쨌건.”
상황이 대략 정리되어 갔다.
나는 으깨진 벌통으로 다가갔다. 꾸물거리는 유충들과 쪼개진 저 속에서 큼직하게 있는 여왕벌이 보였다. 슬쩍 발을 가져가자 유충 한 마리가 내 발을 물었다.
[체력 -40!]
유충 주제에 레벨은 15였다. 더불어 쪽지창이 떠올랐다.
[발이 마비되었습니다. 이동속도가 30% 감소합니다]
[중독되었습니다. 초당 30의 체력이 감소합니다]
“헐. 센데?”
작다고 무시할 게 아니었다. 나는 뒷걸음질 치며 칼로 찔러 보았다.
우습게도 한 방에 유충이 죽어버린다. 그야말로 공격력만 극대화된 녀석들이었다.
다행하게도 르피르 유충을 오른손으로 먹으니 상태 이상까지도 해결되었다.
‘경험치 덩어리들.’
빈사상태에 놓인 서치 무리와 으깨진 벌통.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꿈틀거리는 여왕벌을 보니 먹지 않아도 절로 배가 불렀다.
사냥 결과.
경험치는 당연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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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피르 벌의 로열젤리.
매우 드문 극상품의 꿀로서 훌륭한 건강식품이자 연금재료이다.
환부에 바를 시 외상을 아물게 하며 500의 체력을. 복용할 시 800의 체력을 회복시킨다.
1분간 마비 독에 대한 내성 80% 증가.
30초간 방어력 10% 상승.
10초간 벌류의 공격에 대해 50% 빗나감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주의 : 1) 로열젤리가 공기와 접촉상태에 놓이면 분당 25%의 효능이 감소.
2) 4분이 지난 로열젤리는 음식재료와 피부 미용의 효과만을 가지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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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리품 역시 쏠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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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귀신
[접속을 종료합니다]
의자에서 일어난 나는 찬물에 세수한 뒤 오늘 해야 할 일을 떠올렸다.
오늘의 일과 중 가장 중요한 일. 그것은 이용택 관장을 만나 new century에 대한 설명을 해주는 것이었다. 아울러 그의 첫 접속과 귀신들린 바늘을 관찰하고 소감에 대해서도 들어야 했다.
‘특별히 observer가 가능한 기기로 주문했으니까.’
플레이 방식은 물론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냉수마찰과 스트레칭을 마친 뒤 언덕 밑으로 내려갔다 올라오기를 반복했다. 상처를 내어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은 당분간 보류하기로 했다. 전날에 워낙 깊게 헤집어 놓은 터라 아무는 데만도 몇 주일은 걸릴 것이기에 그렇다.
그런데 약수터로 이어지는 산길 어귀로 무언가 움직이는 것이 언뜻 보였다.
‘착각인가?’
잘못 보았나 싶은 그때, 다시금 풀숲이 흔들렸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가만히 숨을 고르고 귀를 기울인다.
차릉-!
기묘한 울림.
미세한 진동이 느껴진다. 외부에서의 진동일지, 내 몸이 떨린 것인지는 분간이 가지 않았지만 무언가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설마 성륜의 주인이?’
장갑을 슬쩍 벗겨보아 성륜의 움직임을 보았다. 다행하게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상황.
나는 다시 장갑을 고쳐 끼고는 주위를 살폈다.
조용했다.
과민반응한 것일까.
‘보면 알겠지.’
은밀하게, 서서히 무언가 있음 직한 그곳으로 향했다. 잘하면 단서를 얻을 수 있을 것이고 아니면 본전치기뿐이 되지 않는다. 혹, 위험으로 다가가는 것은 아닐까 생각도 들었지만, 어차피 초월자들이 내 정체를 알게 되면 특별히 빼도 박도 못하지 않던가.
이불자락 뒤집어쓰고 벌벌 떠는 바보짓은 첫날이면 충분했다.
산의 이름은 오봉산.
흔하디흔한 작은 산이었다. 마을이 주위를 빙 두르고 있고 산동네 밑자락은 대로와 이어진다. 깊은 산 속 어딘가에 있는 이야기 따위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나조차도 마음먹고 가로지르면 하루 만에 산을 넘을 수 있을 정도다.
치르르-!
기이한 진동에 다가갈수록 왠지 본능에 따라 떨려왔다.
‘혹시 모르니까.’
휴대전화를 왼손에 들고 오른손으로는 근처의 돌을 쥐었다. 나름의 안전 책이었다.
나는 천천히 다가가며 귀를 기울였다.
약수터 길에서 벗어나 숲 아래로 들어간 장소. 길조차 없는 그곳으로 한참 들어가자 저 멀리 나무 사이로 누군가가 보였다.
평범한 운동복 차림의 남자. 그는 한 나무를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그가 손을 뻗을 때마다 둥! 하는 둔중한 울림에 이어 나무가 부르르 떨었고 내가 느낀 진동이 은은하게 퍼지고 있었다.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 나가는 수면의 파동과도 같이, 작은 울림이 풀숲을 흔들리게 한다.
작은 손짓에 사방이 사르르 떨고 있었다.
실로 믿기지 않는 모습. 영화 같은 그 모습에 한결 더 조심하며 그를 관찰했다.
한 걸음 더 다가가 보자 남자가 마주하고 있는 나무의 겉껍질이 벗겨져 매끈한 속내를 드러냈음을 알 수 있었다. 그가 숨을 짧게 내쉬고 난 뒤 길게 고르며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는 모습이 보였다.
‘어?’
아는 사람이다. 뒤돌아서는 그는 이용택 관장이었다.
‘수련 중이었던 건가.’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혼자 수련 중인 그. 무표정한 얼굴로 땀을 닦아내고 물을 마시는 그를 보니 긴장이 탈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아울러 감탄이 절로 나왔다.
CG 효과나 영화 소품도 아닌데 사람이 저런 일을 한다는 것이 새삼 놀라웠던 것이다.
술 마시며 ‘한 방에 샌드백 날려버리면서 내공은 없다고 하더라니까.’ 말하던 강하성 소장이 언뜻 떠올랐다.
그때, 묘한 감정에 빠진 내 귀로 아이 울음소리 같은 것이 들렸다.
“야옹~!”
고양이였다. 집에서 키우는 애완 고양이인지 그의 곁으로 다가와서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든다. 고양이를 쓰다듬는 이용택 관장을 보며 나는 굳이 이렇게 숨어 있을 이유가 없음을 새삼 알았다.
자연스럽게 낮추었던 몸을 일으키고 일부러 소리를 내었다.
“안녕하세요, 관장님. 운동 중이신가 봐요? 안 그래도 오늘 찾아뵈려… 헉!”
나는 덜컥 몸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 이용택 관장이 양손을 움직이자 ‘우드득!’소리가 나며 고양이 목이 꺾인 탓이다.
목뼈를 분질러 죽인다니.
상상치 못했던 모습에 멈칫하는 나와는 달리 이용택 관장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일어나 나를 보았다.
“가볍게 몸을 풀던 중이었다. 그런데 이곳은 어떻게 알고 왔지?”
“그냥 무슨 소리가 들리기에 호, 호기심에요. 운동하시는 모습을 보면 안 되는 거였나요? 비, 비밀 수련?”
아아, 젠장.
용감하게 대처하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말이 떨려 나왔다. 설마 엄청난 비밀수련을 내가 목격해서 나도 저렇게 만들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망상이 떠오른 탓이다. 저런 사람이 나 잡자고 달려들면… 정말이지 답 안 나온다.
“그게 무슨 말이지?”
난데없이 이상한 말을 한다는 듯 나를 보는 이용택 관장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고양이를 가리켰다.
그가 메마른 웃음을 보였다.
“누군가한테 심하게 맞은 고양이가 있더구나. 불쌍해서 먹을 것을 주고 돌봐주었었다. 그러니 오늘 또 따라왔더군.”
“귀찮아서 죽인 건가요?”
“아니. 고분고분 잘 있던 녀석이 갑자기 긴장하기에 반사적으로 죽여 버린 거다. 아직 감각이 곤두선 터라 적의(敵意)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거든.”
그 말을 듣고 다시 고양이를 보니 왠지 낯익었다. 녀석은 내가 성륜을 시험한다며 붙들고 때렸던 고양이이다. 적의를 보인 이유는 어제 자신을 괴롭힌 ‘내가’ 보인 까닭이고.
……그런데.
‘반사적으로 죽였다고?’
술자리에서 그가 말했던 ‘오감의 극대화’와 그 사소한 부작용이 떠오른다. 왠지 지금 다가갔다가 혹여 기분이라도 나쁘게 만들면 뭔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고양아, 미안…….’
씁쓸하게 고양이를 보았다. 그러고 있노라니 이용택 관장이 근처의 나무를 쥐고 잎사귀들을 쓸었다. 땅을 파는 모습이 무덤을 만드는 것 같다.
나 역시 다가가 그 일을 도왔다. 막대기로 땅을 긁은 뒤 흙을 손으로 옮겨 작은 구덩이를 팠다. 그러다 옆을 본 나는 깜짝 놀라 눈을 부릅떴다.
‘아, 심장이야.’
고양이 주검이 대롱대롱 거꾸로 매달려 나를 보고 있지 않은가. 갑자기 옆에서 불쑥 튀어나오니 깜짝 놀랐다.
위를 보자 맨손으로 고양이 뒷다리를 들고 온 이용택 관장이 내 옆에 있었다. 그는 고양이를 구덩이에 툭 던진 뒤 다리를 꺾어 구덩이에 맞게 크기를 조절했다. 네 개의 다리를 잘 접자 크기가 꽤 작아졌다.
‘……’
시체 크기만큼 무덤을 만드는 게 아니라, 무덤 크기에 맞춰 시체를 접어버린다.
흙과 나뭇잎을 덮어 밟는 마무리 정도는 내가 했다.
“이거 본의 아니게 아침부터 시체를 보게 했구나.”
“그냥 털 뽑힌 생닭 본 셈 치죠, 뭐.”
내 정신연령이 몇인데 저런 것을 보고 놀라고 불안해하겠는가. 원인 제공자가 나이니 그저 미안할 따름이다.
내가 이런 말 하면 위선이겠지만, 고양이가 아무쪼록 좋은 곳에 갔기를 희망한다.
“그런데 관장님은 상당히 외진 곳에서 운동하시네요?”
“감각이 무뎌지면 곤란하니까 나흘에 한 번씩은 벼려주고 있지.”
그는 가방에서 물통을 꺼냈다. 식수로 손을 씻은 뒤 걸음을 옮겨가며 답했다.
“그리고 별것 아닌 요령인데 사람들이 꽤 관심을 둬 번거롭더구나. 방송국이다 뭐다 연락하는 녀석들이 많아서 이렇게 도둑수련을 하고 있다.”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았다. 나만 해도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였으니 말이다.
“저런 데도 무공이 아닌가요?”
“요령이지.”
쉽게 답하는 그였지만, 한눈에 척 보기에도 아무나 할 수 있는 만만한 요령은 아님이 분명하다. 그는 이리저리 산길을 오르며 손으로 무언가를 따 준비해 둔 통에 넣고 있었다. 녹색의 잎과 붉은 열매. 흔히 슈퍼에서 보는 딸기와 비슷하지만 크기는 더 작았다.
빨간 빛깔이 매우 귀엽지만 먹으면 단맛보다는 씨가 씹히는 오득한 질감과 맹물 맛. 여기에 아주 옅게 나는 딸기향이 전부인 그것은 뱀이 잘 다니는 그늘진 곳에 자란다 하여 이름이 붙은 뱀 딸기였다. 그런데 그는 열매뿐이 아니라 줄기와 잎까지 모두 담고 있었다.
“그거 전부 먹는 건가요? 아니면 약초?”
“요리재료지.”
간단한 대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