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적철산(積鐵山)의 악귀(惡鬼)들 2
그날 밤에 천가평은 당직 군관으로부터 다시 보고를 받았다. 삼경 무렵 탁발규가 하후량을 불러냈다는 것이었다.
그는 대충 옷을 걸치고 서둘러 숙소를 나섰다.
탁발규와 하후량이라면 이건 재미있는 싸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그의 잠을 멀리 쫓아 버렸다.
그동안 탁발규가 이런 식으로 불러내서 혼내준 자들이 수십 명에 달했다.
그리고 그자들은 사흘을 넘기지 못하고 모두 거적에 싸여 나갔다.
천가평은 낮은 소나무 그늘에 서서 눈빛을 빛내며 탁발규와 하후량의 대치를 지켜보았다.
탁발규가 그 덩치만으로도 사람들에게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했다면 하후량도 결코 만만한 자는 아니었다.
온몸에 단단하게 박혀 있는 근육들과 함께 눈빛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 자였던 것이다.
천가평은 하후량이 이긴다면 내일부터 그에게 독려조를 맡기겠다고 생각했다.
탁발규는 다시 발목에 족쇄를 차고 음침한 갱도 안에서 등뼈가 휘도록 철광석을 캐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탁발규가 이긴다면 변하는 건 아무 것도 없게 된다.
그것도 좋았다.
개인적으로는 썩 마음에 드는 놈이 아니었지만 훌륭하게 죄수들을 닦달하여 능률을 올려 주고 있었으므로 별 불만은 없었다.
그러므로 누가 이기든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는 두 마리의 범 같은 자들이 씩씩대며 싸우는 것을 즐기면 그뿐이었다.
“나한테 불만이 있다면 주둥이로 나불거리기 전에 주먹으로 말해라.”
탁발규가 달빛을 등지고 서서 거만하게 말했다.
“그게 좋겠지.”
말과 함께 하후량이 땅을 박차고 무섭게 돌진했다.
온몸으로 부딪쳐 가는 기세가 흉흉했다.
그걸 본 천가평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자리에서 다섯 명이나 때려죽인 자라더니 과연 그럴 만 한 놈이라고 생각하는데 탁발규가 가슴을 불쑥 내밀어 하후량의 주먹을 고스란히 받고 있는 게 보였다.
철썩, 하고 떡메를 내리치는 것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탁발규의 상체가 한쪽으로 비스듬히 돌아갔고, 하후량은 떨리는 팔을 붙든 채 뒤로 주춤 물러서고 있었다.
탁발규의 이글거리는 눈이 비웃음을 담고 그런 하후량에게 향했다.
“고작 그것 밖에 안 되는 거냐? 죽 그릇을 내던질 때의 힘만도 못하군.”
하후량이 음, 하고 신음을 토해 내고 허리를 숙였다.
다리에 잔뜩 힘을 모으고 있는 그를 향해 탁발규가 두터운 가슴을 내민 채 성큼성큼 다가갔다.
하후량쯤은 전혀 무시한다는 오만한 태도였다.
그런 탁발규를 향해 하후량이 다시 맹렬하게 돌진해 갔다.
그러나 그가 어깨로 탁발규의 가슴을 들이받는 것보다 도끼질을 하듯 후려 패는 탁발규의 손이 머리통을 치는 것이 더 빨랐다.
퍽, 하고 몽둥이로 잘 익은 박을 때리는 소리가 났다.
천가평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저래서는 탁발규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생긴 것과는 다르게 싸우는 법에는 영 서툰 자가 틀림없다.
우악스런 힘으로야 허우대만 멀쩡한 장정 서넛쯤은 누를 수 있을지 몰라도 탁발규에게는 안 될 것이 분명했다.
천가평의 예상대로 하후량은 탁발규의 상대가 아니었다.
두 손을 도끼 휘두르듯 사정없이 휘둘러대는 탁발규의 타법은 언제 봐도 시원한 데가 있었다.
두 자루 도끼로 절강성을 뒤흔들어 놓은 자라더니, 두 손으로 도끼를 대신하는 법도 뛰어났다.
머리에 이어서 어깨와 등과 허리에 이르기까지 탁발규의 두터운 손이 장작 패듯 하후량을 쪼개 놓고 있었다.
천가평은 그것을 잠시 바라보다가 미련 없이 돌아섰다.
뼈가 부러지고 살이 찢기는 소리가 그의 등에 달라붙고 있었다.
“사흘 후에는 인명부를 또 고쳐 써야겠군.”
천가평은 하후량에 대한 일말의 연민을 떨쳐 버렸다.
그러나 다음 날 하후량은 어제와 다름없이 죄수들 틈에 앉아 멀건 옥수수 죽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고, 절뚝거리면서도 한 번의 꾀부림도 없이 종일 땀 흘려 일했다.
천가평은 그런 하후량을 지켜보며 묘한 기분이 들었다.
퉁퉁 부은 얼굴과 온몸에 나 있는 피멍들이 없었더라면 누구도 간밤의 끔찍했던 일을 알지 못할 것이다.
사흘이 지났을 때 하후량은 더 이상 발을 절지 않았고 몸의 상처들도 거의 아물어가고 있었다.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운 회복력이었다.
그리고 닷새가 지났을 때 사건은 또 벌어졌다.
두 번째는 하후량이 탁발규를 깨웠다.
그가 삼경에 단신으로 독려조들의 막사 문을 박차고 들어갔던 것이다.
그리고는 곤히 잠들어 있는 탁발규를 두들겨 깨웠다. 그리고 두 번째 싸움이 시작되었다.
결과는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당당하게 걸어 왔으나 동굴로 돌아갈 때는 개처럼 기어서 갔다.
다시 닷새 후 탁발규가 수하들을 보내 하후량을 깨웠다.
세 번째 싸움이 벌어졌다.
그때쯤 탁발규는 하후량과의 싸움에 재미를 붙이고 있는 듯했다.
하후량에게는 목숨을 건 싸움이었지만 탁발규에게는 하루의 짜증을 속 시원히 털어버리는 유희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가고 두 달이 지나갔다.
결과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하후량은 목숨을 걸고 있었고, 여전히 탁발규는 여흥을 즐기고 있었다.
석 달째에 접어들자 처음에 관심과 기대를 가지고 지켜보던 사람들도 지겨워했다.
그건 천가평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는 아무래도 적철산에서 탁마귀로 불리는 소선풍(掃旋風) 발규(拔逵)를 밀어낼 자는 없다고 단정해 버리고 더 이상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 모두는 하후량이 어떻게 그렇게 빨리 부상에서 회복될 수 있었던 것인지, 어떻게 갈수록 탁발규의 무지막지한 주먹질에서 버티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긴, 내성이 생긴 건지도 모르지.”
그런 천가평의 생각이 모두의 생각이기도 했다.
탁발규는 이를 갈았다.
일 년이 넘게 놈을 데리고 놀았어도 오늘처럼 어이없이 맞아 피를 흘린 적은 없었던 것이다.
놀리던 강아지에게 손을 물린 거나 마찬가지였다.
아이 같으면 울고 자리를 떠났겠지만, 탁발규는 마귀(魔鬼)로 불리는 자였다.
“끌어내라!”
그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하는 소걸에게 눈을 부라렸다.
그렇게 맞아도 죽지 않은 놈이었다.
죽기는커녕 매번 더욱 기세가 살아서 필승의 투지로 덤벼들었다.
그런 놈이 한 번 내팽개쳐져서 돌무더기에 깔렸다고 죽을 리는 없다.
놈이 죽어야 할 곳은 따로 있었다.
바로 내 발아래다.
탁발규는 오늘로 이 지겨운 놀이를 끝내겠다고 결심했다.
“으악!”
소걸과 함께 돌무더기를 정신없이 파헤치던 졸개들 중 한 놈이 자지러지는 비명을 지르며 엉덩방아를 찧고 나뒹굴었다.
돌 더미 속에서 불쑥 손 하나가 솟아 나와 놈의 팔뚝을 꽉 거머쥐었던 것이다.
놀란 놈이 나자빠져 뒹구는 곁에서 소걸은 멍하니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 돌무더기를 헤치며 하후량이 귀신같은 모습으로 기어 나오고 있었다.
산발한 머리카락 사이로 검붉은 핏물이 흘러 내렸다.
어디 한 군데 빼놓지 않고 찍히고 찢긴 살갗은 두꺼비 등처럼 울퉁불퉁하게 부풀어 올라 더욱 흉측했다.
선혈이 낭자한 그 모습이 달빛 아래 더욱 귀기(鬼氣)를 띄었다.
탁발규는 하후량의 그 끔찍한 모습을 보며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과연 듣던 대로군. 쓸 만 한 놈이야.”
흑의경장의 사내는 시종 입가에 한줄기 웃음을 띠고 있었다. 천가평은 더욱 이맛살을 찌푸릴 뿐이었다.
“탁발규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니, 저 놈 말이다.”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건 악귀 같이 달려들고 있는 하후량이었다.
천가평은 그게 못마땅했다.
저렇게 맞으면 죽지 않더라도 골병이 들고 말거나, 병신이 될 게 뻔했다.
그걸 알면서도 죽자 사자 달려드는 놈처럼 미련하고 쓸모없는 놈은 없다.
당하지 못하겠으면 일찌감치 도망가거나, 무릎을 꿇고 항복하는 것이 현명한 일 아닌가.
천가평이 보기에 하후량은 미련이 극에 달한 놈이었다.
그런 놈을 보며 흐뭇해하고 있는 이 사내 또한 정상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천가평이 잔뜩 못마땅한 눈으로 사내를 흘겨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관에 몸담고 있는 자 같지는 않았다.
사내에게서는 처음부터 강호인의 기풍이 느껴지고 있었다. 하지만 어쨌든 그는 지금 한낱 말단 무장에 불과한 제가 이렇다 저렇다 평할 인물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내려가서 말릴까요?”
사내의 호감을 산 놈이라면 탁발규의 손에 맞아 죽도록 놔두고 볼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내의 반응은 그렇지 않았다.
그가 이 좋은 구경거리를 훼방 놓을 셈이냐는 얼굴로 천가평을 흘깃 바라보았다.
“놔둬봐.”
그 한 마디에 천가평은 끙, 하고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첨사라니…….’
속으로 이영용(李營龍)을 욕했다.
사내는 거기장군(擧旗將軍)의 직함을 가지고 있는 제남부의 도지휘첨사 이영용으로부터 일체의 권한을 위임받아 적철산을 감사(監査)하기 위해 온 인물이었다.
제가 비록 도지휘사사의 산동순무 염광적 휘하에 적을 두고 있는 직계 무장이기는 해도 지휘첨사 이영용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기껏해야 종오품(從五品)의 부천호(副千戶)에 지나지 않는 염광적과, 정삼품(正三品)의 품계를 가지고 있는 도지휘첨사와는 직급과 권한 모든 것에 있어서 비교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이영용으로부터 일체를 위임받은 자라면 당연히 이 첨사와도 동격으로 봐야 한다.
사내의 보고서 한 장이 저를 이 지긋지긋한 곳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줄 수도, 아니면 이곳에서 평생을 썩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천가평은 더욱 공손하게 머리를 숙였다.
그 어느 때보다 탁발규의 손발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멀리서도 그가 뿌려대고 있는 살기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천가평은 저놈이 오늘 기어이 일을 저지르고 말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뒤처리가 곤란해질 게 뻔했다. 제남부에서 온 이 정체불명의 사내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걱정해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한편으로는 탁발규 가 하후량을 아예 죽여 버리기를 은근히 바라기도 했다.
더 이상 구경거리도 아닌 이 싸움이 철광석의 채굴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해가 되고 있으니 그렇다.
하후량의 외로운 싸움이 은연중에 노역자들에게 그들이 잃어버리고 있던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을 일깨워 주고 있었던 것이다.
퍽-!
탁발규의 주먹이 부수어 버릴 듯 하후량의 얼굴 복판에 틀어박혔다.
목이 꺾이도록 뒤로 젖혀지면서도 하후량은 조금도 기세가 죽지 않았다.
그의 주먹도 탁발규의 옆구리에 반쯤 파묻히다시피 박혀 있었다.
족쇄가 채워져 자유롭지 못한 발로 비척거리는 하후량에 비해 탁발규의 두 발은 자유로웠다.
그가 이를 갈며 한 발을 번쩍 들어 하후량의 배를 걷어찼다.
그의 몸이 두어 자나 떠올랐다가 돌덩이처럼 떨어져 나뒹굴었다.
일어나기 위해 버둥거리는 하후량을 보며 탁발규가 부드득 이를 갈았다.
성큼성큼 다가간 그가 하후량의 뒷덜미를 질끈 밟아 버렸다. 죽여버리기로 단단히 작정한 것 같다.
하후량의 얼굴이 땅바닥에 파고들 것처럼 짓눌렸다.
그러면서도 눈빛만은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 있었다.
그의 입에서도 이를 가는 섬뜩한 소리가 새나왔다.
그대로 목뼈를 분질러 놓고야 말 듯 밟고 선 탁발규가 거친 숨을 씩씩거리며 주먹을 높이 들어 올렸다.
그 한 번의 주먹이 머리통에 떨어진다면 하후량의 머리는 그대로 박살이 나 허연 뇌수를 쏟아 놓고 말 것이 분명했다.
“대형, 그러시면 안 됩니다!”
소걸이 와락 달려들어 탁발규의 팔을 붙들고 매달렸다.
“보고 있는 눈들이 많습니다!”
겁에 질린 그의 눈이 의식적인 듯 천가평과 흑의경장의 사내가 서 있는 나무 그늘을 바라보았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분을 삭이지 못해 어깨를 떨던 탁발규도 나무 그늘을 힐끗 바라보았다.
천가평의 번쩍이는 갑주가 아직도 거기 있었다.
“귀찮은 놈.”
누구에게 한 소리인지 몰랐다.
탁발규가 하후량의 목덜미를 짓밟고 있던 발을 들었다.
“한 번만 더 귀찮게 한다면 그 때는 정말 죽여 버리고 말겠다.”
말과 함께 우악스런 발길질로 하후량의 척추를 힘껏 밟았다.
우두둑 하는 끔찍한 소리가 터져나왔다.
“으윽!”
처음으로 하후량의 입에서 비명소리가 흘러나왔고, 탁발규는 거친 숨을 씩씩거리며 손을 털고 돌아섰다.
엎어져 있는 하후량은 죽은 듯 움직일 줄을 몰랐다.
척추가 부러져 버린 것 같았다.
가느다란 신음이 텅 빈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달빛이 그의 피를 더욱 검붉게 물들였고, 사나운 바람이 비린내를 허공 가득 말아 올리며 몰아쳐 갔다.
“놀라운 일이다.”
사내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하후량의 처참한 모습을 보며 치를 떨고 있던 천가평이 깜짝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한 대만 제대로 맞아도 성치 못할 주먹과 발길질을 무려 서른다섯 번이나 받아냈다. 그러면서도 열두 번을 때렸고 세 번을 부딪쳤으니 그만하면 독기가 있는 사내라고 할 수 있겠지.”
그 와중에도 두 놈의 손속을 일일이 세고 있었다는 것이 더 기가 막혔다.
천가평은 뭐 이런 자가 다 있나? 하는 얼굴로 사내를 새롭게 바라보았다.
사내의 얼굴이 다시 냉막하게 변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