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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쯧쯧, 미련한 놈. 뒈지지 못해 안달이 난 놈도 너 같지는 않을 것이다.”
동굴 안쪽의 깊숙한 어둠 속에서 바람이 새는 소리가 났다.
곧 새벽이 올 것이었지만 잠들어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서른 명이나 되는 죄수들은 음울한 침묵을 덮고 누워 숨을 죽인 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다른 어느 때와는 달리 오늘밤의 하후량은 심각한 상태였다.
그 몸으로 이곳까지 기어왔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그의 몸은 엉망으로 깨져 있다.
어쩌면 하후량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모두로 하여금 피곤을 잊고 신경을 곤두세우게 했다.
뼈가 부러지기라도 하는 듯 우두둑거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터져나왔다.
그때마다 하후량의 낮은 신음소리도 들렸다.
부러지도록 이를 악문 채 고통을 참고 있는 것이다.
부러진 뼈를 주무르고, 어긋난 관절을 맞추는 노인의 손은 어둠 속에서도 춤추듯 움직였다.
하후량의 전신을 훑어 내리고 오르는 주름진 손가락들이 촉수처럼 정확하게 그의 부서지고 깨진 관절과 근육 사이를 헤집었다.
그럴 때마다 하후량은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억눌린 신음을 흘려야만 했다.
그것은 탁발규의 손에 관절이 빠지고 뼈가 부서질 때 맛보았던 것보다 더 큰 고통이었다.
노인의 손가락은 때로는 부드러운 솔이 되어 근육과 피부를 쓸었고, 또 때로는 날카로운 창이 되어 거칠고 사정없이 관절과 기문(氣門)을 찔러댔다.
불같은 고통이 황폐한 벌판을 치닫는 난마처럼 하후량의 전신을 휩쓸고 달렸다.
하지만 하후량은 이미 익숙하게 알고 있었다.
노인의 손가락이 만들어 주고 있는 고통 뒤에는 언제나 달콤한 평안과 안락한 휴식이 있었던 것이다.
탈골쯤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이틀이면 부러졌던 뼈가 아교 같은 상아질에 쌓여 아물었고, 늘어난 인대가 제 자리를 찾았다.
근육과 피부의 타박상도 노인의 누르고 주무르며 잡아당기는 손길에 맡기고 있으면 어느새 시원한 느낌과 함께 어혈(瘀血)이 풀리고 제 살빛을 찾아갔다.
처음에는 신기하기만 했다.
짓무른 눈에 이빨이라고는 몇 개 남지 않은 앙상하고 볼품없는 노인의 손이 신의 손인 듯 여겨지기도 했다.
탁발규에게 얻어맞아 초죽음이 되었던 하후량이 사흘이면 거뜬히 일어서곤 했던 비밀이 거기에 있었다.
“이놈아, 명심해라. 이게 마지막이다. 나도 이제 더 이상은 이 지긋지긋한 짓을 하지 않겠다.”
노인에게서는 언제나 엉성한 이빨 사이로 말보다 먼저 헛바람이 새나왔다.
노인은 비오듯 땀을 흘리면서도 그 야윈 몸의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믿을 수 없을 만큼 강한 손가락의 힘으로 하후량의 전신을 찔러대고 있었다.
지압과 안마와 접골(接骨)의 솜씨 같았지만 그것과는 또 다르다는 것을 하후량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무어라고 하는 것인지는 알지 못했다.
어쨌든 하후량은 벌써 석 달에 걸쳐 노인의 안마를 받으며 손가락이 찔러대고 누르는 부위와 순서와 강약(强弱)과 심천(深淺)을 모두 깨닫고 있었다.
생각하고 이해하기 전에 지독한 고통 속에서 몸으로 먼저 깨닫게 된 것이었으므로 그것은 그의 뼈 속에 깊이 새겨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으로 노인이 강한 힘으로 하후량의 단전을 때렸다.
그가 욱, 하는 신음을 터뜨리며 울컥, 한 모금의 탁한 피를 토해 냈다.
그러자 매번 그랬듯이 가슴이 후련해지며 상쾌한 기운이 순식간에 정수리까지 치받아 올라왔다.
비로소 하후량이 모로 쓰러져 누운 채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다들 들었겠지? 이놈이 오늘은 무려 두 식경이나 버텼다네. 흘흘-”
노인은 의식불명의 수면 상태로 빠져든 하후량의 몸을 계속 부드럽게 주무르고 있었다.
그러면서 어둠에 대고 말하듯 그렇게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아마도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 될 게야. 다음번에는 이런 기회가 없을걸? 흐흐, 아쉽기는 하겠지. 그 동안 정도 듬뿍 들었고 말이야. 하지만 어쩌겠나. 그것이 운명이라면 받아들여야 하는 수밖에…….”
“저놈!”
천가평 곁에 서 있는 사내는 아직도 검은색 경장을 입고 있었다.
그의 허리에 매달려 있는 벽옥패 하나가 유일한 변화였을 뿐, 지난밤의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탄성을 터뜨린 그의 눈이 매섭게 번쩍였다.
아침 일과를 시작하기 위해 갱도로 들어가는 죄수들 속에서 하후량을 발견한 것이다.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데, 하후량은 다리를 절며 다른 죄수들 틈에 섞여 갱도로 향하고 있었다.
몇 군데의 뼈가 부러지고 탈골이 심했을 것이다.
거기에 비하면 근육과 피부의 상처들이야 말할 것도 못 된다.
그 정도의 상처라면 적어도 몇 달은 꼼짝하지 못하고 누워 있거나, 아니면 이 아침에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어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저렇게 멀쩡하게 걸어다니고 있으니 사내는 제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내의 탄성을 듣고 문득 고개를 돌린 천가평도 눈을 부릅떴다.
그의 생각에도 하후량의 등장은 의외의 놀라움이었다.
그동안 탁발규와 하후량의 싸움을 수십 번이나 보아왔지만 어제 밤과 같이 심하게 당한 적은 없었다.
그도 이번만큼은 하후량이 살아나지 못할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버젓이 살아난 것은 물론, 다른 죄수들과 똑같이 작업을 하기 위해 갱도로 들어가고 있지 않은가.
이건 기적이라고 중얼거리는 천가평의 어깨를 흑의의 사내가 툭 쳤다.
천가평이 깜짝 놀라 사내를 바라보았다.
“작업장의 모습을 보고 싶군.”
사내가 턱으로 하후량의 등을 가리켰다.
감사의 임무를 맡고 온 자답게 적철산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파보겠다는 말처럼 들렸다.
하지만 천가평은 사내의 속뜻을 금방 읽을 수 있었다.
그는 하후량이 작업하는 모습에 더 관심이 많은 것이다.
죄수들이 줄지어 갱도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적철산이 시커먼 입을 벌리고 그들을 빨아들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막 하후량도 그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천가평이 손짓을 해서 독려대 중의 한 놈을 불렀다.
갱도 입구에 서서 죄수들의 작업 도구와 숫자를 점검하고 있던 놈들 중 한 놈이 재빨리 뛰어와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대인, 부르셨습니까?”
천가평이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사내를 돌아보았다.
대인이라는 그 거창한 칭호를 사내가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스러웠던 것이다.
하지만 사내는 무심한 얼굴로 허공만 바라보고 있을 뿐 관심이 없는 듯했다.
천가평은 내심 가슴을 쓸며 위엄을 갖추었다.
“오늘 저 독종 놈의 작업장이 어디냐?”
독종이 하후량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것은 적철산의 벌레들까지 다 아는 사실이다.
간사하게 생긴 놈이 더욱 간사하게 눈웃음을 치며 공손히 대답했다.
“이십칠 호 갱입니다. 채굴조에 속해 있습죠, 대인.”
비좁은 막장 끝에서 작은 삽과 괭이로 철광석을 캐내는 일이었다.
뼈가 산산이 부서진 놈이 과연 그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천가평이 사내를 돌아보았다.
“지하 일백 장 깊이에 있는 굴입니다. 어둡고 공기가 탁합니다.”
그래도 가겠느냐는 엄포였고, 가지 않는 게 좋다는 암시였다.
그러나 사내는 가볍게 턱을 끄덕였다.
“음.”
천가평이 속으로 빌어먹을 일이라고 욕을 했다.
그는 지옥과도 같은 그곳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멀찍이 떨어져서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십여 명의 호위대들도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거추장스러운 장창을 세워 놓고 칼 한 자루씩만을 지닌 채 천가평과 흑의 사내를 따라 갱도 안으로 들어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독려조원들이 혀를 빼물었다.
“다들 미친 거 아냐?”
“아침을 잘 못 먹었나보지 뭐.”
이십칠 호 갱은 수직갱이었다.
입구에서 이십 여장을 들어가자 곧 발밑으로 뚝 떨어진 갱도가 시커먼 입을 벌렸다.
무저갱(無底坑)처럼 끝을 알 수 없이 떨어진 어둠 속에서 차가운 바람이 뺨을 때리며 솟구쳐 올라왔다.
천가평은 가슴이 떨려왔다.
적철산의 감호대장으로 삼 년을 보냈지만 이처럼 수직갱도를 직접 보기는 처음이었다.
도르래에 걸린 삼줄을 감아올리자 한참 만에 커다란 바구니가 끌려 올라왔다.
그것이 작업장까지 수인들을 실어 나르는 유일한 도구였다.
한 번에 대여섯 명은 충분히 탈 수 있을 만큼 바구니는 컸다.
바구니가 내려가는 옆으로 커다란 대나무 관 서너 개가 길게 이어져 있는 게 보였다.
바깥의 신선한 공기를 작업장으로 옮겨 주고, 그곳의 탁한 공기를 밖으로 빨아내는 환풍구였다.
그래서였는지, 음습하고 퀴퀴한 냄새가 머리를 어지럽게 하였지만 숨쉬기에 큰 불편은 없었다.
쉴 새 없이 감기고 풀리는 도르래의 비명소리가 머리 위에서 점점 멀어져갔다.
철광석을 가득 실은 바구니가 그들이 탄 바구니를 스치며 천천히 올라갔다.
허공에 뜬 줄이 무게를 견디기 힘든 듯 부르르 떨리며 울었다.
천가평과 호위들은 모두 저희들이 탄 바구니가 천길 암흑 속으로 곤두박질치며 떨어져 내리는 상상을 하고 새파랗게 질려갔다.
그러나 흑의 사내는 여전히 태연하기만 했다.
바구니가 점점 아래로 내려갈수록 한 꺼풀씩 쌓여오는 어둠이 눈을 덮었다.
그러다가 드디어 아무 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때까지 흑의의 사내는 간혹 이마를 찌푸리기도 하고, 머리를 끄덕이기도 하며 그 모든 것들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그 곁에서 천가평이 이를 악물고 두려움을 참았다.
그는 제가 무간지옥(無間地獄)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는 공포를 느끼는 중이었다.
아스라한 발밑의 어둠 속에서 희미한 불빛이 흔들리고 있는 게 보였다.
조금 더 내려가자 쩡, 쩡, 하고 돌덩이를 부수는 소리도 들려왔다.
그때쯤 눈을 덮고 있던 어둠의 켜가 조금씩 벗겨졌고, 저 아래 벌레처럼 꿈틀거리며 느리게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내려다 보였다.
하후량은 힘찬 몸짓으로 괭이질을 하고 있었다.
괭이를 내리찍을 때마다 꿈틀대는 어깨와 등과 팔뚝의 근육들이 불빛에 번들거렸다.
이 지옥 같은 갱도 속에서 살아 있는 자는 오직 그 한 사람 뿐인 것 같았다.
모두의 회색 눈빛이 어둠 속에서 권태와 지겨움과 절망을 담고 죽음처럼 칙칙하게 가라앉아 있었지만 하후량의 눈빛만은 생생하게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벽에 달아 놓은 유등의 흐린 불빛을 받은 그의 눈이 퍼런 인광(燐光)을 쏘아내며 번쩍였다.
흑의 사내는 가만히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를 돌아보는 하후량의 눈빛 속에 담겨 있는 것은 명백한 적의였고 꺾을 수 없는 반의(叛意)였다.
그러나 흑의 사내는 그것에서 위험보다 역동적인 삶의 활기를 보았다.
언제나 반항과 반란의 의지가 순종보다 강하기 마련이다.
그것은 체념을 누르고 솟아나오는 생명의 기운이고, 무기력을 짓밟고 일어서는 힘인 것이다.
살아 있는 것들에게는 무엇보다 그것이 필요했다.
그것이야말로 제 삶을 바꾸고, 절망을 희망으로 전도(顚倒)시키는 마법이며, 고착(固着)된 삶에서 벗어나 더 높은 곳으로의 비상을 가능하게 해 주는 유일한 탈출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눈빛이 살아 있는 자는 마음속에 언제나 반의를 품고 있는 자라고 보아도 좋았다.
-더 강하게, 더 구체적으로 그리고 더 무자비하게 스스로에게 반항하라.
사내가 불타오르듯 뜨겁게 달구어진 시선으로 하후량의 눈길을 받았다.
괴괴한 어둠과, 흐린 불빛과, 동굴의 천장을 타고 길게 굽어 흔들리는 괴이한 그림자들 속에서 하후량과 흑의의 사내는 서로 눈싸움이라도 하듯 그렇게 치열한 눈빛으로 얽혀들었다.
짝-!
채찍으로 벽을 치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사내의 시선이 느리게 그곳으로 향했다.
한쪽에서 험악하게 인상을 쓰며 채찍을 들고 있는 자가 있었다.
탁발규의 심복이자 독려조원인 소걸이다.
그가 오늘 이십칠 호 갱의 작업을 감독하는 자였던 모양이다.
그의 채찍소리가 들리자 잠시 머뭇거리며 흑의 사내와 하후량의 눈싸움을 바라보던 자들이 흠칫하고 재빨리 돌아섰다.
하후량도 번뜩이는 시선을 돌리고 다시 벽 앞에 섰다.
온통 묵철빛으로 번쩍이는 암반을 마주하고 선 그가 힘껏 괭이를 내리찍었다.
쩡! 하는 울림이 그 어느 때보다 사납고 날카롭게 동굴 안의 어둠을 흔들어 놓았다.
한 덩어리의 철광석과 흙 부스러기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그것을 재빨리 망태기에 쓸어 담은 자가 한쪽에 있는 광주리로 가지고 가 쏟았다. 그러자 광주리 곁에 웅크리고 있던 노인이 재빠른 솜씨로 잡석(雜石)들을 골라내기 시작했다.
허리가 구부러진 볼품없는 노인이었지만 그 손놀림이 눈부시게 빨랐다.
마치 황새가 긴 부리로 물속의 고기를 찍어내듯, 노인의 손가락들이 침침한 어둠 속에서도 번개 같이 들락거리며 잡석들을 골라 퉁겨냈다.
사내는 그런 노인의 손놀림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이 조금씩 일그러져 갔고, 그것과 비례하여 눈빛이 더욱 삼엄하게 빛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