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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계
작가 : 송진용
작품등록일 : 2016.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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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화
작성일 : 16-07-11     조회 : 641     추천 : 0     분량 : 5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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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장 무명노(無名老)

 

 

 

 사내가 곁에서 불안한 눈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는 천가평을 돌아보았다.

 “누군가?”

 턱으로 노인을 가리키는 사내의 눈길이 불빛을 받아 무섭게 번쩍였다.

 천가평의 어깨가 두려움으로 움츠러들었다.

 “무명노라고 합니다. 이름도 출신도 아는 자가 없어서 그냥 그렇게 부르고 있죠.”

 “무명노라…….”

 잠시 무엇을 생각하는 듯 사내가 머리위에 까마득히 솟아 있는 시커먼 수직의 갱구(坑口)를 올려다보았다.

 “죄목은?”

 “당연히 살인이죠.”

 이곳에 있는 죄수들 중 살인죄를 짓지 않은 자는 없었다.

 있다면 반역죄를 지은 자나 그 가족들뿐이다.

 하나 같이 흉악하고 살기등등한 자들인 것이다.

 그런 자들 속에 섞여 있는 노인도 당연히 살인자였고, 그래서 참수형을 받아 마땅한 늙은이였다.

 하지만 그렇게 말해 놓고 나자 입맛이 썼다.

 노인의 저 볼품없는 모습과 살인자라는 말 사이에서 어떤 연관성을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천가평은 스스로도 우스울 만큼 괴리감을 느끼고 어색해졌다.

 하지만 어쨌든 살인자는 살인자였다. 문서에 그렇게 적혀 있지 않았던가.

 “구체적으로!”

 사내의 얼굴에 짜증이 번졌다.

 낮고 날카로운 말을 비수처럼 들이민다.

 천가평이 찔끔하고 곧 노인의 죄목을 줄줄이 읊기 시작했다.

 

 무명노가 참수형을 당하는 대신 이곳으로 보내진 건 십 년 전이었다.

 노인이 대낮에 저잣거리 한 복판에서 흉기를 휘둘러 다섯 놈의 건달들을 죽여 버렸다고 했다.

 문서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었다.

 그때의 일을 천가평은 알 수 없었다.

 십 년 전이라면 그가 골목에서 꼬마 놈들과 병정놀이나 하고 있을 무렵이 아닌가.

 어쨌거나 노인은 살인자였다.

 좌매(坐賣:잡상)를 하고 있던 중, 저잣거리를 휘젓는 건달들이 트집을 잡아 좌판을 엎어 버린 데 대한 분노 때문이라고 했다.

 물론 문서에 기록된 사실에 지나지 않다.

 어쨌든 그 일로 노인은 즉각 체포되어 온갖 체형을 받았고, 참수되는 대신 적철산으로 보내졌던 것이다.

 “살인이라…… 그것도 노인이 젊은 장정들 다섯을 한꺼번에 죽였단 말이지?”

 백주 대로에서 흉기를 휘둘러 살인을 한다는 것은 정상적인 머리를 지닌 자로서는 하지 못할 일이다.

 사내는 한동안 더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동안에도 무명노라고 불리는 노인은 부지런히 손을 놀려 잡석을 골라내고 있었다.

 노인이 손가락을 퉁겨 던져내는 잡석들이 동굴 벽에 부딪치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그것은 마치 박자를 타고 있는 듯 강약과 사이를 묘하게 띄고 있어서 듣기에 나쁘지 않았다.

 한참만에야 사내의 입가에 묘한 웃음 한 줄기가 매달렸다.

 “좋아.”

 또 그 소리였다.

 천가평은 대체 이 자는 무엇이 그리도 좋은 건지 모르겠다고 내심 투덜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사내가 그런 천가평의 속내와는 아랑곳없이 하후량에게 조금 더 다가갔다.

 팍! 하고 화섭자에 불이 붙는 소리가 짧게 퍼져 나갔다.

 사내가 머리를 기울이고 하후량의 구석구석을 좀 더 세밀하게 살펴보았다.

 꿈틀거리는 근육들과, 그 위로 번들거리며 흘러내리는 땀방울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그만!”

 짧고 위엄 있게 외친 사내의 손에 어느새 하후량이 휘두르던 괭이가 쥐어져 있었다.

 그가 하후량의 손아귀에서 언제 어떻게 그것을 빼앗았는지 제대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괭이를 빼앗긴 하후량이 적의가 가득한 눈으로 사내를 쏘아보았다.

 다시 갱도 안에 숨 막히는 정적이 흘렀고, 어디선가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더욱 크게 울렸다.

 괭이를 던진 사내가 거침없는 손길로 하후량의 벌거벗은 상체 이곳저곳을 더듬었다.

 주무르고 눌러보는 양이 무명노가 하후량을 안마해 주던 손길과 비슷한 것도 같았다.

 하후량의 피부는 매끄러웠고, 부드럽고 질긴 탄력이 있었다.

 잘 무두질된 가죽과도 같다.

 “좋다.”

 수건을 꺼내 땀이 묻은 손을 닦은 사내가 다시 한 번 그렇게 말했다.

 하후량의 몸을 한 번 쓸어보고 만져본 것으로 그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뼈대의 단단함이 가히 철골과 같이 단련되어 있었고, 그것을 싸고 있는 피부와 근육들은 어느 명가의 솜씨로 만들어 놓은 공예품보다 더 섬세하고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 위에 가죽의 질기고 부드러움이 맨몸으로도 도검(刀劍)의 예리함을 받아내기에 충분할 만큼 잘 연마되어 있는 것이어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정도라면 뼈들은 어지간한 충격에는 쉽게 부러지지 않을 것이고, 부러졌다고 해도 금방 스스로 아물어갈 것이다.

 살갗에 상처를 주는 일도 쉽지 않을 것이다. 외상 또한 피부와 근육의 놀라운 자생력으로 손쉽게 아물 것이 분명했다.

 사내는 비로소 하후량이 탁발규의 그 거칠고 인정사정 없는 손속 아래서 그처럼 굳세게 버틸 수 있었던 이유를 알았다.

 죽을 것처럼 보이다가도 하루 밤만 지나면 거뜬히 회복되는 비결이 그의 피부와 근육과 그 아래의 뼈 속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이놈은 금강불괴의 몸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인 모양이로군.’

 사내의 머릿속에 그런 엉뚱한 생각이 떠오른 것도 당연했다.

 그는 탁발규의 강한 주먹이 오히려 하후량의 몸을 더욱 부드럽고 질기게 만들어 놓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것을 탁발규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누가 만들어 놓은 솜씨냐?”

 무의식적인 듯 사내의 눈길이 힐끗 무명노에게 향했다.

 그러나 노인은 그가 잡석을 골라내고 있던 광주리에 걸터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을 뿐이었다.

 의식적인지 아닌지 사내를 외면하고 있다.

 마치 자기와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것을 애써 강조하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뭐가 말이요?”

 영문을 알 수 없는 하후량이 퉁명스럽게 되물었다.

 그로서는 이 자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사내가 손가락으로 그런 하후량의 가슴을 가리켰다.

 “네놈의 몸 말이다.”

 “아버지의 뼈를 받고 어머니의 살을 받아 생긴 몸이요. 굳이 만든 자를 대라면 조물주이지 누구겠소?”

 사내가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후량의 눈빛에 거짓이 없었던 것이다.

 이런 자는 목에 칼이 들어올망정 당장의 곤란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할 자가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하후량이 정말 제 몸에 생기고 있는 변화를 모르고 있다고 단정했다.

 그것은 알고 있는 것보다 좋은 일이었다.

 “좋아.”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인 사내가 돌아섰다.

 

 코고는 소리가 갱도 안에 가득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한 덩이의 주먹밥으로 허겁지겁 허기를 채운 자들이 중식 후에 주어지는 잠깐 동안의 휴식 시간을 이용해 하나 같이 골아떨어진 것이다.

 그것은 채찍을 쥐고 눈을 부라리던 독려조 놈들도 마찬가지였다.

 갱도 안에 깨어 있는 사람은 하후량과 무명노 뿐이었다.

 그들은 구석의 어둠 속에 숨듯이 웅크리고 앉아 낮은 소리로 속삭이고 있었다.

 “내 말을 잊지 않을 수 있겠지?”

 “영감도 참, 별 헛소리를 하고 있소. 드디어 노망이 든 모양이요. 아니면 죽을 때가 되었거나.”

 “버르장머리 없는 놈.”

 하얗게 하후량을 흘겨본 노인이 혀를 끌끌 찼다.

 “이 미련한 놈아. 언제 노부가 네놈에게 한 번이라도 부탁을 한 적이 있더냐? 처음 하는 부탁인데 그것도 안 들어 주려고 발뺌을 해?”

 “나 참, 기가 막혀서…… 늦고 빠름이 있을 뿐, 영감이나 나나 결국은 적철산의 귀신이 되고 말 텐데 내가 어떻게 이곳을 벗어날 수 있단 말이요?”

 “이놈아, 글쎄 넌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니까. 어떠냐, 약속해 줄 수 있지?”

 “알겠수. 귀신이 되어서라도 내 반드시 영감님 말대로 해 드리리다.”

 “잊지 말거라. 연경 계태사의 행자 화상이다.”

 “알았소. 가서 만나보면 될 거 아니요.”

 하후량은 이해할 수 없었다.

 무명노가 뜬금없이 이곳에서 나가게 되면 언제든 연경에 있는 계태사(戒台寺)에 찾아가 행자(行子)라는 화상을 찾아보라고 했던 것이다.

 왜 그래야 하는지, 행자 화상을 만나서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없었다.

 하다못해 전해주라는 말이라도 있어야 할 것 아닌가.

 하후량은 그게 의아하고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굳이 물을 필요를 느끼지 못한 것이다.

 제가 이 지옥 같은 적철산에서 나갈 수 있을 리가 없고, 그러니 계태사에 갈 일도 없기 때문이다.

 무명노가 하도 간곡하게 부탁하니 그저 그러마고 대답해 준 데에 지나지 않다.

 “꼭이다. 약속한 거야.”

 “알았다니까 그러네. 반드시 약속을 지켜 드리리다.”

 “그럼 되었다. 돌아앉아라, 시간이 없다.”

 늘 느긋하고 흐물거리던 무명노였는데 지금은 이상하게 서두르고 있었다.

 하후량은 그런 노인의 속셈이 궁금했지만 어깨를 미는 손길을 뿌리치지 못하고 마지못해 돌아앉았다.

 무명노의 거친 손바닥이 등에 와 닿았다.

 “아깝다. 탁발규 그놈에게 석 달만 더 시달렸더라면 대공을 이룰 수 있었는데…….”

 “무슨 대공 말이요?”

 “알 것 없다. 기회는 한 번 뿐이다. 정신을 모으고 잡생각을 버려라.”

 순간, 명문을 타고 뜨거운 기운이 물밀 듯이 밀려 들어왔다.

 하후량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하얗게 탈색되어 가는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한 가지 뿐이었다.

 ‘이건 말도 안 돼…… 어떻게 무명노가…….’

 일 년을 함께 지내면서도 무명노가 무림인이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무공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탓도 있었지만, 하후량에게 무명노는 안마와 지압에 뛰어난 노인에 불과했을 뿐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저의 기문을 깨뜨려버릴 듯 무지막지한 기운으로 밀려들어오는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힘은 뭐란 말인가.

 하후량은 그것이 무명노의 내력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러자 머리가 더욱 복잡해졌다.

 적철산에는 강호인들도 적지 않게 잡혀와 있었다.

 국법은 강호인들이라고 예외를 두지 않았다.

 살인자는 사형으로 다스리는 것이 태조 홍무제 이후 변하지 않는 율법인 것이다.

 하지만 강호인들은 좀체 순검이나 포쾌 등에게 잡히는 일이 드물었다.

 그들의 싸움은 은밀하고 신속하여 쉽게 눈에 뜨이지도 않았지만, 발견했다고 해도 달려갔을 때는 이미 씻은 듯 사라지고 없기 마련이었다.

 관(官)의 일에 중대한 지장을 주었다거나, 민심을 어지럽힐 만큼 명백한 죄를 지은 자들에 대해서는 가끔 제형안찰사(提刑按察使)의 명으로 체포령이 발동되기도 했다.

 그렇게 되면 엄밀하고 조직적인 관의 힘이 그자에게 집약되어 끈질기게 쫓았다.

 그것은 만리추적이라고 할 만큼 치밀하고 집요한 것이어서 한 번 제형안찰사의 체포령이 내려진 자는 숨을 곳이 없었다.

 그렇게 해서 잡혀온 자들도 적철산에는 더러 있었다.

 하지만 적철산에 잡혀온 이상 그들은 더 이상 초인적인 힘을 지닌 무서운 자들일 수 없었다.

 단전이 철저하게 파괴되어 무기력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 자들은 오히려 흉악한 일반 죄수들보다 나약했다.

 때문에 곧잘 놀림감이 되었고, 비웃음을 받으면서도 강호를 종횡할 때의 흉성을 드러내 보이지 못했다.

 무공을 잃어버린 그들은 그저 비굴하고 절망적인 인간의 약한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불쌍한 인생에 불과했던 것이다.

 칼에 의지하여 거드름을 떨던 골목의 불량배가 그것을 빼앗기자 곧 풀이 죽어 달아날 곳을 찾아 바쁘게 눈을 굴리는 꼴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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