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폭력자(暴力者)
땅을 두드리는 요란한 말발굽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가 하여 돌아보는 김전의 눈에 구름처럼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고 있는 한 필의 말이 보였다.
네 발이 허공에 떠 있는 듯 질풍처럼 빠르고 힘차게 달려오는 기세가 여간 사나운 게 아니었다.
김전은 먼저 말의 뛰어남에 탄성을 터뜨렸다.
보이는가 했는데 어느새 코앞에 다가온 말이 앞발을 번쩍 들며 우렁차게 울었다.
제 속도를 유지한 채 달려들다가 한 순간에 멈춰 세우는 기수의 마술(馬術)은 말의 뛰어남보다 더 돋보이는 것이었다.
김전은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탄했다.
가볍게 몸을 날려 내려선 사내가 유쾌함이 가득한 눈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김전은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그에게서 은은한 향기를 맡고 눈살을 찌푸렸다.
‘사내놈이 향수라니…….’
내심 못마땅해 하고 있는데 사내의 쾌활한 음성이 들려왔다.
“쥐새끼 몇 마리를 놓고 쩔쩔매다니. 쯧쯧, 이래서 관에 있는 것들은 모두 뇌물만 밝히는 허수아비들이라는 조롱을 듣는 것 아니겠소?”
‘이 놈이!’
김전이 발끈하여 사내를 쏘아보았다.
감히 관원을 앞에 두고 이처럼 거침없이 말하는 자는 처음 대한다.
그것도 제남부의 감찰관인 제 면전에서라는 데에는 어이가 없기도 했다.
“강직하고 청렴한 추관 나리를 두고 한 말은 아니니 노엽게 생각 마시오. 하하, 설마 그처럼 속 좁은 나리는 아니겠지만서두…….”
뒤로 돌린 수건의 매듭을 질끈 조이며 사내가 눈으로 웃었다.
김전이 쓴 입맛을 다시고 외면했다.
사내가 품안에서 향 한 자루를 꺼냈다.
이놈이 또 무얼 하려고 그러나 하는 눈으로 바라보는데 사내가 엉뚱한 고함을 질렀다.
“어이, 누구 내기할 사람 없나?”
화섭자를 꺼내 들고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어리둥절하여 바라보고 있는 병사들을 돌아보며 다시 소리친다.
“이 향 한 자루가 다 타기 전에 내가 저 쥐새끼들을 끌고 나온다는 데 건다면 몫돈을 쥐게 될 걸세.”
화섭자를 당겨 불을 일으키며 사내가 유쾌한 듯 하하 웃었다.
김전은 미친놈이라고 생각했다.
하는 짓이 영락없이 철없는 아이의 찧고 까부는 것과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병사들이 눈치만 보고 있을 뿐 누구도 응대하는 자가 없자 사내가 혀를 쯧쯧 찼다.
향을 땅에 꽂아 놓은 그가 품에서 전표 한 장을 꺼내 흔들었다.
“백 냥 짜릴세. 나는 당연히 내가 나온다는 쪽에 걸지. 자, 자, 어서들 걸라구. 벌써 향이 타고 있잖아.”
“양 노대, 저거 이상한 놈들이군요.”
창고의 갈라진 문틈으로 밖을 내다보고 있던 아삼이 돌아서며 웃어 보였다.
창고 안의 어둠 속으로 잘게 갈라진 햇살들이 어지럽게 쏟아져 들어와 이리저리 흰 빛의 줄을 그어놓은 듯했다.
그 빛줄기 속으로 먼지들이 둥둥 떠다니는 구석에 네 명의 사내들이 편히 앉거나 소금 자루를 기대고 누워 있었다.
곰방대를 빨고 있던 오십 줄의 중늙은이가 몽롱한 눈길로 아삼을 바라보았다.
곰방대에 연초 대신 앵속(罌粟)을 넣어 피우고 있는 게 분명했다.
노대라고 불리는 양철심(梁鐵心)에게 다가온 아삼이 곰방대를 빼앗아 몇 모금 빨고 나서 음침하게 웃었다.
“모여서 내기들을 하고 있소. 흐흐, 아마 우리가 이곳에 갇혀서 꼼짝 못하는 줄 아는 모양이오.”
“썩을 놈의 관병이라니…… 노대, 그냥 치고 나갑시다. 저까짓 허수아비들이야 한 무더기 아니라 열 무더기가 덤빈다 해도 겁먹을 이 주필이 아니오!”
눈 꼬리를 타고 뺨에 걸쳐 길게 상처가 나 있는 자가 제 가슴을 두드리며 호기를 부렸다.
양철심의 눈이 힐끗 구석의 어둠으로 향했다.
거기 두 명의 사나이가 품에 검을 안은 채 잠자듯 조용히 벽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치고 나갈 듯 칼을 움켜 쥔 주필이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그의 뺨에 나 있는 긴 상처가 꿈틀거렸다.
“엉덩이 붙이고 앉아라.”
구석에 조는 듯 앉아 있던 사내 중 한 명이 낮고 음침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 차례 양 노대와 사내의 눈치를 본 주필이 끙, 하는 탄식을 뱉어내고 다시 주저앉았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산채에서 응원군이 올 걸세. 그 때 안팎에서 일제히 들이쳐 관병들을 깨뜨리고 배를 타도 늦지 않을 게야.”
다른 사내가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며 웅얼거렸다.
그들은 황하를 타고 내려오고 있을 동료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밥 먹듯 싸움을 일삼는 산채의 서른 명 장한들이라면 저따위 오합지졸이나 다름없는 안찰부의 관병쯤은 일거에 쓸어버릴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놈들을 비웃고 조롱해 주며 배를 타고 이곳을 빠져나간다면 산채까지 가는 건 식은 죽 먹기일 것이다.
꽝!
사내의 느긋한 말이 끝나기 무섭게 굉음과 함께 풀썩 먼지가 날리더니 밝은 햇빛이 와르르 쏟아져 들어왔다.
갑작스런 그 일에 모두는 어리둥절하여 그곳을 바라보았다.
햇빛 때문에 눈이 부셨다.
잔뜩 찡그린 그들의 눈에 박살나 부서진 문짝을 밟고 서 있는 호리호리한 사내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양철심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현실감이 없기는 다른 네 놈의 염효들도 마찬가지였다.
앉거나 기대 누운 자세 그대로 어리벙벙한 얼굴들을 하고 멍하니 햇빛 속에 서 있는 그림자를 바라볼 뿐이다.
“틀렸어, 배를 타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걸 알아야지.”
사내가 성큼 두어 걸음을 들어오자 비로소 그의 면목을 알아볼 수 있었다.
얼굴을 가리고 있던 수건을 풀어 드는 사내의 모습이 앳되어 보였다.
추리연이다.
주필이 칼을 들고 벌떡 일어섰다. 그러잖아도 손발이 근질거리던 그였다.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종자 같으니, 감히 어르신들을 놀라게 해!”
버럭 외친 그가 기세 좋게 나섰으나 추리연의 얼굴에 떠오른 비웃음을 보고는 다시 어안이 벙벙해지고 말았다.
“나는 말이야, 추리연이라고 해.”
마치 누구에게 죽는지 이름이나 알고 죽으라는 듯한 표정이었고 말투였다.
추리연이 품에서 반질거리는 가죽장갑을 꺼내 손에 끼고 있었다.
교룡피(蛟龍皮)를 잘 무두질해 만든 장갑이었다.
얇으면서 신축성이 좋았고 무엇보다도 질겼다.
손아귀를 뿌듯이 조여오는 느낌이 추리연을 새삼 흥분시켰다.
주먹을 꽉 쥐자 마디마다 보석처럼 박혀 있는 새하얀 철구(鐵球)가 영롱하게 반짝였다.
추리연이 장갑 낀 손을 가볍게 부딪쳐보며 주필을 바라보고 웃었다.
“네놈의 이름 따위는 물을 필요도 없겠지?”
이죽거리며 다시 두 걸음을 성큼 다가선다.
이제는 거친 숨소리까지 낱낱이 들릴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추리연은 주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차갑게 웃었다.
입 꼬리가 말려 올라가는 소리 없는 웃음이었다.
그것에서 전해져 오는 사악하고 불길한 느낌에 주필은 등줄기가 섬뜩해졌다. 저도 모르게 주춤 한 걸음 물러선다.
추리연의 조롱이 그런 주필의 가슴에 박혀들었다.
“죽이는 자들마다 일일이 이름을 기억하는 건 피곤한 일일 테니까 말이야. 안 그래?”
주필의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졌다.
“이 쳐죽일 놈!”
단칼에 두 쪽을 내겠다는 듯, 잠깐 동안이지만 겁을 먹었던 제 자신에게 화가 난 듯 발을 떼기 무섭게 칼을 내리쳤다.
흰 칼빛이 번쩍이며 추리연의 정수리 속으로 파고들었다.
추리연의 입가에 한 줄기 미소가 새롭게 떠오른 듯했다.
‘미친 놈!’
주필의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스쳐갔다.
추리연이 주먹을 곧장 제 칼날 아래로 밀어 넣고 있었던 것이다.
단번에 두 동강을 내고 말려는 듯 주필이 칼을 쥔 손아귀에 불끈 힘을 주었을 때 땅! 하는 경쾌한 소리가 터져나왔다.
손아귀에 무거운 충격이 느껴졌다.
갑자기 손이 허전해졌다고 느낀 순간 얼굴 전체에 무서운 충격이 전해져 왔다.
퍽!
잘 익은 박이 섬돌 위에 떨어져 부서지는 것 같은 소리는 그 다음에야 귀속에 들려왔다.
그것이 주필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들은 소리였다.
“헛!”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어떻게 될까?’ 하는 호기심을 품고 바라보던 아삼의 입에서 놀람에 찬 외침이 터져나왔다.
어깨 위에서 이를 악문 채 눈을 부릅뜨고 있던 주필의 얼굴이 피와 골수를 뿌리며 터져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이미 얼굴이 아니고, 머리가 아니었다. 끔찍한 악몽 그 자체다.
양철심도 빨고 있던 곰방대를 내던진 채 벌떡 일어섰다. 그의 눈에 더 이상 몽롱한 빛은 어려 있지 않았다.
아삼이 칼을 집어 들었고, 양철심이 소금자루를 더듬어 그 속에 박아 놓았던 비수를 꺼내 들 때 땅을 박찬 추리연은 이미 그들의 코앞에 다가들고 있었다.
한 번 손을 쓰기 시작하자 조금 전까지의 느물대던 여유는 씻은 듯 사라지고 없었다.
질풍이 쓸어가듯 거칠 것 없이 부딪쳐 오는 그의 육박(肉薄)의 맹렬함이 아삼과 양철심을 질리게 했다.
빠각!
삭정이가 부러지는 듯한 경쾌한 소리가 났다.
“아악!”
그와 함께 아삼의 입에서 처음으로 고통에 찬 비명이 터져나왔다.
칼을 쥐고 있던 그의 팔이 덜렁거리며 힘줄에 의지하여 겨우 매달려 있었고, 가슴이 함몰되어 등 밖으로 터져나왔다.
중심을 잃은 채 맴도는 아삼의 공포가 그대로 양철심에게 전이되어 왔다.
파랗게 질린 얼굴로 그가 두 자루의 비수를 채 뻗어 내기도 전에 이미 코앞으로 달려든 추리연의 싸늘한 눈이 가득 느껴졌다.
뻑!
다시 한 번 박이 쪼개지는 끔찍한 소리가 터져나왔다.
양철심의 머리가 덜컥, 뒤로 젖혀졌다.
미간과 코뼈가 한꺼번에 함몰된 그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소금 자루를 뭉개며 나뒹굴었다.
그와 동시에 남아 있던 두 놈의 가슴 깊숙이 양철심이 들고 있던 비수가 한 자루씩 박혀들고 있었다.
조금의 인정도 아량도 없는 잔혹한 손질이었다.
한 주먹으로 주필의 칼을 부러뜨린 즉시 얼굴을 깨뜨려 놓고, 날 선 수도로 아삼의 어깨를 찍으며 팔꿈치로 가슴을 가격한 것과, 양철심의 미간을 때린 것이 거의 동시의 일처럼 보였다.
그것만으로도 그의 움직임을 미처 알아볼 새가 없었는데, 어느새 양철심의 손에서 비수를 빼앗아 다시 두 놈의 가슴속에 던져 넣은 손발의 신속함은 가히 섬전수(閃電手)라고 할만 했다.
구석의 어둠 속에 웅크리고 앉아서 구경하고 있던 두 명의 사내가 검을 쥐고 벌떡 일어섰다.
설마 어린놈이, 하고 가볍게 여기고 있던 그들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싱거운 놈들이군.”
추리연이 재미없다는 듯 손을 털며 혀를 찼다.
두리번거리던 그의 눈이 어둠을 등지고 서서 바라보는 두 명의 검사들에게 향했다.
그의 입가에 환한 웃음이 번졌다.
“어? 아직 거기들 있었나?”
입과 눈으로 활짝 웃으면서 두 손을 깍지 껴 꺾는다.
손마디에서 우두둑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가 얼굴이 없어져 버린 양철심의 처참한 주검을 성큼 건너 사내들에게 다가갔다.
“좀 아쉬운 감이 있었거든. 오래간만에 맛보는 재미인데 너무 빨리 끝나버린 것 같아서 말이야.”
어느새 사내들의 가슴 앞에 서서 이리저리 훑어보는 추리연의 눈에 기대감이 어려 있었다.
“너희들은 좀 달라 보이는데? 어때, 저놈들보다 나를 좀 더 즐겁게 해줄 수 있겠어?”
“죽일 놈.”
우측의 사내가 눈빛을 차갑게 가라앉힌 채 이를 갈았다. 턱수염이 드문드문 나 있는 매부리코의 사내였다.
“추리연이라고 했나?”
좌측의 사내가 들고 있던 검을 조금 앞으로 기울이며 살짝 왼 발을 내밀었다.
“권력(拳力)이 볼만하더군.”
탐색하듯 추리연의 전신을 찬찬히 훑어가는 눈빛이 날카로웠다.
팔이 길었고, 호리호리한 몸매가 단단해 보이는 사내였다.
추리연은 그 자의 몸가짐에서 그가 쾌검수(快劍手)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아하, 알만해.”
아래위로 두어 번 훑어 본 추리연이 다시 밝게 웃었다.
그와 마주서 있는 두 명의 사내는 그의 웃음에서 사악한 공포를 읽어야 했다.
“그대들이 소하산의 두 뱀대가리로군.”
소하산(小河山)의 흑석보(黑石保)에 있다는 쌍두사(雙頭蛇)가 바로 그들이었다.
일점사(一點蛇) 양후경(梁侯京)의 청홍검(靑紅劍)은 소하산의 자부심이고, 괴홍사(怪紅蛇) 갈위(葛魏)의 쾌검은 흑석보의 자랑이라고 떠드는 그들 두 고수를 앞에 두고 있으면서도 추리연의 얼굴에는 조금의 망설이는 빛도 없었다.
흑석보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산동 무림의 강자로 군림하게 된 데에는 양후경과 갈위의 검에 의지한 바가 컸다.
사문을 같이 하고 있는 그들 사형제는 언제나 함께 움직였다.
강한 적을 대적할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시정의 잡배를 벨 때도 함께 검을 들었다.
청홍검의 굳셈과 갈위의 쾌검이 합격을 이루면 완벽한 공수의 검세를 이루는 것이어서 그들의 손아래 패하여 덧없이 목숨을 잃은 강호의 고수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