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고 굳건한 검경(劍勁)에 더하여 냉혹하고 비정한 성품까지 지니고 있는 그들 두 검귀는 산동 무림의 골칫거리였다.
두 몸이면서 한 몸인 듯한 그들을 일컬어 산동 무림인들은 ‘견쌍사이불생(見雙蛇而不生)’이라고 하며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고 피하는 게 보통이었던 것이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추리연의 얼굴은 태연함이 지나쳐서 오만하기까지 했다.
일점사 양후경이 눈빛을 싸늘히 하고 앞으로 나섰다.
얼음덩이처럼 차갑게 굳어진 그의 얼굴에 떠오른 것은 온통 살기였다.
추리연이 눈에 옅은 웃음을 띤 채 그런 양후경을 바라보았다.
양후경의 한쪽 볼에 나 있는 주먹만 한 홍점(紅點)이 더욱 붉게 빛났다.
그의 흉포함이 터질 듯 압박해 오고 있었지만 추리연은 빙글빙글 웃으며 양후경의 얼굴을 핥듯이 바라보기만 했다.
양후경이 입술을 씰룩거렸다.
“우리가 누구인지 알면서도 거만을 떨다니…….”
이 사이로 스산하게 뱉어내며 검을 잡아간다.
그것을 바라보는 추리연의 눈에 더욱 짙은 웃음이 떠올랐다.
“이봐, 향이 다 타기 전에 나가야 한다구. 그러니 그만 으스대고 시작해 보지. 어차피 곱게 따라나가 줄 뱀대가리들은 아닐 테니까 말이야.”
“죽일 놈!”
양후경의 일갈이 터져 나왔을 때 갈위의 쾌검도 동시에 불을 뿜듯 튕겨져 나왔다.
“좋구나!”
흥이 가득 배어 있는 외침은 몸의 빠름을 따르지 못했다.
갈위의 쾌검이 곧장 뒷덜미를 찍어올 때 추리연은 가슴을 부딪쳐 가듯 양후경의 품안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뒷덜미를 스쳐 가는 차가운 검기가 느껴졌다.
그러나 놀란 건 추리연이 아니라 양후경이었다.
“헛!”
그가 다급한 경호성(驚呼聲)을 터트리며 미끄러지듯 일 장을 물러섰다.
가볍고 표홀하기가 바람 같은 운신이었지만 추리연은 이미 그의 그림자가 되어 있었다.
이마를 붙일 듯이 따라 들어온 추리연의 싸늘한 눈이 활짝 웃었다.
그의 주먹이 곧장 놀란 양후경의 얼굴로 박혀들었다.
빠악-!
격하고 경쾌한 소리가 터져나왔다.
앞서의 염효들과 마찬가지로 단번에 얼굴이 부서진 양후경이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주춤거릴 때 추리연은 이미 등 뒤에서 맹렬하게 검을 찔러오고 있는 갈위에게 향해 있었다.
그의 손이 코앞에 닥친 갈위의 검을 그대로 잡아갔다.
산동 무림의 고수로 군림하면서 수많은 피와 살을 맛본 갈위의 보검이었지만 추리연의 무뚝뚝한 손아귀에 꽉 틀어 잡혀서는 나무 막대기보다 나을 것이 없었다.
갈위가 놀란 눈을 부릅떴다.
설마 맨손으로 제 검을 잡아챌 놈이 있으리라고는 꿈에서도 생각해 보지 않은 그였다.
손아귀에 불끈 힘을 주어 비틀었지만 추리연의 다섯 손가락에 단단히 움켜잡힌 검은 움직일 줄을 몰랐다.
“흥!”
차가운 코웃음이 갈위의 이마를 때렸다.
추리연의 왼손이 가볍게 검신을 쳤고, 수수깡처럼 부러져버린 검을 내던진 그가 반 바퀴 회전하며 바싹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빠악-!
다시 한 차례 둔탁한 소리가 터져나왔다. 몸통을 비틀며 돌려 쳐오는 추리연의 팔꿈치에 갈위의 관자놀이는 진흙을 으깨놓은 듯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손속다운 손속을 나눌 새도 없이 한 번의 부딪침으로 부서져버린 얼굴을 바닥에 갈며 처박힌 갈위 곁에서 양후경은 고통이 지나쳐 이미 의식을 잃고 뻗어 있었다.
“뭐야, 고작 이 정도를 가지고 큰소리쳤었나?”
아득히 멀어져가는 갈위의 의식 속으로 추리연의 비웃음이 꿈결처럼 박혀들었다.
“나온다!”
바라보고 있던 누군가가 그렇게 소리쳤다.
희미한 창고의 어둠 속으로 수십 쌍의 눈길이 일제히 모였다.
그 어둠 속에서 추리연이 늘어져 버린 두 개의 고깃덩이를 질질 끌고 나오고 있었다.
쨍쨍한 햇빛 아래 철썩, 하고 양후경과 갈위의 몸뚱이가 더러운 물건처럼 내팽개쳐졌다.
“소하산 흑석보의 쌍두사 양후경과 갈위다!”
누군가가 다시 그렇게 놀람의 소리를 질렀다.
햇빛보다 더 강렬한 적막이 갑자기 밀려들었다.
그 속에서 꿀꺽, 하고 마른침 삼키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태연한 추리연을 보며 김전은 저도 모르게 부르르 몸을 떨고 주춤 물러섰다.
“보다시피 간단한 일 아니요? 이 정도도 처리하지 못한대서야 나라의 녹을 먹을 자격이 없지.”
추리연의 비웃음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김전은 눈앞에서 가죽장갑을 벗으며 투덜대는 추리연의 해사한 얼굴을 넋이 나간 듯 바라보기만 했다.
추리연이 땅바닥에 꽂아 놓았던 향을 집어들었다. 그것은 아직 두어 치쯤 남아 있었다.
‘저건 이상한 놈이다.’
흑석보의 내총관(內總管)인 삼환교(三環巧) 엄준청(嚴俊靑)이 눈살을 찌푸렸다.
앞을 가로막은 채 금방이라도 황하의 탁류에 휩쓸려 가라앉을 듯 위태롭게 흔들리며 떠 있는 쪽배 한 척이 영 눈에 거슬렸던 것이다.
그 배 위에 우뚝 서서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거구의 사내를 보고는 더욱 기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지금 외총관(外總管)인 양후경의 급보를 받고 급히 배를 내어 황하의 물살을 바람같이 타고 있는 중이었다.
그의 배는 폭이 좁고 날렵하게 생긴 쾌선이었다.
여느 배들과는 달리 홀수가 깊고 전장이 넉넉했으므로 흑석보의 서른 명 무사들을 태우고도 쏜살같이 물살을 가르는 데 거침이 없는 좋은 배였다.
양산박(梁山泊)을 돌아 협로(峽路)를 타고 발해만으로 빠지는 황하의 물살은 급했고 바람마저 알맞았다.
그 위에 흑석보의 깃발을 펄럭이며 치닫는 그의 배를 가로막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순조로운 항해였던 것이다.
비성(肥城)을 오른 쪽으로 멀리 바라보고 두어 식경 동안 달려 왔으니 앞으로 한 식경만 더 가면 양후경이 기다리고 있다는 장청현(長靑縣)의 선착장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제남부의 관병 사오십 명쯤이야 그가 거느리고 있는 흑석보 무사들의 위세를 보기만 해도 지레 겁을 먹고 꼬리를 사릴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빡빡하게 구는 관리가 있다면 적당히 뇌물도 찔러주며 얼러 볼 생각이었다.
흑석보의 위세와, 뇌물의 힘이라면 적어도 산동성에서는 안 되는 일이 없다고 굳게 믿고 있는 엄준청이었다.
절강에서부터 올라온 염효들이 지고 있는 것은 소금가마만이 아니었다.
그 속에는 앵속도 두어 가마나 섞여 있었다.
소금은 물론이지만 앵속이라면 당장에 큰돈이 되는 물건이었다.
보주(保主)인 염화신장(閻火神掌) 주태(珠台)가 외총관인 쌍두사를 직접 내려보낸 것만 보아도 그 물건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는 두말 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그 물건들을 흑석보까지 호송할 책임을 지고 있는 양후경과 갈위가 장천현에서 관병들에게 포위되어 있다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었다.
행여 앵속을 밀거래하고 있다는 것이 들통나기라도 한다면 흑석보 전체가 관은 물론 다른 강호 방파의 지탄을 받고 토벌의 표적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양후경과 갈위가 비록 산동성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고수들이기는 했지만 사오십 명이나 된다는 관병들을 다 상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비록 부에 속한 지방군이라고 해도 그들은 집단 전투에 최대의 능력을 발휘하도록 잘 훈련된 병사들인 것이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양후경과 갈위의 처지가 나빠지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받아버려라.”
엄준청이 눈치를 보는 수하에게 그렇게 명령했다.
저따위 작은 쪽배 하나 때문에 시간을 지체하고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받아버려!”
수하가 그렇게 복창했고, 급박하게 울리는 북소리를 따라서 노수들이 힘껏 노를 젓기 시작했다.
“받는다!”
키잡이가 다시 복창하며 힘껏 키를 틀자 엄준청의 쾌선은 날카로운 선수를 틀어 곧장 쪽배를 향해 쏜살 같이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전장이 육십오 척(尺)에 달하는 큰 배였다.
손바닥만 한 쪽배쯤은 그저 곁을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뒤집어지고 말 것이 뻔했다.
배가 황하의 격류를 쪼개고 으르렁거리며 달려들고 있었지만 앞을 막아서 있는 쪽배는 여전히 비켜날 의사가 없는 듯했다.
그것을 보며 엄춘청은 당랑거철(螳螂拒轍)이라더니, 영락없는 그 꼴이라고 생각했다.
가소롭기 짝이 없는 일이라고 내심 코웃음을 날리며 곧 산산이 부서져 가라앉아 버릴 쪽배를 보았다.
쾌선이 쪽배를 들이받기 직전이었다.
배 위에 오연히 버티고 서서 먼 하늘만 바라보고 있던 거구의 사내가 문득 시선을 돌려 엄준청을 바라보았다.
구레나룻이 무성한 그의 얼굴이 거칠어 보였다.
엄준청은 이상한 놈이라고 생각했다. 그자의 눈이 웃고 있었던 것이다.
꽝-!
엄준청의 머릿속에 아직 사내의 얼굴이 잔상으로 남아 있는 데 쾌선이 사정없이 쪽배를 들이받았다.
가벼운 진동이 느껴졌을 뿐, 쾌선은 언제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여전히 황하의 탁류를 가르며 날듯이 나아갔다.
쪽배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조금 전의 충돌로 수십 조각으로 갈라져 흩어져 버렸을 것이다.
“미련한 놈.”
두리번거리던 엄준청은 고소를 지었다.
그 거구의 사내 또한 쪽배와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듯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으악!”
그의 쓴웃음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배의 뒤쪽에서 한 소리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
엄준청이 눈살을 찌푸렸다.
어떤 정신 나간 놈이 잠시 한눈을 팔다가 배에서 떨어졌다고 여긴 것이다.
“으악!”
다시 애절한 비명이 들려왔다.
“웬 놈이냐!”
수하의 호통 소리가 그 뒤를 따라 터져 나왔을 때에야 엄준청은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저 놈!”
돌아본 엄준청은 기가 막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의 눈에 보이는 사내는 분명히 쪽배와 함께 사라졌어야 할 그 거구의 구레나룻이었다.
“아니, 저놈이 어떻게?”
언제 어떻게 선미에 올라탔던 것인지, 두 다리로 든든히 뱃전을 밟고 버티고 서 있는 그의 모습이 더욱 커 보였다.
흑추량(黑醜輛) 장적(張蹟)이 그의 애병인 팔십 근짜리 낭아곤(狼牙棍)을 꼬나들고 다가서고 있는 게 보였다.
장적은 그의 별호처럼 거무튀튀한 얼굴에 항아리같이 두루뭉실하게 크고 못생긴 자였다.
용모야 그랬지만 힘만은 가히 타고났다고 할 만큼 천부적이었다.
맨 손으로 황소의 뿔을 뽑기를 젖은 땅에 박힌 말뚝 뽑듯 하는 자였던 것이다.
“으흐흐흐- 나, 나는…… 말이지 흐, 흑추량…… 자, 자, 자…….”
원래 그는 말을 심하게 더듬는데다가 혀가 짧아서 지인(知人)들이라 할지라도 알아듣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그런 그가 자기 못지않은 거구의 사내를 앞에 두고 싸움을 하려 하자 긴장되는지 더욱 심하게 말을 더듬었다.
자, 자를 되풀이할 뿐, 장적이라는 제 이름을 말하기가 그리도 어려운지 얼굴까지 시뻘개진 채 눈을 마구 끔벅이며 한 참을 더듬었다.
말없이 바라보던 구레나룻의 사내가 얼굴을 찡그리며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다.
“어렵게 살고 있구나.”
불쌍하다는 듯 혀를 찬 사내가 어깨 너머로 손을 돌려 삐죽이 나와 있는 칼자루를 잡는 듯 싶었다.
파앗-!
엄준청은 사내가 번갯불을 뽑아들었다고 생각했다.
그의 등 너머로부터 눈부시게 쏟아져 나오는 창백한 빛줄기를 언뜻 본 것이다.
그와 동시에 여전히 자, 자를 반복하고 있던 장적의 목이 반듯하게 잘려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목을 잃은 장적의 몸이 여전히 뻣뻣하게 선 채 손에 낭아곤을 들고 있었다. 그 모습은 처참하다 못해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저승에서는 편히 살거라.”
사내의 말이 끝났을 때에야 마치 그것을 알아들었다는 듯, 어깨 위가 허전해진 장적의 몸이 기울어지더니 그대로 뱃전을 넘어 강물 위로 떨어져 내렸다.
허공 높이 날아올랐던 목이 그 뒤를 따라 황하의 탁류 속으로 첨벙, 하고 떨어졌다.
엄준청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사내의 손에 들려져 있는 것은 도저히 도(刀)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엄청나게 큰 물건이었다.
칼날의 길이만도 여섯 자에 달하는 그것을 한 손으로 가볍게 휘둘러 장적의 목을 날려 버렸다는 것이 믿을 수 없는 일로만 여겨졌다.
장적의 뒤를 따라 우르르 몰려들었던 무사들이 사내의 기세에 질려버린 듯 움찔거리며 서 있을 뿐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
그런 자들을 한 눈으로 쓸어본 사내가 느리게 입을 열었다.
“나태랑이다. 스스로 물에 뛰어들 것인가, 두 동강이 나서 던져질 것인가 각자가 알아서 결정하라.”
머리띠 너머로 흘러내린 더부룩한 머리카락이 사내의 콧잔등을 핥으며 이리저리 흩날리고 있었다.
그런 나태랑을 바라보는 무사들의 얼굴에 조금씩 공포가 자리잡아갔다.
“쳐라!”
엄준청의 분노에 찬 일갈이 황하의 으르렁거림을 누르고 터져나왔다.
화들짝 놀란 자들이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요란한 함성과 함께 밀려들었다.
하지만 비좁은 선미에서의 격돌이었다.
버티고 서 있는 나태랑의 전면으로 다가설 수 있는 자는 고작 두 명에 불과했다.
그들이 휘두르는 도검의 빛이 삼엄했지만 나태랑의 무서움을 누르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한 것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