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는 자신을 본체만체하고 나가는 천우에게 자신도 모르게 서운한 감정이 들었다. 어느덧 이 집에 들어온 것도 1년이 다 되어 가는데, 제대로 대화 한 번 나누어 본 적이 없다. 유리는 급하게 뛰쳐나가는 천우의 뒷모습을 쓸쓸히 쳐다보다,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때였다. 뒤에서 커다란 개가 짖는 소리가 들렸다. 홱! 하고 고개를 돌려 두리번거렸지만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없었다. 유리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다 쓰레기를 놓고는 뒤돌아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때! 눈앞에 아까는 없던 커다란 개 한 마리가 유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눈은 시뻘겋게 되어있고, 입에서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유리는 보는 순간 흠칫 놀래 뒷걸음을 치기 시작했다.
“착하지. 워~워~”
유리는 그 큰 개를 향해 손을 올려 방어적인 포즈를 취하면서 몸을 조금씩 대문 쪽으로 움직였다. 유리의 움직임을 따라 큰 개는 으르렁 거리며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몸을 조금씩 움직이던 유리는 대문에 한 쪽 손을 올렸다. 그리고선 재빨리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데, 그 큰 개가 그 순간 유리의 다리를 물어버린다.
유리는 소리를 꽥하고 지르며, 그 순간 이제 죽었구나 싶었다. 하지만 개는 딱 그것뿐이었다.
일반 개였음 한 번 물었음 웬만해선 놓지 않을 텐데, 무슨 이빨 자국을 남기듯 딱 한 번 물고 바로 유리의 다리를 놓아주었다. 그리고선 유리를 빤히 쳐다보더니 이내 몸을 돌려 어디론가 사라졌다.
유리는 자신의 물린 다리를 만지작거리며 신음소리를 뱉어냈다. 뒤늦게 달려온 미영이 그런 유리를 일으켜 세웠다.
“괜찮아요?”
걱정 어린 표정으로 미영은 유리의 다리를 쳐다보며 물었다. 하지만 유리는 그런 미영의 손을 밀어내며
“괜찮아요. 신경 안 쓰셔도 돼요.”
라며 애써 시선을 돌렸다.
집에서도 유리의 비명을 들었는지 가정부 몇 명과 연옥이 뛰쳐나왔다. 연옥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연옥의 질문에 미영이 유리를 대신해 대답 했다.
“개에 물렸어요. 응급처치 해야 할 거 같은데…”
“어머. 무슨 미친개가 돌아다녀 정말. 병원 가야겠다. 김 기사님, 유리씨 좀 병원에 데려다줘요.”
연옥의 말에 유리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괜찮아요. 그냥 밴드나 하나 붙이면 돼요.”
“어머! 무슨 소리야. 미친개에 물리면 큰 일 나! 정신 막 나가고 그런 다니까. 그리고 다리에 흉터 생겨요. 일하다 다친 거니까. 우리가 다 책임질게요. 얼른 병원부터 가요.”
연옥의 말에 가정부 하나와 김 기사님이 유리를 부축하며 밖에 주차 된 차에 태웠다. 출발하는 차를 보던 연옥이 옆에 있던 미영을 향해 입을 열었다.
“과외는 오전에 하지 않았나? 무슨 일로 또…”
“아! 세주가 혼자 자는 게 무섭다고 아까 같이 잤으면 하더라고요. 집에 가려다가 걱정되어서.…”
미영의 말에 연옥은 한 쪽 눈썹을 치켜세우며 묘한 표정으로,
“아… 그래요? 그럼 일단 들어와요.”
라며 미영을 집안으로 불러들였다. 가정부에게 차를 가져다 달라고 말한 연옥은 미영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물론 그 미소는 묘하게 차가운 느낌이 서려 있었다.
“세주 지금 과외 중이라서… 1층 거실에서 기다려요. 우리 세주가 겁이 많아서 누가 같이 자준다고 하면 나야 고맙죠. 알아서 인센티브로 넣어줄게요.”
거실을 찬찬히 보던 미영은 연옥의 말에 인센티브까지는 필요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런 미영에게 연옥은
“아이참~ 월급 얼마 안 되는 거 아는데… 현금으로 그 자리에서 줄게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아니 그냥, 통장에 찍히는 거랑 현금으로 받는 거랑 기분이 다르거든요. 아직 어려서 모르나?”
연옥은 묘하게 말을 돌리며 미영을 쳐다봤다. 미영은 그런 연옥을 보다 다시 한 번 찬찬히 집안을 둘러보았다. 그런 미영을 향해 연옥이 말을 한마디 더한다.
“구경하고 싶으면 둘러봐도 돼요. 구석구석! 뭐가 나올지도 모르잖아?”
연옥의 말에 미영은 고개를 돌려 연옥을 보며 단호하고 딱딱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연옥은 그런 미영의 팔을 살짝 만지며 말을 했다.
“농담이야. 농담! 아휴~ 우리 과외선생님이 너무 유머 감각이 없으시다~”
연옥은 가식적으로 환하게 웃으며 몸을 돌려 자신의 방으로 발을 옮겼다. 몸을 돌리자마자 웃음을 지운 차가운 표정으로 말이다.
****
한편 2층 세주의 방에서는 피아노 소리가 들려온다. 어차피 일본어 수업은 이미 물 건너갔으니, 세주는 피아노를 치고 그 옆에서 미숙이 요리조리 돌아다니며 2층 세주 방을 구경하고 있다.
세주의 방은 2층 전체인데, 침실과 거실 그리고 드레스 룸과 서재로 이루어져 있다. 거실에는 한가운데 베이지 색의 소파와 피아노 그리고 커다란 tv가 놓여있다. 굉장히 휑할 정도로 깔끔하게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마당이 훤히 보이는 커다란 창이 거실 전체에 걸쳐 뚫어져 있다. 그 창 앞에 서면, 커다란 앞마당과 별채가 보이고 더 나아가 동네에 있는 조그마한 산도 작게나마 보인다. 그런 풍경을 창가에 서서 봐라보던 미숙은 감탄사를 쏟아냈다.
“이야~~돈이 최고구만! 그림이 따로 없네!”
미숙은 두 손은 허리에 집고선 고개를 끄덕이며 창밖을 보다가 이내 창가 끝에 있는 벚꽃 나무에 시선이 꽂혔다. 커다란 벚꽃나무의 머리 부분이 세주 거실 창가 끝 부분에 가득 채워져 있었다.
“아이고 이거 창문 열어놓으며 엄청나겠구먼.”
미숙은 가까이 다가가 창문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자동으로 창문에 4분의 1이 왼쪽 벽면으로 밀려 들어갔다. 그리고 점점 열리는 창문 틈새로 벚꽃잎이 세주 방으로 바람을 따라 쏟아지기 시작 한다.
미숙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발을 동동거리며 좋아 어쩔 줄 몰라 했다.
“헐 대박 뭐야 이거 완전 쩐다.”
피아노를 치던 세주가 그런 미숙을 돌아보며 입을 연다.
“안 돼! 문 열면!”
세주의 말에 미숙은 고개를 끄덕이며
“하긴 이거 꽃잎 청소 하려거든 아주 난리 나겠구먼!”
“그게 아니라 악귀들이 들어온다 말이야!”
세주는 입을 삐죽거리며 말을 했다. 그러자 미숙은 약간 건방진 표정을 지으며,
“어차피 악귀들은 문 닫혀있어도 다 들어오지 영화 보면 막 사람 몸에도 들어가고 그러더만!”
세주는 미숙의 말에 얼마 전 자신에 몸에 들어온 악귀가 생각나 무서움에 몸을 움츠리며 두 손으로 양 귀를 감싸 안았다 미숙은 그런 세주를 보며 귀엽다는 듯이
“괜찮아. 괜찮아 오면 내가 다 쫓아내 줄 게 뭐 그런 거 가지고”
미숙은 보육원에서 자라면서 세주 같은 친구들과 함께 생활한 적이 많았다 그런 친구들에게는 그 친구들의 허무맹랑한 애기도 다 알아들은 척 해주고, 맞장구도 쳐주고, 씻어야 괴물이 안 온다. 잠을 자야 뽀로로 친구들이 놀러온다. 등의 애기를 해주면 알아서 잘 씻고 자고 놀고 했다. 미숙이 가진 나름의 노하우라면 노하우다.
세주는 미숙의 말에 약간 토라진 듯이 표정을 지으며 말을 했다.
“악귀들이 와서 세주가 잡아도 그 손 놓을 거잖아!”
저번 민호만 그런 게 아니었다. 세주의 과외 선생들은 모두들 세주의 말에 귀를 기울러 주기는커녕 모두 그 손을 뿌리쳤다. 세주의 돈은 좋아도 세주의 손길은 모두들 싫어했다. 세주는 그 매몰참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의 행동에 세주는 점점 날카로워지고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그런 세주를 미숙은 말없이 쳐다봤다. 고아원에서 자라면서 누군가의 손길을 받지 못한다는 거 그게 얼마나 속상한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미숙은 순간 자신의 손을 매몰차게 놓고 뒤돌아 사라지던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불현듯 떠올랐다.
“안 놓아 난! 절대로! 사람 손 함부로 놓지 않아 난”
미숙의 말에 고개를 숙이던 세주가 고개를 들었다.
연숙과 천우를 제외하고 처음 듣는 말이었다. 자신의 손을 잡아주겠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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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레벌떡 천우가 성당의 문을 열었다. 그 안에선 신부님이 성당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천우를 발견하고는 밝은 표정으로 인사말을 건넨다.
“아 구원자님이 여기는 무슨 일로…”
신부를 보고는 천우는 거친 숨을 몰아세우며 말을 이어갔다.
“문자 주셨잖아요. 성당에 악귀들이 마구잡이 들어와 사람들을 헤치고 있다고.”
“그게 무슨…성당에는 감히 그런 존재들이 들어올 수 없는 거 구원자님이 더 잘 아시잖아요.”
“그럼 이게 대체 왜”
천우는 그제야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그리고선 미처 고치지 못한 방어막이 떠올랐다.
천우는 급하게 몸을 돌려 성당을 나가려 했다. 그런 천우의 시선에 성당 밖 누군가가 들어온다.
20대로 보이는 남자인데 잘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수염과 짧은 스포츠머리, 그리고 긴 바바리코트를 입고 있었다. 굉장히 터프한 외모를 가지고 있으며 얼핏 봐도 딱 벌어진 넓은 어깨와 큰 키는 매혹적으로 보였다. 한쪽 손에는 피우던 담배를 들고 있고 다른 손으로는 천우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천우의 표정은 어느새 살벌하게 변해 천천히 성당 밖으로 몸을 옮겼다.
천우가 발을 옮겨 어느새 성당 입구 쪽으로 거의 다 오자 천우를 보던 남자는 담배를 떨어뜨리고는 발로 담배를 비벼 불을 껐다. 그리고선 천우를 향해 입을 열었다.
“오래간만이야~ 이거 반가워서 어쩌나~”
“꺼져 시* 놈아”
“어휴 천사님이 입버릇이 그게 뭐야~ 말 봄새로 봐서는 내가 천사로 딱 인데. 그치?”
“싸우고 싶은가 본데 다음에 하자 내가 지금 바빠서.”
“아 이거 왜 이래 나도 싸우고 그런 거 싫어하는 악마야~ 그냥 시간만 벌어주자 이거지!”
남자는 비웃듯 천우를 향해 웃더니 표정을 급하게 무표정으로 바꾸며, 오른손으로 가라는 듯 손짓을 해보였다. 그러자 그 남자 뒤로 수십 개의 악귀가 모습을 드러내고 급하게 어디론가 날아가기 시작한다.
목적지는 세주의 집이 뻔했다. 천우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악귀들을 따라 몸을 움직였다. 그러자 그 남자가 천우의 향해 칼날 하나를 던진다. 천우는 빠르게 몸을 돌려 칼날을 피했다. 그러고선 그 남자를 쳐다봤다.
“그만 좀 해! 그냥 어린 애일 뿐이야.”
“누가 뭐래. 우리는 그냥 우리 것을 돌려받으려는 거뿐이야. 사탄의 자식은 원래 우리 쪽인데. 우리 라파엘이 벌써 치매가 왔나. 왜 이럴까?”
천우의 또 다른 이름, 그것은 라파엘이었다. 천우는 517번째 라파엘이었다. 그리고 상대 남성은 수천 년을 넘게 살아온 루시퍼였다. 천사는 죽음과 탄생을 반복하여 자신의 이름을 지키지만, 사탄들은 죽음을 피하며 힘을 키워 자신의 이름을 지킨다. 루시퍼는 천년을 넘게 살면서 웬만한 구원자들보다 강력한 힘을 키워왔다.
천우가 허리춤에 있던 칼 두 개를 양손에 집어 들었다. 천우의 표정에서는 분노가 서러있었다.
천우 뒤로 신부님이 성주와 성경책 그리고 십자가를 들고 조심스레 성당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자신이라도 세주 집에 가 조금이나마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루시퍼에게 그런 게 통할 리가 없었다. 루시퍼는 바바리코트를 휘날리며 몸을 돌렸다. 그러면서 신부의 다리에 정확히 칼날을 던졌다. 신부님은 소리를 꽥하고 지르고선 비틀거렸다.
“신부님!”
천우가 그 모습을 보고 소리쳤다. 그리고선 고개를 돌려 루시퍼를 보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런 천우의 뒷모습을 보며 신부님은 다리를 절뚝거리며 계속 걸어나갔다. 단순히 구원자의 조카여서가 아니다.
그 아이가 악마의 손에 넘어가면 천사와 악마의 힘의 균형이 깨져버린다. 그것은 어마어마한 재앙의 시작을 불러오는 것이다.
신부님은 통증에 입을 깨물면서도 계속해서 발을 옮겼다.
신부님만 애타는 것이 아니었다. 스님도 신부님의 연락을 받고 미친 듯이 산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모두들 종교를 떠나 하나였다. 세주를 빼앗겨서는 절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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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응급실에서 주사를 맞던 유리가 눈을 벌떡 뜬다. 그 눈은 아까 자신을 물던 개의 눈처럼 시뻘겋게 변해있었다 그리고선 무언가의 홀린 듯 자신의 왼손에 꽂혀 있던 링거 바늘을 빼내고는 미친 듯이 비틀거리며 응급실 밖을 나갔다. 간호사들과 같이 온 김 기사 그리고 나이든 가정부까지 모두 그런 유리를 잡았지만 그 힘을 당해내지 못하였다. 마치 여자가 아니라 무슨 멧돼지와 같은 산짐승 같았다. 유리가 비틀거리며 응급실 안에 의료품들이나 다른 환자들까지 쳐내니, 남자 간호사와 경비원까지 달려와 유리를 잡았지만, 소용없었다.
유리는 어느새 응급실 문을 열고 나와 맨발로 전속력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무언가 중얼거리며
“세주를 죽여야 해. 죽여야 해. 그년을 죽여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