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판타지/SF
사탄의 구세주
작가 : 코뿔소
작품등록일 : 201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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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작성일 : 17-07-30     조회 : 292     추천 : 0     분량 : 5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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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리를 물었던 개가 길거리를 돌아다니고 있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침을 질질 흘리며 눈이 시벌개진 채 돌아다니는 덩치 큰 개를 보고선 모두들 도망가기 바빴다. 그때 구청 직원들과 소방관들이 그 개를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큰 개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변에는 사람들이 나름의 무기들을 들고 개를 향해 조금씩 포위망을 좁히고 있었다. 개는 으르렁거리며 사나운 이빨을 들어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주춤거렸지만 이런 미친개를 그냥 둘 수 없다는 듯 다시 한 걸음씩 걸어오고 있었다.

 

 그때였다.

 어떤 남자가 다가오더니 이내 큰 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 개에요. 저렇게 생겨서 그렇지 물거나 하지는 않아요.”

 

 남자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돌려 남자를 쳐다봤다. 개는 여전히 으르렁거렸지만 사람들을 향해 달려들지는 않았다.

 

 “개가 사람을 물었다는 신고가 들어와서요.”

 

 소방관의 말에 남자는 귀찮다는 듯 자신의 관자놀이를 긁적이다가

 

 “다른 개인가보네. 이 개는 내 개라니까. 제가 예방접종도 다 하고 키우는 개에요. 순해요 순해.”

 

 남자가 자세를 낮추며 개를 향해 손짓 하자 개가 으르렁거리면서도 남자를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남자 쪽으로 개가 거의 다 오자 남자는 개의 목의 걸린 개 목걸이를 확! 잡아끌더니.

 

 “으르렁거리면 안 되지. 개야. 사람들이 놀라잖아.”

 

 하며 개와 눈을 마주치며 입을 열었다. 그러자 언제 그랬냐는 듯 개를 혀를 내민 채 순하게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사람들도 그제야 한시름 놓았는지 나름의 무기들을 내려놓았다.

 

 “아 이렇게 큰 개는 길거리에 돌아다니면 사람들이 무서워해서요.”

 

 소방관이 입을 열자.

 

 “아!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하며 남자는 개를 데리고 아무렇지 않게 걸어나갔다. 소방관은 대충 사과 한마디만 하고 사라지는 남자가 예의 없다고는 생각했지만, 이내 구청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선 사라졌다.

 남자는 사람들이 안 보이기 시작하자 다시 자세를 낮추더니 개를 쳐다보았다.

 

 “이런 방법으론 절대 안 통하겠어. 이렇게 시간만 하염없이 흘러가다가 가브리엘이라도 돌아오면 어떻게 해? 그 전에 다른 방법을 찾아봐.“

 

 그러자 개가 다시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 개의 으르렁은 남자에게 사람의 음성처럼 들리기 시작한다.

 

 ‘그 미친년이 말만 잘 들었어도 괜찮았는데 말이야. 그 년이 생각보다 약하더라고’

 “그니까. 애초에 내가 유리인가 뭔가 하는 년은 아니라 그랬잖아. 다른 방법을 찾아봐 이걸로 안 돼.”

 ‘돼! 나만 믿어! 괜찮은 애를 찾아냈으니 조금만 기다려.’

 

 남자는 개 목걸이를 잡아당기더니

 

 “지금 내 옷차림 안 보이니? 너는 고작 무는 거 하나로 퉁치고 나는 미친 듯이 뛰어다니고, 거기다 우리 악귀들이 몇 마리나 하늘로 갔는지 알아? 정신 똑바로 차려!‘

 

 개는 기가 죽은 듯 깨갱거리다 이내 어딘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남자가 몸을 일으켜 세웠다. 몸을 일으켜 세우는 남자는 고개를 이리 저리 움직이며 뼈 소리를 내면서 몸을 풀었다. 남자는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루시퍼를 너무 만만히 봤어. 내가 그렇게 쉽게 포기한다며 루시퍼가 아니지.”

 

 ****

  세주가 거실 소파에 벌러덩 누워있다. 세주는 소파 끝에 발을 올린 채 발을 꼼지락거리며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

 저번 미숙이 과외를 하던 날 피아노를 치며 악귀들이 잡혀 하늘로 올라가던 모습을 보던 뒤 줄곧 세주의 기분은 최상이었다. 오늘도 기분이 좋아 누워서 발을 흔들거리는데 그 발 근처까지 벚꽃 잎이 휘날려 들어왔다.

 

 세주는 그 날 이후 항상 자신의 방 거실 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더 이상 세주는 방에 문을 꼭꼭 잠근 채 있지 않았다. 그리고 미숙이 올 때면 가끔 외출도 했다. 방어막이 없는 집이 아닌 곳은 세주에게 늘 공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미숙이 있다면, 세주는 괜찮았다.

 

 오늘은 미숙이 아닌 미영의 과외 날이었다. 미영도 다른 과외 선생님들과 마찬가지로 수업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른 과외 선생님들처럼 그저 멍을 때리다 가지 않고 세주 옆에서 책을 읽어주곤 했다.

 세주는 소파에 누워있고, 미영은 소파에 기대 바닥에 앉은 채 책을 읽었다. 세주가 자신의 발끝에 닿은 벚꽃 잎을 보다가 창밖을 쳐다봤다. 어느새 벚꽃 잎이 거의 다 떨어져 있었다.

 

 “벚꽃이 더 오래 핀다면 좋을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짧게 있다가 가는 거지?”

 

 세주가 물었다.

 

 “그러게… 어쩌면 저 꽃잎 입장에선 긴 시간일 수도 있는데, 다 지고 나니 짧아 보이는 거 아닐까?”

 

 미영이 대답했다.

 그리고선 누군가를 떠올렸다.

 

 ****

 “아휴~ 꽃이 아니라 사람 구경이지 이게.”

 

 미영이 고개를 저으며 말을 했다. 미영은 자신의 유일한 가족이자 가장 소중한 사람. 엄마와 함께 벚꽃 축제에 와 있었다. 그 동안 경찰 공무원 준비에, 또 경찰이 되고 나선 바쁜 일상에 지쳐 제대로 쉬는 시간도 갖지 못한 미영이었다. 특히나 가장 가까운 사람인데도 엄마하고의 시간이 많지 않아. 모처럼 시간을 내어 벚꽃 축제를 온 것이다. 하지만 막상 오니, 사람만 많고 정신이 없으니 미영은 괜히 왔다 싶었다. 그런 미영을 엄마가 툭! 하고 치며 팔짱을 꼈다.

 

 “너도 참. 나이도 어린 애가 무슨 나이 든 사람처럼 말하니? 나는 좋기만 한데.”

 “사람들한테 치여서 꽃도 제대로 못보고 사진도 못 찍는데 뭘.”

 “그래도 짧게 피는 꽃이니 이렇게 한번 와도 좋지 뭘 그래.”

 “그러고 보니 왜 이렇게 짧게 핀대. 오래오래 피면 좋을 텐데 말이야.”

 “원래 그래. 좋은 건 짧게 피는 법이야. 어디 꽃만 그러니? 사람도 마찬가지지. 가장 예쁠 때, 그때는 길다고 생각했어도 지금 생각해보면 젊을 때는 너무 빨리 지나간 거 같아.”

 “아이고~ 갑자기 무슨 시인이야?”

 

 미영의 엄마는 미소를 보이며 꽃을 올려다보았다.

 

 “내 젊음은 너무 빨리 지고 그래서…그래서 자꾸만 미련이 남네.”

 “왜? 누가 엄마 젊음을 훔쳐 가기라도 했어?”

 

 미영은 장난스럽게 물었다. 자기만 젊은 시절이 짧았던 게 아닌데 그렇게 말하는 엄마의 말이 재미있어서였다. 그런데 엄마의 대답은 미영을 움찔하게 만들었다.

 

 “어~ 누가 훔쳐 갔어. 내 젊었던 시절을.”

 “누가? 누가 훔쳐 갔는데?”

 

 미영은 속으로 혹시 자신의 친부인가 싶었다. 한 번도 미영의 엄마는 아버지의 존재에 대해 입을 연 적이 없었다. 미영도 자신의 아버지의 대해 물어본 적 없었다. 암묵적인 룰 같은 거였다. 단 둘만으로도 충분했다. 굳이 엄마가 이야기 하지 않는데 자신이 나서서 이야기 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엄마의 젊음을 채 간 사람이 아니, 엄마의 젊음을 망친 사람이 친부라면… 그건 좀 슬플 것 같았다. 자신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엄마의 젊음이 망쳐지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테니까.

 

 “있어~ 어떤 아줌마. 그 아줌마가 내 젊음을 채어 갔지. 아니지 내 인생을 뺏어갔지.”

 

 엄마의 말에 미영은 내심 다행이다 싶었다. 근데 한편으로 궁금했다. ‘그렇다면 누구지?’ 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어떤 아줌마? 그게 누군데?”

 “있어~ 내 젊음과 인생을 도둑질 해 자신의 아들에게 준 여자.”

 

 미영은 말없이 엄마를 쳐다봤다.

 그때의 미영은 알지 못했다. 그 말뜻이 무엇인지.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미영은 알게 되었다. 그 말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

 장례식 장 안.

 여러 개의 장례식 방 중에서 유독 사람의 왕래가 적은 방이 있었다. 미영의 어머니의 장례식 장이었다.

 미영의 동료들이 오고, 친한 친구들이 온 게 전부였다. 엄마도 미영도 단 둘만이 의지하며 살아왔으니 가족이 없었다. 단 한 번도 아버지가 없어서, 형제가 없어서, 친척이 없어서, 슬픈 적이 없었는데, 미영은 그 날 처음 자신이 이제 혼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었다.

 하염없이 울었다. 울고 또 울었다.

 

 미영 어머니의 사인은 자살이었다. 미영이 야근 한 뒤 간 집에 어머니는 홀로 장롱에 목을 매 자살을 한 후였다. 분명 며칠 전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자신과 웃으며 마주앉아 밥을 먹던 어머니였는데,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건지 미영은 알지 못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 미영을 더 무너지게 했다.

 엄마가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인데, 자신이 너무 무심했던 것이었다.

 

  3일장을 치르고 어머니를 화장시킨 뒤 미영은 홀로 어머니와 함께 지낸 집으로 들어갔다.

 휑하니 텅 빈 것만 같은 집이었다. 미처 정리하지 못한 어머니의 유품을 마저 정리하기 위해 미영은 안방으로 들어가 하나, 하나 찬찬히 어머니의 유품을 챙겼다. 옷이며, 신발이며, 화장품까지….

 

 한참을 정리를 하던 미영이 엄마의 화장대 서랍에 아주 밑에 숨겨져 있던 일기장 하나를 꺼내들었다.

 ‘일기를 쓰고 있었나? 엄마가?’

 미영은 하던 일을 멈추고 엄마의 일기장을 펼쳐보았다.

 

 4월 26일 날씨 맑음

 미영은 오늘도 야근이다. 요즘 야근이 잦아서 그런가. 애.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집에 들어 온 날도 피곤한지 연신 어깨를 두드리고 하품만 하는 게 마음에 걸렸다.

 근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미영이가 야근을 많이 했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어쩔 수 없다. 나도 이런 내가 싫지만 그 애는 커갈수록 나를 닮지 않았다. 그 놈을 닮았다.

 끔찍한 얼굴.

 미영을 낳은 건 내 선택이었다. 그런데 요즘 따라 이상하게 내가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나갔다.

 그 날 미영에게 도시락과 옷가지를 챙겨주기 위해 경찰서에 가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이러지 않았을까?

 아님, 예전부터 있던 내 마음 속의 있던 원망이 문득 나온 거뿐이었을까?

 신의 장난인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나의 젊음을 훔친 놈,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나의 인생을 훔쳐 자신의 아들에게 던져준 그 모질고 더러운 모성애를 가진 그 년의 아들을 죽여야 할까?

 신은 참 가혹하다. 왜 하필 나의 아버지가 술 주정뱅이였으며, 나의 어머니는 자식을 버리고 도망가는 여자였으며, 왜 하필 내 옆집에 경국이 살았으며, 왜 하필 경국의 어머니는 그런 여자였을까. 왜 하필 나는 그 공장에 들어갔을까? 왜 하필 나는 그때 미영의 꿈틀거림을 느꼈을까?

 

  미영은 얼른 일기장을 덮었다.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일기장 속 어머니는 자신의 어머니가 아니었다. 늘 자신을 위해 사랑을 아끼지 않고, 희생을 아끼지 않던, 남편 없이, 가족 없이 온 몸으로 자신을 지켜내던 어머니가 아니었다. 자신을 원망하고 있었다. 끔찍하게 여기고 있었다. 미영은 떨리는 손으로 일기장을 잡고 있었다.

 

 미영은 문뜩 무엇인가 떠올랐는지 온 집안을 이 잡듯이 뒤지기 시작했다. 한참을 찾던 미영은 부엌 냉장고 위에 놓인 박스 하나에 시선을 꽂힌다. 박스를 내리려 손을 올리던 미영은 그만 발이 삐끗하면서 미끄러졌고 그와 동시에 냉장고에 놓여있던 박스가 쿵! 하고 떨어졌다.

 

 그 안에서 무수히 많은 일기장들이 함께 쏟아졌고, 미영은 그 일기장들 속에서 마침내 자신의 출생의 비밀과 경국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

 “무슨 생각해?”

 

 세주가 얼굴을 미영에게 쭉! 내밀며 말을 걸었다. 꽃에 대해 이야기하다말고 멍하니 생각에 잠긴 미영이 의아해서였다. 미영은 고개를 돌려 세주를 보다 손을 올려 세주의 얼굴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그 모습을 누군가 훔쳐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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