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젓가락을 내려놓은 차승호는 새된 신음을 흘리면서 눈을 돌렸다.
열 평도 안 되는 작은 분식집에 쇠파이프를 든 험상궂은 덩치 넷은 확실히 꽉 차는 느낌이었다.
한 놈은 몇 개 안 되는 식탁들을 입구에서부터 뒤집어엎었고 다른 하나는 주방 쪽 카운터를 알루미늄 야구방망이로 가차 없이 내리치고 있었다.
미닫이문이 벌컥 열릴 때부터 조짐이 좋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먹던 라면을 끝까지 먹기는 틀린 것 같았다.
이미 한쪽 구석에 주저앉은 주인아주머니는 머리를 감싸 쥔 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덩치 하나가 다시 카운터를 내리치며 끓는 소리를 냈다.
“험한 꼴 보기 전에 비우라고 했지. 씨발년아.”
재개발이 한창 진행 중인 용현동 지역이니 철거용역사 직원 비슷한 놈들일 것이었다.
철거용역의 대명사나 다름없는 검은 야구 모자에 흰 장갑까지 낀 판이니 더 볼 것도 없었다.
쓰게 입맛을 다신 그가 다시 젓가락을 집으려 하자 입구에 서 있던 험상궂은 덩치가 다가서면서 파이프로 식탁을 쿵쿵 쳤다.
“어이, 형씨. 눈치가 그렇게 없냐?”
그는 빙긋 웃으며 덩치를 올려다보았다. 덩치가 목에 잔뜩 힘을 준 채 다시 말했다.
“이거 허가받은 퇴거 조치야. 라면 한 그릇 때문에 강냉이 털리지 말고 언넝 뜨라고.”
그의 첫번째 반응은 한숨이었다.
“휴…… 좀 먹자. 배고파 죽겠거든? 백주 대낮에 사람한테 몽둥이 휘둘러도 된다는 이야기가 대한민국 법전 어디에 있냐? 저 아주머니 없는 살림에도 이 동네 독거노인들 다만 한 끼라도 식사 대접하는 분이거든? 경찰 부르기 전에 그냥 가라.”
“이 새끼, 이거 겁대가리는 안드로메다에다 팔아먹었나. 니가 옆집 아저씨라도 되냐? 이 동네는 경찰 안 떠, 씨발아.”
이죽거리며 위협적으로 파이프를 휘둘러도 반응이 없자 덩치는 급기야 라면 그릇을 툭 쳐서 엎어버렸다.
“나가, 새꺄.”
그는 슬쩍 뒤로 물러나 라면 국물을 피하면서 오만상을 찌푸렸다.
안 그래도 하루 종일 독거노인들 뒷바라지에 시달려 허리가 휘다 못해 부러질 지경인데 엉뚱한 똥파리들이 나타나 짜증을 폭발시키고 있었다.
“문제 일으키지 말자. 좀 가라.”
엉겁결에 일어선 그가 쏟아진 라면을 내려다보며 입맛을 다시자 덩치가 손을 뻗었다.
멱살을 잡을 생각인 것 같았다. 그는 놈의 손이 옷깃에 닿는 순간, 손가락을 잡아채 꺾으면서 머리를 식탁 모서리에다 처박아버렸다.
와장창!
“저 새끼 뭐야!”
놈이 쓰러지자 문간에 서 있던 험악하게 생긴 놈이 팔짱을 풀며 손가락질을 했다.
눈에 힘이 잔뜩 들어간 품이 중간보스쯤 될 것 같았다.
쓰게 웃은 그는 널브러진 덩치의 손가락을 우두둑 소리가 나게 밟으며 테이블을 돌아 나갔다.
“좁다. 나가자.”
“뭐야! 이 새끼가!”
차승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카운터를 두들기던 놈이 돌아서면서 야구방망이를 휘둘렀다.
그는 자연스럽게 방망이의 회전 반경 안으로 파고들어 놈의 목에다 손가락을 쿡 틀어박았다.
“끄어…….”
그대로 방망이를 떨어뜨린 놈은 새된 비명을 토해내면서 그 자리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먹던 음식을 엎어버렸으니 무조건 죽을죄를 지은 놈들, 평소 같으면 시간을 두고 한 놈 한 놈, 자근자근 밟아 갈아 마시겠지만 당장은 춥고 배고프고 피곤해서 찜질방으로 직행하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다.
그는 쓰러진 의자를 툭 차내고 번개같이 돌아서서 멍한 표정으로 서 있던 덩치의 명치에다 족도足刀를 꽂아 넣었다.
놈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문밖으로 밀려 나가 골목 건너편 벽에 처박혔다. 이제 남은 건 문간에 서 있던 놈 하나였다.
그런데 놈이 급히 몇 발 물러서더니 뒷주머니에서 시퍼런 회칼을 빼 들었다.
날 길이만 대충 30센티미터에 손잡이를 테이프로 둘둘 감아놓은, 이른바 연장이었다.
그러나 기세 좋게 칼을 빼 든 다음에는 선뜻 움직이지 못하고 욕설부터 내뱉었다.
“씨발, 한가락 한다 이거지.”
칼을 힐끗 쳐다본 그는 의자에 걸린 파이프를 발로 가볍게 차올려 잡으면서 목소리를 깔았다.
“아가야. 다친다, 버려라.”
놈은 움찔했지만 기세에는 밀리지 않겠다는 듯 칼끝을 위협적으로 내밀며 악을 썼다.
“까고 있네, 씨발. 넌 배때기에 철판 깔았냐? 거긴 칼 안 들어가?”
그는 쓰게 웃으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쑤셔보든지. 나도 요즘 막 가는 중이거든?”
“뭐 이런 개새끼가 다 있어, 씨발!”
놈은 다시 칼을 내밀어 위협하면서 다시 한 발 물러섰다.
순간, 그는 칼을 쥔 놈의 손등을 파이프로 번개같이 내려치고 그 탄력을 이용해 올라오면서 파이프 끝을 놈의 입에다 쿡 찔러 넣었다.
“켁!”
놈의 목은 덜컥 뒤로 넘어가 미닫이문 유리창을 왕창 깬 다음, 주르륵 주저앉았다.
그래도 손에는 칼을 쥔 상태, 그는 칼 쥔 손을 다시 내리치고는 두더지 잡기하듯 놈의 머리를 연속해서 두들겼다.
칼을 놓친 놈은 얻어맞은 정수리를 움켜쥔 채 깨진 이빨과 피를 한꺼번에 토해냈다.
쇠파이프 끝이 정통으로 입에 걸렸으니 이빨 두어 개는 확실히 깨졌을 것이었다. 놈은 금방 애원하는 표정으로 변해버렸다.
그가 쇠파이프를 가볍게 돌리며 말했다.
“주머니 털어봐.”
“뭐?”
그래도 아직은 기가 살아 있는 목소리, 그는 정수리를 비비는 놈의 손등을 가차 없이 내리쳤다.
화들짝 놀라 손을 털어낸 놈의 목소리가 곧바로 고분고분해졌다.
그러나 여전히 무슨 소리냐는 듯 그의 얼굴을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가 회칼을 옆으로 툭 차며 말했다.
“인마, 남의 영업장 다 때려 부쉈으니 손해배상은 해야 할 것 아니냐. 가진 거 전부 꺼내봐. 저것들 주머니도 다 털고. 빨리!”
“네!”
그가 파이프를 슬쩍 들어 올리자 놈은 화들짝 놀라 널브러진 똘마니들에게 기어가서 지갑과 현금을 모아 그에게 내밀었다.
“현금하고 수표, 신분증만 꺼내.”
“에? 예!”
놈은 급히 지갑 내용물을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수표와 고액권 지폐 몇 장에 흰 봉투 하나, 봉투 안에는 1만 원권 한 뭉치가 들어가 있었다.
전부 합치면 대략 150만 원은 넘을 것 같았다.
그는 파이프로 신분증을 지폐에서 분리하며 내용을 확인했다. 나이 많은 놈은 30대, 나머지는 20대 초반이었다.
“오늘은 피곤하고 배고파서 이 정도로 끝내는데 말이다. 나 요즘 기분 더럽거든? 그러니까 팔다리 몽창 뽀사지고 싶지 않으면 다시는 여기 얼쩡거리지 마라. 알아들었냐?”
“네? 네! 형님!”
놈이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파이프를 가게 밖으로 던지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명치를 얻어맞은 놈은 아직도 토사물 안에다 머리를 박은 채 저녁으로 먹은 국수 가락을 세는 중이고 처음에 테이블에 머리를 박은 놈은 완전히 기절, 목을 찔린 놈은 아직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최대한 험악한 표정을 지으면서 음산한 목소리를 냈다.
“그리고 만약에 말이다. 앞으로 저 아주머니가 발끝 하나라도 다치면 밤에 발 뻗고 자지 마라. 내가 지옥 끝까지라도 찾아가서 아작을 내줄 테니까. 아주머니가 길 가다가 넘어져도, 칼도마에 손을 베어도, 깨진 유리에 발가락을 다쳐도 널 찾아갈 거다. 저분이 만수무강하기를 매일 빌고 빌어라. 알아들어?”
“예! 형님!”
“니 형님 아냐, 꺼져.”
“예! 형님!”
그가 매섭게 말을 자르자 놈은 허겁지겁 다친 놈들을 부축해서 가게 밖으로 사라졌다.
놈들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난 다음, 바닥에 깔린 현금을 모아 주인아주머니에게 건네고 잠시 다독거리면서 시간을 보냈다.
조금 진정이 되자 아주머니가 라면을 다시 끓여주겠다고 일어섰지만 뿌리치고 가게를 나섰다.
법원의 사회봉사 명령 때문에 강제로 하는 봉사지만 그래도 독거노인들을 도우면서 나름 기분 전환이 됐다고 생각했는데 좋은 기분을 몽땅 날려버린 셈, 입맛이 더럽게 썼다.
후텁지근한 밤바람이 옷깃을 파고들었다. 옷을 대충 정리한 뒤, 점퍼를 벗어 탠덤 시트 아래에다 처박았다.
짙은 곤색(감색)인데도 마지막 놈의 입에서 피가 튄 데다 앞섶에 라면 국물까지 잔뜩 묻어서 티가 많이 났다.
신경질적으로 바이크 스탠드를 걷어차고 올라탔다.
‘제기랄!’
어쩌다 보니 오늘 저것들을 막아줬지만 여전히 아주머니의 분식집은 안전하지 않았다.
이미 주변 건물 대부분이 빈집이고 인근 지역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회색 유령도시로 변해가고 있었다.
내일 당장 건물이 헐린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형편, 이래저래 사는 게 피곤하다는 생각이 천근만근 어깨를 찍어 눌렀다.
우릉!
스로틀 그립을 당기면서 엔진이 토해내는 묵직한 배기음을 잠시 음미했다. 느릿하게 골목을 빠져나와 곧장 인하공전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저녁 7시가 막 지나간 시간,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인데 한바탕 몸까지 놀려놔서 위장이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이어폰에서 ‘노는 언니 포스’가 작렬하는 여자 그룹의 오토튠이 한껏 목청을 높였다.
‘그래, 니가 제일 잘나간다. 쩝.’
큰길 신호에 대기하는 사이에 백미러를 조정하면서 자신의 얼굴을 힐끗 확인했다.
며칠 면도를 하지 않아 덥수룩하게 자란 수염 때문에 엉망이지만 스타일만 살짝 살리면 여자 몇 울리는 건 어렵지 않을 괜찮은 얼굴이었다.
물론 이 빌어먹을 놈의 성질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였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나름 잘나가는 현장 요원이었는데 오늘은 당장 잘 곳을 걱정해야 하는 난감한 처지, 생각지도 못한 황당한 사고를 치는 통에 어렵게 모은 저축은 모조리 합의금으로 날아가버렸고 방세도 두 달 넘게 밀린 채 월세 보증금을 까먹고 있었다.
뭐 이제부터 끼니도 라면으로 때워야 할 판이니 보증금 문제는 한가한 고민인 셈이었다.
사실 꼴이 이렇게 막장으로 치달은 건 지능수사계 소속인 그가 엉뚱하게 유원지 사고에 동원되었기 때문이었다.
인력이 턱없이 딸리는 한여름이기도 했지만 그날은 유난히 사건 사고가 많았고 경찰 병력 대부분은 시내의 정치권 행사에 동원되어 있었다.
해양경찰이, 그것도 지능수사계 인력이 유원지 사건 사고에 동원되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사람이 죽어나간다는데 업무 분장만 따질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급한 김에 따라나선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어쨌든 그날은 모든 것이 이상했다. 놀이기구에서 사람이 떨어졌다고 해서 나갔는데 현장은 동네 건달들의 패싸움이 한창이었다.
다행히 경광등을 본 건달들이 뿔뿔이 흩어져 달아나면서 상황은 어렵지 않게 정리가 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와중에 골목에서 삥을 뜯는 동네 양아치 몇을 발견하고 제지한 것이 문제였다.
이것들이 겁 없이 달려드는 통에 제압하는 과정에서 두 놈의 팔이 부러져버렸고 그것이 모든 상황을 막장으로 끌어내리고 말았다.
해양경찰도 엄연히 공무원인데 공공장소에서 사람을 팼으니 문제가 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할 터, 다행히 법원에서는 정상을 참작해 사회봉사 명령으로 사건을 마무리해줬지만 과잉 진압에 대한 본서의 자체 징계 건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가장 먼저 3개월 정직이 이루어지고 명목상 전출이 됐는데 하필 거기가 그와 악연이 있는 박춘배가 과장으로 있는 경비구난과였다.
박춘배는 이때다 싶었는지 앞장서서 중징계를 요구했고 일은 꼬여만 갔다.
시민들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작자는 애당초 공무원 자격이 없다는 논리였다.
얼핏 그럴듯한 논리지만 박춘배라는 인간과 그의 악연을 고려하면 개인적인 보복일 가능성이 높았다.
지난봄, 장비납품 업체의 비리를 수사하다가 구조대 장비의 상당수에서 심각한 하자를 발견하고 납품을 백지화했는데 거기 연루된 것이 박춘배였다.
당시 박춘배가 거액의 리베이트를 토해내고 승진에서 누락됐다는 설이 파다했는데 그것이 본격적인 악연의 시작이었다.
이후에도 이상스럽게 자주 충돌을 빚어서 웬만하면 대면을 피해왔는데 이번에 제대로 건수를 잡힌 셈, 이대로라면 새 직장을 알아보는 편이 속 편할 것 같았다.
‘젠장, 되는 일이 없네.’
신호가 바뀌고 앞차를 따라 가속하려는데 주머니 속 전화기가 몸부림을 쳤다.
-어디냐?
통화 버튼을 누르자마자 살짝 혀가 풀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구난과에서 유일하게 반가운 얼굴, 선임 이충석이었다.
해경에 임용될 때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로 이충석의 네 살 난 딸 윤미가 차승호를 삼촌이라고 부를 정도로 가까운 선배였다.
“용현동입니다, 형님.”
-그럼 건너와라. 우리 만날 회식하는 삼겹살집 알지?
“무슨 일 있습니까?”
-박춘배 그 인간이 부르란다.
“좋은 소리 안 나올 거 같은데요? 저 정직 중입니다.”
-알아. 그래도 얼굴은 잠깐 비쳐라. 지금도 쌩지랄인데 얼굴 안 비치면 거품 물고 날뛸 거다.
“자르고 싶으면 자르라고 하세요, 겁 안 납니다.”
-파면한다고 지랄하면 골치 아파. 그냥 얼굴 디밀어.
“쩝…… 일단 알겠습니다. 형님 얼굴 본 지도 오래됐으니 간만에 한잔 걸치죠, 뭐.”
-그래, 이따 보자.
“너무 늦지 않게 가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그는 곧장 유턴 차선으로 들어가 바이크를 세웠다. 차가 막힐 시간이라 회식이 끝나기 전에 도착하려면 바로 가야 했다.
아니나 다를까 길이 지독하게 막히는 통에 40분 넘게 시간을 허비한 뒤에야 회식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하는 뒷골목에 바이크를 세우고 코너를 돌자 삼겹살집 입구에서 담배를 입에 문 이충석이 손을 흔들었다.
“잘 왔어.”
“다들 모였습니까?”
“그래, 춘배 그 인간은 벌써부터 진상이고.”
“또 중국 어선 때려잡는 무용담입니까?”
“그렇지 뭐. 중국 어선에는 한 번도 안 올라간 놈이 뙤놈은 젤 많이 때려잡았어. 후후. 먼저 들어가라. 담배 한 대 태우고 들어가마.”
“예.”
그의 팀원 일곱 명은 식당 가장 안쪽에 테이블 두 개를 붙이고 앉아 있었다.
홍일점인 안영선 순경은 오늘도 시뻘건 얼굴의 박춘배 옆에서 우거지상을 한 채 술을 따르고 나머지는 모두 따로 노는 형국, 들어오기 전부터 머릿속에 그려지던 그림 그대로였다.
그가 들어서자 박춘배가 막 마신 술잔을 바닥에 털며 그에게 내밀었다.
“어, 깡패 왔나? 한잔 받아.”
그가 꾸뻑 인사를 하고 술잔을 받자 술을 따른 박춘배가 어울리지 않는 호탕한 웃음을 지으며 혀 꼬부라진 소리를 냈다.
“하하, 나도 자네가 미워서 이러는 거 아니야. 경찰관이 민간인을 패는 건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거든. 안 그래?”
박춘배의 노골적인 조롱에 미간을 잔뜩 찌푸린 안영선이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그것들 동네 양아치거든요? 지나가는 아이들 협박해서 삥 뜯는 쓰레기들이라고요. 그게 무슨 민간인이에요, 범죄자죠. 차 경장님 징계는 말도 안 되는 거라고요. 잘 해결돼서 위에서도 아무 말 없었잖아요.”
“인마, 안 순경. 이제 대선 시즌이야. 공권력이 마구잡이 폭력 행사했다고 같잖은 쓰레기들 줄줄이 들고일어날 수도 있어. 안 그래도 총선 박살 나서 분위기 안 좋은데 윗대가리부터 줄모가지 날아가는 불상사 생긴단 말이다. 천만다행으로 매스컴 모르게 조용히 넘어갔지만 이거 매스컴 탔으면 서장님 옷 벗을 사건이야. 알아? 까불지 말고 술이나 따라.”
“칫, 말이나 돼?”
안영선이 불만 가득한 얼굴로 돌아앉자 박춘배가 능글맞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권고사직이면 많이 배려해준 거야. 당장 직위 해제하고 파면 수순 밟겠다는 걸 내가 바짓가랑이 붙잡고 매달려서 겨우 말렸어. 고맙게 생각하라고.”
쉽게 사표 내라는 이야기, 차승호는 벌겋게 달아오른 박춘배의 얼굴을 노려보며 미간을 좁혔다. 박춘배가 술병을 내밀며 다시 말했다.
“넌 나가서도 함부로 주먹 휘두르는 버릇은 고치는 게 좋아. 자, 한 잔 더 받아. 그동안 수고했어.”
그는 술잔을 그냥 내려놓으면서 삐딱하게 말을 받았다.
“뭘 고맙게 생각하라는 겁니까? 감사계에선 꺼리도 아니라면서 묻어버린 걸 막무가내로 끄집어내신 게 과장님이라던데요?”
“뭐? 누가 그런 헛소리를 해? 어떤 씨발놈이야!”
박춘배는 정말로 입에 거품을 물고 사정없이 침을 튀겼다.
이미 소문이 돌아 다들 수군거리는데 자신만 모르는 것 같았다. 그는 날뛰는 박춘배를 무시하고 구석 자리로 돌아가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나 박춘배는 그가 앉은 자리까지 쫓아와 길길이 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