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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
작가 : 유호
작품등록일 : 2016.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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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화
작성일 : 16-07-11     조회 : 669     추천 : 0     분량 : 8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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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단실 꼭대기에 매달려 뿌옇게 조는 형광등 아래를 가로막은 허름한 철문을 통과하자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밖에서 보면 1층에 리프트 두 개짜리 튜닝카 전문점이 들어선 낡은 3층짜리 붉은 벽돌 건물, 얼핏 보면 그냥 평범한 살림집인데 내부는 깔끔하게 사무실로 개조된 중소 IT기업의 분위기였다.

 물론 당초 기대했던 최첨단 정보기관의 분위기도 분명 아니었다.

 그래도 초입의 사무실에 근무하는 직원만 열 명은 넘어 보였고 안쪽과 위층까지 더하면 근무자의 숫자는 상당할 것 같았다.

 차승호가 들어서자 문 가까운 파일 박스에 기대서 있던 짧은 머리의 여자가 파일 박스 너머로 두툼한 서류가 끼워진 결재판을 내밀었다.

 대략 20대 중반으로 시원시원한 눈매에 얼핏 연예인을 연상케 할 만큼 윤곽이 뚜렷했다.

 그러나 너무 차가운 이미지여서 왠지 모르게 부담스러웠다. 더구나 입에서 튀어나온 단어들이 별로였다.

 “읽을 거 없고 표시된 데다 사인만 해. 그거면 정식으로 강을 건너는 거니까.”

 그는 물끄러미 여자를 건너다보았다.

 또다시 기대와는 다른 전개, 어려 보이는 여자의 입에서 명령조의 반말이 튀어나오는 것도 결코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다.

 그는 선 채로 파일 박스 위에다 서류철을 올려놓고 대충 훑어본 다음, 형광펜으로 표시가 되어 있는 10여 군데에다 서명을 했다.

 업무상으로 얻은 정보를 유출하지 않겠다는 각서 형태의 서류로 양식지 맨 위에 인쇄된 회사 로고는 ICC, 대표자 이름은 홍상표, 대리인 자리에는 김영범의 서명이 들어가 있었다.

 여자의 말대로 요단강 건너는 거 같아서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뒤를 돌아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가 일사천리로 서명을 끝내자 여자는 안쪽 책상에 앉아 있는 정장의 사내에게 파일을 던져주고 파일 박스를 돌아 나왔다.

 전체적인 분위기도 역시나 차가운 이미지였다.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날렵한 몸매에 키도 상당히 커서 낮은 굽의 구두를 신었는데도 정수리가 내려다보이지 않았다.

 그의 키가 184이니 여자의 신장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170에 가까웠다. 재미있는 건 여자의 복장이었다.

 가죽점퍼에 가죽 백팩을 멨고, 타이트한 미니스커트 아래에다 레깅스를 받쳐 입었는데 색상은 저승사자 아닌가 싶을 정도로 모조리 검은색이었다.

 액세서리는 전무, 화장도 립스틱이 전부인 것 같았다.

 그가 생각나는 대로 여자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사이, 바로 앞까지 걸어온 여자가 우뚝 멈춰 서더니 양손을 허리에 짚고 그의 아래위를 훑어보았다.

 그는 괜히 턱을 만지작거렸다. 아침에 면도는 했지만 평소처럼 후줄근한 사파리 점퍼 차림이라 첫 출근 복장으로는 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복장은 그만하면 됐네. 따라와.”

 “에?”

 ‘네’도 아니고 ‘왜’도 아닌 어정쩡한 대꾸를 하자 이번엔 여자가 그를 째려보며 휙 지나쳤다.

 “따라오라고!”

 차승호는 대답을 하지 않은 채, 여자를 따라 계단을 되짚어 내려갔다.

 여자는 곧장 카센터로 내려와 리프트 위에 올라가 있는 검은색 제네시스 쿠페에 올라타 시동을 걸더니 손가락을 튕기면서 그에게 손짓을 했다.

 “타!”

 그는 씁쓸하게 웃으면서 조수석에 올라탔다.

 어린 여자에게 명령을 받는 기분이 영 묘했던 것, 여자는 날렵하게 차를 빼더니 곧바로 골목을 빠져나와 경인고속도로를 시내 방향으로 올라탔다.

 사무실 위치가 신월동 인터체인지 근처여서 고속도로를 태우는 건 금방이었다.

 그러나 차가 워낙 많아서 속도는 크게 올라가지 않았다.

 잠시 후, 강변도로 진입IC 조금 못 미친 지점에서 차가 밀리기 시작하자 여자가 불쑥 손을 내밀었다.

 “오지연, ICC3 안주인이야.”

 차승호는 뚱한 표정으로 손을 맞잡았다.

 “내 이름은 따로 소개할 필요 없을 거 같고…… ICC는 무슨 약자요?”

 “International Crime Consulting, 지금은 널 필드 파트너에게 인계하러 가는 거니까 그거나 신경 써. 말이 파트너지 네 보스고 앞으로 2개월 동안 실전 교육을 겸할 사람이야. 콜사인은 마법사, 현장에서의 결정권은 물론이고 모든 보고와 지시가 마법사를 통해서 올라가고 내려간다. 현장에서 만날 거야.”

 “현장? 석 달 열흘 뺑뺑이 돌다가 오늘 처음 햇빛 봤는데?”

 “질문은 나중에, 글로브박스 열어.”

 그는 슬쩍 오지연의 옆모습을 돌아본 뒤 글로브박스를 열었다.

 글로브박스에서 떨어진 작은 플라스틱 케이스에는 흰 봉투 하나와 휴대전화기, 선글라스, 디지털시계, 손톱만 한 이어폰, 평범한 혁대 같은 기초적인 장비들이 빼곡히 정리되어 있었다.

 “봉투는 활동비, 신용카드하고 신분증 몇 가지 같이 넣었을 거야. 가능하면 현금으로 써. 거기 이어폰하고 디지털시계는 단파 송수신기, 거기 반지랑 단추들은 위치추적장치, 벨트 안에는 단검 들어가 있어. 챙겨.”

 그가 주섬주섬 내용물을 챙기자 오지연이 말을 이었다.

 “네 콜사인은 ‘팩맨’으로 하라더라. 난 ‘마님’이야. 앞으로…….”

 “잠깐, 잠깐, 그 전에 우리 호칭부터 정리합시다. 좀 불편하네.”

 “우린 나이나 직급 같은 거 신경 안 써. 너랑 나이도 동갑이니까 너도 말 놔.”

 “응?”

 일순 말문이 막힌 그는 새삼 오지연을 훔쳐보았다.

 도저히 서른하나로 보기 어려운 엄청난 동안, 짧은 머리에 깐깐한 성격 때문에 더 어려 보이는 느낌이었다. 슬그머니 감탄사가 새 나왔다.

 “히유, 일단 알았어. 계속하자고.”

 오지연은 그와 시선도 마주치지 않은 채 오디오 위에 있는 내비게이션 화면을 켰다.

 그런데 내비게이션에서 떠오른 화면은 지도가 아니라 금발의 외국인 사진이었다.

 얼핏 곱상한 인상이지만 눈매가 날카로워서 평범해 보이지는 않았다.

 “얼굴 잘 기억해둬. 세르게이 라진스키, 별명은 블랙스콜피온, 나이 39세, ‘오르가니자치아’ 연해주 지역 보스인데 작년부터 한국 지부를 맡은 거 같아. 주한 러시아 대사관 서기관 신분으로 입국해서 건드리기 어려워. 3급이라도 서기관은 서기관이니까.”

 “오르…… 뭐?”

 “오르가니자치아, 러시아 마피아야.”

 오르가니자치아는 러시아 토종 범죄 조직으로 조직원 숫자가 무려 50만 명에 이르는 강력한 조직이었다.

 국내에 들어와 활동하는 인원만 1,000명이 넘는다고 알려졌으며 부산, 인천 일대에서 활동하면서 주로 러시아 매춘 여성과 총기 등을 밀반입해 국내 조직에 공급했다.

 최근에는 수산물 수출입, 모델 엔터테이닝 등 합법적인 영역까지 사업을 확장해서 경찰도 함부로 건드리기 어려운 거대 조직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그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자 오지연이 화면을 조작하며 다시 말했다.

 “이놈은 리명철, 36세, 중국인, 한족과 조선족 혼혈인데 동북3성 출신 흑사회 중간보스야.”

 다음에 올라온 사진은 긴 머리에 매서운 눈매의 동양인 사진이었다.

 “흑사회?”

 흑사회는 서울 가리봉동 일대의 흑룡강파를 힘으로 흡수, 병합한 이후 빠른 속도로 전국 차이나타운을 장악한 조선족 폭력 조직이었다.

 마약 거래와 불법 도박장 운영, 인신매매, 보이스피싱 등을 위주로 사업을 확장했는데 워낙 잔인하고 폭력적이어서 토종 폭력 조직들도 한 수 접어주는 지독한 독종들이었다.

 “아마 들어봤을 거야. 주로 영등포와 구로, 인천, 안산 등지의 차이나타운을 중심으로 활동하는데 최근에 영역을 확대하면서 한국계 폭력 조직과 잇단 충돌을 일으키고 있어.”

 “그래서?”

 “작년에 전자업계 대기업의 의뢰로 삼합회 계열의 산업스파이 조직을 수사하다가 삼합회와 러시아 마피아가 충돌하는 황당한 장면과 만났는데 당시에는 삼합회가 일방적으로 당했어. 세르게이가 현장에 있었다는 정황을 포착해서 한동안 감시를 붙여둔 상태였지. 그런데 지난 8월에 세르게이의 수하가 리명철이란 놈과 접촉했다는 구체적인 첩보가 올라와서 정식으로 수사 명령이 떨어졌어. 흑사회 조직이 제법 방대하다 보니 나하고 테란이 흑사회를 전담하는 것으로 교통정리가 됐고 그 자식이 주로 활동하는 영등포 일대를 탐문하기 위해서 테란이 먼저 현장에 들어갔었어.”

 “잠깐, 질문 하나.”

 “해.”

 “이거 경찰청 외사계나 국정원 뭐 그런 데서 해야 할 일 아닌가? 왜 우리가 하지?”

 “그건 나도 의문이야.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 뽑은 꼴이거든. 우린 주로 권력기관 비리나 국내에 침투한 산업스파이들을 상대하는데 이건 그냥 밑바닥 범죄자들이잖아. 사건이 복잡해서 인력이 부족한 국정원이 손을 대기 어렵고 어리바리한 경찰은 감당할 수 없다는 식의 논리인데…… 마음에 안 들어.”

 “쩝…… 뭐 그렇다 치자고, 그래서?”

 “접촉이 끊어졌어. 이틀 전에 ‘11월 7일 월미도 선착장’이란 긴급 메시지가 날아오고 끝이야.”

 “11월 7일이면 오늘이잖아?”

 “노출됐고 위험하다는 뜻이야.”

 “재미없군.”

 “지금 팔당댐 가는 거야. 조금 전에 경기도경찰청 전산망에 신원 불명의 익사체 신고가 떴는데 GPS 신호가 마지막으로 잡힌 자리가 강변도로 조안IC 근처였어.”

 “익사……했다는 거냐?”

 “말 같지 않은 소리 치워. 겨우 조폭 따위에게 당했을 리 없어.”

 “그럼 왜 가는데?”

 “확인은 해야지. 봉투 열어봐.”

 봉투를 거꾸로 뒤집자 현금 한 뭉치와 신분증 몇 개가 떨어졌다.

 맨 위에 있는 건 대형 보수 일간지 기자증이었고 뒤에는 검찰청 수사관 배지 사이에 운전면허증이 끼어 있었다.

 기자증의 이름은 한민수, 수사관 배지와 운전면허증의 이름은 박우현이었다. 신분증을 힐끗 넘겨다본 오지연이 다시 말했다.

 “오늘은 박우현이 좋겠네. 카메라에 찍히지 않도록 신경 써.”

 고개를 삐딱하게 만들며 어깨를 들썩여 보인 그는 화면에 올라온 범죄자 둘의 사진을 차곡차곡 머릿속에 담으면서 담배를 물었다.

 그런데 오지연이 그의 입에 물린 담배를 번개같이 잡아채 창밖으로 던져버렸다.

 “담배 끊어.”

 라이터를 꺼내다 말고 얼어붙은 그는 피식 웃으면서 헤드레스트에 머리를 기대고 선글라스를 썼다.

 “진짜 신분증은 없는 거냐?”

 “그거 둘 다 진짜야.”

 “뭐?”

 “한민수 기자, 박우현 수사관, 둘 다 정식으로 등록되어 있는 이름이라고. 조회하면 나오는 이름이야. 물론 문제가 생기면 그날로 사라지겠지만, 됐어?”

 “헐.”

 그는 항복했다는 의미로 양손을 들어 손바닥을 내보이며 말을 돌렸다.

 “장비는 이게 전부야?”

 “왜?”

 “애들 소꿉장난은 아닌 거 같아서 말이야.”

 오지연은 그의 얼굴을 힐끗 돌아보고 피식 웃었다.

 “총기는 당분간 지급되지 않을 거야.”

 “쩝…… 무협지냐? 러시아 마피아까지 날뛰는 판에 적수공권으로 뛰어다니게?”

 “까불지 마. 스파이질 하는 것들은 함부로 총 안 쏴.”

 “스파이질?”

 “우리 상대는 산업스파이를 포함한 국내에서 활동하는 모든 정보기관이야, 국정원과 기무사도 포함되지. 따라서…….”

 “잠깐, 잠깐. 국정원, 기무사가 적……이라고?”

 “적도 아니고 아군도 아니라고 하는 게 정확하겠지. 외국 정보기관이야 애당초 거론할 필요도 없고 국정원이나 기무사도 필드에서는 아군이라고 할 수 없어.”

 “젠장, 뭔 소린지…… 그럼 명령은 어디서 내려오는데?”

 “나도 몰라, 확실한 건 ICC가 공식적으로 없는 조직이라는 것뿐이야.”

 “환장하네.”

 “개인화기 지급에 대해서는 마법사가 결정할 거다. 군바리 생활 길게 했으니 총질이야 당연히 잘하겠지만 언제 당기느냐는 이야기가 많이 달라.”

 “신삥은 그냥 닥치고 장비 사용법이나 배워라? 후후, 알았다고.”

 그는 신경질적으로 가속페달을 밟는 오지연의 옆모습을 슬쩍 훔쳐보고는 히죽 웃었다.

 손에 든 기초적인 장비들을 손에 익히는 건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다.

 기나긴 뺑뺑이 기간 동안 멍 잡은 것도 아니고 애당초 CCT가 사용하던 정교한 장비들과 비교하면 이건 아이들 장난 수준이었다.

 팔당댐에 도착한 건 정오를 훌쩍 넘긴 뒤였다. 댐 입구를 막은 경찰관들에게 검찰 배지를 흔들고 곧장 댐으로 들어갔다.

 현장이 가깝지 않아서 긴 댐을 모두 건너가고 나서야 철망 아래로 몰려 있는 사람들과 퍼런 비닐로 무언가를 덮어놓은 현장이 보였다.

 잘린 철망을 젖힌 차승호가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마법사는 어딨어?”

 “몰라, 안 보이네. 내려갈까?”

 “왔으면 눈으로 봐야지. 가자고.”

 앞장선 차승호는 철망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내려가면서 길을 막는 경찰관에게 다시 검찰 배지를 보여주고 작업복을 입은 구경꾼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둘러선 경찰관들이 빤히 그의 얼굴을 쳐다봤지만 애써 무시하고 시체 머리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볼펜으로 조심스럽게 비닐을 걷었다.

 대책 없는 악취가 코를 찔렀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얼굴은 심하게 부풀어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웠고 지갑과 시계, 현금 등 사체의 소지품은 머리 옆에 나란히 정리되어 있었다.

 그는 잠시 사체를 내려다보다가 오지연의 얼굴을 살폈다.

 알아봤다면 뭔가 반응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 아니나 다를까 오지연의 표정은 파랗게 질려 있었다.

 오지연이 허리를 굽히더니 그의 귀에다 나직하게 속삭였다.

 “시계.”

 그는 비닐 옆으로 머리를 내민 시계로 눈을 돌렸다. 깨진 데다 수초까지 휘감겨 윤곽이 확실치 않지만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분명 그의 손목에 있는 시계와 같은 물건이었다.

 그가 일어서려 하자 등 뒤에 서서 수군거리던 사복형사들 중에서 4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털털한 사내가 다가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저…… 어디서 나오셨습니까?”

 “서울지검 박 수사관입니다. 검사님은 뒤에 계시죠. 지나가다 시끄럽길래 들려봤습니다.”

 그가 배지를 내보이자 형사가 시체 앞에 쭈그려 앉으며 오지연에게 말을 건넸다.

 “인지수사 시작하시는 겁니까?”

 “잠은 집에 들어가서 자고 싶네요.”

 뒤에서 오지연이 간단히 말을 자르자 형사의 인상이 펴지면서 차승호에게 시선이 돌아왔다.

 “하하, 여기나 저기나 다들 마찬가지네. 나 가평서 강력반 안석태 경사요.”

 경사가 내민 손을 가볍게 맞잡은 차승호는 딱 한 번만 아래위로 흔들고 말을 받았다.

 “히유, 물이 엄청 차가울 건데도 벌써 냄새가 심하네요. 인지수사 거론하시는 거 보니까 익사가 아닌 모양이죠?”

 “내가 부검의는 아니지만 그럴 리가 없시다. 11월 갈수기에 팔다리 다 부러지고 열상 가득한 익사체? 농담 마슈. 눈에 점상출혈도, 입에 거품도 없거든? 글고 지갑 안에도 신분을 증명할 게 아무것도 없어요. 이거, 이거, 무조건 살인이야.”

 “골치 좀 아프시겠군요.”

 “아니, 좀도둑 잡으러 다니는 거보다야 살인 사건 수사가 훨씬 낫지. 흐흐.”

 경사의 얼굴은 완전히 새 장난감을 손에 넣은 어린아이였다.

 간만에 사건다운 사건이 터졌다는 표정, 경사가 뜻대로 매스컴의 플래시 세례를 받을 가능성은 희박했지만 당분간은 어깨에 힘 잔뜩 주고 국과수를 드나들 수 있을 것이었다.

 오지연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고 돌아서자 그도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럼 수고하십쇼. 가야겠네요.”

 “어, 그러쇼.”

 차승호는 경사와 가벼운 인사말을 주고받은 다음 현장을 벗어났다.

 앞서 걷는 오지연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고 있었다.

 차에 도착하는 동시에 오지연은 전화를 귀에 붙인 채, 그에게 뒷자리에 타라고 손짓을 했다.

 그가 뒷자리로 들어가고 오지연이 시동을 거는 순간, 누군가 재빨리 조수석으로 올라탔다. 옆머리가 희끗희끗한 다부진 체구의 사내였다.

 사내가 문을 쾅 닫으며 말했다.

 “시간 없어. 밟아.”

 “인천?”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오지연은 두말없이 차를 빼서 서울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른 뒤, 오지연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테란 맞지?”

 “그래, 캥거루 범퍼 달린 SUV 계열 차량에 정통으로 들이받혔다. 멍청한 자식, 애들 노는 물에서 이게 무슨 황당한 꼴이야.”

 “테란이 여긴 왜 온 거야?”

 “이유가 있겠지, 젠장. 이젠 그냥 못 넘어간다. 일단 그 개자식부터 찾는다.”

 “리명철?”

 “그래, 그 자식 손보는 거부터 시작하자. 뒷일은 집에서 알아서 할 거다.”

 “월미도 갈 거면 나도 가.”

 “마님, 당분간 넌 우리 팀 포수야. 네 자리는 홈베이스다.”

 “살림은 조커가 더 나아. 그리고 테란은 내 사수였어. 말릴 생각 하지 마.”

 “젠장, 멋대로 해라. 똥고집.”

 차가 매섭게 가속을 시작하자 사내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그에게 말을 걸었다.

 “네가 그 사진기냐?”

 “예?”

 대화 중에 이름이나 콜사인은 한 번도 나오지 않았지만 마법사라는 사람일 것이었다. 그가 얼결에 반문하자 다른 질문이 튀어나왔다.

 “한주먹 한다면서?”

 그는 부정하지 않았다.

 “어디 가서 얻어맞지는 않습니다.”

 “언제 한번 실력 좀 보지.”

 “아…… 예.”

 어정쩡한 대답이 대화의 끝, 마법사는 굳게 입을 다문 채 차창 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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