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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
작가 : 유호
작품등록일 : 2016.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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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화
작성일 : 16-07-11     조회 : 699     추천 : 0     분량 : 8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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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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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으며 차에서 내린 그는 우선 골목을 반대쪽으로 돌아 시장 초입에서 소주 한 병과 야구 모자를 샀다.

 이민우와 나란히 서서 소주를 대충 옷에 뿌리고 입에도 한 모금 물었다가 뱉은 뒤, 야구 모자를 깊숙이 눌러쓰고 자연스럽게 룸살롱 입구로 향했다.

 그런데 이민우가 연신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현장이 처음인지 약간 흥분한 것 같았다.

 “처음이냐?”

 “뭐가요?”

 “현장 말이야.”

 “티 납니까?”

 “많이.”

 이민우는 히죽 웃으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처음은 아닌데…… 나오면 만날 차에 앉아 있었죠, 크크. 컴 앞에 말뚝 시킬 거면서 왜 기초 교육은 그렇게 빡세게 시킨 건지 몰라. 뭐 전공이 그쪽이라 불만 없지만요, 흐흐.”

 “긴장 풀어. 넌 지금부터 검사 영감이야. 그냥 아가씨들 데리고 놀다가 내가 자리를 비우면 그때부터 딱 10분만 있다가 나오면 돼. 알았지?”

 “바람잡이만 잘하면 된다 이거죠?”

 “그래.”

 “그런데 형님, 형님이라고 불러도 되죠?”

 “여긴 나이 안 따진다면서?”

 “에이, 그거 나하고 상관없는 이야기예요. 되죠?”

 “뭐 그러든지.”

 “감사합니다. 그냥 궁금해서 그런데…… 형님은 이런 거 많이 하셨습니까?”

 “왜?”

 “깡패들 바글바글한 아지트에 들어가는데도 엄청 여유로워 보여서요. 난 그 빡센 교육 다 받았는데도 심장 덜컹거리거든요. 흐흐.”

 “후후, 이 친구야. 조폭도 제 사업장에서는 사람 안 건드려. 저것들도 바보 아니니까 신경 꺼라. 영감님께선 무게만 잡고 있으시면 돼요, 후후.”

 “영감이라…… 후후, 뭐 나쁘지 않네요.”

 히죽 웃은 이민우는 한결 편해진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눈에 잔뜩 힘을 준 덩치들이 낄낄대는 두 사람에게 잠시 눈길을 돌렸지만 예상대로 그게 전부였다.

 술꾼이 술집을 찾아가는데 길을 막을 바보는 없을 것이었다.

 한자로 휘갈겨 쓴 네온사인 아래를 통과해 이른바 웨이팅룸으로 들어서자 제일 먼저 생소한 중국 여자 가수의 간드러진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한발 늦게 들어온 이민우가 그의 뒤통수에다 나직하게 탄성을 토해냈다.

 “우와…… 이건 뭐 바닥까지 반짝반짝이네.”

 그는 쓰게 웃으면서 내부 구조와 비상구 위치를 빠르게 훑어보았다.

 엉성한 건물 외관과는 달리 내부는 언젠가 TV 드라마에서 보았던 최고급 VIP 사교 클럽을 방불케 했다.

 들어오자마자 마주치는 웨이팅룸은 원형의 복층 구조였는데 2층 천장에 매달린 화려한 샹들리에가 서늘하게 시선을 잡아끌고 벽면을 장식한 최고급 목재와 고가의 소품들도 사람을 주눅 들게 했다.

 더구나 홀 중앙의 대리석에 깔린 두툼한 카펫은 마치 이불을 밟는 느낌이었다.

 좌우로 난 계단이 2층의 원형 복도로 이어졌고 비상구는 반대편 하나였다. 입구 좌우에 도열해 있던 정복 웨이터 중 하나가 재빨리 다가섰다.

 “두 분이십니까, 사장님?”

 “어…… 그래, 술 한잔하자.”

 “이쪽으로 가시죠.”

 웨이터는 입구 양쪽으로 난 계단을 올라가 복도를 돌더니 비교적 조용한 작은 방으로 두 사람을 안내했다.

 등받이가 높은 엔틱 소파 두 개와 대형 노래방 기계가 비치된 방인데 역시나 인테리어가 대단히 화려했다.

 소파에 대충 걸터앉아 테이블 위의 음료수 하나를 따서 목을 적시자 2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여자가 들어와 바짝 다가앉았다.

 느낌상 새끼마담쯤 되는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너무 짙은 향수 냄새 때문에 저절로 미간이 찌푸려졌지만 애써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어, 마담. 반가워.”

 “예진이에요. 술은 어떤 걸로 들일까요?”

 “뭐 있어? 추천해.”

 “임페리얼 어때요? 가격 적당할 거 같은데.”

 “그러지.”

 “안주는 통과일로 하고…… 아가씨는?”

 “마담이 그냥 앉아서 놀지. 애들은 재미없어.”

 “호호, 빼시기는. 잘나가는 영계들로 들여보낼게요.”

 “뭐 그러든지.”

 “호호, 솔직하시네. 잠시만 기다리세요.”

 “아, 그리고.”

 “네?”

 마담은 일어서다 말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왕마담 잠깐 보자고 전해주지?”

 그는 엉거주춤하게 선 마담의 눈앞에다 검찰 배지를 들이대고 가볍게 흔들었다.

 “검찰청에서 나왔어. 그냥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나 좀 하자는 거니까 마담이 걱정할 필요는 없고…… 그냥 가서 전해. 술부터 들여놓고.”

 벌레 씹은 표정이 된 마담이 검찰 배지를 다시 확인한 뒤, 방을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법 거창해 보이는 술상이 들어왔다.

 곧이어 스무 살을 겨우 넘긴 것 같은 헐벗은 여자아이 둘이 들어와 꾸벅 인사를 했다.

 “미진입니다.”

 “세리예요, 오빠.”

 그는 여자들을 힐끗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둘 다 깡마른 체격에 가슴만 풍만해서 왠지 이질감이 느껴졌다.

 가슴에 손을 대면 보나 마나 실리콘이 만져질 것 같았다. 그는 애써 눈을 감아버렸다.

 재빨리 자리를 잡은 여자가 익숙한 동작으로 온더록스 잔을 만들고 다른 하나는 과일을 깎기 시작했다.

 “몇 살이냐?”

 “스물하나요. 오빠는요?”

 “알아 뭐하게, 인마. 완전 노땅은 아냐. 후후.”

 그는 피식 웃으면서 슬그머니 옆에 앉은 미진이라는 아가씨의 어깨를 끌어안고 맨살을 쓰다듬었다.

 제대로 취한 룸살롱 손님 역할, 여자도 콧소리를 내면서 깎던 사과 한쪽을 그의 입에 넣어주었다.

 “아이, 이거 좀 깎고요.”

 같은 장면이 몇 번 반복되자 급기야 오지연이 이어폰 안에서 신경질을 냈다.

 -신나는구만?

 오지연의 말은 깨끗이 무시한 채, 얼음이 든 컵을 가져다 위스키 잔에 있는 술을 온더록스 잔에 붓고 빈 잔을 여자에게 내밀었다.

 “너도 한 잔 받아.”

 “감사합니다.”

 같잖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잔을 몇 번 비우고 나서야 기다리던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들어와.”

 문이 열리자 거구의 어깨 둘을 앞세운 훤칠한 키의 매력적인 여자가 안으로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짙은 스모키 화장 때문에 나이를 예측하기 어려웠지만 느낌상 대략 30대 초반 정도,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에 한쪽 어깨를 완전히 드러낸 선홍색 치파오를 입었는데 몸짓 하나하나에서 무서울 정도로 색기가 묻어 나왔다.

 여자는 자연스럽게 그와 마주 앉으면서 아가씨들을 슬쩍 쳐다보았다. 아가씨들은 눈치 빠르게 밖으로 나갔다.

 덩치가 문을 닫자 여자는 다리를 꼬면서 허벅지까지 터진 치마를 걷어 무릎을 살짝 가렸다.

 찰랑거리는 사파이어 귀고리가 살짝 시선을 끌었다. 그는 마주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담배를 빼 물었다.

 “미인이시네.”

 “괜찮은 가게죠?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장재신이에요.”

 그가 얼음 위에다 술을 더 따르며 어깨를 들썩하자 여자가 다시 말했다.

 “검찰청에서 나오셨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재미있는 일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술 한잔하면서 비즈니스 이야기 좀 하자 싶었지요. 하하.”

 “언제든 환영합니다.”

 장재신은 요염하게 웃으며 시립하듯 무표정하게 서 있는 어깨에게 손짓을 했다. 어깨는 봉투 하나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관할 서에서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형편이라 약소합니다.”

 정중하지만 은근히 거부감을 내비치는 어조, 그는 봉투를 집어 대놓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고액권으로 대략 200만 원 정도였다. 사장이 없는데도 이 정도 거액을 선뜻 내놓는 건 여자가 사장에 버금가는 위치라는 뜻이었다.

 그는 잔에 남은 술을 단숨에 비운 뒤 봉투를 접어 뒷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이런 건 받아두고 시작하는 편이 부패 경찰다운 성실한 자세였다.

 “쩝…… 잔챙이 취급일세. 갑시다, 영감.”

 소리 나게 입맛을 다신 그는 이민우에게 눈짓을 하며 일어섰다.

 이민우는 술잔을 입에 댄 채, 그냥 앉아 있었다. 장재신은 일순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환하게 미소를 머금으며 술병을 잡았다.

 “제가 실수를 한 모양입니다. 한잔하시죠.”

 차승호가 못 이기는 척 다시 자리에 앉자 장재신이 이민우의 잔에 술을 따르며 다시 말했다.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그는 대답 대신 덩치들을 힐끗 올려다보았다. 장재신도 말없이 손짓으로 덩치들을 밖으로 내보냈다.

 “그냥 마담은 아니신 거 같고…… 이명석 씨하고 관계는 어떻게 됩니까?”

 그는 비교적 정중하게 말을 꺼냈다. 눈앞의 여자는 만만한 상대가 절대 아니었다.

 기껏해야 몇 분 안 되는 짧은 시간의 대화지만 여자가 입 밖에 낸 단어 하나, 손짓 하나도 예사롭게 볼 수 없었다.

 비록 감일 뿐이지만 홍인철의 내연녀 정도로 치부하는 건 멍청한 짓이었다. 장재신이 그의 잔에도 술을 따르며 말을 받았다.

 “운영은 제가 합니다.”

 “아, 그런가? 이런 사업은 물주 본명을 걸면 곤란하지?”

 그는 히죽 웃으며 냅킨에다 전화번호 하나를 적어 장재신 앞으로 밀어냈다.

 장재신은 그의 얼굴을 잠깐 건너다보더니 입가에 미묘한 웃음을 흘리면서 냅킨을 끌어당겼다.

 “전해드리죠.”

 “연락 안 되면 문제가 커질 거라고 전하십쇼. 후후.”

 “재미있게 노시다 가세요. 오늘은 제가 대접하겠습니다.”

 “오호, 그거 반가운 소리네. 또 봅시다.”

 “그럼.”

 가볍게 고개를 숙인 장재신이 묘한 여운을 남기고 방을 나서자 조금 전에 들어왔던 아가씨들이 쭈뼛거리며 들어와 제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러나 두 사람의 신분에 대해 들었는지 좀 전의 밝은 분위기는 확실히 아니었다.

 공짜 술 처먹는 놈들이 팁을 줄 턱이 없으니 하루 공쳤다는 표정이었다.

 피식 웃은 그는 조금 전에 받은 봉투에서 현금을 전부 꺼내 탁자 위에 카드 펴듯 길게 펴서 올려놓았다.

 “이름이 뭐라고 했지?”

 “미진이요, 쟨 세리.”

 “그래, 미진이하고 세리. 지금이 9시 55분이니까…… 10시 반까지, 딱 35분이다. 35분만 화끈하게 놀면 이거 니들 거다.”

 “정말요?”

 “그래, 그런데 저기 우리 영감님이 사실 숫총각이거든? 흐흐. 아랫도리 뻐근하게 만들어드려야 돼. 아주 보내버리면 더 좋고. 흐흐흐.”

 그가 이민우를 가리키자 세리라고 불린 아가씨가 갑자기 돌변하더니 이민우의 팔에 달라붙어 끈적하게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어머? 그런 거였어? 나 오늘 총각 따먹는 거야? 호호.”

 “아니…… 어어…….”

 처음엔 당황한 표정으로 물러앉던 이민우는 곧 적응이 됐는지 여자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장단을 맞추기 시작했다.

 한층 밝아진 분위기 속에서 술을 몇 잔 더 비우고 아가씨 하나가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자 그는 이민우와 슬쩍 눈을 마주친 다음, 화장실 가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방을 나왔다.

 쟁반을 든 웨이터와 아가씨들이 바쁘게 오가는 복도는 미로처럼 복잡하기까지 해서 의심받을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그가 움직이자 오지연이 빠르게 말했다.

 -가능성은 비상구뿐이야. 거기서 연결되어 있을 거야.

 “동감, 장재신이란 여자 뒷조사 좀 해봤어?”

 -범죄자 데이터베이스에는 없어. 20~30대 여자 중에 장재신이란 이름을 가진 여성은 모두 아홉 명인데 신분증 사진하고 달라. 가명일 거야.

 “젠장, 그건 나중에 생각하자. 일단 내려간다.”

 그는 티 나지 않게 복도를 따라 돌다가 비상구 계단에서 재빨리 방향을 바꿔 신속하게 계단을 내려갔다.

 다행히 계단에서 마주친 사람은 없었다. 무사히 1층 복도와 만나는 계단참에 도착해서 목만 내밀고 좌우를 살폈다.

 웨이팅룸 반대쪽은 주방과 종업원 대기실이 붙어 있어서 도박장 같은 대형 공간이 나올 수는 없는 구조였다.

 뭔가 있으려면 위치는 확실히 지하였다. 그는 지체 없이 계단으로 내려갔다.

 계단 끝에서부터 조명이 어두워지며 복도가 좁아졌다.

 창고 겸용으로 쓰는지 좌우로 각종 주류 박스들이 키 높이보다 높게 쌓였고 그 끝에는 사내 둘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박스에 기대서 있었다.

 하나는 깡마른 체구였고 다른 하나는 머리를 갈색으로 염색했고 작지만 다부졌다.

 사내들 뒤는 평범한 철문인데 앞을 빈 박스들로 막아놓아서 얼핏 봐서는 문이 아니었다. 갈색 머리가 바닥에 침을 뱉으며 짜증을 냈다.

 “이런 병신 새끼들, 명철이 형님도 안 계신데 여기로 가져오면 어쩌자는 거야?”

 “중요한 물건이라던데요?”

 “미친 새끼, 문제 생기면 물건 하나 때문에 업소 접어야 되는 거야. 여기가 얼마나 중요한 덴지 몰라? 도대체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물건 아직 차에 있습니다. 차도 멀리 있고 두건까지 씌워놔서 절대 기억 못할 겁니다.”

 “야 이 씨발아, 그걸 말이라고 하냐?”

 그는 복도로 나가려다 움찔 놀라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두건을 씌웠다는 건 누군가를 납치했다는 뜻, 리명철의 주업을 생각하면 가능성은 충분했다. 갈색 머리가 다시 말했다.

 “에혀…… 도대체 이 새끼들은 대가리에 똥밖에 안 차서리 안심을 할 수가 없어. 일단 가자.”

 “어딜요?”

 “새꺄, 어디긴 어디야, 누구 뒈지는 꼴 보고 싶어 이래? 물건 어디든 빼놔야 될 거 아냐. 지금 회장님까지 와 계셔.”

 “죄송합니다, 형님.”

 “차 키 누가 갖고 있어?”

 “꼬맹이 두 놈 거기 있습니다.”

 “그럼 가자.”

 두 놈은 허겁지겁 주류 박스들을 치우더니 한 사람이 겨우 드나들 수 있을 만큼만 문을 열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차승호는 재빨리 복도를 가로질러 문에 달라붙었다. 철문 너머는 다시 주류 박스들이 쌓여 있는 긴 복도, 경비는 없는 것 같았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전방 30미터, CCTV.

 어두워서 그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안경의 고성능 카메라에는 잡힌 모양이었다.

 그는 그냥 야구 모자를 깊숙이 눌러쓰고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그냥 달아날 생각, 이미 똘마니 둘이 지나갔으니 모니터 감시하는 놈이 그를 봐도 당장 비상을 걸지는 않을 것 같았다.

 20미터 가까운 복도의 끝은 두 갈래였다.

 하나는 지하를 통해 다른 건물로 이어지는 다른 복도, 다른 하나는 외부로 통하는 계단이었다.

 그는 CCTV 카메라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면서도 바로 마음을 결정하지 못하고 심하게 갈등했다.

 다른 건물로 이어지는 복도로 들어가면 도박장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고 계단을 올라가면 누군가 납치된 현장을 만나게 될 것 같았다.

 핵심은 어느 쪽이 더 합리적이냐 하는 문제, 실제로 도박장이 존재한다고 해도 들어가려면 줄줄이 깔린 경비들을 통과해야 할 것이고 당연히 충돌로 이어져 두더지들을 더 깊은 땅속으로 몰아내는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었다.

 ‘일단 후퇴.’

 마음을 결정했으니 미련을 가질 이유는 없었다. 그는 곧바로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 위에 있는 출입구 옆에서는 다른 두 놈이 어깨를 잔뜩 움츠린 채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었다.

 나가면서 자연스럽게 손을 들어 보이고 그대로 통과, 한 놈이 의아한 눈초리를 보냈지만 그가 아는 몇 안 되는 중국어 중 하나인 ‘짜이쩬[再見]’을 입에 담자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앞서 가는 두 놈을 따라 뒷골목으로 방향을 잡으면서 위치를 가늠했다. 느낌상 자금성에서 건물 하나 건너 뒷골목이었다.

 오지연이 빠르게 말했다.

 -어디야? 건물 밖인 거 같은데?

 “밖이다. 조커 철수하라고 해.”

 -나오는 중이야. 뭐 있어?

 “똘마니들 따라가는 중이다. 누굴 납치한 거 같네.”

 -건드리지 마. 우리 목표는 대형이라는 작자야.

 “사람이 납치된 거 알면서 어떻게 모른 척하냐. 어차피 인신매매도 그놈 하는 짓이잖아. 일단 따라간다. 바이크 이쪽으로 보낼 수 있어?”

 -젠장, 조커 도착하는 대로 내가 간다. 대기.

 “카피.”

 두 놈은 한참을 걸어 낡은 철판으로 둘러친 공터 앞에 있는 낡은 컨테이너 박스 문짝을 두들겼다.

 안에서 누군가 나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주고받더니 공터의 문을 열었다.

 영등포 일대에선 드물게 눈에 띄는 고물상, 산처럼 쌓인 재활용품 사이로 짙게 선팅된 카니발 밴이 보였다.

 놈들은 바로 나갈 생각인 듯 문을 활짝 열어놓고 밴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그는 공터 철판에 기대서서 내부를 살폈다. 놈들이 무어라 소리를 지르자 한쪽에서 검은 그림자가 나오면서 무언가 불만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언성이 높은 것으로 보아 돈 관계를 확실히 하려는 것 같았다. 그는 상황을 주시하면서 오지연을 호출했다.

 “어디야?”

 -가까워. 2분 이내.

 “서둘러.

 몇 마디 더 이야기가 오가고 갈색 머리가 작은 손가방을 건네자 놈들은 차로 다가가서 백도어를 열었다.

 그는 고물상 앞에 있는 물건들을 훑어보며 시간을 끌 방법을 떠올렸다. 그런데 안쪽에서 느닷없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악! 이런 씨발년이!”

 밴 뒷문을 열던 놈이 얼굴을 감싸고 뒤로 자빠졌고 왜소한 체구의 여자가 맨발로 튀어나와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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