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병원으로 달려온 차인숙은 다짜고짜 그의 뒤통수부터 후려갈겼다.
“장난하니? 장장 6개월 넘게 전화 한 통 안 하다가 느닷없이 한밤중에 전화를 걸어서는 한다는 소리가 기껏 고3짜리 여자애 맡아달라는 거야?”
“아니, 그게 아니고…….”
차승호는 맞은 자리를 긁적이며 차인숙의 눈치를 살폈다.
밖에선 누구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괴물로 통하지만 누나 앞에서는 언제나 고양이 앞의 쥐였다.
키 160에 50킬로그램도 안 되는 아담하고 수더분한 이미지의 아줌마, 그러나 말발에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무시무시한 내공의 소유자였다.
더구나 평소 죄지은 것도 많아서 속수무책 당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한술 더 떠서 지금은 무리한 부탁을 하는 형편이었다.
그가 말을 더듬자 차인숙이 병실 쪽을 돌아보며 목소리를 낮췄다.
“더구나 애 학비를 네가 대? 짜샤, 애 사정 딱한 건 알겠는데, 그럴 돈 있으면 네 조카부터 좀 챙겨라, 썩을 놈아.”
차인숙이 다시 그의 머리를 쥐어박으려 하자 그는 얼른 그녀의 손을 잡아채 봉투를 쥐어주었다. 이런 땐 현찰이 최고였다.
“내가 내는 거 아냐. 경찰서가 내는 거야.”
“이게 뭐니?”
“돈.”
“돈?”
“1,700만 원 좀 넘을 거야.”
100만 원은 병원비, 200만 원은 김채문에게 줄 요량으로 떼어놓고 나머지를 전부 건넨 셈, 차인숙은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뭐?”
“1,700만 원이라고. 희진이 대학 졸업할 때까지 맡아주는 조건이야. 식당에서 재우고 거기서 알바시켜. 일손 딸리는데 도움도 되잖아. 애 똑똑하고 이쁘장하게 생겨서 홀 맡기면 손님 확실히 늘어날 거야. 그건 내가 보장한다, 흐흐. 그리고 공부 잘하니까 봐서 선민이 가르치라고 해봐. 대학 등록금은 별도로 지원할 거니까 걱정 말고.”
“정말이니?”
“부탁해, 누나.”
차인숙은 봉투와 그를 번갈아 쳐다보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1,700만 원이면 생활에 큰 도움이 될 거액, 갈등은 하겠지만 돈의 유혹을 뿌리치기는 어려울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차인숙은 몇 초 지나지 않아 봉투를 핸드백 속에다 밀어 넣었다.
“휴…… 불쌍한 아이니 해보자. 식당에서 재울 수는 없고 집으로 데려가야지.”
“괜찮겠어? 집에 방 두 개뿐이잖아.”
“식당 내실은 주방 아줌마 쓰셔야 돼. 선민이하고 같이 쓰라고 해보고 안 되면 나랑 같이 써야지 뭐. 이 돈 받으면서 그 정도도 안 해주면 양심 없는 거야.”
“그럼 고맙지, 후후. 알바해서 제 용돈 벌기로 했으니까 좀 안정된 다음에는 큰딸년처럼 이것저것 가르쳐서 써먹으셔.”
“됐어, 하여간 넌 하는 짓마다 일을 만드냐. 이제 사고 좀 그만 쳐라.”
“고마워 누나.”
그는 실실 웃으면서 차인숙을 끌어안았다. 여전히 못마땅한 얼굴이지만 승낙은 한 셈, 그는 얼른 병실을 가리켰다.
“인사해야지, 들어가자.”
그런데 차인숙이 그의 팔을 잡아 세웠다.
“너 다음 주 토요일 날 시간 좀 내라.”
“다음 주말? 왜?”
“나소진이라고 스물일곱 살인데 참한 아가씨야. 예쁘고 날씬해서 너도 마음에 들 거다. 이번에도 파토 내면 넌 나한테 죽는 거야. 알았어?”
몇 초 전까지만 해도 불쌍한 아이에 대해 걱정하던 상냥한 사모님이 갑자기 도끼눈을 뜬 아줌마로 변해버린 상황, 그는 슬금슬금 물러서면서 손사래를 쳤다.
“또 선보는 이야기야? 누나, 나 요즘 바빠. 나중에 이야기하자.”
“죽을래? 쟤 안 맡아도 돼?”
물러나는 건 한계가 있었다. 금방 복도 벽에 막혀 코밑으로 다가온 도끼눈에 꼼짝없이 노출되고 말았다.
“누나, 치사하게 이럴 거야?”
“내가 이런 기회를 놓칠 거 같니? 대답해. 아님 나 집에 갈 거야.”
그는 10초도 버티지 못하고 한숨을 폭 내쉬었다.
“휴…… 만날게. 만난다고. 됐어?”
“잘 생각했어. 내 동생, 호호.”
차인숙은 서늘하게 웃으면서 골세리머니하듯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사실 차인숙은 매년 서너 번씩 똑같은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주변의 여자란 여자는 모조리 끌어다 대는 셈, 그를 결혼시켜야 보호자로서의 책무를 내려놓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힘들고 위험한 해양경찰이라는 직업을 좋아할 여자가 없다는 건 자신도, 누나도 잘 알고 있었다.
나가봐야 결과가 뻔한데 괜히 나가서 자존심 다칠 이유가 없다 싶어 계속 거절했는데 차인숙은 지치지도 않는지 줄기차게 맞선이나 다름없는 소개팅을 주선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엔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에서 나간다는 대답을 받아 가고야 말았다.
차인숙은 그의 승낙이 떨어지자마자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들어가자 얘.”
어정쩡하게 병실로 들어서서 두 사람을 소개하자 차인숙은 언제 도끼눈을 떴냐 싶게 낯빛을 바꾸고는 한희진의 이마를 쓰다듬으며 차근차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더도 덜도 아닌 문자 그대로의 야누스, 역시 아줌마는 무서운 존재였다. 그는 잠깐 상황을 지켜본 뒤 정식으로 입원 수속을 밟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주머니의 전화기가 떨려왔다. 모르는 번호지만 낯익은 목소리였다.
-안녕하세요.
“누구시죠?”
-장재신입니다. 기억하시죠?
“물론입니다.”
-한번 놀러 오세요. 언제 시간 되십니까?
“사장님하고 통화가 되셨나 보죠?”
-그렇다고 봐야죠?
“좋습니다. 영감님께 말씀드리고 오늘이나 내일 퇴근 후에 건너가죠.”
-기다리겠습니다.
말 그대로 용건만 간단히, 장재신은 정확히 듣고 싶은 대답만 들은 다음 전화를 끊었다.
그는 전화기를 주머니에 쑤셔 넣고 건물 밖으로 나와 담배를 입에 물었다. 불쾌한 느낌이 서늘하게 뒷목을 훑어 내렸다.
뒷골목에서 얻어맞은 것들이 위에다 사실대로 보고하기는 어렵겠지만 한희진이 자력으로 탈출했다는 정도로만 보고가 됐다 쳐도 장재신은 상황을 점검하게 될 것이고 CCTV를 통해 수하들을 따라 나간 것이 그라는 걸 확인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따라서 한희진을 빼돌린 장본인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장재신이 인지했거나 혹은 의심하고 있다는 전제로 일을 추진해야 했다.
‘젠장, 꼬여버린 거 같은데.’
가늘게 뿜어낸 연기가 매서운 바람에 횡으로 쓸려 나갔다.
탐색
바다에서 불어닥친 매서운 강풍이 굉음을 토해내며 귓가를 할퀴고 지나갔다. 밤 9시, 해안으로 이어지는 도로는 텅 비어 있었다.
가로수 뒤쪽에 바이크를 세운 차승호는 내리면서 고개를 좌우로 틀었다. 오후에 몇 시간 눈을 붙였는데도 온몸이 찌뿌둥했다.
누군가 망치로 어깻죽지를 내리친 것 같은 느낌, 아마도 오전 내내 차인숙에게 시달려서일 것이었다.
한잠도 자지 않았다는 오지연은 멀쩡한데 자신만 온몸이 쑤시는 것 같았다.
근육을 좀 풀어놔야겠다는 생각에 경사진 잔디밭을 내려가면서 크게 기지개를 켰다.
이어 주차장에 내려서 본격적으로 몸을 풀기 시작하자 오지연이 차창을 내리고 말했다.
“이야기는 잘된 거야?”
“받아주기야 했지, 왕창 깨졌지만. 흐흐.”
“객식구 받아줬으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야.”
“누나한테는 언제나 감사하고 있어. 후후.”
“애한테 마약 투여 안 된 거야?”
“다행히 음성이란다. 혹시나 싶어서 SAE 키트까지 들이댔는데 다 음성이야. 깨끗한 상태에서 장기를 적출하고 싶었겠지. 젊고 건강한 아이니까.”
SAE는 ‘Sexual Assault Evidence’의 약자로 통상 성폭행 검사를 통칭하는 단어였다. 오지연도 알고 있는지 고개를 주억거리며 욕설을 입에 담았다.
“인간 망종 같은 새끼들.”
“출입국관리사무소는 도대체 뭐 하는 것들이냐? 저런 쓰레기들은 좀 추려내야 하는 거 아냐? 동포라고 무조건 받아들일 일이 아니잖아.”
“원래 저런 놈들 서류가 더 멀쩡해. 마빡에다 나 범죄자요 하고 써 붙이고 다니는 놈 없고. 서류만 보고 도장 찍는 사람들 탓할 일은 아니지.”
“제기랄, 짜증만 만땅이네. 그런데…… 그 테란이란 분 말이야.”
“왜?”
“장례식 같은 거 도와줘야 되는 거 아니냐? 경찰은 신분 확인도 아직 못했을 건데?”
“큰집에서 알아서 챙길 거야. 어차피 우린 장례식 참석 못해.”
“그것도 규칙이겠지?”
“규칙 문제가 아니야. 죽은 사람 때문에 조직 구성원 전체가 위험해지는 건 피하는 게 맞아.”
“쩝…… 맘에 드는 일이 하나도 없네그려. 자금성인지 뭔지 거긴 꼼짝 안 하냐?”
“전혀, 밴도 여전히 그 자리란다.”
“그 여자도 도통 종잡을 수가 없었어. 안면 인식인지 뭔지 거기는 걸린 거 없냐?”
“없어.”
“제기랄, 지문이라도 따올 걸 그랬나?”
“신경 꺼. 소용없었을 거야. 내일 거기 가는 거나 다시 생각해. 아무래도 걸리는 게 많다. 오늘 돌아가는 거 보고 결정하자.”
“글쎄, 안 가면 더 이상하지 않을까? 내가 안 나타나면 진짜 애고 어른이고 전부 잠수할지도 몰라. 글고 최소한 언놈이 주연인지는 알고 주먹질을 시작하는 게 맞지. 안 그래?”
오지연은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헤드레스트에 머리를 기댔다.
“생각해보자. 어디 가서 저녁 먹고 와.”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시간을 확인했다. 이미 9시가 훌쩍 넘은 시간, 주변은 캄캄했다.
“넌?”
오지연은 대답을 하지 않고 차에서 내리더니 트렁크에서 묵직한 스포츠 가방을 꺼냈다. 그가 낮게 휘파람을 불었다.
“휘익, 스나이퍼 라이플?”
“MSG-90, 써봤어?”
“PSG-1의 다운그레이드 버전, 7.62밀리미터 반자동에 유효사거리 1.2킬로미터, 5발 탄창, 600배럴, STANG 스코프, 난 별로 안 좋아해.”
“가볍잖아. 명중률도 그만하면 괜찮고.”
“나쁘지는 않지.”
그는 말을 받으면서 불쑥 손을 내밀었다. 자신도 총을 달라는 뜻, 오지연은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그건 마법사한테 이야기해.”
“젠장, 누가 총질하면 그냥 장렬하게 전사하라는 소리구만. 알아 모시겠습니다요, 마나님.”
그가 빈정대자 오지연은 트렁크를 소리 나게 닫고 위에다 가방을 올려놓았다. 그의 불평은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골프장을 통해서 인천대 쪽으로 간다. 넌 반대쪽 맡아. 펌프장 옥상쯤이 시계가 좋을 거 같다.”
“보나 마나 저항할 건데? 바다로 튈 수도 있고.”
오지연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가방을 툭 두들겼다.
“폼 잡자고 꺼낸 거 아냐. 타격 팀까지 동원했으니까 유사시에는 쓸어버릴 거야.”
간단명료한 대답, 그는 양손을 들어 보였다.
“졌다. 이따 보자고.”
그는 가볍게 손을 흔들고 바이크로 돌아가 시동을 걸었다.
아직 시간 여유가 있으니 근처 편의점이라도 들러 먹을 걸 챙길 생각이었다. 그런데 편의점에 도착하기도 전에 오지연이 전화를 걸었다.
“왜.”
-카니발 밴이 움직인다. 경인고속도로.
“이쪽?”
-모르지. 조커가 따라가고 있어.
“카피, 나도 자리 잡는다.”
아파트 단지 슈퍼에서 따뜻한 커피와 빵 하나를 사들고 골프장으로 돌아가면서 도로변의 상황을 차근차근 살폈다.
아직 공사 구역이 많은 외진 지역이고 시간까지 늦어서 오가는 차량은 거의 없었다.
그는 느긋하게 골프장을 한 바퀴 돌아보고 골프장 안으로 들어가 리조트 빌라 주변 주차장에 바이크를 댔다.
그리고 조용히 빌라 단지 그늘 속으로 스며들어 해안까지 걸었다.
***
-목표 인천대 정문 통과합니다, 대기.
두꺼운 외투를 입었음에도 사지가 뻣뻣하게 굳어간다 싶어질 무렵, 이민우의 긴장한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차승호는 어깨를 돌리면서 시간을 확인했다. 자정이 한참 지난 시간이었다.
재빨리 사방을 훑었지만 보이는 건 도로의 가로등 불빛이 전부였다. 다시 몇 분이 흐르고 재차 이민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사복경찰이 골프장을 끼고 들어가는 도로를 차단했습니다.
-경찰?
오지연이 차가운 목소리로 되물었다.
-외눈 경광등을 운전석 위에 붙인 승용차를 횡으로 세워 도로를 막았는데…… 사복 두 명입니다. 목표는 통과했고요.
-아는 얼굴이냐?
-박춘배는 아닌 것 같습니다. 확인하겠습니다.
-카피, 움직임 관찰이 가능한 거리에 대기하면서 사진 채증해.
-카피.
-팩맨, 들었지? 북쪽 도로 상태는?
“대기, 확인한다.”
그는 재빨리 옥상 반대쪽으로 넘어가 야시경으로 도로를 훑었다.
골프장이 끝나는 곳쯤에 도로를 가로막은 차량이 보였다. 경광등을 켜지는 않았지만 윤곽은 확실히 보였다.
“이쪽도 차단됐어. 시작인 거 같다.”
-목표 진입한다.
“씨발, 박춘배 이거 진짜 사람 미치게 만드네.”
툴툴거리며 야시경 배율을 올린 차승호는 다시 반대로 넘어와 골프장 남쪽 도로를 살폈다.
어둠 속에서 불쑥 나타난 전조등은 천천히 해안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해안도로로 나오지는 않고 대학 캠퍼스와 골프장 사이의 공터로 들어갔다. 오지연이 빠르게 말했다.
-이쪽이다. 그쪽 변동 없으면 건너와.
“카피.”
그는 자세만 바꿔 북쪽 도로를 다시 한 번 훑어본 다음, 재빨리 건물을 내려왔다.
부지런히 경사진 잔디밭 능선 아래를 뛰는 사이, 오지연은 타격 팀을 인천대 안으로 우회시켜 현장으로 진입시켰다.
타격 팀의 이동은 신속했고 그가 골프장 끝에 도착하기도 전에 하차 보고가 들어왔다.
-하차, 전개 완료, 진입 대기.
-카피, 대기.
골프장 끝에 도착한 그는 잠시 숨을 돌린 다음, 능선 너머로 머리를 내밀었다.
밴은 아직도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는 야시경을 꺼내 밴 조수석에 초점을 맞췄다.
차가 바다를 보고 있어서 운전석을 볼 수는 없고 조수석도 그냥 윤곽을 구분하는 정도였다.
순간, 밴의 전조등이 네 번 연속 번쩍였다. 바다로 신호를 보낸 모양인데 캄캄한 수평선에서는 반응이 없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수평선 한편에서 허름한 어선 한 척이 나타났다. 이어폰에서 오지연의 목소리가 다시 흘러나왔다.
-목표2 접근, 대기.
속도를 줄인 어선이 목재로 만든 간이 선착장으로 접안하자 밴에서 두 놈이 내려 선착장으로 뛰어가고 어선에서 누군가 나타나 검은 가방 몇 개를 선착장으로 던졌다.
이어 두 놈이 가방을 나란히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런데 뭔가 느낌이 섬뜩했다.
‘뭔가 빠졌어.’
뒤늦게 밴에서 박스를 내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리고 밴이 곧장 현장으로 왔다는 점도 신경을 건드렸다.
기본적으로 비슷한 규모의 작업이라면 반입과 반출을 동시에 진행하는 게 효율적이겠지만 규모의 차이가 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기껏 장기 몇 가지를 반출하려고 무기나 마약을 반입하는 중요한 작업을 위험하게 하는 멍청한 놈은 없을 것이었다.
물론 밴에 실린 박스에 장기가 없고 한희진이 탈출한 것으로 끝이라면 억지스럽지만 말은 됐다.
그러나 감시당할 거라는 걸 아는데 중요한 거래가 있는 장소로 노출된 밴을 보냈다? 이건 말이 되지 않았다.
그가 다급하게 머릿속을 정리하는 동안 오지연의 명령이 떨어졌다.
-알파, 진입.
-진입! 진입!
캠퍼스 쪽 둔덕에서 검은 그림자들이 빠져나와 신속하게 밴으로 접근했다. 전부 여섯 명, 야간이지만 자동화기와 방탄복의 윤곽이 확연히 보였다.
몇 초 지나지 않아 대원 둘이 밴에 달라붙어 앞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더 기다릴 수는 없었다.
“중지, 중지! 차에서 떨어져! 빨리!”
-알파 카피, 중지. 목표에서 이탈한다!
명령을 복창한 대원들이 황급히 물러서자 오지연이 당황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뭐 하는 거야!
“씨발, 닥치고 좀 기다려!”
그는 되는대로 악을 쓴 다음, 선착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금방까지 보이던 두 놈이 보이지 않았다.
‘제기랄!’
그리고 선착장에 놓인 박스에서 무시무시한 섬광이 솟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