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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
작가 : 유호
작품등록일 : 2016.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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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1 화
작성일 : 16-07-13     조회 : 863     추천 : 0     분량 : 8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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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색 도시

 

 

 

 “할부도 안 끝났는데 미치겠네.”

 차승호는 모니터 속에 수갑 차고 둘러앉은 조선족 건달들을 째려보며 연신 툴툴거렸다.

 총 맞고 구덩이에 처박은 바이크 때문이었다.

 계기판과 전조등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박살 났고 프론트 서스펜션이 부러져 완전히 어긋난 데다 메인프레임까지 왕창 휘어버려서 수리비만 몇백은 족히 깨질 판이었다.

 차라리 그냥 팔아서 남은 할부금이나 갚는 편이 뱃속 편할 것 같은 상태였다.

 그나마 일이나 잘 풀렸으면 수리비라도 청구해볼 텐데 작전을 통째로 말아먹는 바람에 말을 꺼내기도 찝찝했다.

 물론 현장에 있던 몇 놈을 체포하기는 했다.

 트럭을 운전하던 놈은 타격 팀이 잡았고 차를 타고 도망가던 셋은 마법사와 오지연이 길목을 덮쳐서 가까운 창고에다 한꺼번에 감금한 상태였다.

 매스컴을 탈 만큼 일이 커진 상황이라 가능한 한 체포를 피해야 했지만 급히 현장을 뜨려면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입을 여는 놈이 하나도 없었다.

 무리해서 체포하는 강수를 뒀지만 놈들은 철저히 입을 다문 채, 시종일관 연변에 있는 가족들이 죽는다는 이야기만 주절거리고 있었다.

 이민우가 원격으로 놈들을 찍는 카메라 각도를 조절하면서 입맛을 다셨다.

 “쩝…… 저것들 아무래도 입 안 열 거 같은데요? 당장 가족이 죽는다는데 떠들겠습니까?”

 “젠장, 그나저나 저것들 처리는 어쩐다냐? 큰집에서 깜빵 운영하는 것도 아니고.”

 “모르죠 뭐, 우린 증거 모아서 넘기면 끝인데 이번엔 상황이 좀 그러네요.”

 “뭐가 그래?”

 “타고 있던 차량을 훔쳤다는 거 빼고는 다른 범죄를 입증할 증거가 하나도 없잖아요. 모른다고 뻗대면 할 말도 별로 없습니다.”

 사실이 그랬다. 현장에 있던 물건은 모조리 형체도 없이 날아갔고 잔해에 접근할 방법도 현실적으로 마땅치 않았다.

 “지랄이네, 차 번호 추적했어? 불 지른 차들도 있잖아.”

 “전부 훔친 차 아니면 폐차된 번호판이에요. 트럭까지 다섯 대 전부. 카니발 번호판도 폐차된 차 번호판입니다.”

 “휴…… 아마추어는 확실히 아니네. 총은 어때? 저 새끼들 나한테 총 쐈는데 총기 없었어?”

 “체포 당시에는 없었답니다. 그 넓은 공사장 터 두 블록을 완전히 가로질렀고 바닷가도 잠깐 달려서 버릴 곳 많았을 거예요.”

 “지랄, 입은 지퍼 채웠고 국적은 중국, 그냥 데드엔드네.”

 “그런 셈이죠. 그래도 추방할 수는 있을 겁니다. 어쨌든 밀입국자고 차량 절도의 증거는 있으니까요. 우리가 직접 법적 조치를 할 수 없는 게 문제죠.”

 “바다에다 던져버리나? 한국인도 아닌데 굳이 돈 써가면서 콩밥 먹일 필요 없잖아.”

 “모르죠. 방법이 있을 겁니다.”

 “뉴스엔 나왔어?”

 “다행인지 불행인지 간이 선착장 화재 건만 단신으로 처리됐습니다. 경찰은 단순 사고로 판단한다는데 이해가 안 되고…… 야적장 쪽은 위에서 뺀 거 같네요. 뭐 그나마도 대통령 형아 비리 건에 완전히 묻혔지만요.”

 “어이구…… 또 비리냐? 정말 이번 정권 답이 없다. 젠장, 그건 그렇고 지금부터는 저것들 계좌들 좀 뒤지자.”

 “계좌요?”

 “그래, 자고로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은 돈이야. 하다못해 적국에 들어간 딥커버 첩보 요원도 돈 주는 놈 찾다 보면 소속이 나오거든. 홍인철, 이명석, 나머지 보스 여섯 놈, 이렇게 여덟 놈 돈거래만 따라다녀도 주거래 계좌가 나올 거다.”

 “본명으로 은행 거래하는 놈 하나도 없을 겁니다. 이름이라도 있어야 뭘 하죠.”

 “통상 한국 사람하고 결혼했다가 국적을 얻은 뒤에 이혼한 사람들을 이용하니까 그놈들 친척 중에 이혼녀들 이름하고 계좌 뒤져봐. 아마 그 자식들이 처음 한국에 들어올 때 이쪽에서 초청했거나 보증을 섰거나 대충 그런 식으로 엮여 있을 거야. 출입국사무소 뒤지면 그 인간들하고 관련 있는 이민자들 나올 거다. 거기다 수색영장 들이댈 수는 없으니 대신 네가 손가락 운동 좀 해야겠지.”

 “흠, 간만에 몸 좀 풀어보죠, 흐흐.”

 “걸리지 말고.”

 “절 뭘로 아시는 겁니까? 오늘은 NASA, 내일은 국정원, 모레는 내각정보실, 이러면서 멋대로 헤집다가 끌려온 놈입니다. 흐흐흐.”

 “걸렸으니까 끌려왔지, 인마.”

 “에이, 그땐 장난으로 정치인 신상 털기 하다가 재수 없어서 걸린 겁니다. 맘먹으면 멍멍이 발자국 같은 건 절대 안 남죠. 더구나 지금은 컴 수준이 다르잖아요. 후후.”

 이민우는 테이블 모니터 아래에 있는 대형 CPU를 가볍게 두들기면서 자랑스럽게 웃어 보였다.

 “알았으니까 이번엔 멍멍이 데리고 다니지 마.”

 “넵, 48시간만 주세요. 사돈에 팔촌까지 주욱 털어보죠. 흐흐흐.”

 “오케이, 난 마님 불러내서 영등포 놀러 갔다 올게.”

 “조심하세요. 만만한 여자 아닌 거 같던데.”

 “그래야지, 이따 대응 좀 해줘.”

 “물론이죠. 들어갈 때 호출하십쇼.”

 그는 어깨 너머로 손짓만 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상황실 밖으로 나오자 자기 책상에 앉아있던 오지연이 전화기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나온 거 있어?”

 “있을 리가 없잖아. 마법사는?”

 “세르게이 만나러 갔어.”

 “세르게이……를 만나?”

 “알아볼 게 있다고 했어. 느낌상 한바탕할 것 같던데?”

 “둘이 아는 사이야?”

 “이 바닥 생활이 길어지면 아군이 적이 되고 적이 친구가 되는 경우도 많아. 어차피 정보 장사에는 피아 구분 같은 거 없기도 하고.”

 “무슨 소린지 대충 감 온다. 오늘도 하나 주워들었네, 후후. 일단 나가자, 배고프다.”

 “운전해.”

 그는 모하비를 끌어냈다. 처음 몰아보는 SUV라 좀 어색했지만 익숙해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

 

 두 사람이 자금성 근처에 도착한 것은 9시를 훨씬 넘긴 뒤였다.

 그는 엊그제 빠져나왔던 자금성 뒷골목 초입에서 50여 미터 떨어진 이면 도로에 차를 세웠다.

 “낌새가 이상하면 곧바로 나와.”

 “당근, 아직 죽고 싶지 않아.”

 차에 남은 오지연에게 싱글싱글 웃어 보이고 혼자 자금성으로 향했다.

 “어서 오십쇼!”

 밤업소 기준으로는 아직 이른 시간인데도 웨이터들은 입구에 질서정연하게 늘어서서 일제히 머리를 숙였다.

 대형 조직이 관리하는 업소답게 웨이터 관리가 엄격하다는 뜻, 대리석 바닥이 유리알처럼 반짝이는 것도 이해가 될 것 같았다.

 그가 웨이팅룸에 발을 들여놓자 안쪽 복도에서 낯익은 덩치 하나가 재빨리 뛰어나왔다.

 첫번째 방문 때 장재신과 함께 들어왔던 경호원쯤 되는 녀석이었다.

 “가시죠, 선생님.”

 그는 목례만 하고 조용히 덩치의 뒤를 따라 웨이팅룸을 가로질렀다. 그런데 덩치가 가는 방향이 의외였다.

 가장 안쪽에 있는 비상구 계단, 계단을 내려가면 무조건 그가 봤던 지하 통로였다.

 계단은 그의 기억과 다르지 않았다. 계단 끝에서부터 조명이 어두워지더니 창고 겸용으로 쓰는 복도가 이어졌다.

 다음은 주류 박스가 쌓인 철문, 덩치는 철문 앞에서 방향을 바꿔 비좁은 복도를 한참 걸었다.

 이어 다른 철문 하나를 통과하자 복도가 밝아졌다.

 눈앞에 나타난 건 얼핏 보기에도 상당히 길어 보이는 깔끔한 복도, 지하인데도 상당히 긴 거리였다.

 중간에 지상에서 내려오는 계단 하나를 만나고 마지막은 두 명의 사내가 지키는 두꺼운 철문이었다.

 철문을 열자 매캐한 담배 냄새와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말소리가 후각, 청각을 한꺼번에 자극했다.

 ‘카지노?’

 상대의 의도가 궁금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 룸살롱까지는 합법의 경계선을 오가는 사업이라 크게 문제가 되지 않지만 불법 도박은 분명히 심각한 범죄였다.

 더구나 상대는 그를 검찰청 수사관으로 알고 있었다.

 물론 처음부터 돈을 요구하는 부패 경찰의 모습을 보였으니 사업의 규모를 보여주고 거액의 뇌물로 합의를 보려 한다고 억지스럽게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사업장을 공개하는 건 누가 봐도 말이 되지 않았다.

 자신의 패를 까놓고 협상을 시작할 정도로 멍청한 작자가 아니라면 이건 뭔가 다른 의도가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가 입구에서 걸음을 멈추자 덩치가 10만 원짜리 칩 다섯 개를 건네며 도박장 문을 열었다.

 “몇 게임 하면서 기다리시죠. 곧 내려오실 겁니다.”

 그는 이번에도 대답을 하지 않고 매캐한 담배 연기 속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도박장은 당초 예상보다 규모가 커서 웬만한 초등학교 운동장을 방불케 했다.

 초입은 외국의 카지노처럼 슬롯머신들이 차지했다. 다음은 바카라, 블랙잭 등 카드 테이블 몇 개가 이어졌다.

 그런데 슬롯머신의 숫자도 그렇고 카드 테이블의 숫자도 카지노 규모에 비해 턱없이 적었다.

 보통은 테이블마다 천장에 붙어 있어야 할 감시카메라의 숫자도 10여 개가 전부였다.

 카드 테이블들 너머 가장 안쪽은 그나마 비슷했던 실내 분위기조차 완전히 달라졌다.

 조명은 어두웠고 무려 50여 개의 마작 테이블이 드넓게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소음도 슬롯머신이 뿜어내는 쇳소리가 아니라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사람의 목소리가 훨씬 더 컸다.

 출입구는 그가 들어온 곳을 제외하면 스탠드바 뒤쪽에 있는 하나가 유일했고 경비원은 가스총으로 무장한 제복 네 사람과 허름한 정장 차림의 사내 다섯 명이 전부였다.

 문제가 터지면 스탠드바로 튀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경비원들의 위치를 다시 한 번 머릿속에 구겨 넣었다.

 마지막으로 웨이터들의 숫자를 확인한 뒤, 느릿하게 슬롯머신 구역을 통과하면서 오지연을 호출했다.

 “도박장이야. 신호 잡혀?”

 -타격 팀 호출할까?

 “아니, 기다려. 할 말이 있는 모양인데 들어나보자고.”

 -위험하다 싶으면 무조건 나와.

 “알았어, 대기.”

 도박장 안을 천천히 둘러보면서 분위기를 살핀 다음, 한가한 블랙잭 구역에서 비어 있는 테이블에 앉아 칩을 전부 만 원짜리로 바꿨다.

 딜러는 칩 50개를 10개씩 그의 앞에 쌓은 다음, 숙련된 동작으로 카드를 섞더니 카드 뭉치를 그에게 밀어냈다.

 플라스틱 카드를 중간에다 톱질하듯 끼우자 딜러는 신속하게 카드를 박스에 넣고 두 장을 뽑아 보여주고 버리는 카드에 돌려놓았다.

 그가 칩 하나를 베팅 서클에 올려놓자 딜러는 제법 유창한 영어로 게임 시작을 알렸다.

 “No more bet.”

 그의 앞에는 10과 7이 떨어졌고 딜러에게는 그림 한 장과 히든 한 장이었다.

 “패스.”

 그는 카드를 받지 않았다. 딜러가 카드를 앞으로 가져와 히든을 열었다. 딜러의 히든은 5, 딜러가 버스트될 가능성이 높았다.

 “딜러는 킹과 5입니다.”

 딜러가 한 장을 더 붙였다. 하필 5여서 20, 딜러는 재빨리 칩을 걷어 갔다.

 “딜러 20입니다. 베팅하십쇼.”

 “시작부터 별로네.”

 이번엔 칩 두 개를 올렸다.

 “No more bet.”

 그의 앞에 떨어진 카드는 퀸과 10, 딜러는 9와 히든이라 받을 이유가 없었다. 패스, 딜러의 히든은 킹이었다.

 19, 딜러는 칩 두 개를 그의 칩 옆에다 내려놓고 카드를 걷어 갔다. 받은 칩 두 개를 원래 있던 칩 위에 올렸다.

 다시 카드가 돌았다. 다시 페이스 카드 두 장, 딜러는 17에서 끝이었다. 연승을 했지만 다음부터는 승패가 팽팽하게 오갔다.

 몇 번 패가 도는 동안 마작판에 몰려 앉은 사람들의 면면을 차분하게 둘러보았다.

 다양한 옷차림과 나이, 관광객과 노무자가 뒤섞인 희한한 모습, 대부분 한족과 조선족, 한국인 같았다.

 간간이 동남아시아나 중동 쪽 사람들이 눈에 띄기는 했지만 숫자는 많지 않았다.

 조금씩 줄어든 칩이 거의 다 없어질 무렵, 스탠드바 쪽에서 가슴골을 훤히 드러낸 파티 드레스를 걸친 장재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장재신은 출입구에 선 정장에게 무언가 묻고 있었다.

 그의 위치를 묻는 것일 터, 그는 모른 척하고 카드에 시선을 집중했다. 그의 앞에 퀸과 에이스가 떨어졌다.

 딜러도 에이스, 히든을 감춘 채 딜러가 물었다.

 “블랙잭, 인슈어런스?”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딜러의 히든은 9, 딜러는 베팅한 칩의 1.5배에 해당하는 칩 다섯 개를 그의 칩 옆에다 내려놓았다.

 “잘되십니까?”

 장재신의 목소리가 귓등을 훑었다. 그는 지금 본 것처럼 고개를 돌렸다.

 “쉽지 않네요.”

 “들어가시죠. 가벼운 술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그는 칩을 그대로 놔둔 채 장재신을 따라 도박장 한가운데의 거울로 둘러쳐진 VIP룸으로 들어갔다.

 밖에서는 거울이고 안에서는 유리여서 외부의 상황이 한눈에 들어오는 구조, 중앙에는 고급스러운 포커 테이블을 꾸몄고 한쪽은 스탠드바였다.

 “앉으시지요.”

 장재신은 그를 포커 테이블에 앉히고 반대쪽으로 건너가 자리를 잡았다.

 스탠드바 안쪽에 있던 웨이터 복장의 사내가 재빨리 술 한 잔씩을 올려놓고 밖으로 나가 문을 등진 채 열중쉬어를 했다.

 미리 지시를 해뒀는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그가 술잔을 집자 장재신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흘리며 입을 열었다.

 “여기서는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사장님은 어디 계시죠?”

 그의 물음에 장재신은 다시 미소만 흘렸다.

 “아직 조사를 끝내지 못하신 모양이네요.”

 그는 고개를 까딱해 보이면서 테이블을 툭툭 두드렸다.

 “머리 아픈 장난은 그만둡시다. 난 단순 무식해서 쉬운 게 좋아요.”

 장재신은 또 웃었다.

 “지금 보고 계세요.”

 그는 한쪽 눈썹을 슬쩍 치켜떴다. 의외의 상황을 겪을 때마나 나오는 습관적인 행동, 장재신의 눈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쪽이 진짜 주인이다?”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참고로 홍인철 회장은 명목상의 보스일 뿐 각자의 업소는 7개 계파가 각자 운영하니까요. 수익의 일부를 회비 형태로 납부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리명철 씨는 뭐 하는 사람이죠?”

 그는 리명철의 이름을 꺼내며 장재신의 반응을 유심히 살폈다.

 리명철이 도박장을 관리했으니 뭔가 반응을 보일 거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짙은 화장 때문에 표정의 변화는 읽을 수 없었다.

 그리고 대답도 의외였다.

 “제가 데리고 있던 아이입니다. 최근에 너무 급하게 일을 추진하는 거 같아서 부담스러웠는데 마침 데려가셨더군요.”

 간단히 말해서 리명철이 대형이라고 부르는 작자가 눈앞의 여자라는 뜻, 그는 머리를 긁적였다.

 “거참, 이거 통성명부터 다시 해야겠네. 나 박우현이올시다. 그쪽은 뭐요? 다들 하나씩 가지고 있는 이름이란 거 말이요.”

 “말씀드렸는데요?”

 “장난치지 맙시다. 장재신이란 사람 중에 이런 미인은 없더군.”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기분 좋네요, 호호.”

 “이름.”

 “그쪽을 과대평가했나 보네요. 그 정도 힌트면 쉽게 찾으실 줄 알았는데.”

 “여기저기 끌려다니다 보니 컴 앞에 앉을 시간이 별로 없더군요.”

 “그러셨나요? 그럼 정식으로 인사드리죠. 장명신이에요.”

 자신의 진짜 이름을 밝힌 장명신은 손바닥으로 가슴골을 살짝 가리면서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는 오지연이 들을 수 있도록 장명신의 이름을 또박또박 입에 담았다.

 “장, 명, 신…… 가운데 한 자를 바꾸셨다? 후후, 뭐 좋습니다. 본론으로 돌아가죠.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뭡니까?”

 “왜 할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하시죠?”

 “숨겨도 시원치 않을 장소에 데려왔으니 뭔가 거래가 하고 싶다는 뜻이겠지.”

 “장소 같은 건 오늘 당장이라도 바꿀 수 있습니다. 고객은 모두 단골이니까요.”

 “그런가요?”

 “단속도 생각해야 하는 형편이니 이동은 항상 준비되어 있지요. 몇 개 안 되는 슬롯머신은 버리면 그만이고…… 보시다시피 여긴 무겁고 비싼 기계들이 많지 않습니다.”

 “본론으로 갑시다. 말장난 재미없어요.”

 “호호, 그러시죠. 수사관님을 여기로 모신 이유부터 시작할까요?”

 장명신은 다리를 반대쪽으로 꼬면서 크게 웃었다.

 묘하게 시선을 잡아당기는 행동들, 눈을 둘 자리가 마땅치 않았다. 그는 애써 술잔에 시선을 주며 말을 받았다.

 “그럽시다.”

 “간단해요. 자금성까지 찾아오셨으니 도박장 정도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찾아낼 수 있을 거라는 판단 때문입니다. 하다못해 근처에서 건물 규모에 비해 전기를 과도하게 쓰는 건물만 찾아도 그만이니까요. 그리고…… 사과를 드릴 일도 하나 있었죠.”

 “사과?”

 “새벽엔 조금 놀라셨을 것 같았습니다. 용서하세요. 아시다시피 명철이가 너무 과격하게 일을 추진하는 바람에 수습이 쉽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무리를 좀 했습니다.”

 또다시 예상치 못한 대답, 그는 장명신의 웃는 얼굴을 빤히 건너다보며 급히 머릿속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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