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입구에서 기다리던 차승호는 오지연이 올라타기 무섭게 가속페달을 밟았다.
검사 사무실 직원들의 회식 자리가 생각보다 길어지는 통에 시간에 맞추려면 서둘러야 했다.
차가 여의도로 이어지는 대로에 진입하고 어느 정도 속도가 올라갈 무렵, 오지연이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됐습니까?”
그리고 잠시 침묵, 오지연은 그냥 전화를 끊었다. 그가 물었다.
“청계천?”
“그래, 지금 가면 돼.”
“그럼 새 신분증은 됐고…… 장비들만 남은 건가?”
“들렀다가 바로 용산으로 빠지자.”
“오케이, 그런데…… 신문은 확실히 떠들어줄까?”
“그럴 거야. 담당 기자한테 돈을 좀 많이 집어 주긴 했어도 사실 그건 별 의미 없어. 선거철이라는 점이 훨씬 더 크게 영향을 미칠 거야. 외국인 노동자와 불법 체류자가 국내에 거대 범죄 조직을 만들었다는 식의 기사는 ‘재탕’이라도 주류 신문들로서는 상당한 호재에 들어가니까.”
“씁…… 왠지 너도 정치인처럼 보여서 썩 유쾌하지는 않다.”
툭하면 여론조작을 통해 국면 전환을 꾀하는 정치인들의 작태를 그대로 끌어다 쓴 셈, 최정택을 신속하게 움직이게 하려면 꼭 필요한 작업이지만 입맛은 아무래도 썼다.
오지연이 심드렁한 목소리를 냈다.
“남들 다 하는 짓이야. 여론 몰아가는 거하고 새 법안 나오는 시점, 검찰이 수사 들어가는 시점, 이런 게 대부분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는 생각 같은 거 안 해봤냐?”
“들은 거하고 직접 보는 건 많이 달라.”
“후후, 하긴 그렇지. 잊어버려. 이제 좀 밟아라. 용산 건너가면 몇 군데 들러야 돼. 오늘 다 끝내자.”
“내일부터는 불구경 가시게?”
“불구경은 며칠 지나야 가능할 거야. 그동안 사채업자인지 뭔지 하는 것들 간이나 좀 보자.”
의외라는 생각이 떠오르게 하는 대답, 그는 씩 웃었다.
여전히 한희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불퉁스러운 대사가 튀어나오지만 밤새 이민우를 간호하는 모습을 봐서인지 오지연은 한 발 물러선 모양새를 취하고 있었다.
“아직 불만이냐?”
“뭐가?”
“순서 말이야.”
“밟기나 해.”
“고맙다.”
나름 정색을 하고 어색한 대사를 꺼냈지만 오지연의 입에서는 다시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까불지 마. 쌩초보하고 일을 하려니 실력도 볼 겸, 손발 맞춰보는 게 필요하다고 결정한 것뿐이다.”
그러나 말투는 조금 전보다도 더 가라앉아 있었다. 멀리 보이던 마포대교의 주황색 가로등이 빠르게 눈앞으로 다가왔다.
청운캐피탈
-규모 만만치 않네요. 거느린 똘마니들 숫자도 상당하고.
“그렇겠지. 연 매출 1,000억짜리 기업을 통째로 주워 먹고 배탈 안 나려면 웬만해서는 어림도 없겠지.”
-그…… 뭐냐, 희진이 아버지가 경영하던 대경정밀은 벌써 팔아넘겼어요. 양승욱이라고 은퇴한 금융위 고위직이 얼굴마담으로 꿰차고 앉았다가 세원그룹이 대경정밀을 인수할 때 커미션만 먹고 뜬 걸로 보입니다. 이리저리 떼고 청운캐피탈이 먹은 돈은 대략 90억 수준이랍니다.
차승호는 길 건너편 편의점 옆에 있는 작은 사무실을 노려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김채문까지 동원해서 이틀째 인근 은행과 채권 가게를 전전하는 통에 짜증은 좀 났지만 그래도 얻은 건 있었다.
대경정밀을 강탈하고 한희진을 인신매매 조직에다 팔아넘기기까지 한 사채업자는 영등포 역전에 후줄근한 사무실을 내고 있었다.
사장은 정길수, 회사 이름이 청운캐피탈이었다. 주업은 국채 매입과 어음 매입, 급전 세 가지인데 전부 규모가 컸다.
허름한 사무실과는 완전히 딴판으로 매주 수백억대의 현금을 굴리는 거물이었다.
그중 합법적인 일은 채권뿐인데 각지의 브로커들을 통해 하루 평균 10억 이상의 채권을 사들이고 1주일에 두 번 은행에 팔아넘기는 작업을 반복했다.
가장 보편적인 작업이 국민주택채권 매입인데, 브로커들이 대략 18퍼센트대 할인율에 매입하고 상당액이 모이면 은행에 12퍼센트의 정상 할인율로 판매하는 형태로 이틀이나 사흘 만에 무려 3퍼센트를 합법적으로 챙기는 사업이었다.
회사가 1주일에 돌리는 채권이 대략 100억이라고 가정하면 1주일에 앉아서 3억을 버는 나름 깔끔한 돈장사였다.
채권 이외의 어음이나 급전 쪽은 문자 그대로 사기나 강탈에 가까웠다.
특히 급전은 일시적으로 자금이 몰린 중소사업자들에게 높은 이자로 단기간 자금을 빌려주는데 이자율이 하루 1퍼센트나 돼서 이자를 물지 못했을 경우를 연리로 따지면 단숨에 천문학적인 액수로 커져버렸다.
쉽게 한 달만 이자를 갚지 못하면 그냥 길거리로 나앉는 살벌한 구조였다. 한희진의 아버지도 저 살인적인 이자에 당했을 것이었다.
-양승욱의 소개로 급전을 빌렸다는 것으로 보아 경영권을 노린 계획적인 공격으로 보셔야할 것 같습니다. 급전을 빌리기 직전에 제2금융권이 80억 넘는 대출을 일시에 회수하는 통에 자금 사정이 급격하게 악화됐고 그때쯤 양승욱이 정길수를 소개해줬답니다. 완전히 기획이에요.
“정길수는 어떤 작자야?”
-왕년에 방귀깨나 뀌던 60대 노땅입니다. 상무 명함 가지고 다니는 놈이 행동대장으로 이태형, 43세, 사진은 둘 다 형님 전화로 보내놨수. 그 밑에 대략 30명 정도가 따라다니네요. 대부분 밑바닥에서 커온 것들이라 많이 험하답니다. 내가 알아낸 건 여기까지유.
“수고했어.”
-그리고 걔들 유사시에는 100명도 넘게 동원할 수 있답니다. 마구잡이로 쳐들어가서는 승산 없수.
“알아. 나도 그럴 생각 없다.”
-이만하면 내 일은 끝난 거죠?
“그래, 들어가라. 이틀 일당은 그거면 되지?
-넵, 생각나는 거 있음 또 전화하쇼. 흐흐.
“그래, 또 보자.”
전화를 끊자 오지연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아주 우습게 볼 건 아니네.”
“자…… 이태형이도 퇴근했으니 이제 시작할까?”
“생각해둔 거 있어?”
“아니, 어차피 사기꾼에게 사기 치는 건 좀 어렵잖아. 찌질이들 데리고 시간 끄는 것도 모양새 빠지니까 그냥 정공법으로 가자.”
“시간 끌 일은 확실히 아니지.”
“그래도 저쪽 피해는 극대화해야 되니까 내일 치자. 금요일이라 채권이 좀 모일 거야. 그리고 어제 은행 갈 때 보니까 사장 놈이 직접 들고 가는데…… 이태형인가 하는 놈하고 딱 두 놈 더 데리고 가더라. 넷 정도는 언제든 치고 빠질 수 있잖아. 어디 외진 데 데려가서 묻어버리지 뭐.”
“손에 피 묻혀봐야 좋을 거 없어. 저런 쓰레기들은 없어져도 또 나와.”
“생길 때 생기더라도 줄이는 게 나아. 인신매매까지 한 것들이니 그만한 대가는 치르게 해줘야지. 최소한 고자는 만들어줘야 아귀가 맞아, 흐흐. 뭐 구체적인 건 그때 가서 결정하고…… 시작하자. 은행까지 이동 거리가 짧아서 나오는 시점 잡으려면 어차피 들어가야 돼.”
“설치는 비서가 하셔.”
“후후, 그래야지. 가자.”
그는 옷을 툭툭 털어 복장을 가다듬고 길을 건넜다.
앞장선 오지연은 평소와 달리 짧은 투피스에 트렌치코트 차림의 세련된 커리어우먼의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여전히 검정 일색이지만 블라우스와 상의가 가슴골이 살짝 드러날 정도로 파였고 짙은 화장에 선글라스까지 써서 사내들의 시선을 사정없이 끌어당기고 있었다.
반면 차승호 자신은 평범한 회사원처럼 보이는 정장 차림, 어쩔 수 없이 비서 역할이었다.
문을 열자 문 바로 앞 철책상에 앉아 있던 20대 초반의 여자가 살갑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살짝 목례를 한 그는 문만 열고 옆으로 비켜섰다. 뒤에 오는 사람이 물주라는 무언의 시위였다.
그가 내준 길로 오지연이 세련된 몸짓으로 들어와 소파에 자리를 잡자 안쪽에 있던 30대 사내가 재빨리 소파로 건너와 말을 건넸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사장님 안 계신가요?”
“잠깐 나가셨는데…… 기다리시겠습니까?”
차승호는 오지연의 옆으로 앉으면서 사무실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보이는 책상은 전부 여덟 개로 평소 여덟 명 내지 아홉 명이 상주한다는 이야기였다.
안쪽으로 벽걸이 TV 하나, 금고는 보이지 않았다. 아마 사장실 안에 따로 들어가 있을 것 같았다.
오지연이 조금은 거만하다 싶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어음할인을 했으면 싶은데…… 액수가 좀 커서요.”
“얼마나 되시는지…… 웬만한 액수는 해결이 가능합니다만.”
“25억, 4개월이에요.”
“어이구, 힘드시겠군요. 발행인은 어디십니까? 아시겠지만 할인율 차이가 워낙 많이 나서요.”
“압니다. 자세한 건 사장님하고 이야기했으면 싶네요.”
두 사람이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는 소파 테이블 위에 있는 TV 리모컨을 신문 아래로 슬쩍 밀어넣었다.
이어 신문을 집어 들고 슬그머니 일어나 여자에게 화장실을 물었다. 여자는 문 옆에 걸린 열쇠를 가리켰다.
“나가서 편의점 왼쪽 계단으로 올라가세요. 열쇠 가져가시고요.”
“감사합니다.”
화장실을 찾아 들어간 그는 한숨부터 길게 내쉬었다. 별것 아닌 일인데도 긴장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역시 스파이질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닌 모양이었다. 혼자 킥킥거리면서 리모컨을 분해했다.
보편적으로 사무실 같은 공간에 도청기를 심을 때 가장 먼저 고려되는 물건, 자체에서 전원을 빼 쓸 수 있고 보통은 그 공간에서 가장 힘 있는 사람의 손에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물론 최선은 사장실 안에 있는 물건이겠지만 은행에 가는 시점을 잡는 정도로는 충분했다.
마지막으로 전원을 연결하고 도청기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까지 한 다음 서둘러 사무실로 돌아갔다.
소파에 앉으며 자연스럽게 신문을 내려놓는 것으로 상황 끝, 기다렸다는 듯 오지연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월요일쯤 다시 들르죠. 그때는 사장님을 뵈었으면 좋겠네요.”
“물론입니다. 조심해 들어가십시오.”
사내는 별 의심 없이 인사말을 건네고 두 사람을 전송했다.
밖으로 나와 여유롭게 주위를 한 바퀴 돈 다음, 밴으로 돌아와 서둘러 노트북을 열었다.
도청기는 제대로 작동했고 조금 전 두 사람을 접대했던 사내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연체자에게 전화를 하는 모양이었다.
-이런 씨발, 빌렸으면 갚아야지! 거저 처먹을라고? 딸년 거시기에 빠이뿌 푹푹 쑤셔줘야 정신 차릴래? 이 개새끼야!
사내는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한참 더 퍼붓더니 소리 나도록 전화를 끊고 킥킥대며 웃었다.
-이거 오줌 잔뜩 지렸어, 흐흐. 이따 한 번만 더하고 내일 사무실 갈아엎어버리면 돈 나올 거야. 크크.
오지연은 슬쩍 미간을 좁히고는 노트북을 덮어버렸다.
“밴 끌고 먼저 들어가. 모이 기다리는 아가들 챙겨야지.”
“마트 들러야 되니까 시간 좀 걸릴 거다.”
“알아. 바이크 타고 들어갈게. 집에서 보자.”
그는 노트북을 들고 내리는 오지연에게 바이크 키를 넘겨주고 곧장 방화동으로 출발했다.
마트에 들러서는 작은 냉장고 하나와 식료품을 잔뜩 샀다.
햄버거나 피자로 버티는 건 한계가 있어서 안가에서 쉴 때만이라도 정상적인 먹을 것을 만들어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컨테이너 야적장을 통과할 무렵부터 건물 안에서 소음기에 막힌 약한 총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다급한 총성이 아니라 연습하는 수준의 규칙적인 총성이었다.
‘다친 놈이 무슨 사격이야?’
주차를 하고 문을 두드릴 때까지도 총성은 계속 이어졌다. 문을 두드리자 금방 총성이 끊어지고 문이 열렸다.
“수고하셨습니다, 아저씨!”
한희진의 목소리가 유난히 밝았다. 그리고 실내에서 매캐한 화약 냄새가 났다.
“총 쐈어?”
그를 빤히 쳐다본 한희진이 우물쭈물하더니 슬그머니 손을 어깨 위로 들어올렸다.
이민우에게 물었는데 한희진이 먼저 이실직고를 한 셈, 그의 황당한 표정에 이민우가 끼어들었다.
“어제오늘 틈틈이 가르쳤는데 제법 소질이 있어 보입니다. 분해 조립도 금방 하던데요?”
그는 안쪽에 세워둔 표적지를 힐끗 돌아보았다. 표적지는 총알구멍이 빽빽했다.
반면 표적지를 붙여놓은 판자에 뚫린 구멍은 몇 개 없었다.
사용한 총기는 K-5권총의 민수용 버전인 9밀리미터짜리 DP-51, 권총을 올려놓은 테이블은 표적지에서 20미터쯤 떨어져 있고 탄피 상당수가 그 앞에 떨어져 있었다.
최소한 15미터 거리에서 쐈다는 뜻인데 총알구멍 대부분이 표적지 안에 들어가 있다면 이민우의 이야기는 틀린 게 아니었다.
탄착군 분포는 불규칙했지만 처음 권총을 쏘는 초보가 그 정도면 소질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명사수에 들어갔다.
그는 들고 온 봉투를 테이블 위에 던지면서 잠시 인상을 구겼다.
분명히 한희진 저 여우가 이민우를 꼬였을 터, 이민우로서도 신세 지는 처지에 무조건 ‘안 돼’를 외치기는 어려웠을 것이었다.
어린아이에게 총을 쥐어주는 불상사는 피해야 했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연습까지 말리고 싶지는 않았다. 결론을 내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총기는 연습할 때만 잡게 해라. 휴대는 안 돼.”
“넵, 저도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죄지은 표정으로 서 있던 한희진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가 그의 사나운 눈빛과 마주치고는 화들짝 놀라 움츠러들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는 뜻, 그는 한희진의 눈이 다시 올라왔다가 내려갈 때까지 째려본 뒤에서야 이민우에게 물었다.
“건진 건 좀 있냐?”
“별거 없습니다. 조금 전에 박춘배가 러시아인과 통화를 했다는 것 빼고요.”
“그거 지금도 들을 수 있어?”
“당근이죠. 제가 누굽니까.”
“내용은?”
“또 뭔가 들여오는 모양입니다. 일요일 새벽이네요. 그냥 준비하라는 이야기만 했습니다.”
“거기도 시작이로군. 수고했어. 뉴스는?”
“선거 이야기뿐이죠, 뭐.”
“다리는 좀 어떠냐?”
“희진이가 잘 챙겨줘서 그런대로 살 만합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이야, 몸 잘 챙겨라. 희진아, 따라와. 차에서 가져올 게 있다.”
“넵!”
야단맞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조용히 넘어가서인지 한희진의 기분은 좋아 보였다.
그의 눈치를 보면서도 생글거리며 사 온 물건들을 챙겼고 마지막으로 냉장고를 내려 싱크대 쪽에 설치하자 음식물들을 집어넣으면서도 시종 재잘거렸다.
그는 열심히 먹을 것을 챙기는 한희진의 뒤통수에다 나직하게 혼잣말을 하면서 샤워장으로 직행했다.
‘좋아할 일 아니다, 인마. 네가 사람을 목표로 총을 쏴야 한다면 그날이 우리 제삿날이야.’
***
아이들을 앞세우고 사무실을 나선 정길수는 한껏 거드름을 피우면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전 시간인데도 곧 눈발이라도 날릴 것처럼 날이 어둑했다.
“가자, 태형아.”
“가시죠.”
안에다 소리를 지르자 이태형이 재빨리 뛰어나와 앞장을 섰다.
평소나 다름없이 한적한 뒷골목을 통해 대로 쪽으로 방향을 잡는 것 같았다. 그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태형아. 오늘은 네가 사무실 마무리해라. 난 은행 일 끝나면 어디 좀 가야겠다.”
“예, 작은 사모님 댁에 아이들 보내놨습니다.”
“허, 그놈 참.”
“작은 사모님 생신 아닙니까. 댁에는 오늘 늦으신다고 말씀드려놨습니다.”
정길수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이태형의 어깨를 두드렸다. 오늘도 이태형은 입안의 혀처럼 약삭빠르게 움직였다.
20대 초반에 그의 수하로 들어온 이태형은 그날부터 곧장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나이 서른에는 급기야 그의 사위로 들어앉았다.
이후, 회사일은 물론 그의 대소 경조사까지 빈틈없이 챙겼고 이제는 곁에 없으면 허전할 정도로 생활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매사 깔끔한 일처리가 큰 강점이어서 요즘은 거의 모든 일을 이태형에게 맡기는 형편이었다.
험한 손속이 가끔 문제를 만들기도 하지만 아이들도 잘 따르니 여러모로 나무랄 데 없는 후계자였다.
걷는 속도를 조금 올려 이태형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나직하게 물었다.
“그 아이 찾았다더냐?”
“그게…… 송구합니다. 그쪽 사람들은 물론이고 우리 아이들까지 전부 풀었는데 건진 게 없습니다. 귀신이 곡할 노릇입니다.”
“그거 양 회장이 신신당부한 일이야. 잘 끝나면 이번 보궐선거 공천 책임진다고 했어. 알지? 내가 정계로 진출하면 회사는 고스란히 네 거라는 거.”
“알고 있습니다. 집사람이 몇 번 이야기도 했고요.”
“알면 됐다. 그 아이가 경찰이라도 찾아가는 날에는 장장 2년 동안 처바른 돈이 전부 공염불될 수도 있어.”
“경찰을 찾아간 건 확실히 아닙니다. 무서워서 어디 숨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친척들 집, 학교 기숙사, 친구네 집 전부 뒤져봐. 빨리 처리해야 된다.”
“예, 갈 만한 곳은 다 뒤지고 있습니다.”
“멍청한 것들, 조선족 따위를 믿는 게 아니었어.”
“어쩔 수 없었습니다. 밀입국은 그것들이 가장 확실하니까요. 어차피 현지에서 장소 물색하는 작업도 필요합니다.”
“알아, 그래서 문제지. 빌어먹을.”
“너무 심려 마십쇼. 학교에 아이들 풀어놨습니다. 졸업은 하고 싶을 테니까 곧 나타날 겁니다.”
“신경 써.”
“예.”
순간, 등판이 뜨끔했다. 골목이 거의 끝나가는 지점이었다.
‘응?’
이상하다는 생각을 떠올리기도 전에 보도블록이 불쑥 일어서더니 시커먼 하늘이 보였다.
나란히 주저앉은 이태형의 어깨 너머로 앰뷸런스의 녹색 경광등이 보이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