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에서 흘러나온 최정택의 목소리는 많이 상기되어 있었다.
금방 암살자의 손에서 벗어났으니 당연한 현상일 터, 목소리가 떨리지 않는 게 용한 셈이었다.
-누구요!
“저예요, 다치셨다고 들었습니다.”
-젠장, 아차 했으면 북망산 구경 갈 뻔했어.
“알아요. 위험했다더군요.”
-내가 감사 인사라도 하길 바라는 거요?
이쪽에서 자신을 도와줬다는 사실을 이미 인지했다는 뜻, 확실히 머리는 빨리 돌아가는 친구였다. 오지연이 깔깔대고 웃었다.
“호호, 천만에요. 혹시나 해서 근처에 있다가 도움을 드린 것뿐입니다.”
-애당초 당신들 때문에 생긴 일이야. 당신들이 먼저 사과해야 말이 되지.
“그런가요? 그럼 정식으로 사죄드리죠. 호호, 됐나요?
-제길, 이런 걸 옆구리 찔러 절 받기라고 하는 건가?
“아마 그럴 걸요? 호호, 앞으로 경호에 신경 쓰시고 외출도 당분간은 삼가세요. 검사도 칼 맞으면 죽는답니다.”
-죽다 살아난 사람한테 말 함부로 하지 맙시다. 젠장.
“아, 또 미안해요. 호호, 그런데…… 오늘 검사님을 공격한 놈 말인데…… 전문 킬러 같습니다.”
-전문 킬러? 누군지 안다는 거요?
“홍인철에게 묻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요? 홍인철이 고용했을 가능성이 높아요. 그리고…… 들리는 소문에는 20대 초반의 쌍둥이 히트맨이라는데…… 별명이 죽음의 천사라고 불리는 프로예요. 겪어서 잘 아시겠지만 칼을 사용하고 야마카시 전문가랍니다. 더 구체적인 정보를 드리면 좋겠는데 우리도 조사 중이라 어렵네요. 참고만 하세요.”
-참고하지. 당신 요원한테 고맙다고 전하쇼.
실세 차관의 옷을 벗겼다더니 역시 배짱 두둑한 친구였다.
전문 암살자가 동원되었다는데도 별로 겁먹은 기색이 없어 보였다. 오지연은 흐릿하게 웃었다.
“천만의 말씀을요. 이래서 검사님 참 맘에 들어요, 또 뵙죠.”
-또 보지 말자니까?
“호호, 손 치료 잘 받으세요.”
오지연의 짧은 웃음을 끝으로 길게 침묵이 흘렀다.
늦은 시간인 데다 가을비치고는 빗줄기가 상당히 굵어서 들리는 거라고는 오로지 지붕을 두들기는 빗소리뿐이었다.
차가 시내를 빠져나와 올림픽대로로 올라서서 속도를 높이기 시작하자 오지연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정길수 말이야.”
“왜?”
“살려두고 활용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었어. 꼬마를 위해서도 죽인 건 좋지 않은 선택이야.”
“안다.”
“모두의 목숨이 달려 있는 일이다. 애들이 원한다고 다 들어주는 건 바보짓이야.”
“그 점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그러나 아주 나쁜 선택도 아니었어. 높은 놈들에게 직방으로 선이 닿아 있는 놈이라 우리가 뒤통수를 맞을 가능성도 높았어.”
“앞으론 좀 더 신중하자는 이야기야.”
“알아, 이의 없고.”
선선하게 인정하는 차승호를 힐끗 돌아본 오지연은 슬며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되물었다.
“왜?”
“리쿠르트 팀 프로파일 분석에 나온 거랑 좀 달라서 말이야.”
“나?”
“그래, 거긴 독불장군에 조직 생활 부적격자로 나와 있거든.”
“헐, 재밌군.”
“그런데 막상 겪어보니까 손발이 아주 안 맞는 거 같지는 않아서 말이야. 그것들 똑똑한 척은 다 하는데 알고 보면 개판이라는 생각이 든다, 후후.”
“후후, 아주 틀린 분석은 아닐 거야. 조직과 동료는 많이 다른 개념이니까.”
“어쨌든 조심해라.”
“걱정해주는 거냐?”
“걱정은 개뿔, 너 없어지면 귀찮아져서 그런다. 닥치고 잠이나 좀 자둬.”
“뭐 그러든지, 후후.”
잠시 킥킥대고 웃은 차승호는 기분 좋게 눈을 감았다.
아무도 믿지 말라는 마법사의 지침과는 아주 다르지만 그는 이런 느낌이 좋았다. 등을 맞댈 수 있는 동료, 그리고 친구.
***
“승호 왔냐?”
앉을 자리가 마땅치 않아 얼쩡거리는 사이, 마침 사무실로 들어선 이충석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어, 형님.”
“이리 와, 인마. 여기가 남의 집이냐?”
이충석은 그를 잡아끌고 탈의실로 직행했다.
근무표에서 그의 이름이 사라진 건 물론이고 책상도 후임이 차지한 상태여서 공중에 뜬 느낌이었는데 이충석이 살려준 셈이었다.
이충석은 탈의실로 들어오자마자 로커를 열어 옷을 갈아입으면서 말했다.
“너 요즘 왜 연락 안 되냐? 전화해도 안 받던데?”
그는 심드렁하게 대답하면서 로커에 기대섰다.
“이래저래 좀 바빴습니다.”
“일은 잡았냐?”
“아뇨, 영 마땅치가 않더라고요. 당분간 알바라도 하면서 천천히 알아볼 생각입니다.”
“어려우면 이야기해. 입출항 관리소 쪽에 일반직 자리가 하나 날 거 같더라. 웬만해선 네가 이쪽에 다시 발 들일 거 같지 않다만 자존심 좀 죽이면 되잖아. 먹고사는 데는 문제없을 거야.”
“됐슈. 돈 좀 모아서 장사나 할랍니다.”
“밑천만 있으면 장사도 괜찮지. 투자라도 좀 해줘?”
“어이구, 행여나 형수님이 오케이하겠다. 당장 이유식 값도 대기 힘든 양반이 뭔 소리래요.”
“아냐, 저축 만기된 거 있는데 니 형수는 모른다. 한 4,000 되니까 그거 종잣돈으로 아무거나 해봐.”
“택도 없는 소리 고마하고 배나 타러 가쇼.”
“오늘 강풍 때문에 비상대기 분위기야. 소형선들은 나가기 어려울 거다.”
“출항 금진가요?”
“금지까지는 아니야. 가능하면 나가지 말라는 거더라. 넌 그냥 퇴근해도 돼. 뭐라는 사람 없잖아.”
“그래도 퇴근은 좀 그렇고…… 상황 근무나 때워드릴까요? 앉아 있을 데 없어 고민인데, 크크.”
“흠, 오늘 상황실 당직이 누구더라? 모르겠다. 가서 물어봐. 끝나고 소주나 한잔하자.”
말을 하면서도 부지런히 몸을 움직인 이충석은 어느새 옷을 다 갈아입고 넥타이를 매기 시작했다.
“그러죠, 뭐. 참, 그 인간 아직 멀쩡해요?”
“누구? 과장?”
“예.”
“그날 이후 많이 얌전해졌어. 쪽팔렸겠지.”
“쪽팔린 거 아는 놈이 대놓고 뇌물 받아 처먹습니까? 미친놈.”
“됐어, 그만 잊어버려라. 누구 미워하면 힘든 건 너밖에 없다.”
“투서라도 날려볼까? 크크.”
“짜샤, 흰소리할 거면 지금 퇴근해. 괜히 시끄럽게 만들지 말고. 이거나 처먹어.”
이충석은 로커 안에 있던 음료수 병 하나를 그에게 던졌다. 자연스럽게 받아 들고 반동으로 상체를 일으켰다.
“옛썰, 다녀오십쇼.”
“나가자.”
이충석을 따라 건물 밖까지 나와 담배 한 대를 피운 뒤에 상황실로 돌아갔다.
그런데 상황실 초입에 앉아 있던 신입이 벌떡 일어나 그에게 거수경례를 했다.
“야야, 무슨 경례냐. 나 낼모레면 민간인이야.”
“저기…… 수사계 동기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뭔 이야기?”
“능력도, 실적도, 전부 최고라고 거품 물던데요.”
“그거 다 뻥이야. 나 한쪽 구탱이에 찌그러져 있을 거니까 신경 쓰지 말도록. 오케이?”
“넵.”
그는 신입의 어깨를 툭 두드려주고 당직 경위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언젠가 한 번 안면을 튼 적이 있어서 어색하지는 않았다.
“어, 사표 냈다더니 인사하러 왔나?”
“오늘까지 근무라 인사도 할 겸 들렀습니다.”
“그래? 잘 왔어.”
“사실 사무실에 책상이 없어졌더라고요, 하하. 뭐 도와드릴 거 없을까요?”
“손이야 항상 필요한데…… 여긴 상황실이야. 자네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 이따 야간에 빌빌하는 놈들 생기면 부르지.”
“예, 한 바퀴 돌고 나가 놀겠습니다. 후후.”
그는 상황실을 둘러보면서 VMS(Vessel Monitoring System) 모니터에 눈을 가져갔다.
본청 상황실에서 종합된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전송되는 해도 화면이라 상당히 복잡했지만 기억 속에 집어넣는 건 순식간이었다.
전체적으로 해상의 선박 숫자는 평소보다 많지 않은 상태, 특히 지난번 리명철을 체포했을 때 갔었던 공경도 해역은 아직 이른 시간인데도 선박 표시 부호가 아예 보이지 않았다.
출항 시간대와 선박 크기를 빠르게 훑어보고 상황실을 나선 그는 구난과로 돌아와 박춘배의 방을 살폈다.
아직 불이 켜진 상태, 오늘은 새벽까지 퇴근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는 사무실 끝 회의실에서 문을 조금 열고 박춘배의 방이 보이는 각도에 앉아 양손으로 팔베개를 한 채, 느긋하게 책상에 다리를 올렸다.
‘기다리는 일만 남은 건가?’
딸깍하는 문 여닫는 소리에 선잠에서 깨났는데 어둑했던 하늘이 완전히 캄캄해져 있었다. 시간부터 확인했다.
밤 11시 27분, 박춘배는 방에 불을 켜놓은 상태로 사무실을 나가고 있었다. 그는 어깨를 풀면서 조용히 회의실을 나섰다.
직원들은 모두 퇴근했고 박춘배의 방에서 흘러나오는 희뿌연 형광색이 빛의 전부였다. 순간, 주머니에서 전화기가 부르르 떨었다. 이민우였다.
“왜?”
-박춘배가 조금 전에 러시아인에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내용은?”
-‘시작’이라는 단어 하나뿐입니다.
“시작이라…… 이럼 좀 흔들어야겠다. 앞으로 30분쯤 저 자식 전화 잘 감시해. 아웃.”
-카피.
조용히 복도로 머리를 내밀고 박춘배의 동정을 살폈다. 박춘배는 복도 끝 상황실 근처에서불안한 걸음걸이로 얼쩡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몇 초 시간이 흐르자 상황실에서 바짝 긴장한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박춘배는 기다렸다는 듯 곧장 상황실 안으로 박차고 들어갔다.
그도 재빨리 복도를 가로질러 상황실 옆에 달라붙었다.
“연평도 남서쪽 80해리 해상에서 조난신호입니다! 3,000톤급 선진17호 조난!”
“대기조 비상 걸고 해상에 있는 우리 배들 전부 그쪽으로 보내! 서둘러!”
당직 경위의 목소리 뒤에 박춘배의 고함 소리가 이어졌다. 꼴이 감시선들을 몇 시간쯤 빼돌리려는 생각인 것 같았다.
그는 자연스럽게 상황실로 들어가 모니터 화면부터 확인했다. 붉게 점멸하는 신호는 확실히 연평도 남서쪽에 있었다.
박춘배의 작전일 터, 진짜는 어딘가 다른 곳이었다. 어디서 접촉하고 어디로 들어오는지를 확인하는 게 급선무였다.
그는 메인모니터에 올라온 확대된 연평도 남서쪽 해상 화면을 제외한 나머지 모니터들의 선박 식별 부호들 중에서 대형선을 제외한 소형선들의 부호들을 신속하게 기억 속에 쑤셔 넣었다.
순간, 그를 본 박춘배가 빽 소리를 질렀다.
“야! 차승호! 너 뭐 하는 거야?”
“예?”
“여기서 뭐 하는 거냐고!”
“오늘이 마지막 근무일인데…… 도울까 싶어서요.”
“필요 없어!”
“선착장에라도 나가볼까요?”
“됐어! 꺼져!”
신경질적으로 고함을 지르는 박춘배를 향해 고개를 까딱해 보인 그는 미련 없이 상황실을 나섰다.
나무는 심하게 흔들어놨으니 뭐가 떨어지는지 볼 시간이었다.
상황실 옆에 느긋하게 기대선 그는 상황 변화를 기다리면서 기억 속의 선박 식별 부호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일단 공경도 부근 해상에는 배가 없었다. 어차피 한 번 사고가 난 곳이니 또는 사용하지 않을 것 같았다.
일반적으로 밀수꾼들이 사용하는 전형적인 수법은 공해상에서 물건을 인수해서 되돌아오는 것, 따라서 오후에 어정쩡하게 공해로 나갔다가 이 시간대에 돌아오는 소형 어선이나 요트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그러나 그 하나를 찾아내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강풍 때문에 출항한 숫자는 확실히 적은 편이지만 그래도 대상 선박만 수백 척을 간단히 넘겼다.
‘제기랄, 머리 쥐 나겠네.’
그가 고민하는 사이, 요란한 구내방송이 이어지고 비상대기 요원 일부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선착장으로 뛰기 시작했다.
현재 해상에 있는 경비함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박춘배가 상황실 안쪽으로 들어가면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응?’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에 상황실로 들어가려는 순간, 숙직실에서 막 밖으로 나온 이충석이 그를 보더니 덥석 덜미를 잡았다.
“손 모자라, 따라와.”
“에?”
엉거주춤 따라나서 선착장에 접안된 300톤짜리 경비함에 올라탔다. 손바닥만 한 배라 먼바다로 나가기 어려울 것 같은데도 무조건 출항이었다.
신속하게 출항 준비를 마친 경비함은 곧장 후진으로 선착장에서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순간, 이민우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는 선미로 몇 발 옮기면서 전화를 받았다.
-박춘배가 지금 차 빼라고 전화를 했습니다.
“차?”
-예, 배가 아닙니다.
“차…… 차? 차라면…… 이런 염병, 마님한테 4부두 남문 출입구 진입로 막으라고 해. 지금! 지금 움직이는 차가 있으면 그게 물건이야!”
그는 움직이는 배 위에서 바로 옆에 정박한 어선으로 그냥 뛰어내려버렸다. 선수에 서 있던 이충석이 그를 향해 악을 썼다.
“야! 너 어디 가!”
“나중에 연락드리겠습니다! 급해요!”
대충 얼버무린 그는 잽싸게 선착장으로 올라가 경찰서 서쪽 담장으로 뛰었다. 바이크는 담장 밑에 있었다.
바이크를 타자마자 수출용 자동차 야적장을 통해 컨테이너 야적장으로 달렸다.
지금 물건을 빼 간다면 십중팔구 컨테이너일 터, 몇 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불과했지만 더럽게 길게 느껴졌다.
금방 컨테이너들이 보였다. 컨테이너 구간을 일직선으로 통과해 남문 경비실로 직행했다.
그런데 경비실과 남문에는 이상이 없어 보였다. 평소와 다른 건 경비실에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뿐이었다.
옆에 바이크를 세우고 경비실 문을 당겨보았다. 문은 열려 있었다.
‘젠장!’
근무자는 아무도 없고 10개가 넘는 CCTV 화면까지 모두 꺼져 있었다. 순간, 이어폰에서 오지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20피트짜리 컨테이너야! 국도 남쪽으로 빠진다! 늦었어!
“따라가! 나도 간다!”
차승호가 컨테이너 트럭을 따라잡은 건 인천 시내를 막 벗어난 소래대교 근처였다.
트럭이 제한속도와 신호를 철저히 지켜준 덕에 시간을 번 셈, 확실히 트레일러에는 뭔가 불법적인 물건이 실려 있었다.
실제로 범죄자들이 일을 치르기 위해 이동할 때 가장 신경 쓰는 건 교통법규였다.
예기치 못하게 사람들의 시선을 끌거나 경찰에 불심검문을 당하는 불상사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트레일러가 교통법규를 철저히 지키는 건 같은 이유일 가능성이 높았다.
다리를 건너자 멀리 오지연의 아반테가 보였다.
컨테이너 트럭은 그보다 100미터쯤 앞에서 시속 70킬로미터 남짓한 속도를 유지한 채 달리고 있었다.
“따라잡았다. 교대.”
-카피.
오지연은 즉시 속도를 늦추면서 도로변으로 차를 뺐고 그는 아반테를 추월해 트럭과의 거리를 빠르게 줄였다. 그가 말했다.
“신호 대기에 칠까?”
-아니, 올라가기도 전에 밟아댈 거야. 위험하다.
“저것들 목적지까지 가면 우리가 불리해. 우린 달랑 둘이야.”
-알아, 그래도 큰 도로는 안 돼. 세울 방법이 없다. 대로는 벗어나고 나서 기회를 보자.
“좋아, 가면서 결정하지. 아웃.”
-카피, 아웃.
트럭은 곧장 안산 시내로 들어가 정왕동에서 창고 지대가 있는 북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몇 분 더 달리다가 인적이 별로 없는 사거리 신호에 멈춰 섰다. 그는 곧장 속도를 높여 거리를 줄였다.
“지금 친다. 붙어.”
점점 더 외진 지역으로 들어가는 형편이니 여기서 또 시간을 끄는 건 위험하다는 판단, 공격은 지금 아니면 어려울 것 같았다.
오지연도 재빨리 따라붙기 시작했다.
-카피.
그는 자연스럽게 트럭을 추월하다가 트럭 범퍼를 슬쩍 건드리고 횡단보도 앞에다 바이크를 쓰러뜨렸다.
바이크로 길을 가로막은 형국, 그는 쓰러진 채 몇 초 누워 있다가 목을 잡으면서 상체만 일으켰다.
트럭 운전사를 내리게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트럭 운전자는 내릴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아마 트럭에서 떨어지지 않을 생각일 터였다. 그는 엉거주춤 몸을 일으켜 절뚝거리면서 운전석으로 다가가 트럭 문을 두드렸다.
창문이 스르르 내려오고 짧은 머리의 깡마른 사내가 얼굴을 내밀고 위협적인 목소리를 냈다.
“뭐 어쩌라고? 너 혼자 엎어진 거잖아?”
“이런 씨발, 뭔 헛소리야? 니가 갑자기 틀었잖아!”
그도 지지 않고 트럭에 매달리면서 길길이 목소리를 높였다.
짧은 머리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욕설을 내뱉자 운전하는 놈의 두 배쯤 되어 보이는 조수석의 거구가 짜증스럽게 소리를 질렀다.
“야, 이 호로새끼야! 우리가 호구 같냐?”
일단 의심받지 않는 수준으로 시비를 붙이는 데는 성공한 모양새, 둘은 험악하게 인상을 구겼다.
겁을 주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는 건들거리면서 발판을 짚고 올라섰다.
“뭐? 이 개새끼들이 사람을 졸로 보네?”
“하! 죽고 싶어 환장한 놈이네.”
가소롭다는 듯이 비웃음을 머금은 짧은 머리가 그의 멱살을 잡으려는 듯 손을 내밀었다.
그는 밖으로 나온 짧은 머리의 팔을 순간적으로 잡아채 끌어당기면서 목젖에다 번개같이 역수도를 박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