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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아, 이 땅에 이름을 남기며
작가 : 스카이
작품등록일 : 201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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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최종장, 그리고 새로운 서장
작성일 : 17-06-06     조회 : 427     추천 : 0     분량 : 4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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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이 나빴네.

 

 이는 자신이 자신을 내려다 보며 할 말이 아닌 것 같다.

 내가 나를 보고 있자니 미묘한 고양감이 들었다.

 유체이탈이나 그런 오컬트 적인 내용은 전혀 믿지 않았지만 이제서야 그 것을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유체이탈을 한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나는 오늘 죽었다.

 

 대략 한 시간 경과.

 내 시체는 누군가에게 발견되어 곧 수습되었고 그 과정에서 내 부모님들은 하고 있던 일을 다 내팽겨치고 달려와서는 오열하였다. 누가 나를 위해 눈물을 흘려줬으면 했지만 아무래도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무려 내가 죽었다. 내가 죽은 현장에선 곧 시체 처리를 위해 요상한 복장의 여러 사람들이 드나들며 내가 흘린 오물을 닦아내었다.

 사람은 죽을때 뭔가를 배출한다고 하던데, 아무래도 그것인 듯 싶었다.

 물론 비전문가에다가 생각이라면 단세포 만큼밖에 하지 않는 나로서는 제대로 알 수 없는 내용이었다.

 

 " 의외로 단순하구만... "

 

 누가 보면 미친놈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미 죽었으니 그런 손가락질엔 자유로워 진 몸이니 긍정해도 좋지 않을까? 솔직히 지금 내가 죽었다고 알 수 있는 부분은 얼굴이 짓뭉겨진 내 시체 뿐이다. 사실은 그게 인형이었고 사람들이 다같이 나를 놀리는 것이면 어떨까?

 설마, 그건 아니지. 네네, 알고 있습니다.

 지독한 악몽이라면 그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이 지독한 꿈은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볼을 꼬집어도 아픔은 없었다. 아무래도 유령이 되면서 모든 감각이 둔해진 듯 싶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앞에 놓여진 깡통을 발로 걷어차려고 했으나 곧 내 발은 깡통을 차지 못하고 그대로 통과해버렸다.

 이게 유령의 인과율인 것이냐, 진짜였구나 하고 다시금 실감한다.

 그렇게 따지면 왜 나는 땅을 밟고 있을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죽었지만서도 미스테리한 부분이다.

 

 내 시체가 있던 자리는 곧 깨끗해져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되었다.

 내 시체가 있었다는 흔적이 지워지는 와중에도 그 주변을 멤도는 휴대폰 종족은 찰칵대는 소리를 내기에 급급했고 곧 내가 죽었다는 것은 현대의 소통 방식으로 금방 널리 퍼져버리고 말 것이다. 평소에는 주목을 받지 못했건만 이렇게라도 주목받으니 좀 기쁜데. 것보다, 주마등이라는 등 뭐라는 등 그런 거 없었잖아.

 

 일어나며 내가 아끼던 새까만 바지에 묻은 먼지를 털고(사실 묻지는 않았지만) 아무것도 아니게 된 지금을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차피 발악해봤자 되살아 나는 것도 아니고 나는 딱히 현세에 미련이라고 할 만한 게 없다. 저승은 없었고 나는 내가 죽은 곳에서 세상의 법칙을 무시하는 존재로서 다시 깨어나게 된 것이다. 이걸 극장에서 소재로 쓴다면 제목은 아마 ' 어이없게 죽은 소년, 법칙을 무시하다! ' 정도로 해서 대판 망할 것이다.

 혼자서 뭐라뭐라 말을 해도 이상하게 바라보는 사람도 없었고 나는 내친김에 밖에서 한 번 해보고 싶었던 것을 해보기로 결정했다.

 

 2

 

 내가 죽고 나서 다음날 아침, 기분나쁜 월요일이 되었다.

 버스를 타지 않아서 평소보다 더 많이 걸었던 것 같지만 이상하게 발이 아프지는 않았다.

 또 이상한 것은 따로 있었는데, 내가 걸으면서 자동차나 사람들 사이를 마치 평범하다는 듯이 통과하고 지나갔다는 것인데, 애초에 유령이 됬으니 이게 평범한 것일지도 모른다.

 일단 내가 도착한 곳은 내가 다니고 있던 평범한 사립 고등학교, 2학년으로 재학하며 평범하게 공부를 하고 있던 아주 평범한 대한민국의 소년이었다. 과거형으로 말하는 것에 대해서는 내가 이미 죽어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에 적당히 해본것이다.

 아무튼, 첫 번째로 해보고 싶었던 것은 지각을 했음에도 학교에 당당히 들어가 보는 것.

 교내 운동장에 위치한 거대한 디지털 시계가 정확히 11시를 표시하고 있으니 확실히 지각이겠지만 애초에 나는 교복도 입지 않았다. 지금 시간에 체육 교과가 들은 학급은 없는 모양이다. 넓은 운동장에는 달랑 나 혼자 남아 몸이 없는데도 1인 축구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작은 희망을 품어보기로 한 것이 전부랄까.

 운동장에 대한 평가는 그렇게 나두고 이제는 학교로 들어 가볼 시간이다.

 

 생각대로 복도를 돌아다니는 학생이나 선생이 가끔씩 보였다.

 학생이라 함은 두 명이서 키득대며 화장실에 들어가거나 꾀병으로 양호실로 향하는 그런 불순한 무리들이나, 선생이라 함은 아마 수업 준비중이지 않을까 싶다.

 

 어느새 내가 평소에 지내는 교실 앞에 도착했다.

 창문으로 살핀 우리 반은 변화한 것은 거의 없었다. 떠드는 애들도 그대로였고 정겨울 때도 된 나이 지긋한 담임 선생님도 무덤덤히 책을 읽고 있었다.

 분명 학급에서 누가 죽었건만 이리도 무심할 수 있는 것일까?

 나는 뒷문을 열려던 순간 내가 유령임을 자각하고 그대로 문을 통과하여 들어갔다.

 

 " 다음 페이지는... 오늘 몇 일이었지? "

 

 밖에서는 잘 들리지 않았던 선생님의 목소리가 반에 들어서자 또렷히 귀에 들어왔다.

 나는 자연스럽게 앉아있는 주변의 학생들을 대충 스캔하고 내 자리로 향해 고개를 돌렸다.

 

 " 17일 인가? 그럼 17번이... 아니, 18번이 읽도록. "

 

 나는 선생님이 왜 번호를 바꿨는지 알고 있다.

 17번, 그건 바로 내 번호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죽었기에 읽으라고 해도 읽을 수 없을테니까 번호를 바꾼 것이겠지. 18번은 분명 내 앞자리에 앉았던 깡마른 녀석으로 기억한다. 꽤나 소심했기에 뭔갈 읽을때면 개미가 기어들어가는 작은 소리로 들렸기 때문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잘 들리지 않는 녀석.

 하지만 지금 이런건 중요하지 않다.

 사라졌다. 내 자리가.

 

 무심코 얼빠진 소리를 낼뻔 했다.

 분명히 나는 죽었기 때문에 당연히 자리 따위는 필요가 없다고 해도 이렇게 바로 책상을 치워버리다니 참 매정한 사람들이다. 꽃이라도 놓여있는 걸 보고 싶었는데 말이지.

 죽은 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인간들은 그대로 냅두고 나는 당당히 앞문으로 걸어 나갔다.

 

 문을 통과해서 나오자 보인 것은 기묘한 차림의 남성이었다.

 맑다 못해 창백할 정도의 피부색과 짧게 쳐낸 푸르디 푸른 대양빛 머리카락, 천천히 눈꺼풀을 떼자 푸르디 푸른 대양빛 벽안이 조금 빛났다.

 

 몸에 걸친 검은색의 한복 같은 복장은 아마 예전에 아빠 친구의 장례식에서 본 듯한 느낌의 옷이었다. 소매는 내 팔이 열 개정도가 들어가더라도 남을 정도로 넓었고, 허리에는 옷을 고정하는 끈 대신 이상한 가죽제 코르셋, 마치 게임에서나 나올법한 그런 복장이었다.

 동양풍과 서양풍이 적절히 섞인 남성과 눈이 마주쳤다.

 

 " 안녕하십니까. "

 

 수려한 외모처럼 목소리 역시 투명했다.

 것보다... 지금 내 모습이 보이는 거냐?

 

 " 당황스러운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 저는 소히 저승사자라 불리는 몸, 당신을 데려가려고 왔습니다만. "

 

 마치 내 생각을 읽은 듯이 말해왔지만 그건 중요치 않았다.

 말을 끝내고 싱긋 미소를 지은 남성은 옷 안 쪽에 손을 넣어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완전히 검은색의 노트, 아마 저게 생사부라는 것이지 않을까.

 

 " 아아, 혹시 오해를 하실지 모르겠지만 이건 생사부 같은 것이 아닙니다. "

 

 " 댁, 내 생각 읽을 수 있는 거지? "

 

 " 어쟀거나, 당신은 이 세계에서 생을 마쳤으니 속히 다음 세계로 가시면 되겠습니다. 다음 세계에서 당신은 신의 은총을 받은 기사가 될 것입니다. "

 

 ...뭐? 기사가 어쩌고 저쩌고?

 중간 부분부터 제대로 듣지 못했다.

 아니, 들었는데 내가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남성이 검은 노트를 품 속에 다시 집어 넣을 동안 내 뇌리에는 여러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결론이 도출.

 

 " 그 즉슨... 이세계가 실제로 있었다는 말인가? "

 

 "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이 세계의 우주만 해도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넓다고 들었습니다. 당연히 다른 세계가 존재하기도 하겠지요. "

 

 듣고보니 수긍하지 않으면 안될 말이었다.

 예전에 어떤 사람이 말하길, 우리 인류는 아니, 지구는 우주의 먼지 한 톨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멋대로 인간만이 유일한 고등 생명체라고 멋대로 설정한 사람들이 외계인은 안믿는다니 뭐니 했던 사람들이 지금 상황을 보면 뭐라 말할 지 궁금해졌다.

 

 " 그렇군... 좋아! 빨리 가자! "

 

 내 대답에 남성은 푸른 두 눈동자를 동그랗게 뜨며 짧은 감탄을 흘렸다.

 

 " 왜? "

 

 " 의외군요. 보통은 여기까지 설명하더라도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었습니다. 번지르르 말해봤자 결국 이세계에 넘어가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처지가 될 테니까요. "'

 

 분명 아까 기사라는 존재가 될 것이라 말했다.

 영국의 기사도나 프랑스의 기사도, 그런 걸 잘 알지는 못하지만 어쨌거나 기사라는 존재는 명예롭게 싸우는 그런 시답지 않을 녀석들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이렇게 말하긴 했지만 나는 판타지 소설에나 나오던 기사들을 동경했었다.

 오히려 이 편이 나에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고, 이미 한 번 죽은 목숨이니 다르게 죽더라도 똑같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 그렇긴 하네, 그럼 만약 내가 다른 세계로 넘어가질 않는다고 대답하면 어디로 가게 되는 거지? "

 

 " 음, 일단 아무것도 없는 저승에서 한 몇 백년은 기다리게 될 겁니다. 거기에 무저갱으로 흘러들어 갈 수 있죠. "

 

 " 좋아, 빨리 이세계인지 뭔지 가자고. "

 

 확고한 결심을 세우고 대답을 하며 나는 곧 떠나게 될 이 세계를 잠깐 돌아보았다.

 돌아보아 봤자 어차피 뒤에는 우리 학교의 복도가 있을 뿐이지만 말이다.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리자 남성의 모습은 사라져 있었고 대신 그 자리에는 푸른 문 만이 남아 있었다.

 

 " 참... 색깔 센스 하고는. "

 

 미련을 편지에 부치고 그대로 읽지 않을 메모통에 쑤셔넣고선 푸른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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