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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축복이 함께 하기를
작가 : 한량
작품등록일 : 201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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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2
작성일 : 17-06-04     조회 : 321     추천 : 0     분량 : 9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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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명히 항복이라고 한 거 같은데요”

 

 이나드와 세리오스가 있는 곳은 푸른 하늘과 수도원이 한 눈에 잘 보이는 산 속의 공터. 그리고 이나드는 세리오스의 무릎에 누워있는 중이다. 그녀는 정신을 잃고 ‘약간’ 다친 그를 치료를 한 뒤, 이곳으로 데리고 와선 무릎베개를 해준 것이다. 언제나처럼

 

 “못 들었다”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는 그녀의 얼굴을 빤히 보았지만 얼굴빛을 바꾸지 않음으로 응수하였다.

 그 모습을 보자 안면에 환통이 - 머리는 그녀의 성법에 의해 ‘확실히’ 치료 되었다. - 느껴지는 것 같았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제가 누구 때문에 여기로 왔는데요”

 

 길거리에서 굶어 죽을 뻔한 자신을 데리고 와준 사람이 그녀다.

 

 “부모님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는 저로선 당신이 어머니나 다름없습니다.”

 

 “너 그런 낯 부끄러운 소리를 거리낌 없이 한다? 게다가 난 결혼도 안 해봤단 말이다.”

 

 “에이 우리 사이에 뭘요 그리고 교단에서 결혼은 물론이고 이성간에 관계를 맺는 건 전면

 금지잖아요”

 

 “그걸 내가 모를까봐 그랬냐 이놈아”

 

 교단 성직자들에게 이성간의 관계는 금기중의 금기 그렇다고 동성 간의 교제가 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야말로 모든 사랑은 신에게. 사실 성서에는 이성간의 교제에 대해 아무런 말도 없었지만 옛날 카토스 교황이 종교개혁을 외치며 이성간의 관계를 맺는 일을 금했고 그 후 그 일에 반발하며 몸소 실천을 하다가 벼락 맞아 죽는 사람들이 생겨났었고 그 중에는 추기경도 몇 명 껴 있었다. 그러자 암묵적인 금기로 하게 되었다.

 

 “요즘 얼굴 뵙기가 힘드네요”

 

 “으음... 요즘 일이 많다보니 그렇게 되는구나”

 

 못해도 두 달에 한 번 꼴로 수도원에 들르던 그녀지만, 늦어진다 싶더니 저번엔 근 다섯 달 만에 수도원을 찾아왔다. 그리고 이번엔 한 달 만에 찾아왔고. 이나드는 궁금했지만 캐물어 봤자 대답해 주지 않을 거고 그녀만 귀찮아질 것이라 판단했다.

 

 “말 잘하는 거 보니까 다 나은 거 같은데 그냥 일어나라”

 

 “머리 빼고 다른 곳은 전혀 못 움직이겠는데요”

 

 ‘으으윽’거리며 몸에 힘을 못 주는 척하는 이나드를 보자 웃음이 났다. 사람 여럿 불구로 만들어 본 그녀지만 이나드의 행동이 그저 귀엽게 보일 뿐이었다.

 

 ‘이럴 때 보면 완전 애라니까’

 

 그녀도 그리 싫진 않은지 가만히 있었다.

 

 “근데 아까 어떻게 방어하신거에요?”

 

 “니가 한 거랑 비슷한 걸로”

 

 “...전혀 비슷한 것 같지 않던데요”

 

 자신이 할 수 있는 기술이라곤 신성강화 하나뿐이고 아는 것도 없지만, 아까 세리오스가 한 기술이 어떠한 기술인지는 느낄 수 있었다. 그건 자신이 사용한 것보다 훨씬 고등의 기술이었다.

 

 “그건 언제부터 사용 할 수 있게 된 거니?”

 

 ‘그거라면...’

 

 “한 달 전이요”

 

 “한 달 전이면 저번에 내가 왔을 때?”

 

 “근데 왜 말 안했니?”

 

 “어... 오늘을 위해?”

 

 “......”

 

 딱

 

 그런 이나드에게 세리오스는 이마에 딱밤을 선물했다.

 

 “크읍!”

 

 “그거 얼마나 지속시킬 수 있는거니?”

 

 “길어야 10초 지속됩니다만”

 

 “10초...”

 

 짧지만 성력을 느끼고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해야 한다.

 

 “한 달 전부터 신성강화를 사용한다라... 그럼 성력을 느낀 건 언제부터니”

 

 “...성력을 느낀 게 한 달 전부터 인데요?”

 

 “무...뭐라고?”

 

 그녀는 한 손으로 이마를 감싸 쥐며 혼란스러워했다.

 

 “그럼 그걸 쓸 수 있게 된 건.”

 

 “음... 일주일 전?”

 

 딱

 

 “크엑”

 

 “그걸 말해야지 임마!”

 

 성력이라는 것은 크게 감지 – 발현 – 강화의 3단계로 나뉘어져 있으며, 이 순서로 터득하게 된다. 대체로 감지는 10 ~ 20대, 발현은 20 ~ 30대, 강화는 40대의 나이에 터득하게 된다. 고로 감지에서 20년, 30년은 지나야 강화를 사용하는 것인데...

 

 ‘성력을 느끼고 그 3주 만에 신성강화? 아장아장 걷다가 바로 달리는 수준인데 이거’

 

 “지금 네 나이가 어떻게 되지?”

 

 “어... 17살이요”

 

 “그나저나 그 나이에 신성강화라니 대단하다고 할까... 에휴”

 

 ‘내가 신성강화를 언제부터 사용할 수 있었더라... 한 20살이었던 거 같은데’

 

 “에~엑? 질투하는 거예요? 그런 거예요?”

 

 “큿”

 

 그녀가 분해하는 표정을 보자 이나드는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에헷 에헤헤헤헤헤헤헷!!!”

 

 “똵”

 

 좀 전과는 스케일이 다른 소리가, 그리고 이나드에게는 비명 없는 고통이 이어졌다. 그런 이나드를 보자 마음이 평온해진 세리오스는 그를 내버려두고 담배를 입에 물곤 눈앞의 풍경을 감상했다. 30초 정도가 지나자 비명 속에 뒤틀린 움직임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1분이 지났다.

 

 “......”

 

 “......”

 

 “...오늘은 무슨 일이 있으신 거죠?”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이상한 데서 감이 좋다.

 

 “이나드”

 

 “...예”

 

 갑자기 분위기가 달라진 말투에 얼굴과 몸의 표정을 다 잡았다.

 

 “너 사제가 되라.”

 

 “벌써 그런 때가 된 건가요”

 

 “......”

 

 상황을 빠르게 이해하고 납득하려는 이나드에 태도에 세리오스는 이상함을 느꼈다. 좋은 게 좋은 거다 라고 생각하기에는 자신이 여태 쌓아온 경험들이 지금 상황은 이상하다고 알려주고 있었다.

 

 “이나드? 내가 말하는 사제가 어떤 사제라고 생각하니?”

 

 “물론 전투사제를 말하는 거죠”

 

 정확했다.

 

 “아 미안하다 ‘그냥 평범한 사제’가 되려무나”

 

 “...네? 그냥 사제요? 제가요?”

 

 “그래 아님 뭐 할 거라도 있니?”

 

 그녀의 말에는 이런 곳에서 살아 온 니가 이 길 말고 다른 길이 있겠느냐 하는 말투였다. 이 수도원에서 상인이 되겠다거나 용병이 되겠다고 하는 몇 명의 애들이 있긴 했다. 정신교육을 통해 올바른 길로 되돌리긴 했지만 그 애들의 공통점은 특이사항이 눈에 보인다는 점이다. 그래서 상황이 늦게 터지기 전에 미리 대처하거나 예방할 수 있었지만 이나드에게는 그런 점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니 그 전에 이나드 자체가 꽤나 특이한 녀석이라서 그런 게 안 보이는 걸지도 모른다.

 

 “전 전투사제가 되어 비인외도의 길을 걸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는데”

 

 보호자의 예상과 달리 파릇파릇한 청소년의 진로는 마음속에서 확고히 결정되어 있었다.

 

 “......”

 

 전투사제란 수호사제를 비꼬는 말로서 교단과 교인들을 수호하는 역할을 맡으며 때에 따라

 영지를 수호하는 역할을 맡기도 한다. - 대외적으로는 말이다. - 확실히 이 녀석은 동년배의 수도사들 중에서 전투수행능력의 선두를 달리고 있다. 그 점은 방금 전의 대련을 통해서 확실시 되었다. 진로의 적성과 흥미 그리고 자질 모두 그 직업을 향해 가리키고 있었으며 아카데미라면 선생님이 부모에게 ‘자식의 미래가 밝습니다.’ 라고 하며 칭찬할 내용이지만 지금 이 상황은 예시가 다르다. 20살에 신성강화를 익혀도 느린 게 아닌. 오히려 빠른 축에 속한다. 대부분 그 쪽 계통으로 자질이 있는 녀석들은 23살 정도나 돼서야 신성강화를 사용할 수 있는데 그것도 전신강화가 아닌 손이나 발 같은 일부 신체강화다.

 

 ‘수호사제 이나드라....’

 

 얼핏 생각해 봐도 빛나는(?) 그의 미래가 떠올랐다. 최연소 수호사제장이라던가 교단의 수호자라던가

 

 ‘잘하면 ‘대행자’ 칭호를 받을지도... 아니야 그건 ‘현재 상황’ 에서는 결코 좋은 결과가 아니야’

 

 “...어머니?”

 

 생각에 잠겨있던 그녀를 이나드가 불러세웠다.

 

 “전투사제가 돼서 뭘 하려고 하는거니”

 

 “교단에서 일을 받아 처리하고 마을에서 나오는 공물을 몰래 조금 뜯어내고 이런 생활?”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저의 모든 것(?)을 신에게 바치며 비인외도의 길을 걷는 대신 물질을 조금(?) 얻을 뿐입니다.”

 

 “...너 그런 말 나 말고 다른 녀석한테 하는 순간 진짜 비인외도의 길을 보게 될 거야.”

 

 “...알겠습니다.”

 

 ‘생각보다 너무 현실적이고 건실해’

 

 그 말을 들으며 설득되려는 자신을 찍어 눌렀다.

 

 “이리되든 저리되든 일단 사제가 되어라”

 

 “왜죠?”

 

 “전투사제가 되려면 일단 사제가 되어야 한다. 바로 전투사제가 될 수 없어. 그리고 사제의 길을 걷다가 전투사제로 직종을 바꿀 순 있지만 전투사제에서 사제로 바꾸는 건 매우 힘들단다. 그러니 사제의 길을 걷다가 후에 바꾸던지 하고 게다가 고위직에 오르려면 사제의 길을 조금은 걷는 게 너의 커리어에 좋다”

 

 누가 들으면 직장 선배가 직장 후배에게 직업적 비리와 비사 같은 것들을 가르쳐 주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세리오스의 경험에 의거한 사실.

 

 “음... 알겠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이나드가 모르는 점 한 가지가 있다. 수호사제는 사제보다 진입장벽이 훨씬 작다는 점을

 

 “아무튼 그걸 포함해서 너에게 시킬 것이 있어서 왔다.”

 

 “뭡니까”

 

 “니가 여자애 한 명 도와줘야겠다.”

 

 “여자애요?”

 

 여자애라는 말에 아주 살짝, 아주 사알짝 두근거렸다. 성직자의 길을 걷는 자에게 불순한 마음가짐이라니 수련이 부족하다.

 

 “너 살짝 두근거렸지?”

 

 “아뇨!”

 

 “헤헹 이런 걸 보면 아직 애라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머리를 벅벅 소리가 날 정도로 쓰다듬었다.

 

 “으아아앗 이 아줌마가 뭐하는 겁니까”

 

 그 말과 동시에 한 대 맞았다.

 

 “아줌마라니! 아직 젊다고!”

 

 “으... 그렇게 발끈하셔도 바뀔 호칭은 없다고요”

 

 “이 녀석이!”

 

 이나드는 겁을 먹으며 방어자세를 취했지만 그녀는 때릴 듯한 자세를 취할 뿐 잠시 후 평온한 자세로 돌아왔다.

 

 ‘남녀관계에 대해선 무심의 경지에 달하신 분이 호칭이나 젊음에 대해서는 왜 이리 극단적 상태로 돌변하시는 거지...’

 

 “근데 좀 전에 말한 여자애를 왜 도와줘야 하는 거죠?”

 

 “너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사제님이시다.”

 

 “그래서요?”

 

 “...응?”

 

 “호위 같은 걸 시키려는 거죠?”

 

 “...그렇지”

 

 “그거 안 해도 상관없지 않나요?”

 

 정말 이상한 데서 감이 좋은 애다.

 

 “여자 혼자서 돌아다니기에는 좀 그러니까 하는 말이지”

 

 “...글쌔요”

 

 그가 봐온 여 사제들은 모두 다 강인하고 혼자서도 이 세상 거뜬히 해쳐나갈 능력이 있는 자들이다. 눈앞의 어머니만 해도 어느 곳이든 잡다한 기사단 하나쯤은 혼자서 쓸어버릴 힘은 가지고 있지 않은가. 아니... 아닌가?

 

 이나드가 그렇게 불신의 표정을 짓자 그녀도 그가 생각하는 게 뭔지 짐작이 갔다.

 

 “걔는 내 아이들 중 가장 몸이 약하단다.”

 

 “산적이나 도적 따위에게 당할 정도로 약하게 키우진 않으셨을 텐데요 어머니”

 

 “.......”

 

 정곡이다.

 

 “...표면적으로는 ‘일반 사제’로 보여야 하는 경우가 많단다. 여 사제들은”

 

 “‘일반 사제’라고 함은 육체적인 능력이 없되 자비로우며...”

 

 “그냥 따까리 하라고 임마. 어떤 직종이든 여자 혼자서 먼 거리를 돌아다니면 귀찮은 일에 많이 휩싸여요”

 

 “...네 알겠습니다.”

 

 결국 터져버린 세리오스가 버럭 소리를 질렀고, 조금 더 하다간 맞을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이나드는 승낙했다.

 

 “근데 누구에게서 지키는 건가요 산적? 몬스터?”

 

 “이 바렐산맥의 몬스터는 너희들이 씨를 말렸잖아”

 

 “그렇긴 하죠”

 

 수도원에서 나이가 15살이 넘게 되면 상급사제의 인솔하에 산맥의 몬스터를 토벌하러 가게 된다. 이를 봉사활동이라고 부르는데 애들이 맡게 되는 몬스터들은 고블린이나 오크, 놀 종류였다. 그 이상의 트롤, 오우거 같은 위험한 몬스터들은 사제가 맡게 된다.

 

 ‘죽을 뻔한 적도 있었지’

 

 “이제 멀쩡해 진 거 같은데 슬슬 일어나렴”

 

 “조금만. 조금만 더 있으면 안 될까요? 여기서 보는 풍경도 이게 마지막일 것 같거든요”

 

 그걸 꼭 내 다리에 누워서 볼 필욘 없지 않나 싶던 세리오스는 이나드의 말에서 애틋한 아련함을 느꼈다.

 

 “...조금만이다.”

 

 “네~”

 

 하지만 그 조금은 석양이 질 때까지 이어졌다.

 

 “원장실은 처음 들어와보네요”

 

 저녁 식사 이후, 원장실로 불려온 이나드는 방안을 둘러보자 세리오스 외에 처음 보는 여자애

 가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가 몸을 돌리자 둘은 눈을 마주하게 되었다. 롱스커트를 입

 었다는 걸 제외하곤 세리오스와 같은 복장을 입고 있었으며, 앞머리를 오른쪽으로 치우치며

 오른쪽으로 땋은 검은 머리에 교회의 심볼이 새겨진 목걸이를 하고 있었으며, 이나드보다 키

 가 조금 작지만 눈빛은 날카로운 여자애였다.

 

 “저 애에요?”

 

 그 여자애는 분위기와 얼굴에 어울리는 까칠한 목소리와 불만 섞인 말을 내뱉으며 이나드를 물건 보듯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래”

 

 “저...”

 

 세리오스를 향해 질문을 하려고 했지만 이름 모르는 여자애가 자신을 향해 돌아보자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다시 보니까 경계를 하듯 뾰족하게 날 선 눈빛이지만, 수도원에선 보지 못한 예쁜 얼굴이었다. 하지만 제정신을 차리곤 다시금 질문을 했다.

 

 “그러니까...”

 

 “니가 하던 일에서 이 애를 데리고 다니면 된단다.”

 

 이번엔 세리오스가 잘라먹었다.

 

 “흐음…”

 

 그녀는 다시금 이나드를 향해 눈길을 옮겼다. 하지만 사람을 훑어보는 시선에 이나드는 뭐라 형언하지 못할 껄끄러움을 느꼈다.

 

 “사람을 그런 눈으로...”

 

 “그럼 전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그래”

 

 “……”

 

 그렇게 이나드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녀가 문 밖을 나가는 걸 가만히 지켜보게만 되었다.

 

 “쟤 나이가 어떻게 되요?”

 

 “여자의 나이는 비밀이란다.”

 

 “저 어머니 나이 아는데 서른...”

 

 세리오스의 얼굴을 보자 그녀는 빙긋 웃고 있었다. 빙긋 웃는 얼굴 밑에서 무언가 알 수 없는 힘이 이나드의 심장을 움켜쥐었다. 그리곤 외쳤다. 더 이상 지껄이면 죽는다고

 

 “…이 안 되죠 아마?”

 

 “흐응?”

 

 올바른 답변이었던 것 같다.

 

 “쟤에 대한 건… 왠지 직접 알아보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응~ 응~”

 

 그러자 그녀는 긍정의 표정을 지었다.

 

 “앞으로 제가 뭘 하는지도?”

 

 “그렇지”

 

 “그러면 따까리 라는 건…”

 

 “아 그건 사실.”

 

 “……”

 

 유일하게 알 게 된 것이 가장 듣기 싫은 사실이었다.

 

 “그럼 여길 왜 부르신 겁니까 어머니?”

 

 “출가하는 아들과 어머니의 마지막 대화?”

 

 “…그런 이유라면 거절하지 않겠습니다.”

 

 -----------------------------------------------------------------------

 

 둘의 대화는 어느덧 저녁이 지나 밤이 다 되어갔다.

 

 “시간이 이렇게 됬네”

 

 “그러게요”

 

 그렇게 이 시간도 마무리가 될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내일 네가 일어나는 대로 출발할 테니 이곳에서의 마지막 밤을 잘 지내렴”

 

 “네 알겠습니다.”

 

 수도원에서의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쉽사리 잠이 오질 않았다. 앞으로 이곳에서 잠을 자는 것이며 같이 수련하거나 아리네 선생님에게 교육을 받거나 하는 것도 오늘로서 마지막. 그 동안 겪어온 일들을 돌이켜보자, 아쉽거나 즐거웠다는 생각보다 지겨웠다는 생각이 제일 격하게 들었다.

 

 ‘아니 다시 올 일이 있을 거야 그땐 어린애들에게 내가 여기 출신이라고 거들먹거리면서 먹을 거 잔뜩 싸들고 와야지’

 

 그 때를 기대하다 보니 어느새 잠이 들었다. 이른 새벽, 이나드는 아무도 모를 정도로 조용히 일어났다. 간밤에 짐을 싸놓지 않았기에 지금부터 짐을 싸기로 했다. 산속의 새벽이라 달도 잘 안보여 새벽인지 한 밤중인지 모를 정도의 깜깜한 새벽이지만, 애초에 짐이랄 것도 별로 없어서 눈 감고도 자기 물건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었다. 옷 몇 벌과 이 날을 위해 모았나 싶을 정도로 모아둔 돈 딸랑 몇 푼. 그리고 어릴 때부터 읽어 온 성경책을 품에 넣고 문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레 방을 나섰다.

 

 “......”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수도원을 떠날 생각이었던 이나드는 몇 걸음 때지도 못하고 놀람과 함께 결심이 깨지는 상황이 오게 되었다.

 

 “...어떻게?”

 

 수도원의 출구에서 졸린 눈을 하며 서 있는 두 명. 모두 그가 아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그냥 가려고 했어요 형?”

 

 “망할 녀석”

 

 벽면에 기대서서 이나드를 기다리고 있는 건 해리와 수였다.

 

 “...어떻게 알았어?”

 

 둘은 어딘가를 처다보았고 그 시선 끝에는 세리오스가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아. 어머니”

 

 “이나드.”

 

 이 상황을 만든 어머니에게 무슨 말을 할까. 생각 할 겨를도 없이 수가 불길한 느낌을 내뿜으며 말을 걸었다.

 

 “어. 응? 왜 그래?”

 

 “왜 말 안했지?”

 

 “왜 말 안했어요!”

 

 둘이 동시에 공격적으로 물어오자 당황했다.

 

 “어...음 뭐랄까”

 

 자신도 잘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이 이곳을 나갈 때는 별 생각 안 들었지만 스스로가 이 둘에게 이별을 선언한다고 생각하니 뭔가 뭉클하면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까 이... 상황이 나한테는 조금 낯 뜨겁달까나...”

 

 “음...”

 

 “...납득”

 

 이나드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하자 둘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이해했다. 자신으로선 익숙한 일이지만, 친한 사람의 이별이 어린이들에게는 익숙지 않은 것이리라

 

 “어휴 꼬맹이들...”

 

 세리오스는 그렇게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 가볍게 혀를 찼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도 이별이라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것이기에 이해하고 있었다.

 

 “......”

 

 “......”

 

 막상 뭘 하려고 하니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나 서로 막막하였다.

 

 “가냐”

 

 먼저 침묵을 깬 것은 의외로 수였다.

 

 “그래”

 

 “왜 이렇게 침울해요 다시는 못 볼 것처럼”

 

 “그래 언젠간 다시 만나겠지... 아니면 개판쳐서 여기로 되돌아올지도”

 

 “야 그럼 내 손에 죽는다!”

 

 수의 말을 듣고 세리오스가 진심어린 목소리로 외치자 셋 모두 흠칫했다.

 

 “와도 안 받아줘”

 

 “그래요. 그리고 그 때쯤이면 우리도 수도원을 떠났을 거에요”

 

 “응”

 

 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했다.

 

 “야박한 놈들”

 

 그리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헤헷 먼저 가서 높으신 분 되면 모른 채 하기 없기에요”

 

 “기다리고 있어”

 

 왠지 코 끝이 찡해졌다.

 

 “...그래”

 

 그렇게 둘은 숙소로 되돌아가며 세리오스에게 인사를 했고 세리오스는 손을 들어 간단히 대꾸해줬다.

 

 “형제 같네”

 

 “형제 아니예요”

 

 “의형제는 형제 아니니?”

 

 “의형제...”

 

 ------------------------------------------------------------------------

 

 “너 내 의형제가 되어라”

 

 “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너는! 그런. 중요한 말을 뜬금없이 말하는 게 어딨냐”

 

 “그 의형제에 저도 끼는 거죠?”

 

 ------------------------------------------------------------------------

 

 ‘생각해보니 수는 새침떨면서 싫다고 할테고 해리는 나는요 나는요 이렇게 하겠지 근데 나랑 수 중에서 누가 형이 되는거지?’

 

 잡다한 생각을 마치고 세리오스를 향해 눈을 돌리자 그녀에게선 살풋 그리움과 부러움이 느껴졌다.

 

 “부러우세요?”

 

 “조금”

 

 왠일로 부정을 하지 않았다.

 

 “그럼 어머니도 만드세요 의형제”

 

 “이미 친동생 한 명 있다.”

 

 처음 듣는 이야기다.

 

 “어렸을 때는 나 좋다면서 잘도 따라다녔었는데 지금은 퉁명스럽게 대하면서 신경질을 내더라... 어머, 내가 무슨 소릴 하는 거래”

 

 “아까 그 애는요?”

 

 “니가 떠드는 사이에 밖에 나갔단다.”

 

 밖에 나가는 건 전혀 몰랐는데

 

 “이나드”

 

 “네?”

 

 무언가가 날아들자 반사적으로 캐치했다.

 

 “선물이다.”

 

 이나드에게 날아든 그것은 검은색의 천장갑이었다.

 

 “어지간한 검도 막는 튼튼한 재질이다.”

 

 손과 발을 주로 사용하는 그에겐 딱 맞는 물품이었다.

 

 “오~ 근데 이거... 아무한테나 다 주는 그런 건가요?”

 

 “너한테만 주는 거다”

 

 “오오옷!”

 

 그 말을 듣고서야 어린애처럼 기뻐하는 이나드의 모습을 보자 세리오스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자신의 것처럼 철로 도금한 장갑을 줄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비싸기도 비쌀뿐더러 어린 애한테 그렇게 좋은 걸주면 물욕이라는 시험에 들기 마련이다. 게다가 지금의 장갑도 꽤나 비싼 것인지라, 지금의 선물과 지금의 상황에 대해 세리오스는 만족했다. 그런 이나드를 놔두고 소녀는 세리오스에게 말했다.

 

 “세리오스님 출발 하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소녀가 먼저 출발하자 이나드도 서둘렀다.

 

 “그럼 나중에 봬요 어머니”

 

 “몸 조심해라”

 

 안 데르테 제국력 1417년 10월. 삼계절 중 가을이 시작하는 달에, 이나드는 수도원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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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6화 6/9 290 0
7 5화 6/7 298 0
6 4화 6/7 295 0
5 3화 6/7 295 0
4 2화 6/4 304 0
3 1화 6/4 310 0
2 프롤로그 - 2 6/4 322 0
1 프롤로그 - 1 6/4 452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