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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축복이 함께 하기를
작가 : 한량
작품등록일 : 201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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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작성일 : 17-06-07     조회 : 298     추천 : 0     분량 : 9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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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나드는 사선으로 내려치는 검격을 가까스로 피해내며 옆구리를 향해 카운터 일격을 날렸고, 노반은 그 공격을 뒤로 물러나며 검면으로 막아냈다.

 

 ‘오른손잡이는 대체로 첫 번째 공격을 오른쪽에서 시작하는 경향이 커’

 

 세리오스의 가르침대로 오른쪽으로 공격해 올 것을 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만 늦었으면 베일 뻔 했다. 그리고 곧바로 카운터를 날렸지만 노반은 공격을 어렵지 않게 방어했다.

 

 ‘저 아저씨... 강하잖아’

 

 처음 보는 검사, 처음 보는 검술 그리고 강하다. 하지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제법이구만, 어린 친구”

 

 노반도 놀랐다. 일격으로 끝낼 생각은 없었지만 막거나 뒤로 물러날 경우 계속해서 공격을 몰아쳐 공세를 이어갈 생각이었는데 상대는 간단히 피해내는 것도 모자라 반격을 가해왔다. 조금만 늦었어도 카운터 공격으로 인해 큰 타격을 입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서로, 잠시 상대방에 대한 판단을 고치게 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먼저 움직인 것은 이번에도 노반이었다.

 

 “흠”

 

 이번에도 아까와 같은 궤도의 공격이었지만 느리고 가벼웠다. 그에 순간적으로 같은 자세를 취한 이나드는 변칙적으로 꺾여오는 공격을 볼 수 있었다. 놀라서 뒤로 급히 물러났지만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노반은 쫒아가며 공세를 이어갔다.

 

 공격은 매서웠다. 정석적인 검격 사이에 변칙적인 공격이 섞여서 들어왔다. 끝까지 베어 올 줄 알았던 공격이 다시 되돌려져 다른 궤도로 베어 들어오고, 베는 동작을 취하다가 갑작스레 찌르는, 혹은 반대로 찔러 들어오다가 베어 들어오는 등, 타이밍을 당최 잡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움직일 공간까지 적어, 이나드는 공격 하나하나 막거나 피하는 데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기사 아저씨의 움직임이 뭔가 걸리적거리는 듯 툭툭 끊긴 듯 부자연스러운 공격이 이어졌다는 점이다. 그렇게 일방적인 공방이 수십 합이나 오고 갔지만 다행이랄까 아직까진 이나드에게 상처하나 없었다.

 

 “장갑이 꽤나 튼튼하군”

 

 “그러게요. 이 정도로 튼튼할 줄은 몰랐는데...”

 

 이나드는 계속해서 장갑을 낀 손으로 계속 검을 쳐내고 흘려내고 막아내었다.

 

 ‘장갑이 아녔다면 진짜 손이 남아나질 않았을지도...’

 

 그렇게 생각보다 더욱 강한 상대에 대해 긴장하고 있을 때, 카샤 또한 긴장하고 있었다.

 

 ‘분명 별 거 아닌 기사라고 했는데...’

 

 그녀가 어제 받은 쪽지에는 자신의 생각 그대로 ‘별 거 아닌 기사가 있다.’ 라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대체 뭔가! 어느 영지를 가도 기사대접은 충분히 받을 만한 실력의 기사가 아닌가! 위태위태하던 이나드는 결국 틈을 노린 노반의 찌르기에 가슴을 베였다.

 

 “큿”

 

 다행히 상처는 얕았다. 가슴이 뜨거운 것에 데이기라도 한 듯 시큰한 느낌. 검에 베인 게 처음인 이나드는 묘한 느낌에 휩싸였지만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무슨 일입니까 영주님!”

 

 “그... 그래! 잘 왔다.”

 

 노반과 이나드의 싸움에 의해 소란스러워지자 경비병들이 나타났고 영주는 기세등등해졌다.

 

 “이런! 경비병이”

 

 이 상황에서 엎친데 덮친 격으로 경비병까지 상대한다는 건... 전혀 승산이 없는 싸움이다.

 

 “저... 적이다!”

 

 “아까의 사제님이잖아”

 

 “경비병! 어서 노반을 도와...”

 

 그렇게 말하며 경비병들이 문 안으로 들어오려고 했다.

 

 “들어오지마!”

 

 그 말에 영주를 비롯한 모두가 멈칫했다. 다들 왜 그러는 거지? 라고 의아해 할 무렵 이나드 혼자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설마 소설 속에서나 보던 ‘이건 나의 싸움이다’라는 말을 하려는 건가! 라고 생각하며 두근거리고 있었지만 그가 바라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걸리적거린다.”

 

 “!”

 

 이 말에 이나드는 아까 전 노반의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좁진 않지만 여러 가구들에 의해 걸리적거리는 공간, 노반이 가진 무기는 레이피어 같은 찌르기 형식이 아니라 필요 동작이 비교적 큰, 베기형 롱 소드. 게다가 영주는 이나드 쪽에, 카샤는 노반 쪽에 앉아 있는 묘한 상황이었다. 만약 이나드가 문 쪽에 대치하고 있었으면 노반과 경비병 사이에 둘러싸이게 되는 상황이지만, 이 상황에서 경비병들은 노반에게 걸리적거리는 존재들일 뿐이다. 더군다나 용병으로서 많은 전투를 해 온 그로서도 이런 좁은 곳에서의 실내전투는 손에 꼽은지라 몸에 익지 않은 이런 곳에서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발휘 할 수 없었다. 한 마디로 이나드에겐 운이 엄청 좋은 셈. 이나드는 이를 깨닫곤 공간을 이용하며 반격을 하기 시작했다.

 

 “뭐하는 것이냐 노반! 그런 어린애 하나 못 이기고 내 기사라 할 수 있겠느냐!”

 

 “시끄럽소!”

 

 ‘빈틈’

 

 순간적으로 영주 때문에 정신이 팔린 노반에게 접근하며 공격을 가했다. 노반은 막아내며 반격을 가하려고 했지만 이나드가 여태까지와는 다른 행동을 했다. 책장 같은 장식물들을 등지며 행동한 것이다.

 

 “젠장.”

 

 노반의 검술에 더욱 제약이 생기게 되며 이나드의 공세가 이어졌다. 결국 노반의 검이 장식물에 걸리적거리는 상황이 되었다. 이나드는 그 때를 놓치지 않고 오른팔에 공격을 가했다.

 

 “큿”

 

 흉부만 갑옷으로 보호받고 있었던 그는 순간적으로 오른팔에 힘이 풀렸다. 그걸 기회로 끝을 보려던 이나드는 생각지 못한 기습을 받았다.

 

 “컷?”

 

 더 방어적인 자세를 취할 것이라 생각한 그가 오히려 앞으로 나서며 날밑으로 가슴을 공격한 것이다. 이어서 반격을 당할 거라 생각한 이나드는 곧바로 뒤로 물러났지만 노반은 쫓아오지 않았다.

 

 ‘이대로 가다간 내가 진다.’

 

 노반은 기세를 내뿜으며 일격의 자세를 잡았다. 몸의 자세를 낮추곤 검을 얼굴 위치로, 검극은 정면을 향하게 했다. 찌르기 자세였다. 그리곤 유형의 기운을 검에 불어넣기 시작했다.

 

 ‘익스퍼트 하급. 아니 검술만으로는 중하급에 발을 걸친 자인가’

 

 안절부절 못하는 영주와는 달리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하던 카샤는 노반의 실력을 파악했다. 검사는 크게 네 가지의 유형으로 - 다른 무술가들도 비슷하다 - 나뉜다. 검을 쓸 줄만 아는 소드맨, 마나를 느끼거나 다룰 줄 알면 소드 유저라고 하며 마나를 검에 불어넣을 줄 알면 익스퍼트급이라고 한다. 익스퍼트급에서도 여러 유형으로 나뉘지만 차치하고, 마지막으로 모든 검사의 꿈이자 모두가 경이와 경의를 담아서 부르는 호칭인 ‘소드 마스터’가 있다. 마나의 양과는 상관없이 검의 궁극에 다다라야 닿을 수 있는 경지라고 하며 마스터에 다다르는 사람은 한 시대에서 손에 꼽을 정도다. 베지 못하는 건 없으며, 마나를 사용하지 않고도 나뭇가지로 명검을 상대할 수 있고, 반신에 가까운 존재인 드래곤 앞에서도 개길 정도라 하는, 소설 속에서나 나올 법한 존재다. 그 중 노반은 지금 익스퍼트 초급이다. 사실, 익스퍼트 초급만 해도 어딜 가서든 대접을 받을 만한 실력자이지만 그녀는 당황하지 않았다. 여행 동안 이나드가 행하는 수련을 봐왔기 때문. 작은 양이지만 그가 신성력을 다루는 수련을 본 그녀로서는 그리 걱정이 되지 않았다.

 

 ‘장갑에 성력강화를 해서 싸우려는 거겠지’

 

 저 나이에 물체나 신체일부에 성력강화를 할 수 있는 것도 훌륭한 실력이다. 라고만 생각했을 뿐, 지금 그녀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

 

 “후우...”

 

 확실히 이나드는 성력을 느끼고 사용할 수 있었다. 힘을 느낄 수 있는 자는 상대방이 의도적으로 숨기지 않는 이상, 자신과 다른 성질의 힘이든, 반대 되는 힘이든 느낄 수가 있다. 이나드는 노반의 마력을 볼 수도 느낄 수도 있었다. 그 덕분에 자신을 향해 쏟아져 오는 날카로운 기세까지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등골이 찌릿할 정도로 강한 기세. 하지만 그보다 대단한 사람과 오금이 저리는 공포를 여러 번 마주하며 죽을 뻔까지 했던 그로선 견뎌낼 만한 수준이었다.

 

 ‘저 사람의 마력량은 많지 않아. 그렇다면 한 순간에 끝낼 생각이겠지’

 

 어차피 이쪽이 사용 할 수 있는 시간도 잠깐이다. 이나드 또한 자세를 잡으며 성력을 사용할 준비를 했다. 왼발을 오른발에 비해 조금 뒤로 둔 후 왼손은 핀 채로 적을 향해, 오른손은 주먹을 꽉 쥔 채로 허리춤에 위치했다. 이 곳에서 그 자세를 알아보는 자는 이나드를 제외하곤 한 명뿐

 

 ‘부동의 세’

 

 카샤는 한 눈에 무슨 자세인지 단숨에 파악했다. 교회의 무술을 대표하는 자세로서 왼손으로 상대의 공격을 쳐내거나 막아 낸 후 오른손으로 반격을 하는 방어 및 반격 자세다. 카샤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자세를 보며 그가 어린 나이임에도 얼마나 수련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이나드의 두 손과 심장 쪽에 흰 기운이 자그마하게 모이는 것을 보았고 노반 또한 그것을 보았다. 분명 자신의 나이에 반도 안 되는 녀석이 벌써 힘을 다루고 있는 것을. 그에 다른 것도 볼 수 있었다. 용병시절에 많이 봐왔던, 나이에 비해 뛰어난 능력을 가진자들. 그리고 그자들에 대해 부러움과 질투를 하고 있는 자신을.

 

 ‘이젠 그런 감정을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아직 늙진 않았나 보군!’

 

 더욱 기세가 커졌고 그에 따라 이나드도 더욱 긴장했다. 그리고 어떤 징조도 어떤 외침도 없이 노반이 돌진해왔고 동시에 이나드의 두 주먹과 심장에 머물러 있던 성력이 순식간에 그의 온몸으로 퍼져 만개했다. 그걸 본 노반은 이상함을 알아챘지만 공격을 멈출 순 없었다. 하지만 전신강화로 활성화 된 이나드의 눈에는 노반의 검이 확연히 느리게 보였다. 이나드는 찔러오는 검격을 왼손으로 쳐내곤 오른손 정권을 정확히 노반의 가슴에 꽂아 넣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영주가 놀라기도 전에 카샤가 기겁을 하며 일어났다.

 

 “신성강화라고? 쥐꼬리만한 신성력으로 물체강화도 아닌 전신강화?”

 

 성력을 다루는 방법은 크게 감지 – 발현 – 강화의 3단계로 나뉘어져 있지만 세부적으로는 5단계로 나뉘어진다. 1단계, 성력을 느끼는 감지에서 시작해, 신체의 한 부분을 활성화 시키는 2단계 발현. 그리고 물체나 인접한 다른 사람에게 성력을 집어넣거나 사용하는 3단계를 넘어, 전신을 활성화 시키는 4단계 강화. 그리고 성력으로 공간을 간섭하는 5단계가 있다. 다른 사람들은 성력의 양에 비례해서 단계가 높아져가며, 각 단계 곱하기 10살이 평범한 적정나이이다. - 물론 늙어 죽을 때까지 3단계에 머무르는 사람도 있다 - 종합하자면 이나드의 성력은 2단계 언저리인데 반해 사용능력은 4단계인 상황. 그러니까 간단히 말하자면 초보 마법사가 파이어볼을 쓸 만한 마력으로 상급마법인 익스플로전을 단 한 번만 사용하곤 픽 쓰러지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그런 이나드의 나이는 겨우 열일곱

 

 ‘내가 17살에 어땠더라...’

 

 그녀는 곰곰이 생각하다 큰 사실을 깨달았다.

 

 ‘나 지금 16살이지’

 

 열다섯에 정식사제가 된 그녀가 누군가에게 대단하다고 할 상황은 아니지만, 원래 자기 일은 잘 보이지 않는 법이다. 그렇더라도 지금 이나드의 경지는 그녀가 대단하다고 할 정도의 이해불가의 영역이다. 그가 소년기의 모든 시간을 수도원 내에서 보내며 얻은 것은 저 무력뿐. 반대로 말한다면 모든 것을 버리고 그만한 기량을 손에 넣은 것이다.

 

 ‘이게 세리오스, 그녀의 의지’

 

 -----------------------------------------------------------------------------

 

 “.......”

 

 조금 거칠어진 숨을 가다듬으며 이나드는 바닥에 쓰러진 노반을 쳐다보았다. 그는 자신의 카운터 어택을 받고 쓰러졌다.

 

 그를 바라보며 좀 전의 일격을 다시 되새겨봤다. 첫 실전. 사람과 생사를 건 첫 번째 싸움. 게다가 상대는 승패를 알 수 없는 호적수. 아니 장소만 달랐어도 패배한 것은 자신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하다못해 장기전으로 갔었어도 승패가 달라졌을 수도 있겠지만, 영주라는 존재와 장소의 불리함이 그에게 족쇄가 되어버린 것이다. 다시 생각해 보니 운이 좋았던 상황이었다.

 

 “내... 내 기사가...”

 

 영주가 덜덜 떨며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 행동했다. 그러다가 뭔가 생각이 난 듯 허겁지겁 외쳤다.

 

 “경비병. 경비병!”

 

 그 말에 경비병들은 무기를 꼬나쥐고 방안으로 들어오려 했지만 이나드와 눈이 마주치자 기겁을 했다.

 

 “히익...”

 

 “도... 도망쳐!”

 

 자신들에게 크나큰 우상이자 두려움 그 자체였던 노반을 쓰러뜨린 자. 게다가 신의 대리인인 사제, 외곽진 영지의 사병을 정신적으로 몰아넣기엔 충분한 요소들이다. 그렇게 경비병들마저 도망치자 영주는 털썩 주저앉았다. 일이 일단락되자 카샤는 이나드를 쳐다보았다.

 

 ‘궁금한 게 많지만...’

 

 “일단 중요한 거 먼저 처리하도록 할 테니 기다려.”

 

 카샤는 그렇게 말하며 영주에게 다가갔고 이나드는 뭘 기다리라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영주에게 가까이 다가간 카샤는 성력을 일으켜 영주의 상태를 파악하곤 물러났다.

 

 “...이상수치는 느껴지지만 교회에서 신경 쓸 정도의 수치는 아닌, 임계점에 간당간당한 정도”

 

 “...무슨 소리죠?”

 

 그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이나드가 반문했다.

 

 “멧돼지가 못 된 돼지랄까나”

 

 카샤는 단숨에 사람을 돼지로 탈바꿈시켜 버렸다. 한 순간에 돼지가 되어버린 영주는 그 말을 듣자 정신을 차리곤 얼굴을 울그락불그락 했다.

 

 “이... 이 망할 년이”

 

 흥분한 그는 기세만큼은 훌륭하게 멧돼지가 되어 달려들었다. 씩씩거리며 뒤뚱뒤뚱 달려드는 모습이 딱 멧돼지의 모습에 가깝고 위압감도 넘쳤다. 그에 이나드는 능청스럽게 오른 주먹에 입김을 ‘하아’하고 불어 준 뒤 안면에 깨끗한 한 방을 넣어 주었다.

 

 “꾸에에엑”

 

 돼지는 멱따는 소리와 코피를 흩뿌리며 저만치 날아갔다.

 

 “정신 나간 동물은 매가 약이지”

 

 그녀는 그 말에 동의하듯 작게 끄덕였다. 이나드가 처리하고 마무리까지 한 영주에게 다가간 그녀는 여태까지와 같은 작업을 실시하였고 정신을 잃은 영주는 그대로 빛무리에 휩싸여 사라졌다. 그리고 그걸 보며 이나드는 하나의 생각을 가다듬었다. 그렇게 일이 마무리 되자 둘이 마주보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잠시간의 멀뚱멀뚱이 이어지자 카샤는 자신이 할 말을 깨닫게 되었다.

 

 “아! 너!”

 

 “...왜요?”

 

 이나드는 카샤의 쏘아져 오는 말에 순간적으로 기가 죽었다.

 

 “그거 쓸 수 있으면 있다고 말을 했어야지!”

 

 “그게... 뭔데요?”

 

 “신성강화!”

 

 “아 그거~... 꼭 말해야 하는 건가요?”

 

 “당연히 말해야지!”

 

 “왜요!”

 

 “내가 니... 선배니까!”

 

 “선배... 아얏”

 

 긴장이 풀리니 검상으로 인한 통증이 느껴졌다.

 

 “응? 이나드!”

 

 그의 하얀 옷이 적잖은 피로 물들자, 방금 전까지의 감정은 잊은 듯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다가갔다.

 

 “많이 아퍼?”

 

 평소와는 많이 다른 그 모습을 보자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다.

 

 “아... 아뇨 그렇게 까진”

 

 “잠시 있어봐”

 

 그녀가 상처 언저리에 두 손을 갖다 대자, 하얀 기운이 뻗어 나와 그의 상처를 감쌌다. 그러자 상처가 천천히 아물어갔다.

 

 “이제 괜찮을 거야”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상처가 깨끗하게 아문 듯, 출혈이 완전히 멈췄고 전혀 아프지가 않았다.

 

 “아프지가 않아요!”

 

 “성법술 처음 보니?”

 

 “본 적은 있지만 직접 겪은 적은 처음이에요. 정말 대단하시네요”

 

 “아니... 뭐...”

 

 의외로 칭찬에 약한 카샤는 이나드의 순수한 칭찬에 간질간질한 느낌을 받았다.

 

 “커헉. 컥!”

 

 노반이 기침을 하며 깨어났다. 그에 이나드가 자세를 잡고 경계를 취하자, 노반은 손을 들어 의사가 없음을 표하며 벽에 기대 앉았다.

 

 “걱정 마, 복수 같은 건 눈곱만큼도 생각이 없으니까”

 

 그 말에 이나드는 자세를 풀고 카샤는 말을 걸었다.

 

 “노반씨 혹시...”

 

 “아. 영주에 대해서 물어볼 거면 소용없어. 난 아는 게 없으니까.”

 

 그 말에 카샤는 약간 실망하며 다시 물러났다.

 

 “하. 이제 돈 줄도 끊겼구만”

 

 말은 그렇게 해도 조금 홀가분하다는 표정이었다.

 

 “아 그러니까... 미안합니다.”

 

 하지만 그걸 알아채지 못한 이나드는 말 그대로 받아 드리며 사과를 표했다. 사실 노반에겐 죄가 없다. 굳이 따지면 주인인 영주를 지킨 죄뿐, 그것도 이단이라고 확정지어지지도 않은 자를 지키려고 한 것이기 때문에 더더욱 죄가 없었다. 오히려 기사도 정신의 으뜸이라며 호사가들이나 음유시인들의 입에 오르내릴 사건이지만, 본인은 그저 돈 때문인 이유였다.

 

 “제가 한 곳을 추천해 드릴까요. 당신이라면 환영받을 겁니다.”

 

 카샤가 이런 말까지 한다니 이나드가 알고 있는 카샤로선 의외였다.

 

 “글쎄... 그것도 나쁘지 않지만 용병 짓이나 다시 해볼까 한다.”

 

 “용병일이요? 용병일을 그만 두려고 기사가 된 것 아니었나요?”

 

 “그랬지만 저 녀석 때문에 마음이 바뀌었다.”

 

 이나드를 보며 말했다.

 

 “저요?”

 

 “그래. 이 나이 먹고 포기했었는데, 좀 더 강해 질 수 있을 것 같아”

 

 그의 눈은 호승심으로 은은히 떠올라 있었다. 팔불출, 또는 노망이라고 표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는 진지했고 그렇게 행동할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노반씨. 다음엔 신의 인도하에 마주하길 바랍니다.”

 

 “나도 그러길 빌지.”

 

 카샤의 인사와 이나드의 눈인사를 끝으로 노반을 뒤로 한 채, 둘은 성을 나왔다. 영지는 아직 별다른 일 없이 조용하지만 이번 일이 알려지면 시끌시끌할 것이다. 하지만 곧 다른 사람이 와서 영주가 되어 평소와 같이 평온해지리라. 그렇게 어찌해야 할지 몰라 하는 경비병들을 지나치다 카샤는 문득 이나드에게 질문을 했다.

 

 “이나드”

 

 “예”

 

 “기사가 나오는 책 중에서 니가 제일 감명 깊게 읽은 책이 뭐야?”

 

 “음... 은색의 검이요”

 

 은색의 검은 대중적이면서 가장 최근에 나온 책으로,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에 활동했던 기사 나스틸 프레이드의 일대기를 다룬 책이다. 그 책에서 그는, 여러 미인들과 공주들을 때로는 산적들로부터, 때로는 마수로부터, 때로는 정치적 위협으로부터 구하는 내용과, 여러 전쟁들을 승리로 이끌어 왕국을 구하는 내용까지 있다. 내용만 본다면 영웅의 일대기를 다룬 대서사시 혹은, 영웅 소설인가 싶을 정도의 이야기로서, 그가 속했던 로턴 왕국 외에 다른 왕국에서도 꽤나 인기 있는 책이다. 하지만 한 편에서는, 내용들이 전부 다 미화된 소설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는데 그 말이 나오는 곳이 바로 로턴 왕국이라는 점에 간단히 넘길 수가 없다. 책에서 나오는 것은 그의 검술 빼고 다 거짓말인데다 사실은 퇴폐적인 사람이래나 뭐래나

 

 “선생님이 그 책에 대해 가르쳐 주시면서, 기사도란 원래 기사를 기사답게 하기 위한 룰이 아니라 안하무인 했던 기사들을 얽매기 위한 룰이라고 가르쳐 주셨죠. 고대의 기사라는 자들은 싸움꾼에 망나니였다고...”

 

 흥미로웠다. 독서가는 아니지만 종종 책을 읽는 그녀로서도 처음 듣는 이야기니 흥미가 안 갈 수가 없었다.

 

 “그리고 3대 기사가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며 만들어진 것이 바로 기사도의 강령원칙이라고 했죠”

 

 3대 기사란, 드래곤에게 억압 받던 인간들을 해방시킨 기사 황제 라인하르트, 기사의 기본적인 검술과 기사도를 처음으로 전파한 마더나이트 니그링, 그리고 전란 종결자 발터. 이 전설적인 세 명을 일컬어 3대 기사라고 칭한다. 이 시기가 수만 년 이전의, 워낙 고대의 역사라서 추측할 뿐이지만 역사가들은 이 인물들의 활동 시기가 각각 30년에서 40년의 차이라고 추측하며, 서로 연관이 있을 수도 있다고 추측할 뿐이었다. 그래서 그가 하는 말이 가설일 뿐이지만 묘하게도 흡입력 있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진도가 거기까지 밖에 안 나가서...”

 

 “진도는 무슨! 거기까지만 알려주는 사람이 어딨어!”

 

 “아리네 선생님이요! 수도원에 있었으면 거기까지 배웠을 텐데... 아 맞다!”

 

 “뭐... 뭐야!”

 

 “그 아저씨랑 통성명 안 했어요.”

 

 “...하?”

 

 “결투를 벌일 때는 통성명을 하는 거잖아요!”

 

 “이름도 아는데 그걸 왜해!”

 

 “비록 이름을 알더라도 그렇게 하는 게 그... 그 뭐냐... 아! 예절이라고요!”

 

 “웃기네! 그것도 아리네라는 사람이 알려줬어!?”

 

 “그럼요! 그리고 책에서도 봤어요 호적수나 마음에 드는 상대랑 결투할 때는 이름을 밝히는 걸요!”

 

 “......”

 

 카샤는 말이 안 나오면서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여러 가지의 생각들로 복잡해졌다. 어떻게 나보다 나이가 많으면서 저렇게 애 같을 수가 있을까, 남자들은 다 저런건가, 안 되겠어 저걸 어떻게 하지 않으면... 등등의 생각이 오갔지만 그 중에서 가장 우선순위의 생각은 이거였다.

 

 ‘아리네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수도원에 책을 갖다 놓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세리오스님께 꼭 물어봐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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