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판타지/SF
당신에게 축복이 함께 하기를
작가 : 한량
작품등록일 : 201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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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작성일 : 17-06-23     조회 : 280     추천 : 0     분량 : 7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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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 모르니까 불침번을 설 거야. 자는 사이에 움직여서 숲을 빠져나올 수도 있으니깐 말이지”

 

 불침번이란 적들의 기습이나 기타 여러 가지를 경계하는 일로, 주로 밤 시간에 행해지며 이나드는 예전에 수도원에서 봉사활동을 나갈 때 해본 적이 있어 나름 익숙하다. 원래는 도적이나 마수들을 경계하는 게 목적이지만, 이 멤버로서 도적은 신경도 안 쓰이고 마수는 파마침으로 인해 오지도 않을 테니 주된 목적은 황혼교단의 사제들이다. 엔지의 말대로 자는 사이에 숲을 빠져나와 다른 쪽으로 행할지도 모르고, 자는 사이에 우리가 습격을 당할 수도 있다. 비록 낮은 확률이지만 그 낮은 확률 때문에 하는 것이 불침번이다.

 

 “두 번째는 내가 할 게”

 

 불침번에서는 순서가 중요한데, 처음과 마지막이 가장 좋고 그 외에는 다 나쁘다. 그 이유야 당연히 자다가 일어나야 하기 때문인데 다행히 엔지가 중간을 맡겠다고 나섰으니, 그로 인해 별다른 문제없이 카샤 – 엔지 – 이나드 순이 되었다.

 

 “시간은... 이거면 되겠지?”

 

 카샤는 품 안에서 모래시계를 꺼냈다

 

 “모래시계? 음... 그 정도 사이즈면 되겠지”

 

 모래시계를 뒤집자, 위로 올라간 모래는 가운데의 조그마한 입구를 통해 조금씩 조금씩 사르륵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직 잠들지도 않았는데 벌써 카운트 하기냐!”t

 

 “그럼 빨리 자. 모래시계의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고”

 

 더 이상 뭘 해도 자신이 손해라는 것을 깨달은 엔지는, 모포를 덮고 잠을 청하기 시작했고 카샤는 시선을 숲으로 옮겼다. 별빛이 가득한 하늘과, 아직 얼마 떠오르지도 않은 채 하늘에 떠 있는 달빛. 그리고 어디에 있을지 모르는 알 수 없는 적. 이나드는 싱숭생숭한 마음을 가지곤 몸을 계속 뒤척였다.

 

 ......툭

 

 이나드의 이마에 갑작스레 툭. 하고 건드리는 느낌이 들었다. 강한 자극도 아니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정신이 번쩍 들어서 벌떡 일어났고, 그걸 본 엔지도 깜짝 놀랐다.

 

 “......!?”

 

 “...깜짝이야”

 

 방금 일어났지만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이 사람이 범인이구나 라는 생각과 불침번 때문에 깨웠구나 라는 판단, 그리고 내가 잠이 들었었나 라는 생각만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어떻게 깨우신 거예요?”

 

 그러자 그는 오른손을 피곤 중지로 바닥을 톡톡 두드렸다.

 

 “정말 그렇게 깨웠어요?”

 

 “음... 성력을 좀 불어넣어서?”

 

 이나드는 정말 성력을 아무렇게나 사용하는 사람이구나 라고 판단했다.

 

 “무슨 일 있었어요?”

 

 “있어”

 

 “뭔데요?”

 

 “조용하고 심심해”

 

 “......”

 

 “이거 사용법 알어?”

 

 엔지는 그렇게 말하곤 모래시계를 건내주었다. 모래시계의 모래는 전부 아래로 내려가 있었다.

 

 “그냥 뒤집으면 되잖아요”

 

 “어. 알고 있네?”

 

 “엔지씨는 저를 너무 무시하시는...”

 

 잠시 시선을 모래시계에 향한 사이, 엔지는 어느 새 모포를 뒤집어쓰곤 고개를 반대편으로 향한 채 누워 있었다.

 

 “......”

 

 잠시 멍하니 있던 이나드는 곧 시선을 숲 쪽으로 향했다. 그렇게 숲을 바라보고만 있자, 여러 생각이 들었다. 곧 있으면 벌어질 싸움에 대한 생각과 이 일을 벌인 장본인들인 황혼교단의 사제들에 대한 생각. 짧지만 강렬했던 교회 생활과 길고 지루했던 수도원 생활, 수도원에서 알고 지내던 사람들에 대한 생각. 의식의 흐름이 거기까지 당도했을 때, 주위의 풍경이 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자, 어느새 하늘과 땅은 온통 푸른빛의 세상으로 변해 있었다. 모래시계의 모래는 모두 아래로 떨어져 있었지만 자신이 모래시계를 돌렸는지 안 돌렸는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이나드가 그렇게 고민하던 중 엔지와 카샤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잠에서 깨기 시작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좋은... 근데 지금을 아침이라고 해야하나”

 

 “......”

 

 엔지의 말을 대꾸하기도 귀찮은지, 카샤는 묵묵히 자신의 모포를 갰다. 그렇게 어젯밤의 흔적을 정리하고 다시금 떠날 채비를 완벽하게 꾸렸다. 이른 새벽이지만, 셋 모두 밥에 대한 생각이 없었기에 바로 출발했다. 숲에 들어가기 전. 엔지는 잠시 멈춰서선 품에서 지도를 꺼내어 살펴봤다.

 

 “여기가 고요의 숲 남쪽인가요?”

 

 “음... 정확히는 동남쪽이지. 지금부터 한... 한시간에서 두 시간 정도 걸으면 도착할 것 같아”

 

 “얼마 안 걸리네요?”

 

 하지만 그의 예상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숲에 들어간 지 벌써 세 시간째. 한 걸음 한 걸음 움직일 때마다 풀들이 부딫히는 소리와 풀과 옷이 스치는 소리가 그들의 귀를 계속해서 자극했다.

 

 “이미 두 시간은 지나지 않았어 오빠?”

 

 “미안하다. 계산을 잘못했어”

 

 숲을 헤치며 움직이고 있는 그들은, 어제에 비해 속도가 많이 늦어졌다. 어제도 길이 아닌 곳으로 이동했지만 평지이기에 속도가 빨랐던 것이지, 숲과 평지의 차이는 매우 크다. 게다가 사람의 흔적이 없는 길로 가고 있기에 더더욱 차이가 심해졌다.

 

 “여긴 길이 없나요?”

 

 “이쪽은 없어.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 아니다 보니, 동서남북으로 대로만 있을 뿐 소로는 없어. 특히 동부랑 남부 쪽은 더해.”

 

 어느 샌가 아침은 밝았고 푸릇푸릇한 숲의 풍경이 돋아나 있었다.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로 가는 중이기에 늑대나 멧돼지 같은 야수가 심심치 않게 보였지만, 다행히도 우리와 접촉하거나 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잠시 멈춰”

 

 갑작스런 엔지의 행동에 이나드와 카샤가 의아해하자 엔지가 입을 열었다.

 

 “저 앞을 봐”

 

 그의 손가락 끝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멀리 보이는 난쟁이 무리가 있었다. 초록색 피부에 헐벗은 채 단검이나 낡아 빠진 나무방패를 들고 있는 무리. 고블린이었다. 이나드도 몇 번 보고 직접 해치우기도 한 종족으로, 힘을 비롯한 전투능력은 약하지만, 다른 마수들에 비해 집단행동을 많이 하는 종족이다. 저 멀리 보이는 고블린들은 꽤 많은 숫자가 비교적 넓게 분포되어 있었고, 어딘가로 이동하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오빠. 이 숲에 고블린 무리가 있다는 소리 들었어?”

 

 “아니 못 들어봤어. 최근에 이 숲으로 들어온 무리일지도 모르겠네. 아래쪽인 차티에 숲에서 건너온 녀석들일지도 모르고...”

 

 “어떻게 하죠?”

 

 이나드의 말에 일단 엔지는 주위를 둘러봤다. 꽤 많은 수인데다, 당분간 이 자리에서 자급자족하거나 자기들의 마을을 구축할 생각인지, 경계병으로 보이는 고블린들이 적잖게 보였다. 그 모습에 엔지는 고민에 빠졌다. 싸운다라는 선택은 당연히 무리였고 돌아가는 것이 안정적이지만, 다른 종족의 냄새를 잘 맡는 저 녀석들에게 들키지 않으려면 엄청 크게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돌아가는 도중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일.

 

 “이나드. 나무 사이를 뛰어 다닐 수 있어?”

 

 나무 사이를 뛰어 다니는 것 정도야 점프만 잘 하면 되는 것 아닌가? 라고 생각했지만, 한 번도 안 해봤다는 점과, 실수로 발이 삐끗해서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그걸 생각하자 아무래도 무리였다.

 

 “아뇨 무립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일단 따라와”

 

 그렇게 말하며 몸을 숙이곤 천천히 소리를 죽이며 움직였다. 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카샤와 이나드도 그처럼 행동했다. 엔지가 향하는 곳은 고블린이 모여 있는 중앙 쪽이 아닌 비교적 외곽 쪽.

 

 “카샤. 그걸 하자”

 

 “그거?”

 

 엔지가 눈 옆에서 주먹을 쥐었다가 피자 카샤는 알겠다는 듯이 끄덕였다.

 

 “응.”

 

 엔지는 간단하게 작전을 설명했다. 이나드는 그 작전의 몇몇 부분이 이해가 되지도 않은데다, 성공할지도 의심스러웠지만 믿고 따를 수밖에 없었다. 셋은 계속해서 최대한 안 들키도록 조심스레 움직였다.

 

 “킁킁”

 

 “키륵? 이게 무슨 냄새지?”

 

 그렇게 말하며 고블린 몇이, 냄새의 근원지인 이쪽을 향해 조금씩 다가오기 시작했다.

 

 “움직여!”

 

 그의 말에 셋은 튀어나와 대각선으로 뛰기 시작했다.

 

 “인간! 인간이다!”

 

 “키르르륵!”

 

 속도는 이쪽이 더 빠르지만. 위치와 경로상 고블린에게 가로막히고 포위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먼저 고블린 한 놈이 엔지의 앞을 가로막자, 고블린들의 눈앞에 조그마한 빛의 구슬 여러 개가 순식간에 떠올랐다.

 

 “지금!”

 

 “이나드! 눈 감아!”

 

 엔지의 말에 이성보다 본능적으로 눈을 감았다. 그 직후, 감은 눈꺼풀 위로도 빛의 자극이 느껴졌고 동시에 고블린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키엣. 눈 눈! 아프닷!”

 

 “키에에에엣~”

 

 눈을 감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눈을 부여잡으며 비명을 지르는 고블린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조금만 늦었어도 똑같은 상황이었으리라. 한편 엔지는 눈을 감은 채로 뛰어가 고블린 한 마리를 그 속도 그대로 걷어찼다.

 

 케에에에엑

 

 “달려!”

 

 그의 말에 이나드는 눈을 뜨곤 작전대로 카샤를 어깨에 들쳐메어선, 그가 개척한 길을 따라 뛰어갔다. 엔지는 가속도를 이용해, 고통스러워하는 고블린들을 발로 걷어차거나 집어 던지며 앞서가고 있었다.

 

 “케륵?”

 

 “키르륵 적이다!”

 

 “인간이다!”

 

 소란을 들은 주위의 고블린들이 이쪽을 발견하고 달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카샤가 계속해서 고블린들의 눈을 멀게 하자 쉽사리 다가오질 못했다. 그렇게 몇 분 정도를 계속해서 뛰어가자. 고블린들의 포위망을 완전히 벗어났고, 집중해서 보지 않는 이상 보이지 않을 만한 거리까지 왔다. 긴장이 조금 풀리자, 죄를 지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자기네들은 그냥 무리를 짓고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왠 인간 3명이 가는 길에 방해가 된다며 쑥대밭을 만들고 지나갔으니 말이다. 이나드는 마음속으로 고블린들에 대해 작게나마 용서를 빌었다.

 

 “다들 수고했어”

 

 “이제 내려줘도 되는데”

 

 엔지의 목소리와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아직도 어깨에 둘러메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네.”

 

 조심스레 허리를 숙이자 읏차! 하는 소리를 내며 그녀의 두 다리가 땅 위에 안착했다.

 “움직일 수 있겠어?”

 

 “응. 순간적으로 성력을 많이 사용했을 뿐이니까. 이제 멀쩡해”

 

 둘의 대화를 듣자 엔지의 명령이 이해됐다. 카샤를 그냥 두었다면 혼자 낙오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호흡이 엇나갔다면 엔지와 이나드는 눈을 부여잡고 비명을 지르는 고블린들 중 하나에 포함되었을 터.

 

 “그러니까 내가 훈련을 하랬지. 성력 좀 사용했다고 픽픽 쓰러지는 거 봐라 에휴”

 

 “힘만 센 주제에 큰 소리야 지는 이런 것도 못하면서!”

 

 보기엔 저래도 둘의 호흡과 유대는 보기보다 깊은 것 같았다.

 

 그렇게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고 얼마 후, 카샤는 뭔가를 느꼈는지 하늘을 쳐다봤다.

 

 “엔지 오빠 잠깐.”

 

 “왜?”

 

 “하늘을 봐봐”

 

 그렇게 말하며 엔지와 이나드는 카샤가 보고 있는 쪽을 쳐다봤다. 그러자 머리 위를 선회하고 있는 작고 하얀 새 한 마리를 볼 수 있었다. 로빈이었다.

 

 “저 새는 우릴 어떻게 찾아오는 거죠?”

 

 탁 트인 곳이라면 이해를 하겠지만 이런 숲 속에서도 찾아오다니

 

 “똑똑해서 그래”

 

 “......”

 

 “로빈~”

 

 선회하던 로빈은 자신을 부르는 말을 듣곤 매끄럽게 날아와 카샤의 검지에 착지했다.

 

 “안녕”

 

 “뾰롱”

 

 로빈이 상큼하게 대답하자, 그녀는 로빈의 발에 묶여있던 서신을 풀어 엔지에게 주곤 로빈에게 먹을 것을 줬다. 로빈이 모이를 먹는 사이, 엔지는 서신을 펼쳐 봤고 이나드는 그 서신을 힐끔 쳐다봤다. 하지만 이나드가 읽기도 전에 다 읽은 엔지는 서신을 품 안에 집어넣고 조그마한 종이와 펜을 꺼내, 뭐라고 슥슥 적고 로빈의 다리에 묶었다. 그러자 카샤는 로빈을 띄워 보냈고, 로빈은 그대로 훨훨 날아갔다.

 

 “뭐라고 적혀 있었어요?”

 

 “너도 같이 봤잖아”

 

 “제대로 못 봤어요”

 

 이나드는 엔지 사제님보다 키가 작아서라는 뒷말을 눈물을 삼키듯 삼켜내었다.

 

 “그래서 내용은?”

 

 “일단 만나자고 하면서 이쪽으로 오래”

 

 “누가요?”

 

 “파랑새가”

 

 “파랑새라면... 그 정보꾼이요?”

 

 “정보꾼이라...”

 

 엔지는 그가 정보꾼이라는 말을 좋아 할지 안 할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얼마나 걸려?”

 

 “한 시간에서 두 시간쯤?”

 

 그의 말에 카샤와 이나드는 엔지의 얼굴을 약간 의심스런 눈초리로 지긋이 바라봤다.

 

 “진짜야 진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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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정말 한 시간 즈음 후

 

 “이... 쯤하면 보일 텐데... 찾았다! 슬픈 엘프의 나무”

 

 조금 초조해진 그의 시선 끝엔 저 멀리 커다랗고 눈에 띄는 나무가 보였다. 그 나무는 주위의 다른 나무들에 비해 두 배 이상은 커다랗고, 색도 유난히 다른 나무였다.

 

 “왜 그런 이름을 가졌어요?”

 

 “옛날에 어떤 엘프가 인간 여자와 사랑에 빠져선 이곳에서 집을 짓고 살았는데 여자가 수명이 다해 죽자, 슬퍼하던 그 엘프는 아내가 죽은 자리에 나무를 심었는데 그 나무가 이렇게 되었다고 해. 그래서 슬픈 엘프의 나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지.”

 

 “근데 카샤 넌 여기가 처음이 아닌 것 같다?”

 

 “저번에 마들린 언니가 데려갔었지.”

 

 “마들린이?”

 

 “응 전원에게 소풍가자고 했을 때”

 

 “아 그때... 잠깐”

 

 “잠깐만요 소풍간다고 거기서부터 여기까지 왔다고요?”

 

 말을 듣던 이나드가 엔지의 말을 자르곤 흥분하며 말했다.

 

 “응”

 

 “걸어서요?”

 

 “당연히 말타고 왔지”

 

 “너 말 못 타잖아”

 

 “언니 뒤에 매달려서 왔지”

 

 그렇게 말하는 카샤의 얼굴은 결코 좋은 안색이 아니었다.

 

 “... 더 이상 묻지 않을게”

 

 “고마워 오빠”

 

 둘의 상태로 봐선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걸음을 조금 옮기자. 나무가 한 가운데에서 우뚝 서 있는 공터에 들어섰다. 이나드 자신도 모르게 나무를 바라보고 있자 한 사내가 그 나무에서 떨어지듯 나타났다. 갑작스런 그의 등장에 순간 경계를 취했지만 둘은 약간 놀라기만 했을 뿐이었다.

 

 “경계 할 것 없어. 저 사람이 파랑새야”

 

 엔지와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얼굴과 큰 키, 짧은 갈색머리와 무뚝뚝해 보이면서도 날카로워 보이는 눈매.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마치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하며 익숙한 느낌이었다.

 

 “오랜만이야 네이튼”

 

 네이튼이란 사내는 엔지와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방금 전의 행동으로 인해서 더더욱 기시감이 강하게 느껴졌다. 그건 바로...

 

 “네이튼씨!”

 

 “...무슨 일이지”

 

 카샤의 흥분한 말투에 의해 말문을 연 그의 목소리는 감정이 담기지 않은 무미건조한 말투였다.

 

 “저번의 일에 대해 설명해 주실까요? 델리영지 말이에요”

 

 “...?”

 

 “기사가 별거 없다고 적어주셨던 거요!”

 

 “...아. 그거 말인가”

 

 잠시 생각하던 그는 별거 아닌 듯이 말했다.

 

 “예! 익스퍼트 초급 기사였는데 그게 별거 없는 건가요!”

 

 “익스퍼트 초급이라... 예상을 벗어나긴 했지만 그다지 별거 없는 건 사실이다.”

 

 “별거 없다뇨! 이쪽은 엄청 별거 없어서 죽을 뻔 했는데!”

 

 카샤는 이나드를 가리키며 말했다.

 

 ‘감싸주는 건가? 욕하는 건가?’

 

 이나드는 감격을 받아야 하는 타이밍인지 화낼 타이밍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실례했군 미안하다. 사과하지”

 

 “흥!”

 

 잠시 이나드를 바라보던 네이튼은 카샤에게 사과했다. 정작 사과를 받아야 하는 사람은 제쳐놓은 채 카샤에게 사과하기에 뭐라고 항의 하려던 이나드는 그가 자신에게 고개를 돌리자 입을 다물곤 내심 기대했다.

 

 “노력하도록”

 

 “......”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네이튼.”

 

 엔지의 말에 그는 아무 말 않고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상황은 알 거야. 부탁해.”

 

 그의 말에 네이튼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도와주겠다. 하지만 도와주는 건 너희가 들키지 않고 수뇌부에게 다가가는 것까지. 이의있나?”

 

 그의 말에 엔지는 얼굴을 찡그리곤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래”

 

 “엔지 오빠!”

 

 “어쩔 수 없어. 애초에 계약이 간접적으로 도와주는 거였으니 이렇게까지 도와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여겨야해 우린”

 

 그렇게 말하자 카샤는 혀를 찼고, 네이튼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럼 따라오도록.”

 

 “아무튼 빚진 거니까 잊지 마요!”

 

 카샤는 앞서서 지나가는 그에게 똑똑히 들으라는 듯, 한 마디 했지만 그는 아무런 반응 없이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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