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곳이군”
높은 곳에서 네이튼이 가리키는 곳을 내려다보자 숲 너머 동굴로 보이는 입구와 그 주변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 근처를 순찰하는 사람들이 한 눈에 보였다.
“...저런 곳이 있었네”
“정말이지 숨는 거 하난 잘한다니까”
엔지와 카샤의 칭찬인지 푸념인지 모를 것들이 들려왔다.
“언제 움직일 거지?”
“오후와 저녁의 사이”
엔지의 대답에 잠시 생각하던 네이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들을 향해 이나드가 다가왔다.
“저기 그 전에... ”
꼬르륵
“식사부터 하면 안 될까요?”
“나도 배고파”
이나드의 생체적 신호와 카샤의 원호가 이어졌다.
“그러고 보니 아침부터 아무것도 안 먹었지. 시간도 아직 꽤 남았고... 너도 먹을래?”
“난 순찰을 다녀오지.”
엔지의 제안을 거절한 그를 제외하고 식사를 마친 그들은, 돌아온 네이튼에 의해 여러 주입식 교육과 훈련을 받았고, 엔지가 말했던 시간이 다가오자 적들에게 들키지 않을 정도의 거리까지 다가갔다.
“따라오도록. 그리고 무조건 내 지시에 따르고, 말하지 말고 나처럼 행동할 것. 그리고 최대한 소리를 내지 말고 조용히 할 것”
안으로 침투하기 전. 네이튼은 무뚝뚝하게 지시를 내렸다. 중요한 말이지만 아까 전부터 수시로 하던 말이어서 그를 제외한 모두에겐 지겨운 소리였다. 그를 따라 이동하자 조금씩 적들의 모습이 보였다. 석양이 지며 조금씩 어둠이 깔리고 있었지만 아직 횃불을 밝히기엔 애매한 상태. 이것이 바로 엔지가 노린 시간이었다. 그렇게 셋을 이끌던 네이튼은 갑자기 우뚝 멈춰 서곤 가만히 있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었지만 그게 몇 분이 지나자 의아함과 궁금증이 샘솟아, 이나드의 입을 열게 만들었다.
“무슨...”
“쉿”
가만히 있던 그는 돌연 한 걸음씩, 자신의 걸음을 카운트하듯 신중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략 열 발자국 정도 움직였을 즈음 서서히 땅에 엎드렸다. 그렇게 행동하자 남은 모두는 그를 따라 행동했고, 그와 동시에 누군가가 저벅저벅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점점 커지던 발소리는 풀숲 하나만을 거리에 두곤 멈춰섰다.
그에 카샤와 이나드는 당황했지만 아무런 미동도 없는 네이튼의 모습에 믿음을 가져 보기로 했다. 믿음에 보답을 받은 듯 발소리는 점점 멀어져 갔다. 서서히 일어나는 네이튼을 따라서, 일행은 일어나기 시작했다. 네이튼은 그들의 믿음에 보답하듯, 그는 순찰루트와 순찰자의 시야범위, 그리고 사각까지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거침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때론 숨도 쉬지 않은 듯이 조용히, 때론 아주 살금살금 움직였고, 때론 과감히 움직이며 동굴을 향해 파고들었다. 그렇게 동굴 입구의 근처까지 다다랐을 때였다.
“잠시.”
10미터 정도 거리의 동굴 입구엔 두 명의 사내가 창을 쥐곤 경비병처럼 주위를 삼엄하게 둘러보고 있었고, 별도의 움직임이나 잡담 같은 것도 없었다. 하지만 상정 내라는 듯 그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엔지가 네이튼을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둘을 가리키자, 그는 목을 가리키며 엔지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그에 엔지가 오른손 엄지로 오른쪽을 가리키는 듯한 시늉을 하자, 네이튼은 왼손으로 3개의 손가락을 들어 올렸고 그는 손가락을 보곤 능청스럽게 시선을 옮겼다. 그렇게 아무런 말없이 의사소통을 하는 모습에 이나드의 눈은 반짝였다. 세 개의 손가락이 두 개로, 두 개의 손가락이 하나로, 마지막 하나의 손가락마저 회수되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무언가를 날렸다. 이나드는 무언가를 던졌다는 걸 보긴 했지만 시선이 속도를 따라갈 수 없었다.
“윽”
“읍”
그렇게 둘은 작은 신음소리만 낸 채, 스르륵 무너져 내렸다. 두 사내의 목에 꽂힌 것은 동일한 물건으로 짧은 화살처럼 생긴 물건이었다. 이나드는 질문하고 싶은 게 많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중요한 것을 우선적으로 물어봤다.
“죽은 건... 아니겠죠?”
“마취 다트야 죽진 않았을 거야”
그 뒤에 아마도 라는 말이 들린 듯 만 듯 했지만 애써 무시했다. 그리고 엔지와 네이튼은 그 둘을 들어 부축해선, 이리저리 뭔가를 하더니 벽에 기대어 쓰러지지 않게 조치했다.
“안 걸리나요 이거?”
“어지간히 가까이 오지 않거나, 어지간히 운 나쁘지 않은 이상 걸리지 않는다. 그것보다 곧 있으면 순찰자들이 돌아 올 거다. 빨리 들어가”
무뚝뚝한 태도에 무뚝뚝한 말이었지만, 엔지는 이 한 마디는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고마워 네이튼”
그의 말을 기점으로 카샤와 이나드는 네이튼을 향해 목례를 했다. 그들의 행동에 잠시 멈칫하던 네이튼은 단지 고개만을 끄덕였다. 그리곤 셋은 동굴 속으로 발걸음을 서둘렀다. 잠시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네이튼도 자리를 벗어나 풀숲에 몸을 숨겼다. 그렇게 그 곳에서 완전히 벗어나려던 그의 귀에 뭔가가 들렸다. 순찰자들의 발걸음이었다. 순찰을 돌던 그들의 시선이 잠시 경비병들에게로 향했지만, 다시 시선을 돌려 움직이리라 라고 네이튼은 생각했다.
“응? 쟤네들 왜 이래?”
하지만 그들은 그의 예상과 다르게 말하며 그와 엔지가 조치한 경비병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좀 전의 자신이 말했듯 대체로 안 걸리지만, 어지간히 운 나쁜 날이면 들키게 된다. 그 운 나쁜 게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순찰자들은 점점 더 경비병에게 다가갔다. 그들은 곧 눈치 채겠지만 이젠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 그렇게 생각하며 재차 걸음을 옮기려던 그에게 한 마디 말이 그의 뇌리에 스쳐지나갔다.
‘아무튼 빚진 거니까 잊지 마요’
“...빚. 빚이라... 빚이군 이건”
그렇게 말하며 품 속의 단검에 손을 가까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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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동굴을 내부를 향해가던 그들은 불빛이 보이자 잠시 걸음을 늦추곤 천천히 걸었다. 엔지는 커다란 석순 하나를 등지고 내부를 힐끔 쳐다봤지만 바위에 앉아 턱을 괴고 있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마치 그들이 오고 있는 걸 알고 있었다는 듯이
“기습을 하려는 거 같은데 그냥 나오시죠 몰래 오신 분들?”
“들킨 거 같은데요”
“그것도 진작에”
“...그러게”
이나드와 카샤의 말에 머쓱해진 엔지는 고개를 약간 으쓱하며 앞장섰다. 그를 필두로 걸어가던 이나드의 눈에 동굴의 내부를 볼 수 있었다. 동굴의 여기저기를 밝히고 있는 횃불과 동굴 끝자락에 존재하는 마법진, 그리고 그 앞에서 모여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방금 전 엔지를 무안하게 만든 사내와, 말이 없어 보일 정도로 딱딱한 얼굴을 하고 있는 한 명. 그리고 그들 뒤에서 자리하며 리더로 보이는 자 한 명. 총 세 명으로 리더를 제외하곤 모두 30대는 되나 싶을 정도로 젊은 얼굴이었다.
“교회의 개들이군”
엔지들과 비슷한 양식에 남색으로 색이 입혀진 옷을 입고 경건한 자세로 서 있는 사내는 공격적인 어투로 말을 건냈다.
“그러는 그 쪽은 황혼교단의 더러운 이교도들이군”
“이교도? 그걸 판단하고 있는 건 순전히 그쪽들의 생각 아닌가”
“자신들이 한 짓을 모른다니 악질 이교도들이군”
“말이 안 통하는 군”
엔지와 말을 나누던 리더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뒤로 물러났다.
“언젠 말이 통한다고 생각했나 멍청한 이교도?”
“...막아라”
대화를 포기하고 뒤로 물러나 마법진으로 걸음을 옮긴 그는 품에서 주먹만 한 구슬을 꺼내었고, 두 명은 그의 말을 듣곤 각각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하지만 엔지를 비롯한 세 명은 구슬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거군요”
“그래 저거야”
수상한 자의 손에 들려있는 그 구슬은 마법진에 반응해서인지 멀리서도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일렁이는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어떻게 하죠 엔지 사제님?”
“음... 어떻게 할래 카샤”
“......”
자신에게 떠 넘겨진 상황에 조용히 화를 내는 줄 알았지만, 그녀는 그저 마법진과 마법진에 들어간 그, 그리고 일렁이는 구슬만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내가 저자에게 접근할 게”
“저게 무슨 의식인지 알겠어?”
“내가 무슨 신부님인 줄 알아? 직접 보고 파악해 봐야 아는 거지”
“모르는데도 그러시는 겁니까?”
“그럼 내가 저런 사람들이랑 싸우는거야?”
그녀의 말에 가로막고 있는 둘의 모습을 살펴봤다. 왼쪽의 사내는 리더와 같은 옷을 입은 채 두 손을 아랫배에 갈무리하고 있었고, 그의 팔과 손은 본인의 얼굴보다도 우악지고 다부졌으며, 다른 한 명은 얼굴을 제외한 전신의 대부분을 기다란 로브로 가리고 있었다. 오래된 듯 적당히 해진 로브와 귀찮다는 듯이 뚱하고 있는 얼굴, 그리고 오른손에 들려있는 가죽 주머니가 자신은 평범한 거렁뱅이가 아니라는 듯 이상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왼쪽은 내가 맡을 테니 오른쪽은 니가 맡아라”
“저도 왼쪽의 사람과 싸우고 싶은데요”
확실한 전투 사제(격투가)와 확실하게 이상한 사람. 둘 중 누구를 고르냐고 하면 당연히 전자다.
“오른쪽이 훨씬 약할지도 모르잖아 내가 빨리 끝내고 도와줄게 카샤 준비됐어?”
“응 준비됐어”
이번에도 이나드의 의사는 무시한 채 작전이 시작되어 가고 있었다.
“셋을 셀 테니 나는 험상궂은 형씨에게, 이나드는 저 이상한 녀석에게, 그리고 카샤는 우리가 둘을 맡는 사이 틈을 봐서 안쪽으로. 알겠지?”
역시 엔지씨도 상대하기 꺼려하는 것 같았다.
“예”
“응”
“그럼 준비하고... 셋”
이나드는 장갑을 착용했고
“둘”
카샤는 은은하게 성력을 끌어 올렸다.
“하나!”
가장 먼저, 가장 빨리 움직인 엔지의 주먹이 굳은 얼굴을 한 사내의 가드에 막혔고, 로브의 사내에게 달려가던 이나드는 주머니에서 튀어나온 물체를 막아 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흙먼지가 일었고 그 틈을 타 카샤는 빠른 몸놀림으로 유유히 빠져나가 마법진 안으로 다가갔다. 그 모습을 본 로브의 사내는 카샤를 향해 시선을 돌리곤 다시금 가죽주머니에 물건을 집어넣었다.
“그만”
엔지와 밀어내며 거리를 벌린 그 사내는 오히려 그를 제지했다.
“의식에 문제가 갈 수 있다.”
“그렇군요”
그렇게 시선을 다시 이나드로 향해 돌렸고, 카샤는 마법진 안으로 들어갔다. 사내는 마법진의 가운데에서 두 손으로 구슬을 감싸쥐곤 눈을 감은 채 의식을 행하고 있었다. 그걸 보곤 달려가던 가속도 그대로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잘못된 자들을 이 손으로 규탄할지니. 하압!”
파지지직
성력과 주술의 힘을 담은 공격으로, 여태까지 여러 개의 결계와 보호 마법들을 부숴왔던 손이지만 그에겐 생각보다 강력한 보호가 펼쳐져 있었다. 게다가
‘저 구슬로 이뤄지는 것 같네’
그 보호 마법은 구슬에게 계속 힘을 공급받고 있었다. 저 사내가 직접 펼친 마법이라면 계속해서 힘을 가해 부숴버릴 생각이었지만 상황이 이러하니 보호막을 일격에 부숴버려야 하는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녀에겐 그만한 힘이 없다. 게다가 술자의 힘에 의해 행해지는 주술이 아닌 이상 외부적인 강제력을 가하면 매우 불안정해지기 마련. 하다못해 술자의 힘이 주도적이고 저 구슬이 보조적인 도구라면 큰 여파는 일어나지 않을 테지만, 최악의 경우 구슬의 힘이 미쳐 날뛰거나 폭발하게 될 지도 모른다. 이렇게 된 이상 정석적으로 의식에 대한 정보와 구조를 파악하고 천천히 장악하며 지워나가는 수밖에 없다. 이것이 가장 힘들고 복잡한 방법으로, 성공할 수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이지만 그녀는 무릎을 꿇고 손을 맞잡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