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어떤 소리도 없이 공격만 오가고 있었, 아니 한 쪽의 일방적인 공격과 한 쪽의 일방적인 방어만이 있었을 뿐이다. 끊임없이 연계되는 공격과 그 공격들을 전부 막아내는 방어. 물 흐르듯이 이뤄지는 공방이었지만 정작 엔지는 답답할 따름이었다. 분명 약하다. 누가 봐도 저 녀석이 나보다 약하다고 할 테고 하물며 이나드가 봐도 ‘저 사람이 더 약하네요’ 라고 할 것이며 이 상태로 20분 정도면 쓰러뜨릴 수 있고, 전력을 다하면 금방 쓰러트릴 수 있는 녀석이다. 하지만 그렇게 싸워선 안 된다는 상황과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점이 엔지를 짜증나게 했다. 상성과 상황. 저번에 이나드와 노반이라는 사람과의 대결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는데 지금이 딱 그 상황이다. 반대의 상황으로, 게다가 그 것보다 상황이 더 안 좋다. 시간만 끈다면 저 녀석의 승리. 하지만 그렇다고 마구잡이로 공격을 하다간 바닥에 눕는 게 자신이 될 것이다. 카샤의 상황을 보자 여태까지의 경험상 힘을 반 정도는 남겨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하다못해 ‘그거’라도 있었으면 나았을 텐데...‘
그렇게 속으로 한 숨을 내쉬었지만 엔지가 아까 전부터 뿌려놓은 씨앗이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상대는 상체를 숙이곤 발의 움직임을 가볍게, 두 팔은 가슴 앞에 두어 공격에 대비했다. 그 모습을 본 엔지는 자세와 호흡을 가다듬고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왼손 오른손이 여러 번 교차하며 지나갔지만 상대는 여태까지와 같이 전부 막아내었다. 하지만 다시금 날린 가벼운 왼손 공격이 끝남과 동시에, 강화를 통해 속도를 올린 엔지는 상대의 우측을 향해 한 발자국 크게 파고들며 얼굴을 향해 훅을 날리려 했다. 이에 한 번도 반격을 하지 않았던 그가 기다렸다는 듯이 반격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상황이 변했다.
“!”
여태 하단 공격을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엔지가, 갑작스레 몸을 급격히 비틀어 다리를 향해 공격을 한 것이다. 중단과 상단만 공격해서 자신은 그 쪽만 공격한다는 걸 상대가 무의식적으로 기억하게 한 후, 갑작스런 인파이팅과 페이크 공격. 그로 인해 철벽같이 버텨내던 그가 처음으로 제대로 된 공격을 허용한 것이다. 그렇게 그의 얼굴은 처음으로 일그러졌지만 엔지는 그런 걸 볼 겨를이 없었다. 엔지의 팔은 낫으로 곡물을 베듯 그의 다리를 걸어 넘겼다.
“큿”
그렇게 그는 빙판길에 사람이 미끄러져 넘어지듯 기우뚱하며 두 팔과 두 다리 전부 땅에서 떨어진 우스운 모습이 되었고 엔지는 그걸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땅으로 낙하하는 그의 얼굴을 향해 망치를 내려치듯 오른손으로 얼굴을 내려쳤다. 그 와중에도 팔을 밀쳐내어서 뺨 한 면을 내려치는데 그쳤지만, 광대뼈가 부서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
소름 돋는 소리와 함께 고통이 밀려왔지만 고통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낙법을 하고 한 바퀴 구르며 일어나려 했지만 미처 일어나지도 못한 그를 향해 엔지의 발차기가 반월을 그리며 달려들었다. 피할 수 없었던 그는 팔을 X자로 교차해 막았지만, 충격을 이기지 못하곤 또 한 번 우스운 모습을 보이며 뒤로 날아갔다. 엔지는 그런 그를 마무리하기 위해 달려들었지만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날아드는 것을 보자 걸음을 멈추곤 회피해냈다. 하지만 폭발 범위를 모르던 그는 물체가 터지며 생기는 여파에 당할 수밖에 없었다.
“엔지씨!”
“야! 못 이기더라도 이쪽에 간섭하게 두진 말아야지! 그리고 호칭이 왜 그래? 사제님이라고 해야지!”
이나드는 순간적으로 마음으로만 외치는 호칭을 내 뱉었지만, 목소리를 듣자 비교적 멀쩡한 모습에 안심했다. 그리고 엔지는 상대를 돌아보자 아까보단 기세가 줄었지만 비교적 멀쩡하게 서서 방어하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끝낼 수 있었는데... 칫”
“......”
엔지의 아쉬움 가득한 도발에도 동요하지 않은 채, 단단하게 방어 자세를 취했다. 그 모습에 다시금 아쉬워하며 천천히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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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비낭은 지금 고통 받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둘의 상황을 보면 고통 받는 건 이나드쪽이라고 판단하겠지만, 그는 외적이 아닌 내적으로 고통 받고 있었다. 자신이 실전형 룬 마법사이긴 하지만 싸움을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스승에 의해 팔리다시피 끌려온 지금, 적극적으로 임할 마음은 전혀 없었다. 게다가 상대가 교회의 사제라면 더더욱 싫다. 상성의 문제가 아니라, 이기든 지든 운세가 나쁘고 죄를 짓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 리스츠교의 신자도 아닌데 말이다. - 솔직히 지금이라도 항복하거나 벗어나고 싶은 심정이지만 마법사의 계약이라는 것이 그의 발목을 칭칭 감고선 땅속에 박아 놓고 있었다. 그래서 마음대로 지지도 못하고, 빨리 쓰러트리고 싶어도 맷집이 좋은 건지 실력이 좋은 건지 룬 석을 몇 번이나 맞았는데도 멀쩡하게 일어나는 그의 모습에 질리고 있었다. 그렇게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며 대치하던 중, 이나드는 뭔가 생각이 났는지, 잠시 가만히 있더니 그를 중심으로 뱅뱅 돌았다.
“그렇게 나오시겠다?”
확실히 저러면 목표를 확실히 맞추기가 힘들다. 하지만 그러면 다른 방법이 있다. 엔지쪽을 향해 시선을 돌리자. 이나드가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이 움직였다. 그에 돌을 날렸지만 이번에는 예상했다는 듯이 홱 피해냈다. 멀어지는 듯하면서 가까이 오는 듯한 움직임을 취했고, 중간 중간 상체를 숙이며 피하는 듯한 모션을 취하며 움직였다. 어차피 자신은 시간을 끄는 것이 목적이다. 쓰러뜨리는 것이 최선이지만 시간을 끄는 것만으로도 충분. 자신을 무시하고 저쪽으로 움직인다면 그 때야말로 그의 제삿날이다. 미리 심어 놓은 룬 석들과 자신의 투석폭격이 이어질 테니. 그렇게 생각하며 움직임을 눈으로 쫒던 도중. 이나드가 갑작스레 움직임이 멈추곤 왼발을 크게 내딛은 돌진자세로 바꿨다.
“역시!”
그러나 그에게 다가온 것은 그도, 그의 몸체도 아닌 물체였다.
“뭣!”
그리고 그 속도에 놀라, 자신도 모르게 방호룬을 하나 써버렸다.
“역시”
함정용과 공격용 마법이 있으면 방어용도 있을 거라 생각는데 역시나. 가만히 있으면 당하고, 가까이 가면 당한다. 그럼 ‘멀리서’, ‘이동하면서’ 공격하면 되지 않는가? 공격 수단은 저 녀석이 던진 돌의 파편들, 그 외에도 애초에 여기에 존재하는 돌들이 널려있다. 그걸 힘차게 던지면 되는 것. 저자처럼 주머니를 다루는 능력은 없어도, 이 거리에서 돌을 던져 사람하나 맞추는 건 식은 수프 마시기다.
이나드의 돌팔매를 피하기 위해. 움직였지만 그의 몸으로 건장한 사내의 돌팔매를 전부 피하는 건 역부족이었다. 방호룬이 있긴 하지만 겨우 이런 공격을 막아내자고 일회성 방호룬을 사용하는 건 정신 나간 짓. ‘일회성이 아닌 지속성을 하나 각인해 둘 걸...’ 이라고 후회했지만 이미 늦은 일. 돌팔매질에 대응해서 공격을 가했지만, 유유히 피해냈다 좀 전의 경험으로 인해 폭발할 것까지 예상해 멀찌감치 피해내자 그로선 어떻게 할 겨를이 없었다.
“비겁한...”
“그 쪽이 하던 짓을 따라할 뿐인데요?”
그렇게 두 개구쟁이의 돌장난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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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는 확실하게 인정했다. 방어술 하나만은 자신보다 뛰어나다는 점을. 엔지는 생각을 바꾸어 팔을 부수기로 했지만 그건 무식한 생각이었다. 상대의 소매는 넝마가 되었고 팔은 여기저기 울긋불긋한 색이 되어 퉁퉁 부었지만 그뿐이었다. 눈빛은 여전했고 팔의 움직임이 약간 둔해졌지만 엔지의 공격을 방어하는 데엔 큰 지장이 없었다. 오히려 엔지의 주먹에 무리가 와 조금씩 떨렸다. 지금 상태에선 실수로라도 주먹과 팔꿈치가 부딪히게 된다면 금이 가거나 부러지게 되리라.
엔지는 카샤쪽을 흘깃 쳐다봤다. 좀 전에 비해 확연히 커진 마법진의 모습에, 저쪽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심상치 않다는 걸 눈을 포함해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나드쪽도 상황은 여의치가 않았다. 그렇다면 이 일을 타개해야 하는 것은
“연장자가 해야 할 일이지... 하아...”
한숨 섞인 말투와는 다르게 격렬한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여태까지완 다르게 반격을 할테면 하라는 듯 지근거리에서 위력적인 공격들이 쏟아졌고, 그 모든 공격을 막아내는 것이 무리였는지 철벽같았던 방어에도 드디어 틈이 생겼다. 엔지는 그 틈을 향해 일격을 내질렀지만 그것은 함정이었다. 몸을 비틀어 피해를 최소화 한 그는 엔지의 옆구리를 향해 첫 공격을 가했다.
뿌드득
“큽”
그는 갈비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타격감을 함께 느끼곤 엔지가 그대로 뒤로 물러나는가 싶었지만, 팔에 느껴지는 무게감을 느낄 수 있었다. 엔지가 왼팔로 그의 팔목을 잡아, 뒤로 물러나는 것을 최소화 한 것이었다.
“흡”
엔지의 행동에 당황한 그는 또 다시 행동이 한 발자국 늦어지게 되었다. 엔지는 호흡을 멈추곤 한 발자국 전진, 왼손으로 팔을 당기며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아까 전, 엔지가 공격한 곳이었다.
“크으읏”
충격에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그의 왼손이 먹잇감을 물은 맹수처럼 놔주질 않았고, 여태까지의 좀 전의 복수를 하듯 연속적인 옆구리 공격이 이어졌다. 숨이 턱턱 막히는 일격 일격에 위험을 느낀 그는 온 힘을 써서 팔목을 잡은 왼손을 떨쳐냈지만, 이번엔 왼손의 손가락들이 그의 오른손의 손가락들을 촘촘하게 옭아매었다. 그렇게 돼서야 엔지는 멈췄던 숨을 크게 들이 쉬었다. 그러자
“흐으읍...”
옆구리의 고통이 몰려왔다.
“크으아윽...”
애초에 거북이가 머리를 내밀기 위해 한 행동이었지만, 방금 허용한 공격은 일부러 맞은 것이 아녔다. 피할 수 없었던 일격이었고, 예상보다 강력한 일격이었다. 공격을 예상하고 성력을 옆구리로 집중해 방어했기에 이 정도지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었으리라. 폐부를 찢는 듯한 고통 속에서도 엔지의 눈은 날카롭게 빛내고 있었다. 그가 깍지 낀 손을 뿌리치려고 해도, 힘으로 눌러보려고 해도, 왼손으로 때려봐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은은한 손아귀의 고통이 그를 통해서 느껴지고 있을 뿐이었다. 어쩔 수 없이 남은 손으로 방어를 했지만, 잘 쓰는 손인 오른손이 봉인 되었고 두 손으로 방어하는 범위에 비해 한 손은 너무나 부족했다.
“컥. 커헉”
엔지는 나머지 손에 성력을 불어 넣곤 얼굴, 배, 가슴, 옆구리, 명치 등을 쉼 없이 공격했고, 계속해서 허용되는 공격에 반격을 하려고 했지만 그마저도 엔지에 의해 저지되어 계속 두들겨 맞을 뿐이었다. 그 모습을 발견한 테비낭은 도와주려 했지만, 그걸 이나드가 놓치지 않았다. 쥐고 있던 돌을 그에게 던지곤 성력으로 전신강화를 하며 다시금 달려들었다.
‘돌이 날아오는 타이밍은 회전속도가 빨라지며 팔이 앞으로 향하고 가죽주머니가 아래로 내려왔을 때.’
계속되는 공격으로 인해 이나드는 공격모션과 타이밍을 파악했다. 물론 타이밍을 재고 피하는 게 쉬운 건 아니지만 날아오는 돌을 보며 피하는 것보단 훨씬 쉬운 편이다. 그가 계산한 것처럼 테비낭의 팔이 앞으로 향하고, 슬링의 회전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것에 집중하자 시간이 느려지듯 그의 몸동작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지금!’
어디로 공격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주로 공격하는 곳은 몸통과 머리. 그걸 생각하고선 사선으로 몸을 날리며 굴렀다. 추하고 웃기는 모습이지만 효과는 뛰어났다. 구르며 일어나는 그의 등에 폭발로 인한 여파가 날아들었지만 제대로 맞은 때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었다. 그렇게 몸을 일으키며 재차 달렸다. 남은 거리 약 8미터.
“따악”
손가락이 튕기는 소리와 함께 좀 전과 다른 위력의 불기둥이 솟구쳤지만, 이미 예상한 이나드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팔을 X자로 교차하며 함정을 넘어섰다. 놀란 그의 모습이 가깝게 보였다.
“이 거리라면 어떻게 못 하겠죠?”
지근거리까지 들어온 모습에 경악하곤 뒤로 물러나며 왼손을 품 안에 넣어서 돌을 꺼냈다.
“라-ㄱ 이런!”
돌을 쥔 왼손을 정면에 뻗었지만 그가 보게 된 것은 오른쪽으로 스쳐 지나가는 이나드의 모습이었다. 다시 그를 향해 시선을 돌렸지만 그는 왠지 모르게 뒤로 물러나 있었다.
“뭐 잃어버린 거 없어요?”
이나드의 손에 들려있는 슬링을 보고서야 오른손이 허전함을 느꼈다. 그걸 깨닫곤 주머니에 담겨있던 룬 석의 마법을 발동시키려 했지만 이미 주머니는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저게 없으면 끝이지!”
이나드는 승리를 확신하는 표정으로 돌진했지만 테비낭은 생각보다 절망적인 얼굴이 아니었다. 그의 오른 소매에서 돌멩이 하나가 미끄러지듯 내려와 손에 잡혔다. 이나드도 그걸 눈치챘지만 그가 먼저 공격하거나 다른 곳으로 회피하는 것보다 테비낭의 오른손이 휘둘러지는 것이 먼저였고 그렇게 테비낭은 승리를 예측했다. 예상치 못한 타격에 돌을 떨어트리기 전까진.
“아까 날 방해 했겠다”
먼저 상황을 끝낸 엔지가 그의 오른손을 향해 돌을 던진 것이다.
“...이런”
“흐아아압!”
“커헉”
그렇게 이나드에게 일격을 맞은 그는 저 멀리 날아가 정신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