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에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런 일을 벌인 걸까요”
“글쎄... 그것보다 중요한 건 말이야”
이나드의 옆까지 걸어간 엔지는 그를 바라보며 재차 말했다.
“무슨 이유든 죄 없는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는 건 용서받지 못할 일이라는 거야”
“혹시... 혹시 엔지 사제님이나 카샤 사제님도 이런 마음을 가지신 적 있으신가요? 아니, 저도 나중엔 이렇게 변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러면... 그러면...”
“이나드”
카샤는 더욱 깊은 곳으로 빠져 들어가려는 그의 생각을 끊어버렸다.
“네. 말하세요”
“모든 사제가 이렇다고 하진 않을 거야. 하지만 당장은 옳고 깨끗할 지라도 나중이 되서 사리사욕에 취하거나 이처럼 잘못된 길에 빠질 수도 있어. 마치 옛날 암흑기의 교회와 사제들처럼. 그 땐 교회에서도 정말 크고 많은 사건과 사고들이 있었어. 하지만 그 사건 사고들을 거치고, 교회의 법칙들을 고쳤지. 그런 수 백, 수 천년에 걸친 시행착오를 통해 만들어진 것이 지금의 교회와 교회의 사제들이야. 그 교회의 법칙을 만들고 고친 사람들에는 나와 같은 사람이 여럿 있을 것이고 너와 같은 사람도 여럿 있었겠지?”
“...그렇겠죠?”
“그래. 이 길은 그렇게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수 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통해서 만들어 낸 길이야. 나도 이제 와서 깨닫게 된 것이 있어 이나드. 그 아무것도 모르는 자들이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르치는 자의 마음가짐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앞으로도 내가 옳다고 여기는 것들, 올바르다고 여기는 것들을 지키고 그것들을 위해 노력 할 거야 여태까지 교회를 변화시킨 많은 사람들처럼 보다 많은 사람들을 위해. 너는 어떻게 할 거야?
“음... 아직 저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제가 옳다고 여기는 사람들을 믿고 따르겠어요”
그렇게 말하며 캬샤를 향해 손을 내밀었고
“기다려줘서 고마워 이나드”
카샤는 그 손을 붙잡았다.
“저야말로 고마워요 카샤”
그러나
“......”
“......”
“안 일어나요?”
이나드가 손을 잡아당기며 일어나는 것을 도와주었지만 그 뿐. 카샤가 스스로 일어나려는 힘을 느끼지 못했다.
“미안... 못 일어나겠어. 업어줘”
카샤는 그렇게 헤헤거리며 실없는 웃음을 지었다. 좀 전에 자신의 성력을 전부 쏟아부었을 테니 그럴 만도 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엔지를 보았으나, 그는 자기 몸을 자기가 가누는 것만으로 충분히 자기 할 일을 다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리하여 이나드가 하게 된 생각은...
‘어떻게 업지?’
업는 자세의 가장 보편적인 자세는 일명 어부바라는 등으로 업는 자세지만, 몸에 힘이 전혀 없는 그녀가 업힐 힘조차 있을까? 고민 끝에 이나드가 선택한 것은 바로
“자. 잠깐 무슨... 꺄악!”
로맨스 소설에서 자주 나오는 일명 공주님 안기였다.
“업힐 힘도 없을 것 같아서요”
뜻하지 않게 가까워진 얼굴에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그. 그 정도 힘은 있거든?”
“그럼 어떻게 할까요?”
“...그냥 가”
“근데 얼굴이 빨개요. 열이라도 있는 거 아녜요?”
“그냥 가라고!”
결국 어부바 자세로 바꾸었다. 그 와중에 혼자서 상황정리를 끝낸 엔지는 구슬을 한 손에 들고, 위로 던져 올렸다가 받는 짓을 반복하며 다가왔다.
“둘이서 꽁냥꽁냥 잘 놀고 있구나? 누군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아 죄송... 근데 그거 그러다가 깨지는 거 아녜요?”
“욥”
“엣?”
갑작스레 구슬을 던지자 이나드는 카샤를 업은 것도 깜빡했고, 그 바람에 카샤는 떨어질 뻔했지만 카샤와 구슬 둘 다 무사했다. 그 때까지는 말이다.
쩍.
“에?”
“어?”
“...아?”
이나드와 카샤는 엔지를, 엔지는 이나드를 바라보았다.
“마지막까지 장난친 건 엔지 사제님입니다!”
“마지막에 만진 건 너야!”
“마지막에 던진 건 오빠야!”
“나... 난 얼마 안 가지고 놀았어! 마지막에 만진 건 이나드잖아!”
“애초에 던지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겁니다?”
“그래 맞아!”
“으윽...”
머리가 두 개 달린 트윈 헤드 오우거처럼 사이좋게 엔지를 몰아붙이자, 엔지는 지금의 고통이 정신적 고통인지 옆구리의 고통인지 분간을 못했다.
“...구슬은 애초에 깨진 거야.”
“네?”
“무스~은?”
“그럼 신부님 앞에서도 이렇게 니 탓이라고 하면서 싸울까?”
“그건...”
“안 돼요...”
“그러니까 녀석이 쓰러진 것과 동시에 구슬은 깨진 거야”
그 말에 둘 다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상황을 정리한 그들은 동굴 밖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걸을 때마다 카샤의 무게감과 그녀의 심장고동이 느껴졌다. 이렇게 작고 가벼운 몸으로 그런 일들을 해내는 그녀가 새삼 대단하게 생각됬다.
“코~”
“...응?”
“음냐”
“카샤?”
“......”
혹시나 싶어 높임말도 호칭도 전부 빼고 말을 걸었지만 아무 말이 없었다.
“설마 자는 건가”
“우웅...”
“깨울까...”
“너도 꽤 하는 놈이구나”
엔지의 말은 인정한다는 말투였지만 이런 식으로 인정받고 싶진 않다.
“...그냥 해본 말이에요”
“흠... 그건 그렇고 동굴 밖에는 아까처럼 보초병들이 있을 텐데 어떻게 하냐...”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요?”
“그러게. 어떻게든 되겠지?”
그들은 자신이 신이 아니라는 것도, 그럴 수도 없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태양이 저물고 깜깜한 밤이 찾아와도 달빛과 별빛이 작은 빛으로 세상을 인도하듯이 신을 대신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시늉은 할 수 있다. 그들이 무슨 생각으로, 무엇을 위해 그렇게 행동하는 지 서로 알 수는 없지만 말이다. 그렇게 이나드에게 유난히 길었던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한 해의 마지막 달인 12월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