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은 여러 각오를 하며 동굴을 나왔지만 다행스럽게도 상황을 정리해 놓은 네이튼이 기다리고 있었고, 덕분에 그들은 한밤중의 숲을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정말 새침때기라니까”
라는 엔지씨의 발언에 의해 위험한 상황이 연출 될 뻔 했지만. 제정신으로 내 뱉은 말이 아니라는 카샤와 이나드의 노력으로 잘 무마되었다. 엔지의 응급치료와 숲 바깥까지의 안내가 끝나고 나서야 네이튼은 제 갈 길을 갔다. 오늘 길은 엔지로 인해 가는 길에 비해 배가 되는 시간이 걸려 며칠 뒤 오후가 돼서야 셋은 데이러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모습에 이나드는 뭔지 모를 울컥한 감정을 느꼈다.
“뭐야. 이나드 울어?”
“아뇨 그냥... 눈에 먼지가 들어간 거예요”
“그래. 집에 가서 울고 집에 가서 쉬자”
“우는 거 아니라니까요...”
성문을 지나고 나서야 이나드는 그 감정이 뭔지 정확히 알아냈다.
“한 달 밖에 안 지났지만. 이젠 여기가 집 같네요”
“이제 진짜 집으로 가야지”
“그래. 나 데리고 다니느라 고생 많았다.”
“그럼! 오빠 때문에 고생 많았지!”
“하. 진짜 갈비뼈만 아녔어도...”
그렇게 말을 했지만 엔지도 기분이 좋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거리를 지나고 교회의 문을 열자 언제나와 같은 광경이 눈에 가득했다. 제단에 서 있는 칼텐 신부의 모습과 예배당을 비추는 스테인드글라스. 셋은 모습을 경건히 하곤 부끄러움 한 점이 깨끗한 사제의 모습으로 칼텐 앞에 섰다.
“정식사제 엔지 레브리아 외 두 명. 사제의 명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수고 많았네. 올라가서 쉬게”
“둘은 먼저 올라가. 난 신부님께 보고드릴 테니까”
“엔지 자네도 일단 쉬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아뇨 제 방식 아시잖아요.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그럼 자네 뜻대로 하게”
“그럼 먼저 올라가겠습니다.”
그렇게 둘은 신부실로, 둘은 이층으로 올라갔다.
“오늘은 일단 쉬는 건가요?”
“응. 목욕도 하고 옷도 갈아입고 그리고...”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던 둘의 시야에 색다른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위층엔 어떤 여성이 탁자에 앉아 유리병에 담겨진 무언가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었다. 황금빛에 물든 머리색, 허리까지 오는 웨이브진 긴 머리에 갸름한 얼굴의 미인. 이나드는 그녀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옷을 보고 사제라는 걸 깨달았다. 이리되든 저리되든 이나드에겐 낯선 사람이지만 카샤에겐 낯익은 사람이었다.
“마들린 언니!”
“응? 어서와 카샤”
카샤의 부름에 반응한 그녀는 탁자로 향하던 몸을 돌려,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카샤를 꼬옥 껴안아 주었다.
“으음~ 귀여운 우리 카샤”
“헤헤... 언제 온 거야?”
“어제 도착했어. 거기서 성력을 너무 많이 썼더니 피곤한 거 있지.”
“벌써부터 마셔 대서 그런 거 아니에요?”
“평소라면 이 정도 마셨다고 피곤하지 않아”
“...그렇네”
친밀하면서도 가식적이지 않은 그 모습은 마치 친자매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그런데 넌 누구니?”
“아. 저는 이번에 견습 사제로 임명된 이나드라고 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그녀에게 다가간 이나드는 어디선가 달콤한 냄새가 나는 걸 느꼈다. 그 냄새를 음미하며 악수를 청했지만
“어머 미안. 난 그거 좋아하는 타입이 아니거든”
그녀는 가볍게 웃으며 거절했다. 거절당한 이나드의 손은 눈에 띄게 당황하며 허공에 떠 있었고, 그걸 본 카샤는 배를 잡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푸훗... 푸하하하핫”
“카샤. 그렇게 웃으면 쟤가 어떻게 되겠니”
조근조근 말리는 게 이나드를 더욱 당황하게 만들었다.
“아무튼 나는 마들린 소토라고 해. 음... 계속 여기 머무르니?”
“예”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해?”
그렇게 깔끔한 목소리로 말하곤 고개를 사선으로 기울이며 목례를 하듯이 끄덕였고 이나드도 그에 답하며 목례를 했다. 마들린이 이나드에게 말을 하려던 찰나, 타이밍 좋게 엔지가 위층으로 올라왔다.
“뭐야 왜 이렇게 시끄러워~어?”
엔지는 말을 이상하게 끝맺으며 마들린을 발견했고 그녀 또한 엔지를 바라봤다.
“와있었네?”
“응. 근데 옆구리 왜 그래?”
그녀가 옆구리를 언급하자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감지한 엔지는 한 걸음 물러났다.
“...뭐가”
“옆구리 다친 거 아냐?”
“어떻게 알았어?”
“옆구리에 성력 활성화 시키고 있잖아”
마들린은 두 손가락으로 자신의 눈을 가리킨 후 손가락으로 엔지의 상처부위를 정확히 가리켰다.
“와~ 그게 보여요?”
“저 언니는 보여”
엔지가 성력을 사용해서 회복속도를 높이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성력의 양은 미약한 수준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성력을 과도하게 사용하지 않는 이상 회복속도의 큰 차이는 없는데다,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상태이니 가장 효율적인 양만 사용해서 회복중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그 미약한 양의 성력이 눈에 보인다고 하는데 그건 마치 나무를 눈으로만 보고 썩은 부위가 어디인지 알아내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싸우다 방심해서 다쳤데~요!”
“카샤 너!”
카샤의 배신? 말?에 엔지는 순간 진심으로 분노했지만 카샤는 혀를 삐죽 내밀며 놀려댔다. 그걸 보던 마들린은 유리병의 음료를 다시 한 잔 마셨다.
“실력도 좋은 놈이 칠칠맞게... 에휴”
“이건 내 잘못이 아니라... 아니다. 내 잘못이지.”
이나드는 그의 말에 왠지 잘못을 저지른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내가 치료해 줄까?”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마들린 사제님.”
엔지는 정중한 말투로 거절했지만 극도로 꺼리는 느낌이 절절하게 묻어나왔다.
“제가 치료해 드릴게요 엔지 사제님. 저 믿으시죠?”
“아뇨. 아닌데요”
“에이 그러지 마아~ 나 실력 좋은 거 알잖아”
빙긋 웃는 그 얼굴엔 말로 형언하기 힘든 감정들이 뒤섞여 나왔고
“알아. 알긴 아는데... 오지마. 오지 말라고 했다.”
그의 낯빛엔 공포가 어렸다. 이나드로선 처음 보는 엔지의 모습으로 신기하면서 흥미진진했다.
“조금만 만져. 아니 치료해보자”
엔지는 뒤로 슬금슬금 물러났고 그에 따라 마들린은 슬금슬금 다가왔다. 그리고 카샤와 이나드는 방관자가 되어 그 모습을 쳐다보기만 하고 있었다.
“어때? 마들린 언니”
“잘은 모르겠지만... 저분도 특이하시네요”
‘엔지 사제님 보다요’ 라는 말이 입안에 맴돌았지만 본능적으로 삼켜내었다.
“그래도 좋은 언니야”
그녀도 특이하다는 점에 대해 부정하진 않았다.
“오늘따라 위층이 시끄럽네요 신부님”
기도를 하던 마을사람의 물음에 칼텐 신부는 나직히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다음날이 되었다. 어젯밤 오늘이 안식일이라는 소식을 들은 이나드는 즐거운 마음으로 방문을 나섰다.
“좋은 아침입니다!”
“좋은 아침이야 이나드”
“좋은 아침”
“......”
어제와 같은 모습으로 이나드를 반기는 마들린과 평상시처럼 대하는 카샤, 그리고 뚱한 표정으로 손만 드는 엔지가 식탁에 앉아 아침을 먹고 있었다.
“늦게 일어나네?”
“휴일에만 늦게 일어나는 겁니다.”
“그래? 엔지는 평소에도 늦게 일어나는데”
“시끄러워”
“아직도 토라졌어 엔지?”
엔지는 결국 치료를 받았다. 그녀의 치료는 확실히 좋은 듯, 옆구리를 꾸욱 누르지 않는 이상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비록 치료를 받는 도중 많은 일이 있었지만 말이다. 그래서인지 엔지의 표정은 아직도 불쾌한 표정이었다.
“으...”
뭐라 한 마디 하려던 엔지는 그냥 자리에서 일어나 아래로 향했다.
“나 나간다.”
“오늘 약속 잊지마~”
무슨 약속인지는 모르겠지만 마들린은 빙긋 웃으며 엔지를 배웅했고 엔지는 그 모습을 보지도 않았다. 메뉴는 평소처럼 빵에 스프였지만 누가 만들었는지 꽤 맛있었다. 그렇게 아침을 먹고 있는 이나드를 마들린은 지긋이 쳐다보다가 카샤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카샤는 오늘도 고아원?”
“네. 언니는요?”
“난 그냥 책이나 읽을래. 이나드는 어디 나갈 예정 있니?”
“예 이따가 나갈 예정입니다.”
“그럼 오는 길에 잭슨네 집에서 리큐르 좀 사다주지 않을래?
“...거기가 어딘데요?”
이나드의 말에 마들린은 예상치 못한 듯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교회에 온 지 얼마나 됬니?”
“한 달 쯤 됐습니다.”
벌써 한 달. 이나드는 다시 생각해봐도 시간 참 빨리 가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던지 말던지 마들린은 당황스러운 표정 그대로 카샤를 바라봤다. 그런 마들린의 눈빛을 받은 카샤는 금기라도 행한 것 마냥 굳은 채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렇게 카샤를 보던 마들린은 다시 이나드로 시선을 돌렸다.
“...이나드.”
“예”
“오늘 나랑 도시 구경가지 않을래?”
“...예?”
“언니가요?”
갑작스런 마들린의 말에 이나드는 얼빠진 소리를, 카샤는 놀란 듯이 말을 했다.
“응”
그렇게 답하는 마들린의 눈은 초롱초롱했다.
“제가 할 게요”
“아냐 내가 할 게 넌 고아원에 가야지”
“그렇긴 하지만...”
“자 그럼 결정! 너는 교회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렴”
멍하니 마들린과 카샤를 번갈아 바라보던 이나드는 무언가에 홀린 듯이 계단을 내려갔다.
“언니는 무슨 생각...”
“무슨 생각이긴 길을 모르는 애한테 길을 알려주는 거지”
마들린이 싱긋 웃으며 답해주자 카샤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졌다. 그렇게 이나드는 교회 앞에서 마들린을 기다리며 무슨 옷을 입고 나오나 생각했다. 그의 생각과 달리 교회 밖으로 나온 그녀는 평소와 같은 사제복이었지만 그러면서도 다른 느낌을 주고 있었다. 여성이어서 다르다고 하기엔 카샤와도 느낌이 달랐는데 말하자면 어른의 느낌? 그런 그의 얼굴을 훑어본 그녀는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왜? 실망했니?”
“아... 아뇨 그게...”
“따라오렴”
“......”
이나드는 시작부터 뭔가 말리는 느낌이었지만 또각또각 구둣발 소리를 내면서 빠르게 걸어가는 그녀의 모습과 어제와도 같으면서 다른 달콤한 냄새에 의해 제대로 생각 할 여유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