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부터 꼬인 것일까.
시은의 머릿속이 퐁퐁 얼굴을 내미는 저마다의 생각으로 소란스러워졌다. 그 찰나의 순간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은 틀어진 오늘 하루에 대한 책망이었다.
청첩장을 받았을 때 바로 버렸다면 어땠을까.
욕 한 바가지 하고서 북북 찢어버렸다면, 모른 척을 했다면 이렇게 얽히게 되진 않았겠지. 그렇겠지.
하지만 지금은 어디까지나 시연을 대신해 식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에라…… 나도 모르겠다, 이젠!’
결론에 당도한 시은은 확고한 표정으로 그 어느 때보다 크게 소리를 냈다.
“네!”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만 어디까지나 이 말은 어디까지나 시연을 대신해 한 대답이다.
그녀의 말대로 두 사람은 서로에게서 파생되어 나온 반쪽이었으니까.
하지만, 끝까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지금 이 순간조차 아무것도 모르는 듯 자신을 사랑스럽게 쳐다보는 쌍둥이 동생의 남편이 될 사람이었다.
* * *
사건의 발단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된다. 한껏 예쁘게 치장하고, 딱 붙는 정장이 아닌 하늘거리는 쉬폰 원피스를 입고 나섰던 오늘 오전이면 되니까.
살랑살랑 바람결에 흔들리던 검은 생머리, 하늘길을 따라 흐르는 구름과 같은 부드러운 쉬폰 소재의 원피스가 가늘게 춤을 췄다.
체구도 작고, 손도 발도 작은 그녀가 한 손엔 빳빳한 소재의 봉투를 꽉 쥔 채 현관에 앉아 힐을 신고 있었다.
“다녀올게요.”
시은을 배웅하기 위해 현관까지 따라온 그녀의 엄마 영화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시은아, 정말로 시연이가 와도 된다고 하던?”
“물론이죠. 그래서 이것도 보내준 거잖아요.”
“그래도…… 걱정 되네…….”
이 시은 귀하.
선명하게 쓰여 있는 이름 석 자의 필체는 분명 시연의 글씨체였다. 같은 공간에 있지도 않고, 집을 나간 지 몇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습관이란 것은 쉽게 변하지 않는구나 싶었다.
“가서 폐만 끼치는 게 아닐까 싶은데…….”
“이시연이라면 몰라도 나 이시은이잖아. 섣부른 행동이나 피해 가는 말은 절대 안하고 정말 축하만 하고 올게요. 너무 걱정 말아요.”
영화는 가난함이 싫다고 나간 딸에게 혹여나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민폐가 될까 그걸 걱정하고 있었다.
그거야 시은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아무리 밉고, 원망스럽다 한들 피를 나눈 가족이었다. 영화에겐 오랜 산고 끝에 낳은 토끼 같은 자식이고, 시은에겐 어찌되었든 같은 피를 나눠가진 자매이자 동생이었다.
팔은 안으로 굽는 법. 아무리 밉고, 미워도 어찌하리. 동생이니 기분 좋게 축하만 해주고 와야겠단 생각에 시은은 서울로 향하기를 결정을 내렸다.
“알았어요. 그렇게 걱정되시면 정말 딱! 그냥 잘 살라고 인사만 하고 올게요. 우리 엄마 맘 이렇게 여린데 집 나간 이 시연은 정말 나쁜 기집애야, 그치?”
2명의 딸 노릇을 해야 한다. 시연이 없어진 날부터 생겼던 뜻 모를 의무감은 자칫 무뚝뚝하던 시은의 성격을 서서히, 느리게 바꿔놓았다.
자의적이었다. 항상 살갑고 애교 많았던 시연의 성격을 어설프게나마 흉내 내며 제 엄마가 느낄 둘에서 하나로 줄은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변화를 감행했고, 생각보다 힘들었다.
어설펐지만, 그건 오로지 영화를 위한 최선책이었기에 힘들지 않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다녀올게요.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할 테니 걱정 말구요. 점심밥이랑 약 꼭 챙겨 먹어요!”
화사하게 웃으며 돌아보니 한참 머뭇거리던 영화는 카디건 품에서 얼마나 오랜 시간 꼭 움켜잡고 있었던 건지 꼬깃꼬깃해진 흰 봉투를 꺼내 시은에게 건넸다.
“이건 뭐예요?”
“축의금. 이름은 네 이름으로 해서 내.”
“아니에요! 저 돈 있어요. 엄마 딸 완전 능력 있는 웨딩플래너잖아요. 물론 이제 막 시작했지만? 흐흐.”
푸스스 웃던 시은은 영화를 한 번 꼭 끌어안아 온기를 나눠 받았다. 폭신한 구름과 같은 포근한 온기를 가득 품은 채 문 밖을 나섰다. 굳이 밖으로 나와 배웅하겠다는 영화를 한사코 뜯어 말리고는 착잡한 기분으로 걸음을 떼었다.
그런 그녀의 기분과는 상반되도록 발끝에서부터 번지던 또각 거리는 하이힐 소리는 거슬릴 만큼 경쾌하기 그지없었다.
* * *
시연의 결혼식이 열리는 강남의 파티오세븐의 5층 다이아몬드홀로 가는 길.
또각또각 걸어가는 걸음이 느려졌다. 시은은 조금 전부터 번지던 묘한 기분을 쉬이 떨칠 수가 없었다.
이상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싶을 만큼 사람이 없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중에도, 타고 올라가는 중에도 정말 이 큰 건물에 그녀 혼자만 있는 것처럼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안 그래도 꺼림칙한 기분이 쉬이 걷혀지지 않아 갑갑했는데 뜻 모를 불안감까지 엄습해오니 청첩장을 쥔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더 들어갔다.
이윽고 도착한 신부 대기실 앞.
이젠 꼭 닫혀 있는 문이 이상했다. 자연스레 고개를 비뚜름히 틀던 시은은 고풍스런 문양의 손잡이를 잡고 힘껏 밀어 신부 대기실 안으로 들어섰다.
무슨 말을 먼저 꺼내야할까.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까.
순서를 끼워 맞추던 두뇌회전이 완전하게 작동을 중지했다.
“……오늘이 아닌가?”
아무도 없었다. 정말 단 한 사람의 사람조차 없었다. 개미 한 마리도 없는 텅 빈 신부 대기실 안은 화사한 아이보리색의 커튼만이 창을 타고 넘어오는 바람결에 살랑거리며 흔들리고 있을 뿐이었다.
들어선 신부 대기실 한 가운데엔 신부 대기용 화려한 장식과 문양으로 새겨진 붉은 소파와 찾아온 하객들이 앉아서 쉴 여분의 소파가 있었다.
화려한 샹들리에는 불이 꺼져 그 위용이 조금 움츠러들었다. 샹들리에의 빛이 스며들어 은은함이 가득해야할 공간엔 오로지 창문으로 새어 들어오는 미약한 햇빛이 안을 밝히고 있었다.
시은은 손에 쥔 청첩장을 다급하게 다시 열어보았다. 아무리 눈을 씻고 살펴보아도 날짜는 오늘이 맞는데.
5월 25일.
주위만 연신 두리번거리던 시은은 나가서 물어봐야겠다 싶어 등을 돌렸고.
“…… 어?”
커튼에 시선이 빼앗겨 보이지 않았던 창문 옆 협탁 위에 있는 물건들이 순간적으로 시야에 들어왔다.
분홍색 케이스에 씌워진 휴대폰과 많이 본 글씨체로 쓰인 단 네 글자.
[ 시은 언니 ]
반사적으로 시연이라는 것을 느낀 그녀는 자신의 이름이 쓰인 봉투를 손에 들어 내용물을 펼쳐 보았다.
< 시은아, 아무도 없어서 놀랐지? 염치없지만 부탁 좀 하고 싶어서 원래 예식 시간보다 일찍 불렀어. >
눈으로 한 글자씩 읽어 내려가니 착잡함이 물밀듯 밀려 들어왔다.
자신은 당황스러운데 필체며 쓰여 있는 내용들은 읽으면 읽을수록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이 느껴져 점점 패닉에 빠져들었다.
< 이 부탁은 누구도 아닌 언니만이 들어줄 수 있어. 나와 똑같은 얼굴을 가진 이 시은. 너 아니면 안 돼. >
허탈한 표정으로 편지를 내려다보던 시은의 가슴에선 삽시간에 불길이 번졌다. 불안감과 초조함의 화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어 점점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Drrrrrr -
머릿속이 새하얘질 만큼 패닉 속으로 빠져 들어가려던 찰나.
숨 막힐 듯한 공기를 깨버린 듯 시연의 것으로 추정되는 휴대폰이 요란한 진동소리를 내며 자신을 알렸다.
수신자명은 더 가관이었다.
[ 이시은 받아 ]
분명하게 자신을 지칭한다는 것에 한참 고민에 빠지던 시은은 조심히 손을 뻗어 휴대폰을 들고 통화 버튼을 길게 눌렀다.
“여보세요……?”
- 와, 진짜 오랜만이다. 너에게서 내 목소리 듣는 것도.
온몸에 소름이 돋아 멍하게 흘러 들어오는 음성에 집중했다.
잊은 적 없다. 잊을 수가 없었다. 자그마치 6년 만에 마주한 음성이었지만 너무도 익숙했기에.
그저 마지막으로 들었을 때와 말투가 너무도 달라져 있어 그 점이 어색했을 뿐. 항상 느꼈던 익숙함이었다.
“부탁…… 이라는 게 뭐야, 이시연?”
- 시은 언니, 우리 피를 나눈 사이 맞지?
시은의 말을 딱 자른 채 자신의 질문만을 내뱉던 시연이었다.
갑갑한 마음에 아랫입술을 짓이기던 시은은 수화기 너머 들리던 말에 화들짝 놀랐다.
- 그나저나 언니도 참 안 바뀌는구나. 난처하면 입술 깨무는 습관도 여전하네.
“나 보여? 뭐야, 어디야. 만나자. 일단 만나서 얘기 좀 하자.”
- 이시은. 유전자며 외형까지 완벽히 똑같은. 한 날, 한 시에 태어난. 나보다 5분 먼저 태어난 일란성 쌍둥이. 내 언니.
끊임없이 강조하는 쌍둥이라는 맥락의 단어들이 위험하게 들렸다.
- 나 부탁이 있어. 들어준다고 약속해줘.
“듣고. 일단 들어 보ㄱ…….”
- 싫어. 나도 아빠처럼 죽길 바라는 건 아니지?
수화기 너머로 단호히 들리던 시연의 거절의사가 애달픔을 싹둑 끊어버렸다.
찬찬히 숨을 고르던 시은은 한 박자 쉬곤 말을 이었다.
“약속…… 할게.”
- 역시. 너라면 그렇게 말해줄 줄 알았어. 미련하니까.
눈앞에 보이지 않아도, 오로지 들리는 목소리만으로도 시연의 표정이 그려졌다.
선하고 귀여운 눈웃음으로 전화기를 잡고 있을 네가.
-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6개월만 나로 살아줘.
“그게…… 무슨 말이야?”
- 말 그대로. 6개월만 ‘이시은’이 아닌 ‘이시연’으로 살아줘.
뇌리를 스치는 단 하나의 생각.
역시 난 이곳에 와선 안 되었다.
“너랑 난 성격 자체가 틀려. 그리고 넌 어디에 가있게.”
- 나 진짜 독사 같은 시어머니도 너무 싫고, 틈만 나면 나 옭아매는 권 열 때문에 힘들어 죽겠어.
“결혼은 네가 생각해서 결정하고 올리는 거야. 어쩜 아직도 그렇게 무책임하면 어떡해.”
- 그래. 그러니까 나보다 훨씬 책임감 강한 네가 나로 6개월만 살아달라는 거잖아.
누군가 들어올까 맘 놓고 언성을 높이지 못하던 시은은 꾹꾹 터져 나오는 두려움을 내리 누르며 시연을 타일렀다.
- 네 말대로 나는 책임감이 없고, 너는 있으니까. 그 독사 같은 시어머니도 잘 길들여주겠지.
“그건 네가 감당해야할 몫이야. 나한테 넘겨 봤자 달라지는 게 없어. 네가 변하지 않으면.”
- 왜? 너는 나고, 나는 너잖아. 어차피 우리는 한 존재가 둘로 파생되어 나온 결과란 거 네가 제일 잘 알잖아.
지금 이 순간에도 머리는 아니라고 외치나 입술이 그 말을 내뱉지 못하고 있었다.
쉽게 답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시연은 시은에게 쐐기를 박았다.
- 더 이상 부탁 안할게. 연락도 안할게. 6개월만 부탁할게, 시은아. 응?
“아니. 그러지 말고.”
딱 잘라 말하던 시은의 억양에 시연의 목소리가 끊겼다. 작은 숨소리만 들릴 뿐 아무 잡음도 들리지 않았다.
"엄마에게 연락 자주 해줘. 난 상관없으니까 엄마에게 만이라도. 지금 이 순간에도 너 하나 걱정하고 계시니까."
어떤 대답을 할까 궁금해 조바심이 나던 그녀는 숨죽여 이어질 다음 말을 기다렸다.
- 그래, 알았어.
생각보다 쉽게 나온 시연의 대답에 살풋 인상이 찡그려졌다. 돌아가는 상황 파악을 위해 눈동자를 굴리고 있자니.
똑똑 -
대기실 문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시연아, 여기 있어?”
낮게 내리 깔린 매력적인 저음의 목소리가 문을 통과했다. 시은은 갑작스런 타인의 등장에 당황스러워 입술만 벙긋거리고 있었다.
상대가 누군지 알 길이 없어 우왕좌왕하고 있자니 수화기 너머에서 시연의 목소리가 너무하다 싶을 만큼 태평하게 들려왔다.
- 누가 왔나보네? 아마 권 열일거야. 잘 나가는 모델이자 배우니까 네 눈요기에도 좋을 거고.
“뭐, 뭐? 그런 말은 없었잖아!”
- 왜 이래? 네가 언제 내가 결혼할 신랑이 누구인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제대로 물어본 적 있어?
태연한 시연의 대답에 머릿속이 백지장 마냥 새하얘졌다. 어떻게 반응해야하냐 정리를 하기도 전에 문고리가 달칵거렸다.
“시연아, 나 들어간다?”
시은이 급하게 창문 쪽으로 등을 돌려 얼굴을 숨겼다.
알아보면 어쩌지. 라는 조바심에 소리 죽여 끙끙 앓고 있을 뿐이던 그 때. 창문 너머로 보이는 파란색의 공중전화 부스 안.
안절부절 못하는 시은을 올려다보며 선해 보이는 미소로 방긋 웃고 있는 시연이 보였다. 처음부터 5층의 신부대기실 창문을 계속 주시하고 있었던 건지 시선이 맞물려 멍하게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동그랗게 뜨고 있던 눈망울이 살짝 휘어지도록 접히던 시연은 그녀를 똑바로 마주보며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이질적인 단어를 내뱉었다.
아.
- 6개월 동안의 시연아.
안 돼.
- 결혼 축하해.
멀리서 보이던 시연은 그 말을 끝마치고는 시은이 무어라 대답을 하기도 전에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등을 돌려 거리가 더 멀어지는 그녀의 이름을 부르려던 찰나.
“시연아.”
시연이 말했던 `권 열`라는 남자가 신부 대기실 안으로 들어섰다.
정작 그 이름의 주인은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지만.
“가자, 준비하려면 한참 걸린데.”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미소 짓던 시은은 천천히 뒤를 돌았고, 등 뒤로 뒷짐을 진 채 시연의 편지를 힘주어 구겨버렸다.
“어디 아파?”
“아, 아뇨. 안…… 아파요. 하하, 하, 하……."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몰라 어색한 미소와 함께 열을 마주보았다.
새카만 흑발과 그에 못지않게 흑돌 같이 새카만 눈동자는 햇빛을 받아서인지 영롱해 보이기까지 했다.
얇은 눈매너머로 깊이 있는 시선이 느껴졌다.
길고 섹시한 목선. 그 목선에서 어깨까지 떨어지는 단정한 수트의 깃까지도 꼭 어울렸다.
모델이라 그런지 키도 상당히 컸고, 배우라고 불릴 만큼 참 잘생겼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
“…….”
“이상하다."
물끄러미 시은을 바라보던 열은 대뜸 이상하다는 말을 끝으로 움직임 없이 계속 눈에 담고 있었다.
눈치 챈 건가 싶어 괜스레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리고 있으니 그가 천천히 거리를 좁혀왔다. 반사적으로 뒷걸음질을 치려다 발바닥에 힘을 주어 올곧게 섰다. 도망가면 의심할 거야.
이내 완전히 근접거리에 다가온 그는 다정하고 부드럽게 시은을 품으로 끌어당겨 안았다.
상쾌하다. 먼저 풍겨오던 건 체향보다는 상쾌한 머스크향이 순식간에 코끝에 맺혀 후각을 자극해왔다.
“으, 으아!”
갑작스런 행동에 짧은 신음 소리가 새어나왔다.
그 소리를 들었던 것인지 열은 잠시 떨어져 고개를 숙였다. 시은의 표정을 살피곤 귀까지 빨갛게 달아오른 모습을 보곤 그가 푸스스 웃었다.
열은 몸에 감은 팔에 조금 더 힘을 주어 꽉 끌어안았다. 큼지막한 손이 부드럽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른 손으론 말없이 등을 토닥이며 안정을 주던 그가 귓가를 녹일 만큼 달큰한 목소리를 흘렸다.
“뭔가…… 오늘은 더 단아해 보인다.”
“……예?”
멍한 시은의 표정을 가리듯 그가 지그시 미소를 지으며 코끝이 맞닿을 만큼 거리를 좁혀 아찔하게 다가왔다.
“더 사랑스럽고.”
5월의 바람이 신부 대기실의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돌이킬 수도 없다는 걱정이 앞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누군가를 속이고 있다는 죄책감에 젖어 들어가고 있었다.
처음 마주하는 `권 열`도, 밉지만 자신의 분신과 같은 `이시연`도, 그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면 안 된다는 생각이 앞서 답답한 마음만이 커지고 있던 시은이었다.
묘한 위화감이 들만큼 화장하고, 화사했던 5월 25일.
진정한 신부가 없는 신부 대기실에선 앞으로 다가올 불안하고도 위태로운 미래의 비밀이 생겨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