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가 사람의 형태가 보이는 곳을 향해 눈을 가늘게 뜨고 쳐다본다. 시력이 좋은 편이었지만 그냥 키가 큰 사람이 있었고 얼굴은 아예 보이지 않았다.
자신도 모르게 발을 한발 한발 내밀고 그 곳을 향해 걷고 있었다.
눈을 깜빡이고 뜬 순간 그 곳엔 아무도 없었고 자신이 잘못 본 것인가 하며 눈을 비빈다.
두리번거리다 마음에 드는 나무 밑에 자리를 잡고 앉아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한다.
잠시 뒤, 안나가 응시했던 곳에는 안나가 보았던 사람의 형태, 아니 사람이 서있었다.
그의 뒷모습은 단정하게 정돈 된 금발 머리이었고, 다리가 길게 뻗어있었다.
블랙 롱 트렌치코트가 바람에 살짝 휘날리더니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CD플레이어에서 나오는 곡이 끝나자, 안나가 일어나서 진한 숲의 향을 맡으며 걸었고, 안개가 걷어져 강한 햇빛은 아니었지만 숲의 분위기가 밝아진 느낌이 들었다.
집에 들려 책을 갖다 놓고, 왼쪽에 렌즈를 끼고는 적어놓은 메모를 챙겨 10분 거리에 위치한 찻집으로 발걸음을 움직였다.
‘선셋’ 찻집 앞에 다가오니 조이의 차가 주차장에 주차 되어 있었고, 손님들의 차들도 보였다.
딸랑 소리가 나며 선셋으로 들어서니 조이가 커피를 내리고 있어 커피향으로 가득했고, 마가렛은 한쪽 테이블에 앉아 손님에게 타로카드로 점을 봐주고 있었다.
선셋은 그리 크지 않은 통나무집로 되어있어 쌀쌀한 센드레에 따뜻한 느낌을 주는 찻집이다.
안나를 발견하고 조이가 밝게 인사를 건네고 창가에 마음에 드는 테이블에 앉았다.
조이가 커피 잔을 들고 와 앞에 놔주며 마시면서 마가렛을 기다리고 하자 알겠다고 한다.
마가렛의 찻집은 타로카드로도 유명했는데, 다른 도시에서 가끔 타로카드 점을 보러 오기도 했다. 안나는 한 번도 마가렛의 타로카드 점을 본 적은 없었지만 항상 궁금했다.
집중해있는 할머니를 보니 왠지 뿌듯해진 안나는 커피 한잔을 마시고는 책장에 보이는 책을 보더니 일어나 책장 앞으로 갔다.
선셋의 책장에는 특이한 책들이 몇 권 있었다. 마녀의 주문 같은 느낌의 책 몇 권과 전설에 관한 책, 타로카드에 관한 책들이 꽂혀있다.
숲에 있다가 문득 전설에 관한 책을 읽고 싶어져 그 책을 집어 들었다.
전설이나 미신 같은 이야기를 좋아해서인지 어릴 때부터 마가렛이 자주 얘길 해주곤 했다.
책을 가져와 자리에 앉아 ‘전설의 전설’ 책을 폈고, 무시무시한 소제목들로 열거되어 있었다.
소제목들을 살펴보는데 타로카드 보던 손님들이 일어나서 나갔고, 마가렛이 다가왔다.
“그 책은 갑자기 왜?”
“그냥 읽고 싶어졌어요. 어릴 때 자주 읽었잖아요.”
마가렛이 말없이 안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장보러 가자며 조이에게 잠깐 가게 문을 닫자고 하며 정돈을 하기 시작한다.
간략하게 정돈을 하고 가게 문을 닫더니 조이가 차에 시동을 건다.
센드레 시내 안으로 차를 움직였고, 조이는 안나의 옷부터 사자며 옷가게로 운전을 한다.
옷가게로 들어서니 매장이 컸고 조이가 세일 표시가 붙어있자 전투적으로 고를 기세를 보이자 마가렛도 팔을 걷어 안나의 점퍼류를 고르기 시작했다.
조이가 점퍼를 이것저것 안나에게 걸쳐보더니 파란색이 어울린다며 사자고 한다.
안나는 파란색을 싫어한다며 무난한 색을 사자고 해서 결국 검은색, 빨간색 점퍼를 사게 되었다. 마가렛이 골라온 베이지색 가디건과 트렌치코트에 만족을 하며 쇼핑이 끝났다.
센드레에서 제일 큰 마트에서 언니 같은 마음으로 조이가 안나에게 필요한 것이라며 이것저것을 카트에 넣자 안나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고마웠다.
전투적인 쇼핑을 마치고 선셋으로 와서 간단히 간식으로 팬케이크를 먹었다.
안나는 먼저 가서 산 것들을 정리하겠다고 하자, 조이가 옮기는 걸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마가렛은 어차피 손님이 왔으니 조이에게 얼른 부탁을 하고 안나와 조이가 차에 올라탔다.
“내가 이따 학교 가서 전학 수속 할테니까 내일쯤 학교 가면 되겠다.”
“제가 해도 되는데..”
“선셋 살림은 나한테 맡기고 열심히 공부해.”
“고마워요. 조이.”
조이가 안나에게 윙크를 했고, 조이의 빠른 운전으로 집 앞에 금방 도착했다.
집 안에 짐을 옮겨주고 얼른 가봐야겠다며 빠르게 인사를 하고 집 앞에서 금방 차가 사라졌다. 안나는 먼저 부엌에서 식료품들을 정리를 하고 나머지 짐을 2층으로 가지고 올라가 산 옷가지 정리를 하고, 화장품과 책 정리를 하니까 벌써 5시가 넘어갔다.
한숨을 돌리려고 침대에 누워 밀려오는 갑자기 슬픈 감정이 들어 울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눈물을 참으려고 하니 안나의 눈이 빨개졌고, 렌즈를 빼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얼른 뺀다.
자신의 눈을 보고 있으니 한숨이 저절로 나왔고 기분전환이 필요해졌다.
창가를 보더니 곧 해가 질 것이고 노을이 뜰 거 같았다.
센드레에서는 특이한 날씨를 가진 지역이나 보니 노을도 평범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래서 이 곳에 오면 안나는 항상 노을을 보고 기분전환을 하며 자신을 달랬다.
저녁시간이 되기 전에 얼른 숲에 들어갔다 와야겠다며 바쁘게 발걸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노을을 보기 위한 적당한 장소를 찾아줬던 안나는 성큼성큼 걸어갔고 해는 점점 지고 있다.
바람이 갑자기 획 불기 시작하고 숲의 분위기가 조금 달라진 것을 느꼈다.
무서운 기분이 들어 몸을 움츠리며 경계하는 태세로 주먹을 쥐고 있었다.
바람이 한 번 더 획하고 세게 불자 안나의 머리칼과 원피스가 휘날렸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져 그 곳을 바라본다.
좀 떨어진 곳에 키가 큰 남자가 안나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고,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띄웠다. 안나는 잘 보이지 않아 미간을 찡그리고 그를 쳐다봤다.
조금씩 발걸음을 떼며 남자가 걸어왔고, 안나에게도 그의 모습이 정확히 보이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은 혈색이 창백할 정도로 하얬고, 눈 밑에 어둡게 그늘이 져있고, 콧대도 높았고, 입술은 새빨갛고 도톰했다. 그리고 단정하게 정돈 된 금발머리에 남을 꿰뚫어보는 듯한 잿빛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블랙 트렌치코트를 걸치고 있는 몸매가 모델 같아 걸음걸이마저도 우아하게 느껴졌다. 안나는 그를 보며 왠지 모를 위압감에 한발씩 뒤로 발을 빼기 시작했다.
그는 안나는 빤히 바라보며 한 쪽 입꼬리가 올라가며 혀로 자신의 빨간 입술을 훑는다.
자신을 잡아먹을 듯 바라보는 시선을 보고 부들부들 떨기 시작하며 뒤를 돌아 뛰기 시작한다.
이를 악물고 달리는데 어느 덧 남자는 자신의 앞에 와서 서있자 안나는 놀라서 넘어진다.
그런 안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자신을 거만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며 팔짱을 낀다.
안나는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조건 달리자 하는 생각으로 조금씩 몸을 일으키자, 그가 어느 순간 옆으로 와 안나의 붉은 기가 도는 갈색머리칼을 집으며 깊게 숨을 쉰다.
마치 자신에게서 나는 채취를 맡는 느낌이 들어 오싹해졌다.
점점 주변 숲의 분위기는 어두워지고 노을이 지는지 숲의 색이 다르게 보였다.
오늘 노을은 특이하게 그의 눈동자와 같은 잿빛으로 물들었고 그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의 잿빛 눈동자와 안나의 오드아이와 마주쳤고 그는 안나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오드아이라...”
그의 낮게 들리는 목소리에 안나는 그의 잿빛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본다.
안나의 방 창가에 있던 드림캐처가 바람에 흔들리며 소리를 냈고, 책상에 있던 ‘전설속의 전설’ 책이 페이지가 넘어가며 어떤 페이지에 멈춰 선다.
‘뱀파이어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