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안개가 낀 영국 도시의 한 마을. 아무도 없는 새벽 거리의 안개 속 사이로 흰 구두의 소리가 나며 단정한 은발을 한 남자가 골목에서 걸어 나온다.
그리고 어느 바에서 나오던 붉은 웨이브를 한 여자가 술에 취해 조금 비틀거리며 아무도 없는 길을 걷다 코너로 돌며 은발의 남자와 부딪힌다.
“괜찮으세요?”
은발 머리의 남자의 나른한 목소리가 들리자 신경질적이던 여자의 표정도 풀렸고 남자가 부축을 해주자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걸어간다.
골목으로 들어서자 남자의 눈동자가 붉게 번득이며 여자를 머리를 잡고 목에 입을 댔다.
갑자기 돌변한 남자의 행동에 여자의 눈은 공포로 가득했고, 여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정한 목소리로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조용히 하자고 속삭였고 여자의 눈동자가 멍해졌다.
아침 햇살이 들어 암막 커튼이 쳐진 어두운 방 안에서 텔레비전 화면엔 한 지역의 골목에서 의식불명으로 쓰러진 여자에 대한 보도가 나왔고 원인불명으로 의식불명인 사람들에 대한 관계성을 얘기가 한다.
샤워 가운을 입고 젖은 은발 머리를 털며 텔레비전 화면을 한번 보고는 미소를 짓고 와인 잔을 집어 텔레비전을 향해 건배를 하고는 화면을 끈다.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리며 등치가 제법 있는 남자가 들어오며 인사를 한다.
“노아님, 셀레나님께서 모셔오라고 하십니다.”
“쉬고 싶은데.”
“안 오시겠다고 하면 무력을 써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어디 기사가 무서워서 안 가겠나. 옷만 갈아입고 가지.”
남자는 고개를 까닥하고는 방에서 나갔고, 노아는 한숨을 쉬며 옷을 갈아입는다.
창가가 많은 긴 복도를 따라 화려하고 웅장한 큰 문 앞에서 노아가 멈춰 서자 문이 안에서 열렸고, 길게 펼쳐진 카펫의 끝에 있는 계단 위 높은 곳에 한 여자가 우아하게 앉아 있었다.
노아는 주변에 서있는 기사들을 보며 입꼬리 한쪽이 올라갔고 여자에게 다가가 인사를 한다.
“무슨 일이죠. 여왕님?”
“어제 그 마을의 일. 니가 한 짓이지?”
“아시면서 이렇게 부를 일인가요?”
“노아. 자꾸 이런 식으로 하면 인간들이 알아채는 건 순간이야.”
“다 죽이면 되죠.”
노아의 파란 눈동자가 붉게 타오르며 번득였고, 그의 표정은 재밌는지 웃고 있었다.
셀레나는 그의 표정을 보자 심각해진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고, 붉은 드레스를 잡고 노아에게 걸어가는 모습도 우아하고 기품 있었다.
셀레나가 다가오자 노아는 그녀를 노려봤고, 그녀는 온화한 미소를 짓고 노아의 손목을 잡자 노아의 눈동자가 갑자기 파랗게 돌아오며 얼굴이 갈라져 깨질 것처럼 보이며 고통스러운 듯 바닥으로 쓰러졌고 눈이 빨개지며 셀레나를 노려봤다. 셀레나는 그런 노아를 내려다보며 차가운 미소를 짓고 있었고 손목을 놔버린다.
“니가 아무리 왕족이라 해서 봐줄 생각은 없다. 한번만 더 이런 식으로 행동하면 죽음을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노아가 숨을 거칠게 내쉬고 그녀를 노려봤고, 깨질 거 같던 얼굴은 다시 붙었고 셀레나는 서있던 기사들에게 고개를 한번 까딱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기사 2명이 노아의 팔 하나씩 잡으며 문 밖으로 끌고 나가더니 던졌다.
노아는 한숨을 쉬고는 자신의 흰 옷을 털며 일어나며 기사를 향해 차갑게 웃었다.
“이런 식의 취급. 그냥 있진 않을 거니까.”
문 사이로 아까 노아를 모시러 왔던 등치의 기사가 나오며 정중히 인사를 한다.
그 기사는 기사들 중에 대장 같았고 나머지 2명이 그에게 역시 인사를 했다.
“앞으로 조심하세요.”
“제이,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노아는 고개를 돌리며 미소가 사라졌고 굳은 표정으로 복도를 걸어갔다.
햇빛이 다 들어오는 통 유리의 방 안에서 더욱 하얗게 빛나는 얼굴과 붉은 눈동자를 한 렌이 이젤 앞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고 캔버스엔 이목구비가 없는 여자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붓을 들던 손에서 놓더니 멀리서 턱을 괴고 멀리서 바라본다.
“별로 안 닮은 거 같은데..”
“누군데.”
갑자기 테라스에서 들리는 말소리에 경계하는 눈동자로 소리 나는 곳을 쳐다보자, 햇빛을 받아 더욱 하얀 얼굴을 가진 노아가 인사를 하고 있었고, 그의 흰 옷차림에 더욱 투명하게 보여 붉은 눈동자가 더욱 선명해보였다.
“아침부터 무슨 일이지?”
“주말에 친구 집에 놀러오는 거라고 해야 할까?”
“넓은 성으로 다시 가지? 좁은 우리 집에 있지 말고.”
“이 동네는 가끔씩 햇빛이 들어와서 좋다구. 뱀파이어도 가끔은 햇빛이 필요하잖아.”
렌을 향해 눈을 씽긋하자 렌은 노아를 외면하며 기분 나쁜 표정을 지었고, 그림을 덮어두려고 하자 노아가 렌을 밀고는 그림 앞에서 바라본다.
흥미로운 미소를 지으며 그림의 여자를 쓰다듬자 렌이 얼른 흰 천을 가져와 덮어버린다.
천으로 덮힌 그림을 보며 재밌다는 듯 웃으며 은발 머리를 쓸어 넘긴다.
“아무래도 여기서 당분간 지내야겠어. 재밌는 일이 생길 거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