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화화원(花花園)
난주(蘭州)는 감숙성의 성도(省都)로 북서쪽의 오령[烏嶺]을 넘으면 중국 본토와 서역을 잇는 주요교통로인 하서회랑(河西回廊)에 인접한 도시다.
교통의 중심지라는 지역적인 특성탓에 외지인들의 유입이 활발한 곳이어서 주민들의 성향이 거칠고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제기랄!”
금일 야간 당직인 난주부(蘭州府)의 기찰포교 곡만호는 신경질적으로 발길질을 했다.
길바닥에 놓여져 있던 작은 돌이 그 발길에 채여 이삼 장 밖으로 날아갔다.
사방이 어둠에 잠겨 있는 데다가 달도 구름속에 숨은 밤이어서 날아가는 돌은 보이지 않았다.
돌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어쩐지 섬뜩해서 곡만호와 나란히 걷던 같은 조의 섭진구는 이맛살을 잔뜩 찌푸렸다.
“그만 좀 해라. 벌써 반시진째야. 아무리 월화년을 보고싶다고 해도 할 일은 해야할 거 아냐. 속곳도 보여주지 않는 계집이 뭐 그리 보고 싶다고. 가뜩이나 매일 아침만 되면 난주부 전역에서 시체가 한두 구씩 발견돼서 신경이 곤두서는 판인데 자네까지 일하면서 그렇게 투덜거리면 어떡하나!”
“알아, 안다고. 하지만 그 죽어나가는 놈들이 어떤 놈들인지 뻔한데 이렇게 순찰을 돈다고 우리가 무얼 할 수 있겠느냐고. 위에선 벌써 이 시기가 지나면 어떻게 사건을 종결할지 답이 나와있는 상황이잖아.”
“그렇다해도 우린 할 일만 하면 돼. 윗분들이 할 일은 그 양반들이 하면 되는 것이고.”
섭진구도 곡만호의 불만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도 불만으로 속이 부글거리고 있었지만 그가 곡만호와 다른 점은 그것을 표현하지 않고 참는다는 데 있었다.
그가 참는 것은 별다른 이유가 있지는 않았다.
단지 표현한다고 그 불만을 해소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들이 걷고 있는 곳은 난주부 외곽의 주택가 골목이었다.
벽돌로 쌓은 담장의 높이가 일장이 넘어가는 대저택들이 운집해 있는 곳이어서 이곳이 난주부의 유력자들이 사는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했다.
골목길의 너비는 이장 정도였고, 바닥의 흙은 잘 다져진 편이었다.
야간순찰을 돌고 있는 섭진구와 곡만호는 기분나쁜 표정이기는 했지만 살인사건이 연이어 일어난다는 밤에 걷는 사람들치고는 두려움을 느끼는 표정들은 아니었다.
곡만호는 자신의 키를 한참 넘어가는 왼편의 담장에 흘낏 시선을 한번 주고는 입을 열었다.
“그런데 무림인들이 왜 이렇게 외진 곳에 와서 칼부림들을 하는지 아나?”
“글세, 자네가 모르는 것을 난들 알겠나! 하지만 그들이 무엇을 하든 굳이 알려고 할 필요는 없다는 건 알지. 그게 명을 늘인다는 것도.”
“허긴 자네말처럼 그네들이 하는 일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 만수무강에 이롭다는 건 아네만, 어제 밤에 월화를 찾아갔다가 만난 아구놈한테 희한한 얘기를 들어서 말이야.....”
곡만호가 말끝을 흐리자 섭진구의 얼굴에 호기심이 떠올랐다.
“아구? 화화원(花花園)의 아구?”
아구는 화화원에서 공짜로 먹고 자는 대신에 술값을 안내고 도망치는 손님에게서 돈을 받아내거나, 뒷골목의 주먹패들이 화화원에서 돈을 뜯어내기 위해 부리는 소란을 해결하는, 좋게 말하면 해결사고 나쁘게 말하면 파락호 중의 한 명이었다.
“그래, 그놈이 난주부에선 소식이 제일 빠르잖나!”
“흥, 계집들 치마폭에서 나오는 정보가 빠르면 얼마나 빠르길래!”
말은 그렇게 하지만 섭진구의 어깨는 곡만호에게 한 뼘은 가까워져 있었다.
곡만호가 아구를 통해서 난주부의 사고뭉치들에 대한 정보를 솔찮게 얻어듣고 있음을 잘 아는 그였다.
곡만호도 그런 섭진구의 마음을 읽은 듯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구 말로는 지금 난주에는 평생 가야 한두 번 볼까말까한 거물급 무림인들이 대거 몰려들고 있다고 하더군.”
“그거야 이제는 정보랄 것도 없잖나?”
“문제는 그들이 왜 이런 외진 곳까지 몰려드느냐지!”
곡만호가 슬쩍 웃으며 말을 끊자 섭진구는 궁금증으로 몸이 달았다.
“거 뜸들이지 말고 읊어 보게. 근무 끝나면 술 한잔 거하게 살 테니.”
섭진구의 말에 곡만호는 만족한 듯 말문을 열었다. 원하던 말을 들었으니 뜸들일 이유가 없었다.
“난주에서 무슨 징표가 발견이 되었다고 하네.”
“징표?”
“그래, 정확하게 그게 뭔지는 아구도 모르지만 그 징표를 얻으면 천하에 무서울 것이 없는 사람이 된다는 어마어마한 것이라더구만.”
곡만호는 과장된 몸짓으로 양손을 활짝 벌리며 말했다.
“얻으면 천하에 무서울 것이 없는 징표라구? 세상에 그런 것이 있단 말인가?”
섭진구는 곡만호의 말을 믿기 어렵다는 듯 인상을 찡그리며 되물었다.
일반인들도 아닌 무림인들이 무엇을 얻었을 때 천하에 무서울 것이 없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간단한 의미가 아니다.
섭진구가 믿기 어려워하는 것이 당연했다.
“좀 허황된 구석이 있는 말이긴 하지만 어지간한 물건으로는 꼼짝도 안한다는 무림의 고수들이 대거 움직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니 믿지 않을 수도 없어.”
“휴우.....어쨌든 이번 풍파가 빨리 가라앉기를 바랄 뿐이야. 업무량이 두 배는 늘었네.”
섭진구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 말에 곡만호도 어깨를 늘어뜨렸다.
거창한 물건이 나타나고, 무림의 고수들이 몰려드는 것은 그들과 같은 사람들과는 상관이 없는 일이다.
그들은 무림이라는 세계가 있다는 말만 들었지 실제로 무림인을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무림인들에 의한 살인이 분명한 사건이 연일 계속되면 그 일을 처리하는 실무자들은 그들과 같은 하급관리들이다. 업무량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최근 이십여 일동안 난주에는 하루에도 여러 명이 시신이 되어 죽어나가고 있었다.
모두 쉬쉬하고 있었지만 민심은 이미 흉흉해진 상태였다.
난주부에서 포교들을 풀었지만 범인은 잡히지 않았고 살인사건은 매일 계속되었다. 그러나 포교들뿐만 아니라 주민들도 살인사건이 법에 의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살인자가 어떤 자들인지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죽은 채로 발견되는 자들의 상처는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해석이 불가능한 상처들이었다.
외관상 아무런 상처가 없는 시체도 있었고, 무시무시한 힘에 의해 전신의 뼈가 으스러져 문어처럼 흐물거리는 시신도 있었다.
도검에 의해 베어진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반듯하게 잘려 상하체가 분리된 시신도 한둘이 아니었다.
죽은 자들의 상처는 그 살인을 행한 자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섭진구와 곡만호도 살인사건의 범인이 어떤 자들인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그 범인을 잡을 가능성이라곤 만에 하나도 없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결국 순찰은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그러나 순찰을 돌지 않을 수도 없었다. 위에서 순찰강화지시가 떨어진 상황이기 때문이다.
일이 많아져도 그들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리저리 뛰어다닐 힘이라도 받을 텐데 무림인이 연관된 사건은 그들이 개입할 여지도 없다.
무림인에 의해 행해지는 이런 사건은 그들이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는 윗선에서 대부분 마무리되는 것이다.
곡만호와 섭진구가 터덜거리는 걸음으로 골목을 벗어나자 담장의 그늘 아래 드리워졌던 어둠의 한 자락이 마치 환상처럼 그 너울을 벗었다.
어둠의 너울이 걷히며 드러난 것은 사람이었다.
나타난 자의 시선이 곡만호와 섭진구의 뒷모습을 향하며 잠시 빛을 발했다.
허공에 푸른빛을 발하는 두 개의 광구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곡만호와 섭진구가 보았다면 귀신이라며 기겁을 할만한 광경이었지만 그 두 사람은 이미 골목에서 사라진 후였다.
바람이 심하고 추운 난주의 날씨 때문에 대부분의 주민들은 외출할 때 늘 피풍을 걸친다.
어둠속에서 나타난 사람도 흑색 피풍으로 전신을 가리고 있었고, 얼굴은 흑색 면포가 눈을 제외한 다른 부분을 모두 가리고 있어서 드러난 것은 감정을 느끼기 어려울 정도로 차갑게 빛나는 두 눈뿐이었다.
“아구라고?”
들릴 듯 말 듯한 음성으로 중얼거리는 사내의 음성에는 의혹이 가득 했다.
순찰을 도는 포교들을 발견하고 잠시 몸을 숨겼던 그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면서 고개를 갸우뚱해야 했다.
그들 중 한 사람의 입에서 일반인들이라면 절대로 알 수 없는 비밀이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땅딸막한 체구의 포교가 전해들었다는 내용은 기원에서 식객노릇을 하며 주먹이나 쓰는 일개 파락호가 알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잠시 생각에 잠긴 모습으로 서 있던 사내의 신형이 서늘한 바람이 골목을 휘돌아나가는 것과 함께 사라졌다.
눈을 부릅뜨고 있어도 움직임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신법이었다.
화화원(花花園)은 난주시내를 관통하는 번화가 중심대로의 서쪽 끝에 위치하고 있는 청루(靑樓)였다.
관외에서 난주로 들어서는 길목에 자리잡은 데다가 감숙성 최고 소리를 듣는 기녀를 백여 명이나 보유한 난주 제일의 기원으로 일년 열두 달 손님이 끊이질 않을 정도로 유명한 곳이다.
화화원은 세 개의 커다란 건물이 이천여 평에 달하는 대지에 삼각형으로 자리잡은 구조를 갖고 있었다.
화화원의 식솔들은 그것을 각기 전원(前園)과 후원(後園), 그리고 숙소라고 불렀다.
전원은 일반 기녀들이 손님을 접대하는 곳이고, 후원은 특급으로 분류되는 기녀들이 머물며 고급 손님들을 접대하는 곳이다. 그리고 숙소는 일반 기녀들과 화화원의 식솔들이 거주하는 장소였다.
전원과 후원은 각기 인공가산과 작은 배를 띄울 수 있는 이백여 평의 연못, 그리고 여러 개의 정자가 마련되어 있을 정도로 넓고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하지만 숙소는 달랐다.
숙소는 전, 후원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위치에 지어져 있었고, 높은 담과 담을 따라 심어진 사오장 높이의 나무들로 둘러 쌓여 있었다.
숙소의 건물은 삼층이었는데 각 층마다 마당을 바라보는 방향에 나무로 된 마루가 길게 나 있었고 마루의 뒤에는 수십 개의 방문이 연이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염병, 주둥이가 문제라니까!”
숙소의 방들 중에 불이 켜진 방은 몇 개 되지 않았다.
모두 일을 할 시간이었고, 불이 켜져 있는 방은 불러주는 손님이 없어 일을 나가지 못한 기녀들이 있는 방이었다.
1층의 마루에 앉아 괴괴한 어둠이 내린 마당을 바라보고 있던 삼십 중반의 사내가 중얼거리며 주먹으로 자신의 입을 쳤다.
코가 우뚝하고 얼굴선이 굵어 언뜻 보면 사내답게 생긴 얼굴인데 눈동자가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것이 첫인상을 망가뜨리는 사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