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연재 > 무협물
천명
작가 : 임준후
작품등록일 : 2016.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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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화
작성일 : 16-07-12     조회 : 723     추천 : 0     분량 : 5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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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가 안내한 용화객잔(龍華客棧)은 그들이 있던 곳에서 백여 장 정도 떨어져 있었다.

 객잔은 삼층으로 된 건물이었다.

 아이의 뒤를 따라 일층으로 들어선 그들은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생각보다 손님이 많았던 것이다.

 일층엔 이십여 개 정도의 탁자가 놓여져 있었는데 빈자리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 목소리가 큰지 비교라도 하고 있는 듯 목청을 있는 대로 돋구고 있는 판이라 시장바닥이 따로 없었다.

 그들이 객잔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이는 다시 거리로 뛰쳐나갔고, 손님들 사이를 걸어다니고 있던 스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점소이가 그들을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머무실 건가요?”

 “그렇네. 방 두 개를 주게. 그리고 식사를 하고 싶은데 이곳은 사람이 너무 많구먼.”

 사내와 여인이 입고 있는 옷은 먼지에 뒤덮여 지저분했지만 그 재질이 일반 서민이 입는 것과는 다른 고급이라는 것을 눈치챈 점소이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지금은 마침 식사시간이어서....하지만 이층은 손님도 적고 조용합니다. 올라가시죠.”

 점소이의 말처럼 이층은 일층에 비해 한가했다.

 자리도 절반 정도는 비어 있었다. 소음도 적당해서 사내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에 앉은 그들은 점소이에게 몇 가지 간단한 요리를 주문한 후 얼굴을 온통 가리고 있던 두건을 벗었다.

 여인이 두건을 벗은 순간 이층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들어선 두 사람을 무심결에 보고 있던 사람들의 눈이 왕방울처럼 커지며 입을 다물었고 그 침묵은 전염이라도 된 듯 이층 전체로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두건을 벗은 사내의 눈썹이 이층의 갑작스런 침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꿈틀거렸다.

 사내는 사십대 초반의 중년인이었는데 숯검정 같은 눈썹과 이글거리는 커다란 눈, 우뚝 솟은 커다란 콧날이 호랑이를 연상시키는 얼굴이었다.

 그가 화난 듯한 표정으로 사방을 훑자 사람들은 움찔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마치 금방이라도 포효할 것처럼, 그들과 눈을 마주치는 중년인의 기세는 사나웠다. 하지만 고개를 돌리는 그들의 얼굴엔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다.

 그 아쉬움의 진원지가 어디인지 중년인은 잘 알고 있었다. 한두 번 겪은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싫어서 어떻게든 데리고 오지 않으려 했는데 장문인의 명이라 어쩔 수 없이 데리고 온 애물단지가 지금 자신 때문에 벌어진 일을 즐기기라도 하는 듯 그의 앞에서 웃고 있었다.

 점소이가 가져다 준 차를 마시고 있는 여인의 모습은 이층에 있던 사람들의 반응이 당연하다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스물을 전후한 나이의 이제 막 소녀의 분위기를 벗어난 듯한 여인은 생글거리는 미소를 입가에 배어 물고 중년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넋이 나갈 미소였지만 중년인에게 그 미소는 쓸데없는 분란의 원흉으로 보일 뿐이었다.

 “란아, 사모님이 주신 면사라도 쓰는 것이 어떻겠느냐?”

 “답답해서 싫어요, 사숙.”

 잘라 말하는 여인의 말에 중년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여인의 고집은 그가 속한 문파내에서도 자타가 공인하는 것이다. 장문인도 꺾지 못하는 고집을 그가 무슨 재주로 꺾을까.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며 주변의 탁자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던 여인의 시선이 빛났다.

 중년인의 사나운 기세에 감히 자신을 향해 시선을 주지 못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등을 의자에 기댄 채 팔짱을 낀 어딘지 방만한 자세로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사내를 보았던 것이다.

 사내는 어깨를 덮는 머리카락을 아무렇게나 풀어헤치고 있어서 그녀가 좋아하는 단정함과는 한참이나 거리가 멀었다.

 그의 이목구비는 선명했지만 미남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나마 사내의 얼굴 중 봐줄 거라고는 흑백이 뚜렷한 눈뿐이었다.

 하지만 여인은 잠시 별볼일없는 사내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무심결에 부딪친 사내의 눈이 마치 자석처럼 그녀의 시선을 잡아끌었기 때문이다.

 사내와 눈이 마주쳤던 여인의 그린 듯 아름다운 눈썹이 하늘로 치솟았다.

 눈꼬리도 따라 올라가는 것이 무척이나 화가 난 표정이었다.

 그녀가 화를 내는 데는 당연히 이유가 있었다.

 봐줄 것이 없는 평범한 흑의인이 무심한 표정으로 시선을 돌려버렸던 것이다.

 감히 그녀가 보아주는데 먼저 시선을 돌리는 사내가 있다니.

 사내가 시선을 돌린 것이 부끄럽거나 의도적으로 그녀의 관심을 끌기 위한 것이었다면 그녀도 이렇게 화가 나지는 않았을 터였다.

 사내의 태도는 그녀에 대한 무관심, 그 자체였다. 세 살 먹은 아이라도 알 수 있을 만큼 그 의미는 명백했다.

 맞은 편에 앉아 여인을 바라보던 중년인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여인의 시선이 고정되었을 때부터 그는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가 제지하지 않는다면 이제부터 그의 천방지축인 사질이 무슨 짓을 할 지는 불을 보듯 뻔했다.

 이런 경우 또한 적지 않게 겪어 본 그였다.

 “란아!”

 나직하지만 진중한 음성이다.

 막 자리에서 일어나 발작하려던 여인은 일어날까 말까 갈등하는 듯했지만 결국 일어나지는 못했다.

 그녀를 바라보는 중년인의 시선이 불을 토하는 듯했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난다면 중년인은 화를 낼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속이 부글거렸지만 참아야 했다.

 중년인이 그녀를 귀여워하는 것은 의심할 여지도 없는 일이지만 그가 화를 내면 그녀도 감당하기 어렵다.

 중년인에게 붙은 별호에 사자(獅子)라는 평원의 제왕이 들어 있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의 불같은 성정을 건드린 사람 중 지금까지 온전했던 사람이 없다는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산에서라면 중년인을 말릴 자격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지만 이곳은 아니었다. 이곳에는 그녀를 위해 중년인을 말려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흑의인은 살기에 가까운 기운을 담은 타는 듯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미모의 여인이 있다는 것을 눈치챌 만 한데도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탁자옆에 놓여 있던 커다란 보퉁이를 오른손에 들고는 성큼성큼 걸어 계단을 내려갔다. 그의 시선은 한 번도 여인을 돌아보지 않았다.

 이층에 남은 여인은 약이 올라 죽겠다는 표정이 되었고, 동행한 중년인은 싱긋 웃으며 그런 여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용화객잔의 후원에 마련된 객방에 들어선 남정기는 침상에 걸터앉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화화원을 나와 장거리 여행에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다보니 해가 저문 탓에 하룻밤을 더 머물고 난주를 떠날 생각으로 들어선 용화객잔이었다.

 ‘어젯밤의 화화원에서 본 인물들이나 오늘 객잔에서 보았던 그 남녀나 모두 무림중의 인물들이다. 그것도 어설픈 이 삼류의 인물들이 아니라 일류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 인물들이다.’

 팔베개를 하고 침상에 누운 남정기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난주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비록 난주가 감숙의 성도라고는 하나 그 정도의 고수들을 하루 밤낮 동안 계속해서 마주칠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지금 떠나야 할까?’

 무림 중의 고수들은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이 움직일 때 그것을 알아채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 그들이 자신의 정체를 스스로 드러내기 전에는.

 일반의 민간인들에게 무림인이라고 표를 내며 다니는 자들 중 일류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정사(正邪)를 막론하고 무림 중의 고수라면 명예를 목숨보다 중하게 여긴다. 그러나 그들이 중히 여기는 명예는 민간의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는 그런 명예가 아니다.

 진정한 무인(武人)의 명예는 칼밥을 먹는 자들에게서 인정받았을 때 만들어진다. 그래서 민간인들 사이에 별호가 회자되는 자들 중 진정한 고수는 없다고 단언할 수 있는 곳이 무림이다.

 진정한 고수들은 오히려 민간인들에게 이름이 회자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무림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자들의 입에 그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은 그 자신이 민간인들의 눈에 뜨일만한 허술한 구석이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고수라 자부하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수치다.

 그래서 민간인들은 무림 중의 고수들을 평생동안 한 번도 제대로 만나기가 어렵다.

 하지만 남정기는 하루사이에 고수라고 불릴만한 사람들을 이미 여러 명 보았다.

 그것은 심상치 않은 일이었다.

 난주에 정착해 살아가는 무림인들이 아닌 외지의 고수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이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든 남정기는 개입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떠나야 할까? 이곳에 머물면 공연한 풍파에 휩쓸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남정기의 찌푸려진 미간은 펴지지 않고 있었다.

 그는 이곳에 머물다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풍파에 휩쓸리게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고 있었다.

 그의 나이는 많지 않았지만 경험은 어느 노강호인에 비해서도 뒤떨어지지 않을 만큼 풍부했다.

 그는 무림 중의 풍파라는 것이 무공을 익힌 자들이라면 그 자리에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그의 뜻과 무관하게 휩쓸어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주변에서 생각지도 않은 일이 일어나면 귀찮은 일에 휘말릴 공산이 컸고 그는 그것을 우려하고 있었다.

 그가 먼 길을 온 것은 사연이 있기 때문이었고 그 사연은 무림과도 관계가 있었지만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아무래도 떠나야겠지.’

 남정기는 침상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먼 길을 가야했고 아마도 오늘밤은 노숙도 불사해야할 것이 틀림없었다.

 길을 떠나기 전 몸을 최상의 상태로 만들 필요가 있었다.

 눈을 반개하고 양손의 엄지손가락을 맞대어 하단전을 둥글게 감싸고 앉은 그의 안색이 점점 장중하게 변해 갔다.

 그가 눈을 뜬 것은 한 시진 정도가 지난 후였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피풍을 걸치던 그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밤이로군.’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그는 이 시간에 난주의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길을 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겨울바람을 맞는 것이 귀찮은 일에 휘말리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는 검은 천에 둘둘 말은 도를 허리춤에 건 후 보이지 않도록 등뒤로 돌려 피풍으로 덮었다.

 현재 중원을 지배하고 있는 명(明)은 원칙적으로 민간인이 도검류를 소지하고 다니는 것을 금하고 있다.

 하지만 도검의 휴대금지가 엄격한 것은 아니어서 박도와 같은 병기를 소지한 민간인들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민간인이 군에서나 사용할법한 살상용 병기를 소지할 경우 병사들의 검문을 피하기는 어렵다.

 정국이 혼란을 거듭하며 군(軍)의 기강이 문란해지고 있고, 이곳이 중앙에서 멀리 떨어진 벽지(僻地)이기는 하나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

 수중에 있는 무기가 병사나 포졸들의 눈에 걸리면 귀찮은 일이 생긴다.

 물론 몇 푼의 은자로 피할 수 있는 귀찮음이긴 했지만.

 그는 장거리 여행을 위해 난주의 시장통을 헤매며 준비한 건량을 비롯한 여러 물품이 들어있는 보따리를 오른 쪽 어깨에 걸친 후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그의 객방은 일층이어서 방을 나서자 작기는 해도 정원과 연못이 나름대로 잘 꾸며진 직경 10여 장 정도 되는 정사각형의 정원이 나타났다.

 후원에 머무는 손님을 챙기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가 그와 눈이 마주친 점소이의 눈이 동전만하게 커졌다.

 그의 행색은 완연히 길 떠나는 사람의 그것이어서 점소이는 총총 걸음으로 그에게 다가와 물었다.

 “저, 손님. 지금 길을 떠나시는 건 무리십니다요. 바람이 차가워서 병에 걸리기 딱 좋은 날씨구먼요.”

 “급한 일이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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