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연재 > 무협물
천명
작가 : 임준후
작품등록일 : 2016.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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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화
작성일 : 16-07-18     조회 : 657     추천 : 0     분량 : 5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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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우웅

 먼저 달려든 자는 박도를 든 자였다. 그가 우두머리인 듯 했다.

 도끼질을 하듯 왼쪽 어깨를 내려찍는 박도를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던 강량의 신형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산적들의 움직임은 제법 빨랐지만 환영이 생길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서 살아온 강량이었다. 그런 그에게 이들의 움직임은 굼벵이보다도 더 느리게 보였다.

 슬쩍 어깨를 비틀어 가슴앞으로 박도를 흘려보낸 강량의 손이 아래로 떨어지는 박도의 날 반대편 윗부분을 움켜잡았다.

 박도를 쥐고 있던 자의 얼굴이 놀람으로 일그러졌다. 마치 쇠집게에 잡히기라도 한 듯 박도가 허공에서 딱 정지했던 것이다.

 그가 놀랄 때 강량의 발이 움직이며 사내의 가슴으로 뛰어들었다. 그의 어깨가 사내의 가슴과 거세게 충돌했다.

 터엉!

 우악!

 북치는 듯한 소리와 비명소리가 엇갈리며 박도를 들고 있던 사내의 신형이 삼사 장을 날아가더니 지면에 나뒹굴었다.

 쓰러진 사내의 눈은 돌아가 있었고 입에서는 허연 거품이 흘러나오는 것이 정신을 잃은 듯했다.

 강량을 향해 달려들던 사내들이 움찔했다.

 그들의 눈에 두려움이 떠올랐지만 그들은 그 두려움을 표현할 시간이 없었다.

 강량의 움직임은 이제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왼손이 낫을 휘두르는 사내의 손목을 무인지경으로 잡는가 싶더니 그의 왼발이 낫을 든 사내의 오른쪽 허벅지 안쪽을 걷어찼다.

 크윽

 낫을 든 사내의 중심이 단숨에 무너지며 쓰러지려는 것을 손목을 놓지 않고 있던 강량이 힘을 주어 잡아당겼다.

 낫을 든 사내의 신형이 강량의 몸쪽으로 쭈욱 딸려왔다.

 그를 향해 창을 찔러대던 두 사내가 어마 뜨거라하는 표정으로 창을 거두었다. 계속 찌르면 낫을 든 동료의 몸에 바람구멍을 내게 될 판이었던 것이다.

 강량의 왼쪽 팔꿈치가 딸려온 낫을 든 사내의 관자놀이를 강타했다.

 쾅

 낫을 든 사내는 입을 떡 벌리더니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그대로 주저앉으며 널브러졌다.

 주저앉는 사내의 정수리를 슬쩍 짚은 강량의 신형이 허공으로 일곱 자를 뛰어 올랐다.

 그의 측면에서 창을 찌르려던 두 사내의 눈이 귀신을 본 듯 휘둥그레졌다.

 그들은 그제야 확실하게 안 것이다. 상대가 무인이라는 것을.

 사내들의 눈에 선연한 공포가 떠올랐다. 그들은 산적이었지만 무공을 배우지 못한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무공을 익힌 자를 자신들이 상대하는 것은 섶을 지고 불속으로 뛰어드는 자살행위라는 것을.

 하지만 그것을 느꼈을 때 허공으로 뛰어오른 강량의 신형이 미끄러지듯 석자를 이동하며 그들의 정면으로 접근한 상태였다.

 그의 두 발이 무서운 속도로 공포에 질려 있는 사내들의 가슴을 걷어찼다.

 콰쾅!

 으아아악!

 거친 비명과 함께 사내들은 창을 놓치고 먼 거리를 날아 바닥에 떨어져 뒹굴었다.

 사내들을 쓰러뜨리고 바닥에 발을 딛은 강량의 신형이 폭풍처럼 장내를 휩쓸었다.

 어지럽게 난무하던 비명이 어느 순간 뚝 그쳤다.

 장내에 서 있는 사람은 강량뿐이었다.

 모두 쓰러진 것이다.

 산적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바닥에 쓰러져 꿈틀거렸다.

 박도를 들었던 자는 갈비뼈 대여섯 개가 나갔고, 낫을 들었던 자는 다리뼈가 부러졌다.

 그들은 모두 팔다리뼈 한 군데씩은 부러진 것이다. 냉정한 손속이었다.

 공포에 질린 산적들은 강량을 제대로 응시하지 못하고 눈치를 보고 있었다.

 우두머리로 생각되던 박도를 쥔 자가 가슴을 움켜쥐고 간신히 일어나 앉는 것을 보던 강량이 말문을 열었다.

 “가라. 이곳에서 다시 산적질을 한다는 소리가 내귀에 들어오면 그 때는 이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

 우두머리는 고통으로 입을 열지 못했다.

 그는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인 후 후들거리는 다리를 애써 가다듬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강량의 신형이 산길을 따라 무서운 속도로 달려내려가기 시작했다.

 “미쳤지. 저런 인간을 털 생각을 하다니.....”

 산적들은 서로서로를 부축하며 축 늘어진 모습으로 숲을 향해 걸어갔다. 목숨을 부지한 것만도 천행이라고 서로를 위로하면서.

 

 

 아홍은 많은 이야기를 했다.

 남정기의 생각처럼 아홍의 가족은 고향을 떠나 정착할 곳을 찾고 있는 중이었다.

 아홍의 고향은 난주의 북쪽에 있는 고랑(古浪)이라는 곳이라고 했다.

 아홍의 옆에서 걷고 있는 부모는 성실하게 사는 농부였다. 하지만 아홍은 성실한 부모를 두고도 늘 배가 고파야했다.

 아홍의 부모는 밭농사를 주로 지었는데 풍년이 들어도 아홍은 늘 먹을 것이 없었다.

 아이는 가을이 되면 어떤 사람들이 와서 수확한 작물의 대부분을 뺏어갔다며 화난 표정을 지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홍은 올해도 수확한 작물의 대부분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긴 아버지가 어느날 밤 엄마에게 지금처럼만 일하면 고향에서보다는 좀 더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곳이 있다며 그곳으로 가자고 말하는 것을 들은 며칠 후 고향을 떠났다고 했다.

 아홍이 한 얘기에는 복잡한 고향마을의 사정이 들어있었지만 아이의 설명만으로 모든 것을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아이가 본 세상이 그다지 밝지 않았던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아홍이 하는 이야기가 전부 어두운 것만은 아니었다.

 아홍이 주로 이야기한 것은 고향마을에서 또래의 아이들과 신나게 놀던 이야기였다.

 감숙성 북부의 고랑은 겨울이 길고 눈이 많은 지역이어서 아홍은 눈과 얽힌 재미있는 기억을 많이 갖고 있었다. 아직은 세파에 찌들지 않은 아이여서 그 기억은 퇴색되지 않았다.

 환한 표정으로 정신없이 이야기하는 아홍에게 귀를 기울이며 걸음을 옮기던 남정기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들은 양편이 일천척(一天尺) 높이는 됨직한 병풍처럼 늘어선 산 사이에 난 길을 내려가고 있었다.

 관도는 산을 오를 때와는 달리 장정 너댓 명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으면 빈틈이 없을 만큼 좁았다. 관도 양옆의 산세가 가팔라서 관도를 넓히지 못한 탓이다.

 남정기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구불구불 이어진 산길의 중턱쯤이었다.

 그가 있는 곳과는 얼추 직선거리로 이백여 장 정도 떨어진 곳이다. 하지만 그와 함께 가는 사람 중에 그의 눈빛이 변한 것을 느낀 사람은 없었다.

 남정기의 눈빛에는 의아함과 재미있다는 기색이 동시에 떠올라 있었다.

 “홍아야, 저 앞에 재미난 구경거리가 있는 듯한데 조금 빨리 걷자.”

 “예?”

 느닷없는 남정기의 말에 홍아는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남정기는 그런 홍아를 보고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산적이 뭐하는 사람들인지 아느냐?”

 “강도!”

 홍아는 큰 소리로 외쳤다. 옆에서 길을 걷던 사람들이 모두 놀라 홍아를 바라보았다.

 남정기는 여전한 미소를 입가에 드리우며 말했다.

 “산적이 두드려 맞는 거 본적 없지?”

 “예?”

 “저 앞에 가면 그것을 볼 수 있단다. 늦으면 못 볼지도 몰라.”

 남정기의 말에 홍아의 걸음이 빨라졌다.

 홍아는 산적이 무서운 존재라는 말을 부모님에게 여러 번 들었지만 지금은 이상하게도 겁이 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옆에 있는 시커멓고 키 큰 아저씨가 어떤 위험도 막아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남정기와 같이 가는 사람들이 모두 홍아같지는 않았다.

 홍아의 아빠가 실색한 안색으로 앞으로 달려나가려는 홍아의 팔목을 잡으며 떨리는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저....저.....저 앞에 정말 산적이 있는 겁니까?”

 의혹과 두려움이 완연했다.

 남정기는 혀를 찼다. 하지만 이해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일반의 백성들에게 산적이란 두려운 존재다.

 “있긴 하지만 위험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홍아의 아버지는 남정기의 말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

 남정기는 대답을 하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설명해줄 필요도 없고 설명해준다고 믿을 리도 없는 일이다.

 백여 장이 넘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바로 옆에서 듣는 것처럼 듣고 있다는 것을 무림(武林)이라는 세상을 알지도 못하는 시골 농부에게 무슨 수로 이해시킬 수 있을 것인가.

 물론 남정기도 평소와 같은 경우라면 그 정도의 거리에서 일어나는 일을 들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백여 장 앞에서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고 그 소리는 결코 작은 소리가 아니었다. 게다가 이곳은 조용한 숲속이어서 소리가 더 먼곳까지 전달된다.

 남정기가 입을 다물자 홍아의 아버지는 더 이상 묻지 못했다.

 남정기가 친근감을 표한 사람은 홍아였지 홍아의 아버지가 아니다.

 정면을 응시하는 그의 눈빛은 무심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의 수염이 거뭇거뭇한 굵은 턱선은 질문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완강해 보였다.

 남정기와 홍아를 비롯한 사람들이 산중턱쯤 내려왔을 때 사람들의 안색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으흐흐흑!”

 여러 사람의 억눌린 신음소리가 눈앞의 울창한 나무에 가려진 굽은 길너머에서 들려왔던 것이다.

 두려움과 궁금함이 엇갈린 표정으로 길을 돌아갔을 때 사람들은 십여 명의 사내들이 서로서로를 부축하며 막 숲속으로 사라지는 뒷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짐승가죽 옷을 이리저리 기운 허름한 옷을 입고 손에 든 낫이며 도끼, 박도를 땅에 질질 끌며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은 행색으로 보아 흔히 사람들이 녹림도라 부르는 산적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들 중 온전하게 걸음을 옮기는 사람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모두 어디 한 군데는 부러진 듯 부축이 없으면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하는 낭패한 몰골들이었다.

 ‘누군지 잘못 건드린 모양이다. 위에서 들은 소리는 절도가 엄정해서 제대로 배운 자로 느껴졌는데 손속이 무척 맵군. 전부 팔다리 중 한 군데는 부러뜨렸다. 이 겨울에 굶어죽기 딱 좋게 만들어 놓았다. 아무리 배운 것 없는 산적이라도 무기를 든 장정 열 하나라면 적은 수가 아닌데 단숨에 승부가 났다. 어떤 자들이었을까?’

 남정기는 산적들의 팔다리를 나무젓가락 부러뜨리듯 한 자들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그는 산적들이 만난 적이 중 단 한 명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산길을 내려오며 들은 타격음은 서른을 세기 전에 끝났다.

 아홍의 아버지가 아홍을 잡지 않았다 해도 아홍은 산적을 때리는 사람의 모습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아홍의 걸음으로는 아무리 빨라도 손을 쓴 사람이 마무리를 짓기 전에 이곳에 도착할 수는 없었다.

 남정기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구경중에 가장 볼만한 것은 불구경과 싸움구경이라고 했는데 좋은 볼거리를 놓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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