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는 그의 목소리에 심정이 그대로 묻어났다.
“개문령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그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해석된 암호문에도 그런 내용은 들어있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삼마가 적족신개를 납치하고 그와 개방을 통해 찾아다닌 물건이라는 것만으로도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개문령을 얻기 위해 광분했지. 생각해 보게. 무림사상 고금오대고수를 꼽는다면 들지 못하지만 십대고수를 꼽는다면 반드시 들어간다는 삼대마종이 찾던 물건일세. 온갖 추측이 난무했지. 개문령을 얻으면 삼마를 넘어서는 절세의 무공과 산처럼 쌓인 보물을 얻을 수 있다는 내용이 추측의 주류를 이루었고.”
“삼마를 넘어서는 무공이라....”
남정기는 고개를 내저었다.
남정기의 표정을 본 전중걸은 잘 손질된 턱수염을 매만지며 말문을 열었다.
“자네도 별로 미덥지 않다고 생각하는군.”
“삼대마종 정도의 인물들이 다른 무공을 얻기 위해 강호에 나왔을 거라는 건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요. 그 나이에 더 나은 무공을 얻어 무엇에 쓰겠소.”
전중걸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그들이 강호에 등장했을 때 이미 머리가 허연 노인들이었는데 그 나이에 더 강력한 무공을 얻는다고 해서 그들이 자신들이 평생 익힌 무공을 포기하고 그것을 익힐 가능성은 거의 없지. 하지만 개문령을 얻으면 무공에 관련된 무엇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네. 적족신개가 남긴 암호문엔 그것을 얻는다면 삼마의 제어를 벗어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하니까. 구체적인 내용은 전하는 것이 없어 무어라 말하긴 어렵지만 말일세.”
전중걸은 덤덤한 얼굴로 주변의 풍광에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당시 그 정보를 들었던 사람들은 몇 되지 않았네. 강호를 통틀어 삼십에서 사십 명 정도였지. 하지만 그들은 강호무림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무게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었네. 그들의 뜻에 따라 움직일 사람들이 최하 이만 정도는 되었어. 무림인 이만 명이라면 무림인 중 오할 이상이라고 할 수 있는 숫자일세. 그들은 개문령을 찾기 위해 전력을 다했지만 개문령을 손에 넣은 사람은 없었네. 그들이 움직이는 과정에서 결국 개문령에 대해 강호의 실력있다는 사람들은 모두 알게 되었지. 그 많은 사람이 움직이는데 보안유지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니까. 개방은 그때 한 번 더 홍역을 치렀지. 해독된 암호문을 가진 개방의 장로 중 한 명이 개문령이 어디 있는지 알고 그것을 찾으러 갔다는 것이 확인되었거든. 천하가 개방을 핍박했네. 그를 내놓으라고. 개문령앞에선 강호도의니 하는 것은 한푼의 값어치도 없었네. 하지만 개방도 속수무책이었어. 암호문은 개방내에 남아있는 것이 없었고, 사라진 장로가 지시에 의해 개문령을 찾으러간 것이 아니라 암호문을 훔쳐서 사라진 것이었거든.”
“그 물건이 어떻게 지금 나타난 거요?”
“낸들 아나! 달포쯤 전 추풍서 모현이 돈황에 다녀오다가 그곳 석굴 어딘가에서 개문령을 발견해 중원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소문이 갑자기 돌기 시작했네. 소문은 감숙에서 시작돼 인접한 섬서, 사천, 신강, 청해성으로 퍼졌고, 지금도 계속 퍼지는 중이지. 모현이 어떻게 그 물건을 얻게 되었는지는 나도 몰라. 그런 중요한 일이 어떻게 소문이 나게 된 건지도 조금 의심스럽지만 강호의 거물들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네. 개문령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전중걸은 자신이 타고 있는 말을 남정기가 탄 흑운과 보조를 맞추도록 제어하는 한 편으로 남정기의 기색을 흘끔거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의 긴 이야기는 끝이 났다.
태양은 이미 중천에 떠 있었고, 그들의 앞에 펼쳐진 말 두서너 필이 간신히 지날 수 있는 산길은 끝도 없이 구불거리며 이어지는 중이었다.
그들이 지나는 곳은 까마득하게 솟은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늘어선 깊은 숲속이었다.
봉우리의 중간을 두터운 구름이 점령하고 있어서 봉우리의 정상은 시야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숲은 사오장을 간단하게 넘는 나무들이 사방에 가득 들어차 있어서 분명 길을 가고 있음에도 나뭇가지들 틈으로 깨진 유리조각처럼 청명한 초겨울의 창백한 하늘을 간간이 볼 수 있을 뿐이었다.
그의 이야기를 다 들은 남정기는 보통의 피풍보다 한자는 더 길고 품이 넓은 흑색피풍으로 전신을 감싼 채 흑운의 위에서 조는 듯 생각에 잠겨 있었다.
가끔 나뭇가지를 흔들며 지나던 바람이 그의 긴 머리카락을 흐트려놓곤 했지만 그의 침묵을 깨뜨리지는 못했다.
‘개문령(開門令).......’
남정기는 고삐를 흑운의 목에 늘어뜨리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나뭇가지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햇빛은 물방울이 부서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사이로 홀연히 자신의 곁을 떠났던 존경하는 스승들의 모습이 언뜻 스쳐 지나갔다.
‘그분들이 내게 보여주었던 반쪽짜리 영패가 용화객잔에서 추풍서가 던져 주었던 영패와 비슷했다. 떠나시기 얼마 전 대사부님이 무언가 하실 말씀이 있는 듯 했었는데 신경쓰지 않았던 것이 조금 아쉽군.’
남정기의 머릿속은 전중걸이 해준 개문령에 관한 이야기로 복잡하게 얽히고 있었다.
제11장
추적(追跡)
이층에 올라선 회의인은 복도 끝에 위치한 방문을 두드리고 하나 둘을 셀 정도의 시간 동안 기다린 후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진회색의 두터운 피풍과 같은 색의 두건으로 전신을 감싼 장신의 사내였다.
보이는 것은 그의 코밑부분부터였는데 걸친 피풍과 비슷한 굵은 회색의 구레나룻이 그의 얼굴 하관을 온통 뒤덮고 있어서 피부가 보이지 않는 사내였다.
방안은 허름한 변방의 객잔이 다 그러하듯이 벽에 면한 투박한 침상이 하나 놓여 있었고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책상은 그 위에 놓여진 등잔불에 거친 나무결이 다 드러났다.
반쯤 열린 창문으로 난주의 차가운 밤바람이 방안으로 들이치고 있었지만 방안에 있는 사람들은 창문을 닫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일부러 등잔불빛을 작게 만들었는지 흐릿한 어둠이 점령한 방안에는 탁자를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왼 편에 앉은 사람은 두건을 깊게 눌러쓰고 있어 얼굴이 보이지 않았고 그 맞은 편에 앉은 사람은 사십대 초반의 검은 장포를 걸친 중년인이었다.
주전자에 담긴 차를 따라 마시던 흑의 중년인의 시선이 들어선 사내를 향했다.
중년인은 의자에 앉아 있음에도 보통의 장정이 서 있는 것과 비슷할 정도로 몸집이 컸다.
게다가 얼굴선이 굵고 피부가 검게 그을려 있어 바위를 보는 듯 장중한 느낌을 주었는데 검은 두건 아래 푸른 불꽃이 타오르는 듯한 두 눈은 그가 중원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했다.
“대주(隊主), 그가 용화객잔을 떠난 것은 육일 전 밤입니다. 동문으로 향하는 그를 본 사람이 있습니다.”
회의인은 방안으로 들어섰음에도 두건을 벗지도 않고 필요한 보고를 했다.
그의 보고를 들은 중년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들고 있던 차를 단숨에 들이켰다.
그는 허례를 싫어했다.
반드시 필요한 말 이외에는 하지 않았고, 말을 해야할 때는 요점만을 말했다.
그가 지휘하는 부하들도 자신들의 상관에게 길이 들어 있어서 보고를 해야할 때는 요점만을 말하는 것이 몸에 배 있었다.
“추적 가능성은?”
중년인의 음성은 몸집만큼이나 굵고 낮게 가라앉은 중저음이어서 듣는 사람을 저절로 긴장시키는 무게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본명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며칠 걸리겠나?”
“변수가 없다면 오일 정도입니다.”
“그가 타고 있는 흑운이 천하에 드문 신마(神馬)라는 것을 잊지 마라.”
“감안한 기간입니다.”
중년인에게 대답하는 회의인의 음성은 무뚝뚝했다.
퉁명스럽게 느껴질 정도여서 그들 사이의 관계를 모르는 제 삼자가 들었다면 회의인을 버릇없는 부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회의인은 흑의중년인, 범유(滼唯)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던지길 단 한 순간도 망설이지 않을 사람이었다.
“떠났나?”
범유의 물음은 회의인의 동료들이 추적을 시작했는지를 묻는 것이었다.
앞뒤 내용이 잘려 있었지만 회의인은 생각할 필요도 없이 대답했다.
“예. 오리(五里) 간격으로 표식을 남기도록 했습니다.”
회의인의 보고는 이어졌다.
“그는 개문령 때문에 감숙삼효라는 자들과 부딪칠 뻔한 듯 합니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 충돌은 없었지만 이미 그는 남의 주목을 끌었습니다.”
“누가 쫓아도 두렵지 않다는 것이겠지. 허긴 그가 누굴 두려워한다는 건 상상이 되지 않는 군.”
범유는 말을 하며 몸을 일으켰다.
산악(山岳)이 일어서는 듯한 기세가 그와 함께 일어섰다. 그가 서자 두건을 두른 그의 정수리가 천정에 닿을 듯 했다.
그의 눈은 반쯤 열린 창밖을 향하고 있었다.
‘그는 돌아가야 한다. 그가 지금처럼 움직이면 자운루(紫雲樓)에서 그가 중원으로 들어섰다는 것을 눈치채는 건 시간문제다. 그가 쓰러지면 천하(天下)는 다시 전쟁터가 된다.’
범유에게 천하는 중원이 아니었다.
그의 천하는 다른 곳이었고, 그곳의 평화는 그가 모시는 맹주(盟主)의 염원이었다. 그리고 맹주의 염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가 있어야만 했다.
범유의 시선이 자신의 맞은 편에 앉아 일어서지 않고 있는 사람을 향했다.
그는 회의인처럼 피풍과 두건으로 전신을 휘감고 있었는데 범유에 비하면 초라해 보일 정도로 왜소한 체구를 갖고 있었다.
“가실 시간입니다.”
범유의 입에서 나온 것은 공대였다.
왜소한 체구의 흑의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선 흑의인은 오척 육칠촌 쯤 되었다.
흑의인의 몸매는 범유에 비하면 삼분지 일도 되지 않았고 그 키는 가슴께에 간신히 닿았다.
객잔을 나온 세 사람이 말을 타고 난주성을 빠져나간 것은 시간이 해시(亥時)를 넘어 자시(子時)를 향할 때였다.
그들이 지나간 개구멍은 남정기가 지나갔던 그곳이었다.
두두두두두!
난주성 외곽의 숲을 지배하던 정적은 격렬한 말발굽소리와 함께 깨졌다.
그 소리는 밤새도록 계속될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