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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종의 다리
작가 : 밈밈밈
작품등록일 : 201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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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 꿰다_1
작성일 : 17-06-04     조회 : 584     추천 : 0     분량 : 5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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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모든게 꿈인걸까.'

 

  백희는 멍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갑자기 현실 세계에서 중세시대로 건너 왔다면 누구나 이 상황이 꿈이라고 생각할 만하다. 어딘지 모를 중세시대 성 안에 갑작스럽게 떨어진 것도 모자라 주변엔 온통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 중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백희의 눈 앞에 자신을 거만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는 저 사람이 이 성의 주인이라는 거다. 주위 사람들과 달리 높은 선단 위 화려한 의자에 불량한 자세로 앉아 모두를 내려다 보고 있다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성의 주인인 듯한 남자가 손에 턱을 괴고서 백희에게 물었다.

 

  "그대는 누구인가?"

  "……강 백희 입니다."

 

  백희는 몰랐지만 그는 왕이다.

  다만 백희가 보기에 왕 답지 않은 자세와 머리를 빡빡 민 반삭머리는 절대 한나라의 군주라고 생각 되지 않았다.

  주변에 있던 신하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왕이 있는 자리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다분히 흥분한 목소리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서, 설마!"

  "맙소사."

  "오, 용이시여."

  "로코 왕국에 이런 경사가!"

  "아직 모릅니다. 동대륙 어딘가의 이름일지 몰라요!"

  "맞습니다. 우리가 듣지도 보지도 못한 미개한 왕국의 이름일 것입니다!"

  "하지만 저 자의 용모가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생김새입니다."

  "한번도 보지 못한 복장입니다!"

  "게다가 허공에서 빛을 뿌리며 나타나지 않았습니까!"

 

  백희는 당황했다.

  확실히 백희와 그들의 생김새는 달랐다. 백희는 결이 좋은 검은 머리와 검은색 눈동자에 황인종 특유의 노란 피부를 가졌다. 하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머리색이 갈색이거나 노랗거나 빨갰다. 피부색은 제각각이었는데 탄력 넘치는 갈색피부에서 부터 백인처럼 하얀 사람도 있었다. 생김새도 이목구비가 다들 뚜렷했다. 백희와 같이 이목구비가 부드러운 황인종은 아무도 없었다.

  파란 눈동자를 반 쯤 숨기듯 내리깐 눈으로 백희를 바라보던 왕이 입을 열었다.

 

  "그대는 이세계인인가?"

  "이세계인?"

 

  백희는 쌍커풀 없이 찢어진 눈을 커다랗게 떴다.

 

  "그게 무슨말이죠? 여긴 어디에요? 난 분명 집에 가고 있었는데?"

 

  백희가 쉴새 없이 질문을 쏟아냈다. 백희는 이 모든게 당혹스러웠다.

 

 

 

  백희는 내일 대학교 첫 수업이었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수능 끝나고 열심히 놀고 있을 동안 백희와 같은 미대 지망생들은 실기 시험 준비로 뼈빠지게 그림만 그렸다. 모든 미대 준비생이 그러하듯 하루 12시간씩 미술학원에서 살았다. 하루종일 그림만 그리다가 실기 시험날이 오면 시험치루고, 다시 그리다가 시험 날이 되면 다시 치루고. 도합 4번의 시험을 치룬 끝에 남들보다 늦은 자유가 찾아왔다.

 

  그 고생 끝에 고대하고 고대하던 대학 합격 소식을 듣게 되었다. 원하던 미대에 합격한 백희는 행복을 주체할 수 없었다. 가슴이 터질듯한 기대감과 설레임을 안고 대학 입학 날짜만 손 꼽아 기다렸다. 학교 시작 전에 하는 오티도 갔고 신입생들끼리 만든 단톡방에도 참여했다. 그래서 오티동안 친해진 선배들과 동기들도 몇몇 있었다. 모든 상황이 순조로운 대학생활을 암시하고 있었다.

 

  행복한 백희는 하늘이 날아 갈 것 같은 기분을 안고서 대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고등학교 친구들과 열심히 노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대학 입학 바로 전날. 그러니까 백희에겐 이 이상한 곳에 떨어지기 불과 몇시간 전까지만 해도 친구들과 합법적으로 술을 마시며 놀고있었다. 백희는 스무살의 패기를 부리며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마지막 회포를 거나하게 풀었다. 그들은 서로 대학가서도 잊지 말고 연락하자며 약속했다. 남자친구 생긴 사람은 바로바로 말하고, 대학생활도 열심히하고, 좋은일, 나쁜일 가리지 않고 연락하기로 했다.

 

  그렇게 웃음과 눈물이 범벅된 채로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추억을 하나 더 쌓은 후, 백희는 풀린 눈동자와 꼬이는 발걸음으로 집에 가고 있었다.

 

  "킁. 엄마 완전 화났겠네. 딸꾹. 와, 달이 참 밝구만. 엣취! 으아, 추워."

 

  백희는 반쯤 풀린 눈으로 하늘 위 떠있는 달을 보며 엄마를 떠올렸다. 자정이 다 되가는 시간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는 딸을 위해 몽둥이를 쓰다듬으며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모습이 눈에 선했다. 아빠와 동생은 그런 엄마를 두려운 얼굴로 바라보며 밤 늦도록 오지 않는 백희를 원망하고 있을 것이다. 백희는 몸을 부르르 떨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물론 발놀림은 백희의 의지와 반해 지그재그로 움직였다. 누가 봐도 불안불안한 모양새였다.

 

  백희의 집 가는 길에는 조그만 실개천이 하나 있다. 크기는 작지만 개천 양 옆의 언덕의 높이는 상당했다. 언덕 위 곱게 깔린 좁은 포장길을 위태위태 걷던 백희는 추위와 술기운에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정말 어이 없게도.

 

 "어?"

 

  하는 사이 백희는 자기발에 걸려 넘어져 언덕으로 데굴데굴 굴렀다. 술을 먹어서인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끝도 없이 데굴데굴 구르는게 곧 있음 토할지도 몰랐다.

  어느순간 온몸에 따뜻한 기운이 전해지면서 데굴데굴 구르던게 멈추었다. 백희는 바닥에 얼굴을 비비고 있었다. 떨어진 충격으로 잠시 정신을 잃었던 것도 같다.

  그리고 눈을 떠보니 이 이상한 곳이었다.

 

 

 

  왕이 물었다.

 

  "그대는 어디에서 왔지?"

  "나는 한국에서 왔어요! 여긴 어디죠? 당신들은 누구인가요? 저 설마 납치 된거 아니죠? 전화 한번만 쓸 수 있을까요? 늦어서 엄마가 눈에 불을 키고 기다리실 텐데."

  "이세계인이군."

 

  왕의 파란 눈동자에서 이채가 어렸다.

  그런데 주변에 있던 신하들은 갑자기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하며 변했다.

 

  "네 이년! 아무리 이세계인이라도 위대한 로코의 주인께 그 무슨 망발이냐! 예를 다하지 못할까!"

  "어디서 배워먹지 못한…!"

  "이…! 당장 목을 쳐야 합니다!"

 

  백희는 순식간에 변한 주변사람들의 반응에 놀랐다. 방금 까지만 해도 호감을 보였던 사람들이 갈대 처럼 마음을 돌린것이다. 현대인의 상식으로 충분히 어른에 대한 예의를 잃지 않았다고 생각한 백희는 그들의 반응을 이해 할 수 없었다.

  게다가 목을 치라니! 백희는 기분이 나빴다. 그리고 아직도 얼굴이 발그스럼 하니 술도 깨지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다른 때와 달리 용기 백배, 객기 시전율이 50% 상승한다는 소리였다.

 

  "뭔 소리야, 진짜. 내 어디가 예의 없다는 겁니까? 게다가 목을 치라고요? 내가 닭이야? 내 모가지를 치게? 그래, 한 번 쳐봐요! 쳐봐!"

 

  백희는 손날을 세우며 자신의 목을 세차게 긋는 시늉도 함께 했다. 백희의 말과 행동에 신하들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아무도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저 이세계인 정신 나갔다.'

  '오자마자 죽는구나.'

  '미련한….'

  '이세계인이라고 좋아했더니 미친사람이었어.'

 

  신하들은 조심스러운 눈으로 왕을 흘끔 거렸다. 왕은 고개를 숙이고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왕의 흔치않은 분노어린 떨림에 신하들은 대전 한 가운데에서 피를 보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그때.

 

  "푸하하하하하!"

 

  왕이 파안대소를 하기 시작했다.

  백희는 얼굴을 찡그리며 되는대로 지껄였다.

 

  "왜 웃어요. 안그래도 머리아파 죽겠는데. 아, 속도 울렁거려."

  "아하하하하! 재밌구나. 술이라도 먹은게냐?"

  "헉, 어떻게 알았대요?"

  "큽, 크하하하하하!"

 

  백희는 자신이 술을 먹은 사실을 왕이 알아 챈 것에 놀라 눈을 키웠다. '저 인간 자리 깔아도 되겠어.' 따위를 생각하고 있는 와중에 왕은 웃음을 천천히 거두었다.

 

  "그대가 정신이 없는 것 같으니 내일 다시 대화를 나누는게 좋겠군. 그대에게 머물 방을 내어 주겠다."

 

  그 말에 백희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고개와 손을 동시에 저었다.

 

  "아니요, 아니요. 저 집에 돌아가야 해요.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이제 갈게요. 근데 여기가 어디죠?"

 

  안그래도 수상한 곳이다. 아직까지 술이 덜 깼지만 이 상황이 좋지 않다라는 아주 약간의 인지 정도는 하고 있었다. 백희가 괄괄한 성격에 겁이 없는 여자애임은 분명하나, 주변에 이상한 코스프레를 한 사람들이 한가득 있는 이 곳은 누가 봐도 위험해 보였다.

  그렇다. 백희는 이 곳을 어떤 스케일 큰 변태들의 중세시대 코스프레 현장이라 여기고 있었다. 세트장도 거금을 들여 만들었는지 이곳 저곳 값비싸 보이는 조각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예술품에 관심이 많은 백희가 보기에 그것들은 장인의 정성이 한땀한땀 어린 작품들이었다.

 

  '돈 많은 변태들이 나를 납치해 위험한 짓을 저지르려는게 분명해!'

 

  백희는 거기까지 생각을 마치자 점점 눈을 험악하게 치켜 떴다. 그리고 입이 제멋대로 나불거리기 시작했다.

 

  "바른대로 말해요. 당신들 날 납치해서 뭘 하려는 거죠? 원하는게 뭐에요. 날 얼른 원래 있던 집 앞으로 데려다 놔요!"

 

  조금만 생각해보면 납치범에게 자극적인 말을 말아야 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 수 있다. 하지만 백희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들을 그대로 내뱉었다. 분명 술기운 때문에 사고가 정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왕의 웃음에 안도했던 신하들이 다시 한번 불같이 화를 내기 시작했다. 이번엔 아까보다 강도가 더 센 불이었다.

 

  "저 자의 혀를 뽑아 버려야 합니다, 전하!"

  "그렇사옵니다!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눈을 치켜뜨며 막돼먹은 말을 한단 말입니까!"

  "감히 계집이!"

  "당장 참수형을 내려야 하옵니다!"

  "사지를 찢어버리시옵소서!"

 

  백희는 신하들의 외침에 몸을 움츠렸다. 아무리 강심장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도 한 무리에서 터져 나오는 자신의 죽음을 종용하는 말에 겁먹지 않을 사람은 없다. 댐이 터지듯 신하들의 목소리가 대전 안에 흘러 넘치자 백희는 조금씩 술이 깨기 시작했다.

 

  '이게 뭐지?'

 

  아무리 코스프레를 정성스럽게 한다고 해도 이 거대한 대전을 만드는 통 큰 사람이 몇이나 될까. 게다가 충실한 신하들의 모습들, 저게 정말 연기일까. 얼굴을 울긋불긋 만들며 목청이 찢어지라 외치는 모습이 정말 연기란 말인가.

  점점 상황이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은 백희는 안절부절 못하게 되었다. 발갛던 얼굴이 하얘지고 있었다.

 

  이 모든 모습을 남들 보다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던 왕은 한 쪽 입가가 씰룩 하고 올라갔다. 목에 핏대를 세우며 무언가 외치는 신하들은 애초에 안중에도 없었다. 왕은 오로지 눈을 반짝이며 백희의 변화를 살펴보고만 있었다. 마치 재밌는 생명체를 발견한 듯 했다.

  백희의 얼굴이 하얗다 못해 새파래지자 그제서야 왕은 턱을 괴고 있지 않은 왼 손을 들어 신하들을 조용히 만들었다.

 

  "이세계인은 모든게 혼란스러울 터, 내 자비로 그대를 용서하겠다. 오늘 하루 푹 쉬고 내일 보도록 하지."

 

  왕의 위엄있는 목소리에 신하들은 쥐 죽은듯 조용해졌다. 왕의 앉아 있는 모양새는 느슨하고 불량해 보이기 짝이 없는데도, 다른 이들을 내리 누르는 제왕의 기운만큼은 무겁고 숨이 막혔다.

  하지만 단 한사람, 백희에게는 그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백희는 다만 저 사람이 이곳의 실세이고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고 있다는 정도만 간신히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백희는 용기를 내기로 마음 먹었다.

 

  "저기…, 정말로 여기는 어디인가요?"

 

  그러자 부르르 하고 신하들이 떨었다. 신하들에게 백희는 발암 유발자였다. 분명 왕이 그만 물러가도 좋다는 신호로 말을 맺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토를 다는 것이다. 무례도 이런 무례가 없다. 왕은 더 이상 용서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왕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눈을 가늘게 뜨며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에 신하들은 왠지 모를 한기 까지 느껴졌다. 평소 보지 못한 왕의 미소였다.

 

  "여기는 파로의 로코 왕국이다. 내 왕국에 온걸 환영한다, 이세계인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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