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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종의 다리
작가 : 밈밈밈
작품등록일 : 201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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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 꿰다_2
작성일 : 17-06-05     조회 : 411     추천 : 1     분량 : 4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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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술이 어느정도 깬 백희는 머물 방을 안내해 준다는 시종의 뒤를 따라 걸었다. 백희는 주변을 둘러볼 생각 조차 못하고 왕의 말을 되새기고 있었다.

 

  '로코? 로코라는 나라가 있던가? 모로코? 파로는 또 뭐야.'

 

  '로코'나 '파로' 라는 국가를 살면서 들어본 적이 없었다.

  백희는 세계사에 관심이 없었기에 지구의 수많은 국가들 중 이름이 알려진 나라 몇몇 말고는 거의 알지 못했다. 백희는 어느 변방국가인가 싶다가도 분명 집 근처에서 넘어졌을 뿐인데 하며 혼란스러워 했다. 정확히는 넘어진게 아니라 굴러 떨어진 거지만.

 

  어쨌든 백희는 자기가 넘어져서 잠시 정신을 잃었던 동안 납치 당한게 아닌가 싶었다. 저 의뭉스러운 작자들은 백희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것 마냥 놀란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분명 연기일 것이다.

 

  '이 모든건 어떤 거대 조직의 음모가 분명해.'

 

  코스프레 변태들에서 거대조직으로 바뀌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정체 불명의 거대 조직이 백희를 납치 할 만한 이유가 하등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거다. 평범한 가정의 평범한 학생으로 살아왔다. 부자도 아니고 특출나게 외모가 빼어나지도 않다. 하지만 백희는 자기애가 깊었고 자신감도 넘치는 아이였다. 무슨 정황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에게 납치 당할 어떤 의미심장한 이유가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백희는 자신이 삶의 주인공이라는 확고한 신념 속에 살아온 자존감 높은 인격을 가졌던 것이다.

 

  '나는 천재다. 나는 천재다. 나는 천재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비장한 마음으로 안내된 방에 들어간 백희는 연신 주위를 휙휙 둘러 보았다. 거대조직인 만큼 사람도 다양할 것이고 그 중 변태 또한 있을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무릎을 살짝 구부리고 양팔은 적당히 벌려 어떠한 적이라도 맞이할 태새였다. 누군가 자신을 해코지할 콩알 만한 요소도 가만 두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엿보였다.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결코 한숨도 자지 않으리라! 언제 누가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올지 모른다.

 

  하지만 얼마 안있어 얕게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너무 피곤했던 백희는 눈 앞에 보이는 침대의 유혹에 넘어가 버렸던 것이다. 백희는 잠깐 침대에 앉는 다는게 얼마 있지 않아 쓰러지듯 골아떨어져 버렸다.

 

 

 ***

 

 

  왕은 백희가 나가자 마자 웃음기 어린 표정을 싹 거두었다. 그리고 차가운 눈빛으로 신하들을 한번 훑어보았다.

 

  신하들은 자기들끼리 이세계인의 처우에 대해 신명나게 토론 중이었다.

 

  "아무리 이세계인이라지만 저렇게 못배운 티를 팍팍 내는 자를 우리 로코왕국에 두어도 괜찮을까 모르겠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세계인이 부강번영의 상징이라지만……."

  "하지만 예로부터 이세계인이 내려온 나라는 부강해진다 했습니다. 동쪽 대륙의 사므다 제국을 보십시오!"

  "그래요. 무조건 그 자를 잡아두어야 합니다. 로코의 앞날이 달렸어요."

  "그렇지만 그 자의 행태가 너무 천합니다!"

  "맞아요. 그 머리는 뭐랍니까? 여자가 남자마냥 머리를 짧게 자르고. 에잉! 쯧쯧."

  "옷도 남자들이 입을 법한 바지가 아닙니까. 게다가 품도 어찌나 작던지, 내 부끄러워서 얼굴을 못들겠어요!"

  "맞습니다!"

 

  로코 왕도 귀족들의 백희에 대한 평은 그리 좋지 못했다. 주로 백희의 행색에 대한 불만의 소리가 많았다. 신하들은 쉴 새 없이 입을 놀리며 백희를 깎아내리기 바빴다. 왕은 그러던지 말던지 무표정하게 방금 전 상황을 떠올렸다.

 

 

 

  로코의 왕 '그래지한 얀 로코'는 오늘도 심드렁한 얼굴로 왕도 귀족들과 회의를 하는 중이었다. 매일 하는 회의였기에 그는 지루하다는 표정으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모습은 귀족들이 서로 치고 박고 싸우든 전혀 상관하지 않겠다는 무관심한 태도로 비춰쳤다.

 

  그래지한에게는 지루한 회의일지도 모르지만 귀족들에게는 꼬투리 잡힐 일 없이 잘 넘겨야 하는 매일매일의 연속이었다. 잘못 했다가는 왕의 심기를 거슬려 경을 칠만한 벌을 받을수도 있기 때문이다. 허나 귀족들의 고충을 알리도, 알고 싶지도 않은 그래지한은 유능한 재상이 알아서 하겠거니 싶은 마음으로 귀족들의 말 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듣는 중이었다. 귀족들은 멍하니 대전 한가운데 빨간 융단을 보고 있는 왕을 흘끗거리며 재상과의 대화에 열중했다. 그들은 왕이 자신들에게 관심 가지고 있지 않은 사실에 감사했다.

 

  왕을 뺀, 로코의 재상과 귀족들이 피터지는 회의를 하고 있는 동안 그래지한은 '뭔가 재밌는 일 없을까.' 따위를 생각하고 있었다. 매사 지루함의 연속이다. 이 왕이라는 직책이 처음엔 그럭저럭 할 만 했지만 15년을 하다 보니 이제 실증이 났다. 요즘은 왕자들 중 아무나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하지만 그러기에 왕이 너무나도 젊었고, 아들들은 어렸다. 그래지한의 나이 스무살에 즉위해 15년이면 겨우 서른 다섯 밖에 아닌 것이다. 다른 왕국의 왕들은 이 나이에 왕이 되곤 했다.

 

  그래지한은 오른 손을 턱에 괴고 왕자들을 골려줄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세 명의 아들이 있는데 첫째는 욕심쟁이였고 둘째는 너무 착했으며 셋째는 검술바보였다. 아직 아들들이 어리기 때문에 더 커봐야 알겠지만 왕의 재목은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았다.

 

  '세 녀석을 합친 녀석을 낳았어야 했는데.'

 

  그래야 자신이 빨리 왕위를 물려줄 것이 아닌가. 얼른 이 자리에서 벗어나 대륙 곳곳을 돌아다니며 여행하고 싶었다. 이 세계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아로스 산맥에 들어가 몇년동안 탐험을 해보고 싶었다. 동쪽 대륙에 있는 단 하나뿐인 신전에도 가보고 싶었다.

 

  그래지한은 이를 뿌드득 갈았다. 자신이 로코의 왕인 탓에 어느것도 할 수 없는 일들이다. 근 5년동안 옥좌에 들어 앉아만 있었더니 엉덩이에 좀이 쑤셔 죽을 지경이었다. 그러자 괜한 화살이 왕자들에게 돌아갔다. 왕자들을 열심히 골려주고 말리라.

 

  '녀석들을 위해 제왕교육을 시키는 것 뿐이야.'

 

  과연 당하는 왕자들이 제왕교육이라고 생각할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그래지한은 왕자들을 괴롭히고 싶을 만큼 지루한 나날이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대전 한 가운데에서 주먹만한 빛이 나기 시작했다. 왕은 천천이 눈을 키웠고 신하들은 이를 뒤늦게 발견하고는 숨을 들이켰다. 점점 빛이 사람 크기만한 타원형으로 커졌다. 빛이 커진만큼 눈을 제대로 뜰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지한은 빛을 손으로 가리며 실눈을 뜨고 가까스로 무슨일이 일어나는지 보려고 노력했다.

 

  그 커다란 타원형 빛덩어리에서 사람이 나오고 있었다.

 

  '철푸덕!'

 

  사람이 빨간 융단 위에 떨어졌고 빛은 점점 크기가 줄어들더니 사라졌다.

 

  대전 안이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 그래지한은 눈을 크게 뜨고 선단 아래 엎어진 사람을 관찰했다. 선이 가는 것이 분명 여자 였다. 머리카락이 검정색이었다. 상의는 짧지만 두툼한 검정 옷을, 하의는 다리선이 훤히 드러나는 딱 달라붙는 검정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온통 검정색 투성인 여자가 얼굴을 융단바닥에 비비적 거리고 있었다.

 

  "끄응."

 

  검정덩어리가 앓는 소리를 냈다.

 

  그래지한은 순간 자객인가 싶었지만 생각을 고쳤다. 보통 자객들은 저렇게 허술 하지 않다. 무엇보다도 허공에서 갑자기 빛을 뿌리며 사람이 떨어졌기에 상식적으로 생각해서는 안될 터였다.

 

  그래지한은 주먹을 말아 쥐었다. 손안에 땀이 느껴졌다. 자신이 생각한게 맞을 것인가.

 

  그때 여자가 몸을 움찔 거렸다.

 

  "으…어……."

 

  그녀는 괴상한 소리와 함께 비척비척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짓 하나하나에 귀족들이 몸을 움찔움찔 거렸다. 그리고 드디어 고개를 들었다.

 

  그래지한은 난생 처음으로 이세계인과 눈을 마주쳤다.

 

 

 

  현재로 돌아온 그래지한은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렸다. 처음 본 이세계인은 신기하고 재밌었다. 자신의 목을 닭 모가지에 비유하질 않나, 왕인 그래지한을 납치범으로도 몰았다. 신하들의 대발노발에 시시각각 변하는 표정도 일품이었다. 그래지한은 자신의 심심함을 백희가 충분히 달래 줄 수 있을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게 되었다.

 

  귀족들은 아직도 백희를 두고 씨름 중이었다. 그들은 어느새 이세계인의 처우를 두 편으로 갈라 격정적인 말싸움을 벌이는 중이었다. 그 중 가장 왕과 가까운 곳에 서있는 유능하고 젊은 재상 '제파도 나세아'는 쩔쩔 매는 얼굴로 두 파 사이에 열심히 다리를 놓고 있었다.

 

  "여러분, 이세계인은 이곳이 어딘지 모릅니다. 굉장히 혼란스러운 상태에요. 아, 물론 그녀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저라도 그랬을 거에요. 갑자기 주위를 둘러보니 자신이 알던 세계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죠. 이세계인이 갖고있는 부강번영의 상징은 꼭 우리 로코가 거머쥐어야 합니다. 그럼요, 그럼요. 그녀가 전하 면전에서 보인 태도는 잘못되었지요. 하지만 그녀는 전하께서 이곳의 왕이신지 모르지 않겠습니까?"

 

  그래지한은 제파도를 보며 실소 했다. 아주 입이 부르트도록 쉴새없이 나불대고 있었다. 그 모습이 조금 불쌍해 보였던 왕은 제파도를 구해주기로 마음 먹었다.

 

  "다들 그만."

 

 

 

빌리이브 17-06-06 06:10
 
재미있게 읽어어요. 표지도 예쁘고 작가님 필명도 특이하네요!
오늘도 행복하세요. 추천 선호작 누르고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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