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대화로 끝낼 수 있길 간절히 빌었는데.
설마 무력을 쓰는 일은 아니겠죠?
"어떤 문서를 찾아오면 되나요?"
"천축성을 공격하려는 반란군의 진입경로와 작전설명이 써 있는 문서네."
반란군의 진입경로?
"우리가 말이 통하는 이유를 말해서 대화로 해결할 수 있을 줄 알았나?"
"네. 그래보이잖아요."
"천계인이 된 인간 중에서 대화가 통하는 이유를 물어보지 않은 인간은 자네가 처음일세. 그래서 말해준 거야."
금방 알아챌 수 있는 건데 여러가지로 내가 혼란스러워서 눈치채지 못했다.
알 수 없는 상황들 때문에 너무 불안했다.
"반란군은 뭔가요?"
"137년 전부터 천계는 전쟁을 하고 있네."
"네? 137년이요?!"
"그래. 전체 영토 중 벌써 52%를 뺏겼지."
"어떻게 137년 동안 전쟁을 할 수 있죠? 지금도 어딘가에서 싸우고 있다는 말씀인가요?"
고개를 저으신다.
"몇 년 전 만 해도 그랬지만 지금은 아니네. 서로 지친 것도 있고 두 번의 대전쟁을 치른 후 정비에 들어갔거든."
두 번의 대전쟁...
천계라는 이미지와 안 어울린다.
"전쟁의 원인은 아세요?"
"알고 있지만 자네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네."
"왜요?"
"창피한 일이니까. 누구나 숨기고 싶은 게 있지 않은가. 내가 말하지 않아도 이 곳에서 생활하다보면 알게 돼."
아저씨는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끄셨다.
천국과 지옥의 경계선으로 불리는 천계.
천계라고 하면 깨끗한 느낌이 있다보니 전쟁이란 단어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나?"
"아닙니다."
"왜 살아났는 지도 모르는데 살아나고 보니 전쟁 중이라고 하니까 놀랍나?"
"네, 뭐... 놀랍긴 하죠. 천계는 이런 이미지가 아니잖아요."
"우리도 인간들이 보는 서적에 관심이 있어 몇 번 본 적이 있는데 엄청 아름답게 표현해놨더군."
"제 말에 공감하시나요?"
"그래. 하지만 진짜 천계가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겠지. 그리고 자네들이 아는 것처럼 그렇게 깨끗한 곳도 아니야."
탈 아저씨는 한숨을 내쉬고 내게 뭔가를 내밀었다.
3장이나 되는 종이.
"이게 뭐죠?"
"천축성을 나올 때 전쟁에 관한 걸 정리한 것일세."
"아저씨, 성에서 나온 지 얼마나 됐어요?"
"얼마 안됐네. 20년 됐나?"
20년 전이면 쓸모없다.
더군다나 여긴 전쟁 중이니까 상황이 계속 바뀐다.
과거에 옥황상제와 오래 일했어도 최신정보를 알려줄 것 같지 않고.
탈 아저씨가 날 생각해서 이걸 보여주는 건 매우 감사하지만 이건 이면지로 써야한다.
"감사하지만 20년 전 상황은 필요없습니다."
"그래?"
종이를 다시 가져가시더니 꾸기고 쓰레기통으로 보이는 통에 넣으셨다.
그리곤 엄청 큰 소리로 호탕하게 웃으신다.
"왜 그러세요?"
"아닐세. 자네가 너무 정확히 봐서 놀랐을 뿐이네."
놀랄만한 일인가?
"아저씨는 성에서 나온 지 20년이나 됐는데 왜 반란군의 문서를 뺏어오려는 거죠? 지금은 평범한 낚시꾼 아니에요?"
"자네 말대로 난 평범한 낚시꾼이지만 내 보금자리를 위해서일세."
"보금자리요?"
"그래. 여긴 천축성에서 제일 가까운 지역인 세이브라는 곳으로 내가 사는 이 곳은 제일 구석에 있네."
"반란군이 반란에 성공하면 이 곳을 잃으신다는 말씀이신가요?"
고개를 끄덕이신다.
"여긴 상제폐하께서 내게 마지막으로 주신 선물일세. 은퇴했지만 도움이 되고 싶어."
이렇게까지 해주는 천계인이 있다는 건 옥황상제가 나라 일을 잘하고 있다는 뜻도 된다.
개개인마다 시선과 느낌이 다를 수 있지만 잘 못하면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은퇴해서도 직접 나서서 도와주려고 하는 걸 보면 천계국민들이 믿고 있다는 말도 된다.
내 기억엔 없지만 이런 사람이라면 나한테 동의를 구했을 게 뻔 해.
우선 탈 아저씨를 도와주고 옥황상제가 있다는 천축성으로 가서 날 살린 이유와 진짜 동의했는 지 확인해야겠다.
"어디가서 문서를 찾아올까요?"
"문서위치가 중요한 게 아닐세."
"네?"
"하나 걱정되는 건 자네가 천계글자를 모른다는 것이네."
중요한 걸 또 캐치하지 못했다.
탈 아저씨와 말이 통하는 이유는 내 뇌와 귀에 장착된 장치 때문이다.
글자를 알아보기 위해 눈에 기계를 달 수 없고 그런 건 만들 수도 없다.
"반란군 대장이 살고 있는 저택엔 문서가 두 개 밖에 없지만 잘못 가져오면 천계는 끝이야."
"그 전에 아저씨랑 같이 가면 문제없잖아요. 왜 저 혼자 가는 것처럼 말씀..."
얼굴을 가리고 있어도 아저씨의 표정이 보이는 것 같다.
아저씨 얼굴 중 보이는 부분은 입 밖에 없는데 꽉 다문 입이 '내가 같이 갈 줄 알았어?'라고 말하고 있는 느낌이다.
"왜 저 혼자가죠?"
"설명이 필요한가?"
"오래 전부터 혼자하셨으니까 그 쪽도 아저씨를 잘 아니까 잘 모르는 사람을 보내려는 거 알아요."
"알아주니 고맙군. 혼자 할 수 있겠나?"
"아까 제 목 조른 거 복수해도 되나요?"
"어른한테 그런 농담하는 거 아닐세."
웃는 아저씨가 너무너무 짜증나서 목을 잡았다.
잡기만 했다.
"자네, 지금 뭐하는 짓인가??"
"어이없잖아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한테 이런 걸 시키고 싶으세요?"
"그래서 내가 들어보고 정하라고 했잖나!!"
"들어보고 정하는 걸 떠나서 이건 부탁의 범주를 벗어났어요!!"
"알지도 못하면서 왜 그딴 말을 한 것인가?!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이 아저씨가 못하는 말이 없으시네? 이러니까 꼰대라는 말을 듣고 다니는 거야!!"
"꼰대? 이 새끼가 좋게좋게 말하니까 막 기어올라? 이 새끼가 지금 누구 앞에서!!"
탈 아저씨는 갑자기 자기 목을 잡고 있는 내 오른손목을 잡더니 비틀어버렸다.
"윽!!"
"네가 어른을 배려하는 건 알겠지만 할 행동이 있고, 못할 행동이 있다. 그리고 사내새끼가..."
"그 입이 방정인 겁니다."
왼손으로 아저씨 턱을 잡았다.
힘을 주면서 조르기 시작했다.
"우웁!! 이 녀석..."
"가만히 당해주니까 별 거 없는 놈으로 보셨습니까? 살아있을 때 싸움에서 단 한번도 진 적 없습니다."
무섭게 탈 아저씨를 노려보면서 더 힘을 줬다.
더 힘을 주면 턱을 빼버릴 수 있다.
내가 그만한 힘이 있는 게 아니다.
사람의 뼈는 레고처럼 맞출 수 있기 때문에 맞춰진 부분을 공략하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부탁은 들어드릴 수 있지만 아저씨도 같이 가야 합니다."
말씀을 하고 싶어하시는 것 같은데 내가 턱을 잡고 있으면 못한다.
일단 아저씨를 놨다.
"턱을 빼버릴 생각이었나?"
"안 죽으니까 걱정마세요. 같이 가실 거죠?"
"나보고 죽으라는 말인가?"
"그런 의도로 한 말 아닙니다. 방금 말했다시피 전 아무것도 몰라요. 안다손 치더라도 혼자는 싫어요."
"알아도 혼자는 싫다고? 알면 혼자가도 되잖아."
탈 아저씨 의도를 대충 알 것 같다.
최대한 디테일하게 알려주고 혼자가라는 거지 뭐.
내가 바보가 아닌 이상 이 일은 절대 혼자하면 안된다.
아저씨는 방금 말실수를 했다.
오랫동안 아저씨는 혼자 이 일을 했다.
명령을 받고 했다면 절대 혼자하지 않을텐데 혼자 하는 걸 보면 자발적으로 하는 거다.
문제는 죽을 뻔한 적이 있다는 것.
이 말만 안했으면 어른을 상대로 이렇게까지 안할텐데.
"나랑 같이 간다고 달라질 건 없네."
"있어요. 길안내는 할 수 있잖아요."
얼굴을 가리고 있으니까 무슨 표정을 하고 있는 지 전혀 모르겠다.
"고작 길안내 하러 갈 바엔 내가 직접 문서를 빼오는 게 나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가?"
"아저씨는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에요."
"뭐시?"
"상황이 악화되서 혼자 못하니까 저한테 도움을 청한 거 잖아요. 제가 안하면 손해보는 건 아저씨 뿐입니다."
또 입꼬리가 올라간다.
너무 맞는 말만 하니까 어이없을 거다.
"어떻게 해주길 바라지? 난 자네 도움이 절실해."
"알고 있어요. 제가 원하는 건 하나 뿐입니다."
"말해보게."
"저도 제 생명의 은인이 죽는 건 보고 싶지 않아요. 저택 안까지만 같이 가주시면 됩니다."
"디테일하게 알려주는 것도 포함인가?"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당연히 알려주는 겁니다.
"알고 있어야 할 건 별로 없네. 다만 저택을 지키는 용병들이 너무 강하다는 거야."
"무기는 뭘 쓰죠?"
"다 검을 쓰네. 인간들이 배우는 검도라는 것과 차원이 다른 기술이야."
"상관없어요.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싸워서 진 적은 한번도 없다고."
"여러가지 무술을 배운 것인가?"
난 또 고개를 끄덕였다.
"배우지 않았다면 전 더 빨리 죽었을 걸요."
내 말을 듣고 입을 꾹 다무는 탈 아저씨.
지난 일이라 신경 안쓰니까 무거운 분위기 만들지 마세요.
"후우... 일단 앉게."
"아저씨도 앉으세요."
우린 동시에 다시 앉았다.
아저씨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우리가 갈 저택은 반란군 총대장이 임시거처로 쓰고 있으며 내가 어릴 적 살던 곳이네."
"기 막힌 우연이네요."
"쓸데없는 말은 삼가도록. 저택에 들어가도 총대장은 볼 수 없을 거야."
"임시거처니까 있을 리 없죠. 근데 문서는 왜 거기 있는 거죠?"
"저택을 지키는 천계인이 직접 조사한 침입경로일세. 총대장에게 보내기 전에 막으려는 거지."
오늘 하루 빼도 빠르면 일주일 안에 옥황상제가 사는 성을 공격할 수 있겠구나.
예상치 못한 공격이 되겠어.
"엎친데 덮친 격으로 세이브 성주도 반란의 주동자일세."
"왜요? 지역 성주 정도나 되면서 왜 반란에 가담하고 있는 거죠?"
"자세한 건 문서를 빼주면 말해주겠네."
스케일이 큰 반란군이네.
지역 성주까지 가담하고 있을 줄이야.
"참고로 스파이 같은 건 아니니까 괜한 기대는 하지말게."
"그렇습니까?"
더더욱 모르겠네.
지역 성주께서 뭐가 아쉬워서 반란을?
"세이브 성주가 반란에 가담한 이유를 알면 내가 왜 그런 말을 했는 지 이해하지 못할 거야..."
담배에 불을 붙이신다.
연기를 뱉으려고 한숨을 쉬는 게 아니라 상심한 사람처럼 한숨을 내쉰다.
"디테일하게 전부 알려주고 싶지만 중요한 몇 가지만 알려주겠네."
"세세하게 알려주실 필요없어요. 아저씨도 같이 가니까."
"그 입 좀 다물고 내 말에 집중 좀 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는 담배를 입에 무셨다.
"첫번째, 저택을 지키는 용병은 총 50명일세."
"두번째는 모두 검을 쓰는 건가요?"
"자넨 그걸 중요하다고 생각한 건가?"
"네."
"틀렸네. 두번째는 맹수를 풀어놓고 저택을 지키고 있네."
"그 친구들은 왜 거기 있죠?"
"총대장이 맹수를 수집하는 취미가 있거든."
검을 든 사람들 속에서 도망다니는 것도 대단한데 맹수 소굴에서 살아오신 분이었네.
이런 곳을 혼자 공략할 생각을 하시다니...
대단한 게 아니고 멍청한 거다.
"세번째는 저택 안에 여자는 없네."
"그게 중요해요?"
"당연하지."
탈 아저씨가 어떤 의도로 여자가 없다고 말씀하시는 지 알겠는데 이상하게 이 아저씨가 변태로 보인다.
솔직히 말해서 여자가 있고, 없고는 중요하지 않다.
"네번째는 뭐죠?"
"중간방일세."
"그게 왜요?"
"문서는 중간방에 있네."
"범위가 너무 넓어요. 중간방이 방과 방 사이에 있는 걸 말하는 건가요?"
"이 사항에 대해서 더 말해줄 수 없는 게 하루에 한번씩 문서 위치를 바꾸고 있네."
"바꾸긴 하는데 놓는 위치가 항상 중간방이었다는 말씀이시네요?"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이신다.
"마지막 다섯번째는 천장을 조심하면 되네."
"천장이요?"
연기를 뱉으신다.
"바닥이 아니라 다행이네요."
"이 와중에 긍정적인가? 이상하게 자넨 너무 재밌어!!"
호탕하게 웃으신다.
나 그렇게 재밌는 사람 아닌데.
"용병들은 전력을 다해 자네를 죽이려고 할 걸세."
"예상했어요. 자기네들 목숨보다 중요한 문서를 뺏으러 온 사람을 봐주는 게 이상하죠."
"가능하면 우리 목적을 안 들키는 게 좋지 않겠는가?"
"이미 아저씨 때문에 다 들켰어요."
"내 말 뜻은 그게 아닐세. 내가 동업자를 데려온 거 말일세."
"너무 겁먹지 마세요. 지금까지 혼자서 잘 해오셨잖아요. 안 그래요?"
"은퇴한 나한테 누가 병사를 붙여주겠는가. 혼자할 수 밖에 없으니까 혼자한 거지."
할 마음만 있으면 뭐든 해낼 수 있다는 말이 생각나네.
아저씨가 나한테 부탁하는 걸 보면 그만큼 지쳤다는 뜻이다.
받은 은혜에 보답하고 싶어서 자처한 일이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탈 아저씨 같은 경우 무슨 일을 하든 간에 누군가는 꼭 알아줬지만 지금은 아니지 않은가.
하나 다행인 건 옥황상제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 지 나한테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
억지로 알려주고 강요했다면 안했을 거다.
사람마다 잘 하고, 못 하고의 기준은 다르니까.
탈 아저씨는 옥황상제를 엄청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지만 누구는 엄청 나쁜 사람이라고 할 가능성이 크다.
조심스럽게 예상하는데 세이브 성주가 반란의 주동자가 된 이유가 이거 같다.
저택에 들어가서 용병 중 한 명한테 물어볼까나.
"죽을 뻔 한 적도 많죠?"
"이걸 보겠는가?"
소매를 걷어서 팔꿈치 부분을 보여주신다.
꿰멘 자국이 엄청 많다.
"천계검술 기초를 배우긴 했지만 여기 용병들은 완전 다른 기술을 사용해서 팔에 상처가 좀 많네."
"다른 곳도 있겠네요?"
"상체에 제일 많지."
이상하게 뿌듯해 하시는 것 같다.
옥황상제가 아저씨 이러는 거 안다손 쳐도 아저씨한테 떨어지는 건 하나도 없어요.
고작 칭찬 한번하고 말겠죠.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자랑하려고 보여준 거 아닐세. 물어보니까 보여준 거지."
어른답게 씩씩한 모습을 먼저 보여주신다.
"다른 건 신경쓰지 말고 문서 빼올 생각만 하게."
"알았어요. 근데 둘 중 어떤 게 진짜 문서죠?"
"들은 얘기가 사실이라면 지장이 찍혀있는 문서가 진짜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