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무표정이지만 손은 떨리고 있다.
진짜 신이 된 게 아닌데 왜 이런 반응일 지 엄청 궁금하지만...
우선은 이 상황에서 빠져나가야 된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신이 아닌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나한테 칭호를 반납하겠다고 하면 염라한테 말해서 없었던 일로 해주겠다."
"싫은데. 내가 왜 그래야하지?"
"말했지 않은가. 자네한테 무거운 칭호야."
"무겁다라... 날 납득시켜야지 그렇게 말하면 어떡해?"
"진실을 알게 되면 자네만 괴로워. 내 밑에서 일하는 사람이 힘든 건 싫어."
"그거 엄청 모순인 거 알지?"
움찔한다.
당신 밑에서 생활하는 모든 천계인들이 힘든 지 아니면 만족하면서 살고 있는 지 난 모른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만족하면서 살고 있지 않다.
만족했으면 반란을 일으킬까?
둘째 형의 꼬임에 에이엘이 넘어갔을까?
"무슨 생각을 그리하느냐? 할 말이 있으면 하거라."
"할 말이라...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4박 5일 동안 안 쉬고 해도 부족할 만큼."
"나에 대한 불만인가?"
"정답."
크게 웃는 옥황상제.
손 떨림이 멈췄다.
"인간. 난 널 걱정해서 하는 말이다. 신이 무엇인 지 알려주면 자네가 버틸 수 있을까?"
"버티고 말고 할 것도 없어. 그냥 모르고 살면 돼. 굳이 알아야 하나?"
"그냥 모르고 살겠다라... 재밌는 소릴 하는구나. 그게 가능하면 내가 이런 말을 할까?"
"그걸 왜 네가 판단해? 네가 나야? 내가 어떻게 할 지 내가 판단해. 네가 뭔데 내 모든 걸 판단해?"
"죽여버리고 싶구나."
옥황상제 말이 끝남과 동시에 병사들이 조금씩 앞으로 오고 있다.
얼추 20명.
완전무장에 바스타드 소드.
갑옷강도는... 강철 이상일 게 뻔 해.
제일 큰 문제는 이들의 움직이는 속도.
갑옷 때문에 느려진다손 쳐도 이들은 훈련을 받은 정예병사들이다.
단점을 보완했을 게 뻔 해.
죽을 위기에 처하면 약 효과가 발동된다곤 했지만 죽을 위기라는 기준이 뭔 지 모르니...
"인재를 찾아서 좋아했는데... 그냥 죽이거라. 60억 명 중 또 있겠지."
옥황상제가 뒤로 빠지자마자 병사들이 나한테 뛰어왔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고!!"
나도 녀석들에게 뛰었다.
내 바로 앞에 있는 녀석의 복부를 때렸는데 내 손이 튕겨져 나왔다.
'철이 아닌가?!'
복부를 맞은 녀석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검으로 내 흉부를 비스듬하게 그었다.
피가 분수처럼 쏫아져 나오고 있고 놈은 다시 검을 높이 들었다.
"젠장..."
아픈 것도 아프지만... 이렇게 죽고 싶지 않았는데...
"누구 마음대로 이 녀석을 죽이는 거지?"
날 쓰러지는 걸 누가 잡아줬다.
흐릿하게 보이지만 누군 지 알 수 있다.
"마... 마탈..."
"괜찮아? 메이린이 치료해줄 거야."
"바로 시작할게요."
메이린이 날 만지는 느낌이 든다.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에이엘인가?
잘 안보여서 확실히 모르겠지만... 목소리는 에이엘이다.
"에... 에이엘님... 저희는 상제폐하의 명령대로 하는 것 뿐입니다."
"다 자리로 돌아가."
"하... 하지만..."
"목이 땅에 떨어져야 돌아가겠느냐?"
메이린이 뭘 하고 있는 지 모르지만 몸이 점점 편해지고 있다.
흐릿한 시선도 돌아오고 있고 아픔이 점점 사라진다.
"지금 뭐하는 거지?"
옥황상제 말에 조금씩 뒷걸음치던 병사들이 멈춰섰다.
눈치를 보고 있다.
"너희들 상관은 나 옥황상제다. 에이엘 상관도 나 옥황상제다. 누구 명령을 들어야 하지?"
"사... 상제 폐하십니다!!"
전부 똑같이 말한다.
"그럼 너 놈을 죽여라."
병사들이 조금씩 앞으로 온다.
"지랄들 하고 있네."
에이엘이 마탈을 보고 오라고 손짓한다.
마탈은 날 조심히 내려놓고 에이엘한테 간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야?"
"말씀하시면 안돼요. 상처가 벌어지면... 어?"
상체만 세우고 메이린을 살짝 밀었다.
고개를 숙여서 상처를 보니까 없어졌다.
약 효과인가...
"내가 책임질테니 전부 베어버려."
"네?"
"마탈. 네 상관이 누구지?"
"상제폐하십니다!!"
"그렇지? 그럼 네 뒤에 있는 인간을 죽여라."
"지금 네가 할 일은 윤현을 죽이는 게 아니야. 지키는 거야."
옥황상제랑 에이엘이 말싸움을 시작했다.
병사들도 마탈도 어떻게 해야할 지 몰라서 난감해 하고 있다.
웃긴 건 이 녀석들이 이럴 필요가 없다.
옥황상제 말대로 에이엘 상관도 옥황상제다.
여기서 둘이 친구인 건 아무 상관없다.
"메이린."
"네?"
"일단 밀어서 미안하고."
"괜찮아요."
"그럼 다행이고. 에이엘이 뭔데 옥황상제의 명령에도 다들 저러는 거냐?"
"아시잖아요... 보안부 서열 1위면서 상제폐하의 친구 분이신 에이엘님은 상제폐하의 뒷처리를 해주시는 거..."
"알지. 그 뒷처리 때문에 다들 저러는 거야?"
"네... 보안부에서 일하는 대신에 옥황상제와 비슷한 직책을 얻으셨거든요."
"보나마다 에이엘이 건의했겠지."
"맞아요."
이런 일을 대비한 게 아니라 전쟁에서 쓰기 위함이겠지.
자기가 직접 병사들을 쓰거나 작전에 좀 더 유용하게 쓰기 위해서.
아니면... 반대쪽 천계가 이길 수 있게끔 작전을 짜기 위해서 라든가.
내 생각이 틀렸다손 치더라도 머릴 잘썼다.
"설마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이걸 알고 제안한 것이냐?"
"그럴리가. 앞을 내다봤을 뿐이야."
자리에 앉는 옥황상제.
"다들 자리로 돌아가라. 마탈도 블루 블레이드에서 손 때거라."
병사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검을 집어넣고 자리를 비킨다.
마탈도 블루 블레이드에서 손을 내린다.
몸이 괜찮아져서 벌떡 일어났다.
메이린도 같이 일어났다.
"여봐라. 사방에 뿌려진 피를 닦아내거라. 보기 흉하구나."
"청소 후에 봐. 너한테 할 말 있어서 내려온 거니까."
"나도 마찬가질세."
어딘가로 가버리는 옥황상제.
"우리도 가자."
"보안부 말씀이십니까?"
"거기 말고 우리가 어딜 가겠냐. 윤현한테 할 말도 있고."
"에이엘."
"뭐지?"
"마탈이랑 화해는 했냐?"
살짝 웃는 마탈과 에이엘.
"일단 따라와. 메이린도."
메이린은 고개를 끄덕이고 먼저 가는 에이엘을 따라갔다.
그 뒤로 마탈과 내가 따라갔다.
"어쩔라고 그러냐? 둘이 얘기 좀 했어?"
"일단 뺨 때린 건 사과했어. 무엇보다 에이엘님도 생각을 바꾸셨어."
"반가운 소리네."
이 대화를 끝으로 보안부까지 오면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에이엘은 보안부에 들어오자마자 커피를 달라고 말했다.
다시 그 자리에 앉자마자 메이린은 노트북을 꺼내서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마탈은 크게 숨을 쉬면서 안정을 취하는 것처럼 보인다.
에이엘은...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조금도 모르겠다.
"할 말이 뭔데? 빨리 해."
"급할 거 없잖아. 급하면 화장실부터 갔다와."
"뭔 개소리냐..."
"신이 무엇인 지 궁금하죠?"
"어?"
"알려드릴게요."
"상관없어?"
"괜찮아. 옥황상제가 준 직책이 있으니까. 큰 일은 내가 직접 할 수 없지만 작은 일은 할 수 있어."
"너도 화장실이나 가."
"내가 말했을 때 이런 느낌이었구나."
가만히 있던 마탈까지 우리 셋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살짝 미소를 짓는데 만족한 느낌이다.
민망해야 되는 부분이다...
"이상한 소리 그만하고. 신이 대체 뭐야?"
"그걸 말하기 전에. 내 검은 뭘로 만들었지?"
뜬금없는 마탈의 질문.
"용으로 만들었다면서. 갑자기 이 얘긴 왜 해?"
"마계에서 용은 신이다."
"그럼 넌 신을 잡은 거야?"
고개를 끄덕이는 마탈.
"마계에서 신이라는 칭호를 얻어왔으니까 난 용이랑 같은 급?"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그냥 해 본 말이야."
한숨을 쉬는 메이린.
마탈도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우선 이걸 봐주세요."
"천계왕조실록이야?"
"아니요. 그건 나중에 보여드릴게요. 그것보다 이게 더 급하니까."
메이린이 준 노트북을 보기 시작했다.
한글로 번역이 되어있다.
그림도 한 장 있다.
"짧게 요약해드리면 지금으로 부터 약 200년 전 인간을 신으로 만든 적 있어요. 그때 일을 기록했어요."
"신으로 만들었다고 하니까 특별한 힘을 준 것 같네."
"맞아. 인간이 알고 있는 신은 각각 특별한 힘이 있잖아? 그걸 토대로 힘을 주고 인간을 신으로 만들었어."
"그림을 자세히 보면 인간 손에 구슬이 하나 있을 거야."
마탈 말을 듣고 그림을 자세히 보니까 오른손에 구슬이 하나 있다.
"이 인간은 물의 힘을 계승 받았고 물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해줬지."
"잠깐만... 왜 천축성을 공격했다는 내용이 있는 거야?"
"신이 된 후 옥황상제 자리를 가지고 싶었는 지 모르지만 천축성을 공격했고 힘들게 인간을 제압했어요."
"기록을 보면 인간 하나를 제압하기 위해 투입된 병사 수는 300만 명... 모두 죽었다."
이럴수가...
200년 전 사건 때문에 옥황상제가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한 건가?
혹시 내가 똑같은 일을 할거라 생각한 것 같다.
"내가 왜 용을 언급했을까?"
"물을 다루는 힘이 용과 비슷했다는 거야?"
고개를 끄덕이는 마탈.
300만 명을 투입했지만 참패.
마탈은 11명을 데리고 용을 잡았다.
자기자랑인가?
"자랑하려고 내가 이 말을 꺼냈다고 생각하냐? 아니야. 인간이 용과 비슷한 힘을 가지면 안된다는 걸 말하는 거야."
"악용할까봐?"
고개를 끄덕이는 마탈과 에이엘.
"옥황상제가 무거운 자리라고 말한 이유를 알겠나?"
"알 것 같아. 하지만 내가 똑같이 할 거라는 보장도 없잖아."
"없지. 없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자기가 지금까지 한 행동 때문이야."
"이 인간이 무슨 생각으로 천축성을 공격했는 지 모르지만 200년 전에 옥황상제를 하시던 폐하는 엄청 잘하셨어요."
결론은 잘하든 못하든 상관없다는 말이다.
누구나 권력을 가지고 싶어한다.
옥황상제는 천계 최고 권력.
나라 하나를 손에 넣을 수 있는 기회니까.
"아까 네가 마계에서 칭호를 얻어 왔으니까 용이랑 같은 급이라고 했지?"
마탈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셋 다 정색했지만 틀린 말이 아니야."
"엉? 그럼 나 용처럼 강해진 거야?"
"그건 틀렸어요."
"왜 이건 틀려?"
"힘이 발현되려면 아직 멀었어. 천계에서 신이 되면 바로 발현작업을 하지만 마계에선..."
"이게 필요하냐?"
염라대왕이 준 동전을 노트북 옆에 놓았다.
내가 내민 동전을 본 셋은 이게 뭐야라는 표정을 짓는다.
"아... 아니야?"
"선대 대왕마마가 그려져 있지만 아니에요. 이 동전은 어디서 가져오셨어요?"
"비밀이야."
말해줘도 되는데 무안해서 말 못하겠다.
동전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이 아저씨는 이걸 왜 준 거야? 혹시나 해서 엄청 기대했네.'
"마귀환이라는 약을 먹어야 힘이 발현 돼."
"그건 뭐야?"
"지금은 구할 수 없는 약이야. 먹으면 죽을 위기에 처하면 힘이 생겨."
에이엘이 한 말에 메이린은 다시 노트북을 두드린다.
마귀환(魔鬼丸)이라...
죽을 위기에 처하면 힘이 생기는 약이라면 먹긴 했는데.
잠깐...
설마 모르고 준 거야?
"저기 마탈."
"왜?"
"네가 나한테 준 감기약 말이야..."
"하나 더 줘?"
약을 나한테 내민다.
염라대왕 말로는 천계인과 마계인한텐 평범한 감기약이라고 했다.
마탈도 똑같이 말했고.
즉, 인간 출신이 아니면 효과를 볼 수 없다는 말이다.
재밌는 걸 하나 알았네.
"왜 그래?"
"아니야. 지금은 괜찮아. 더 심해지면 말할게."
알았다면서 약을 다시 넣는다.
"나도 자연계 힘을 쓸 수 있어?"
"마계에서 신이 됐기 때문에 불가능해."
"천계랑 많이 달라?"
에이엘은 한숨을 한번 쉬고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마계인은 힘이 쎄. 천계인은 감각이 뛰어나고. 감각개선이 뇌를 간섭하고 옥황상제의 힘으로 힘이 발현 돼."
"왜 뇌야?"
"뇌가 몸의 모든 걸 관리하잖아. 옥황상제의 힘까지 더해지면 신이 되는 거지."
신기하네.
만화에서 보던 능력자 같다.
"그럼 마계에서 신이 됐으니까 난 힘만 세지는 거야?"
"응. 천계 신처럼 자연계 능력이 생기는 게 아니라 아쉬울 수 있지만... 힘으로 널 이길 자는 없어."
에이엘 말에 마냥 기분이 좋진 않다.
"힘 좋으면 뭐하냐, 무식해보이기만 하지."
"잘못 생각하고 있어요."
"응?"
"힘이라는 게 꼭 몸의 힘만 힘이 아니에요. 지식도 힘이 될 수 있다구요."
"아..."
"그 힘을 어떤 방법으로 쓸 지 정하는 건 그 쪽 몫이라는 걸 꼭 알아두세요."
메이린의 일침에 벙쪄버렸다.
조금도 생각해보지 못한 말이기 때문이지만 내가 너무 틀에 박힌 생각만 하고 있었다.
벙쪄버릴 정도로 지적 받은 건 진짜 오랜만이네.
죽을 위기에 처하면 약 효과가 나타난다고 했는데 방금 상황에서 약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어째서지?
"염라가 널 신으로 만든 건 상관없지만 힘이 발현하려면 마귀환을 먹어야 되는데 못 먹어서 어쩌냐?"
에이엘은 내가 마귀환을 먹은 걸 모른다.
누가 알겠어.
평범한 감기약으로 알고 있는 게 마귀환일 줄은.
염라대왕은 그 약이 맞다고 했으니까 거짓말은 아닐 것이고.
"질문. 염라대왕은 나한테 신의 칭호만 준 건데. 왜 내가 신이 됐다고 생각해?"
"마계는 그렇게 신을 만들어어요. 우리랑 다르다고 말씀드렸잖아요."
너무 대충인데...
이래서 마귀환이 필수인가?
마계는 신이라는 칭호를 주고 마귀환을 먹으면 힘이 세진다는 말이다.
힘이 세진다는 이유로 신이 된다.
메이린, 마탈, 에이엘은 내가 마귀환을 안 먹은 줄 알고 있다.
셋은 의미없이 칭호만 가지고 있는 줄 안다.
"옥황상제도 알 거 아니야. 마계에서 신이 되면 힘만 세진다는 거."
"신은 신이야. 말했잖아. 힘으로 널 이길 자는 없다고."
에이엘은 또 같은 말을 하지만 여전히 마냥 좋진 않다.
"그럼 나한테 무거울 거라 말한 이유는?"
메이린이 노트북 화면을 나한테 보여준다.
"이게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