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메이린이 보여준 부분에 이렇게 쓰여있다.
[내가 천축성을 공격한 이유는 내 힘을 가늠해보고 싶었다. 다른 이유는 없다.]
"2줄 밑을 보시겠어요?"
"어어..."
메이린 말대로 2줄 밑을 봤다.
[새로운 힘에 충분히 만족했고, 난 이 힘에 책임을 질 수 없기 때문에 평생 감옥에서 살겠다.]
이것 때문에 옥황상제가 무거울 거라고 말한 건가...
날 걱정했다는 말이잖아.
"바로 밑에 써 있는 걸 보시겠어요?"
"그... 그래!!"
바로 밑줄을 보니까 이렇게 써 있다.
[내 부탁이 있다면 다시는 인간을 신으로 만들지 않길 바란다. 인간 중 이 힘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는 자는 없다.]
제대로 못을 박아놨다.
이제서야 옥황상제가 그렇게 반응한 이유를 알 것 같다.
200년 전이면 지금 옥황상제도 그 일을 봤을 테니까 잘 알고 있겠지.
자기 눈으로 직접 봤고 또 같은 일이 혹시나 발생할까봐 걱정된 것도 있고.
내 걱정은 둘째치고 옥황상제 자리를 잃을 걱정 때문에 그랬을 지도 몰라.
"근데 어쩌냐? 난 이미 신이 됐는데."
"마귀환 안 먹으니까 괜찮다니까 그러네."
살짝 화를 내는 에이엘.
솔직하게 말해줘야 하나...
나중에 얘기하자.
말 안해도 언젠가 들킬 테니까.
"아직도 감옥에 있어?"
"지옥과 제일 가까운 곳에 수감되어 있어."
마탈은 일어나면서 대답해줬다.
갈 시간인가 보네.
"죽을 수도 있잖아."
"걱정마세요. 지옥과 가까워도 죽지 않을 정도의 거리에 만든 감옥이니까."
"하긴. 만들다 죽을 수도 있으니까."
에이엘, 메이린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일어났고 우린 옥황상제 자리로 향했다.
아까와 다르게 이번엔 뭐라고 떠들어댈 지 궁금하다.
"왔는가?"
분위기가 많이 무겁다.
"결정은 했는가? 신을 포기하겠는가?"
"포기 안할래."
"뭐?"
"에이엘 말 들어보니까 아저씨가 예민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더라고."
"마귀환을 안 먹은 것이냐?"
표정이 밝아졌다.
난 긍정을 담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내 앞으로 오는 옥황상제.
"다행이구나!! 정말 다행이야!!"
춤이라도 출 것처럼 엄청 좋아한다.
진짜 속 보이는 아저씨다.
"이제 이 문제는 넘어가도록 하지. 어찌됐든 우리 군사를 하겠다고 해줘서 정말 고맙네!!"
내 손을 잡고 흔든다.
"앞으로 잘 부탁하네. 힘들겠지만 우리 빨리 전쟁을 끝내도록 하게나."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
"무엇이지?"
"진짜 끝내고 싶어?"
"전쟁을 말이냐? 빨리 끝내고 싶은 게 당연한 것 아니겠느냐."
"염라대왕은 형과 동생이랑 같이 하고 있다고 들었어. 방법이 잘못됐지만 아저씨도 누군가랑 같이 하고 있잖아."
"무슨 말을 하고 싶은 지 조금도 모르겠구나."
"진짜 몰라서 물어?"
고개를 끄덕인다.
에이엘과 마탈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알아챘는 지 옆에서 살짝 웃는다.
메이린은 놀라는 표정을 하고 있다.
"아저씨는 영혼이 가는 길도 정해주는 일도 같이 하니까 넓은 영토를 다 신경 쓸 수 없잖아."
"그렇지."
"누군 지 모르지만 아저씨 역할을 대신 해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휠씬 편해졌고 말이야."
이제야 내 말의 의도를 파악했는 지 표정이 안 좋아지기 시작한다.
"내가 전쟁을 끝내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말이냐?"
"응. 반대쪽을 차지하면 아저씨 일이 늘어나게 되잖아. 지금도 제대로 못하는데 더 못하게 될 걸 걱정하는 거 아니야?"
크게 웃는 옥황상제.
좋아서 웃는 게 아니라 무안해서 웃는 웃음소리다.
지금 타이밍은 웃을 타이밍이 아니다.
무엇보다 친형이 전쟁을 일으킨 걸 난 알고 있다.
일부러 누군지 모른다고 했는데 전혀 신경쓰지 않는 것 같다.
누가 전쟁을 일으켰는 지 모를 리 없다.
에이엘이 주도한 건 모르겠지만.
마탈과 메이린은 알고 있는 눈치다.
어찌보면 셋이 팀을 이루고 있는 것 같기도 해.
"원한다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데."
"급할 필요없네. 시간도 늦었으니까 오늘은 쉬는 게 어때?"
"나쁘지 않네."
"말은 똑바로 해. 급할 필요가 없는 게 아니라 전 처럼 싸우는 곳이 없으니까 그렇잖아."
"너야 말로 말은 똑바로 하는 게 어떻겠나?"
"뭐?"
옥황상제랑 에이엘이 싸울 것 같은 분위기가 됐다.
"네가 하이웨이에 잠시 가 있을 동안 반란세력이 등장했다."
"뭐?"
"말할 타이밍을 못 잡아서 말 안하고 있었는데 반란군에게 둥지를 뺐겼다."
"야, 둥지는 세이브 바로 옆에 있는 지역이잖아. 왜 또 천축성 근처야?"
"여기서 가가운 곳을 공략해야 천축성을 공략하기 쉬울 것 아닌가. 세이브는 빙하시대가 되서 더 이상 못 쓰고."
아저씨 명령 때문에 전부 얼려버린 거 잖아.
말은 아저씨가 똑바로 해야겠어.
"세이브를 그렇게 만들면 안됐어. 덕분에 둥지에서 여기까지 오는 직선통로가 만들어졌으니까."
"네가 시켰잖아."
"시키는 대로 다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생각을 하고 해야지."
아무 말도 못하는 에이엘.
얼굴에 짜증이 가득하다.
"웃기네."
"뭐? 인간, 지금 뭐라고 했느냐?"
"웃긴다고. 아저씨가 시켜놓고 이제와서 책임을 떠 넘기는 거야? 완전 잘못됐잖아."
"내 말이 틀렸다는 말이냐? 지역 하나를 없애는 명령을 그대로 따르는 자가 세상에 어딨느냐?"
"애초에 아저씨가 그런 명령만 안 내렸으면 안했어!! 아저씨가 잘못해놓고 왜 애들이 잘못했다고 해!!"
"어이없구나. 마탈, 대답해보거라. 누구 잘못이지? 자네가 직접했으니까 대답해보게나."
"전... 그게..."
"아무 말 하지마. 이딴 질문에 대답할 가치는 조금도 없으니까."
화난 얼굴로 뒤로 돌아 가버리는 에이엘.
따라가는 메이린.
옥황상제는 어이없다는 듯 자리로 돌아간다.
정말 무책임한 아저씨네.
이 일도 에이엘에 없었던 일로 만들려나.
'옥황상제 명령으로 했다는 부분을 없애겠구나.'
"가자."
"응? 어디로?"
"어디긴. 네 할 일을 하러 가야지."
"어어..."
에이엘을 따라서 보안부에 왔다.
마탈과 메이린은 벌써 와 있다.
"넌 여기서 지내는 게 제일 좋을 것 같아."
"알았어. 나도 여기가 정 들어서 제일 편해."
"우선 이걸 봐주세요."
메이린은 또 노트북을 내 앞에 내밀었다.
둥지라는 지역에 대한 설명이 쭉 써 있다.
"마탈이랑 메이린도 모르고 있었어?"
"네. 둥지가 반란군한테 뺏긴 건 상제폐하께 들은 게 처음입니다."
"전 이렇게 될 줄 예상했어요. 천축성에서 제일 가까운 지역인 세이브가 그렇게 됐으니 둥지를 공격할 것 같았어요."
"그렇단 말이지. 반란군의 출처는?"
"에이엘님 소속이 아닌 건 확실해요."
"당연한 말은 하지말고. 일부러 전부 지옥으로 보내버린 건데."
"넌 그 놈들이 불쌍하지도 않냐? 일부러라는 말은 하지마."
"사실을 사실 그대로 말한 건데 잘못된 거냐?"
이 녀석은 가끔 이렇게 짜증나는 말을 너무 쉽게 한다.
짜증나는 말이고 했지만 어찌보면 엄청 실례되고 조심해야 하는 말이다.
쓸만큼 쓰고 필요없으니까 버린 거 잖아.
지금 에이엘의 말과 행동은 옥황상제랑 다를 게 없다.
"말을 말자."
"하하하..."
상황을 마무리 하려는 듯 메이린이 어색하게 웃었다.
마탈은 옆에서 한숨을 내쉰다.
"세이브랑 둥지는 크게 다를 게 없어."
에이엘은 어딘가로 가고 있고 마탈이 대화를 이끌기 시작했다.
"그렇게 말해도 몰라. 세이브가 어떤 곳이었는 지 잘 모르니까."
"내가 있던 곳 기억하지? 그게 세이브의 자랑이야."
"둥지도 그런 곳이 있다는 말이네?"
고개를 끄덕이는 마탈.
"다른 게 있다면 세이브보다 3배 더 크다는 점이지."
"지역의 반 이상이 풀 숲으로 된 곳이에요. 없애버릴 생각이 아니라면 불을 사용하는 건 가급적 하지 마세요."
"안 해. 잡든 쫓아내든 둘 중 하나로 할 거야."
"잡는 건 불가능해."
"어째서?"
"여기 오기 전 지휘부에 들려서 물어보고 왔는데 일반병사들도 상당한 실력자야."
"그래? 그럼 우리도 정예부대로 가야겠네."
"상제폐하가 그렇게 해주실 지 의문이네."
"이런 것도 간섭하는 거야?"
"응. 늙은 병사들로 구성된 부대를 주셔서 진 적도 많아."
"4달 전에도 한번 있었죠?"
메이린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는 마탈.
"웃긴다... 이래놓고 나한테 전쟁을 빨리 끝내고 싶다고? 어이가 없어서."
"상제폐하를 너무 욕하지마."
"욕을 안하고 싶은데 안할 수 없게 만들잖아. 아니지. 네가 또 날 죽이려고 할 지 모르는데 입조심해야지."
"알면 똑바로 해."
"안한다고 해주면 안되냐?"
"지금 억지로 참고 있는 거야. 조금만 수위 높아지면 바로 네 목을 자를 거야."
갑자기 궁금하다.
마귀환을 먹고 신이 된 지금 난 마탈을 이길 수 있을까?
이 녀석이 제대로 마음 먹고 싸운다고 가정하면 죽을 위기에 처할 게 뻔하니까 약 효과나 나타날 거다.
살짝 도발을 해서 싸워볼까?
"무슨 생각하는 지 모르지만 안하는 게 좋을 거라 생각해요."
메이린이 내 손목을 잡고 말했다.
'내 생각을 읽었나? 에이, 설마.'
살짝 웃더니 '알았죠?' 라고 다시 묻는다.
"뭔데 그래?"
"알 거 없어. 조심할게."
만족했다는 듯이 웃는 마탈.
저 때문에 조심한다고 한 거 아니야.
메이린의 웃음이 신경쓰여서 그런 거지.
"반란군 수는?"
"20만 명. 성주가 최대한 막고 있다는데 지금쯤 어떻게 됐을 지 모르겠어."
"지역을 내줬을 수도 있다는 거야?"
"응. 근처 지역에도 지원군을 요청했는데 성 앞에도 진을 쳐놔서 들어가는 게 힘들대."
"그 말은 안은 이미 난장판이라는 말이군."
"맞아. 안에서도 밖에서도 견고하니까 아마 성주는 일찌감찌 포기했을 수도 있어."
"반란군이 지역 하나를 지배하고 있다라... 사정 안봐주고 공격해도 되겠어."
"어떻게 하려고?"
메이린이 보여준 지도를 토대로 작전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11명 중 몇 명을 쓸 수 있으려나?
"네 부하 중 몇 명만 쓸 수 있냐?"
"누가 필요한데?"
"꼭 누가 필요한 건 아니야. 3명 정도만."
"우기랑 파프리카, 술한테 부탁해볼게."
"내가 아는 애들이면 더 좋지. 지금 바로 물어봐.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할 거야."
"둥지는 여기서 8시간 밖에 안 걸려요."
"8시간이라... 그럼 새벽에 출발해야겠네. 공복에 싸우면 힘드니까 밥을 든든히 먹고 공격하는 게 좋겠어."
"여기로 오라고 할게."
"고마워."
어딘가로 가는 마탈.
날 보면서 웃는 메이린.
"왜 그래?"
"적극적인 모습이 보기 좋아서요."
"하기로 마음 먹었으면 제대로 해야지. 대충하는 건 딱 질색이야."
"그 마음... 변치 마세요."
"애인이 있는 지 모르지만 있으면 네 애인한테 해."
"없어요!! 그리고 애인한테만 하는 말 아니잖아요!!"
"왜 성질이야. 네가 애인없는 게 내 탓이냐."
"말투가 마음에 안들었어요."
"욕해도 되냐?"
"안돼요."
바보 같은 대화에 서로 웃었다.
둘 다 웃음을 멈추니까 누군가 왔다.
"뭐가 그렇게 재밌냐?"
"응? 이 사람은 누구야?"
"글쎄요... 목소리는 에이엘님인데..."
"처음 보는 사람처럼 왜 그래? 나 에이엘 맞아."
손가락으로 에이엘을 가리키면서 떠는 메이린.
날 보는데 표정이 심각하다.
나도 지금 메이린이랑 같은 표정을 짓고 있을 것 같다.
이... 이 사람이 진짜 에이엘이란 말이야?
에이엘은 더러운 사람이다.
씻지 않았다는 걸 자랑하듯이 냄새를 풀풀 풍기고 옷도 찢어진 옷을 입고 있었다.
정리되지 않은 머리카락과 수염 때문에 보이는 건 입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앞에 서 있는 이 잘생기고 반듯한 남자가 에이엘이라고?
버짐 핀 입술은 어디갔어?
"에이엘님이 이렇게 멀쩡한 사람이었다니... 너무 놀라워요."
"처음보는 거냐?"
고개를 끄덕이는 메이린.
"언제부터 거지 꼴을 한 거야?"
"오래됐지. 100년 전부터?"
"너도 대단하다...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살았냐?"
"여러가지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렇게 돼. 마탈은 어디갔어?"
"작전 때문에 내가 부하 몇 명만 불러달라고 했거든."
"그래? 마탈은 이 모습을 본 적 있어서 놀라지 않을 거야."
"누구냐? 누군데 여기 있는 거지?"
정확히 경동맥을 노리고 에이엘 뒤에 선 마탈.
날카로운 물건을 들고 노리는 줄 알았는데 손가락이다.
'지 정도 되면 손가락으로 뚫을 수 있다는 거냐?'
"에이엘님 목소리를 흉내내서 들어온 모양인데 모습은 바꾸지 않은 건 실수다. 솔직히 말하면 죽이진 않겠다."
"대장, 뭔 일이야?"
"보안부에 침입자가 들어온 겁니까?"
"재밌는 구경하네!! 보안부에 침입자라니!!"
뭐가 좋은 지 술이랑 우기, 파프리카는 신나게 달려온다.
침입자 아닌데.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어찌보면 지금 상황은 엄청 재밌는 상황이다.
방금 에이엘은 이렇게 말했다.
'마탈은 이 모습을 본 적 있어서 놀라지 않을 거야.' 라고.
그런데 마탈은 정확히 급소를 노리고 위협하고 있다.
협박까지.
웃지 않을 수 없다.
"크크크크!!"
"뭐가 웃겨? 지금 보안부에 침입자가 들어왔잖아. 엄청 심각한 거야!!"
"네가... 경동맥을... 노리고 있는... 그 사람... 아오!! 웃겨서 말을 못하겠네!!"
"마탈님... 손 내리세요. 에이엘님을 죽일 생각이세요?"
겨우 웃음을 멈췄다.
메이린 말에 놀라는 마탈을 뒤로 하고 우기, 파프리카, 술은 에이엘 앞으로 와서 얼굴을 확인한다.
"헉!!"
"에... 에이엘!! 왜 씻으셨습니까?"
"이 모습, 너무 오랜만이라 무례를 일으켰습니다, 죄송합니다!!"
급히 손을 내리는 마탈.
에이엘 앞으로 와서 정중하게 사과의 인사를 한다.
아, 재밌어!!
"이딴 놈을 근위대 대장을 시키고 있으니... 엔지의 시스템을 뭘로 보는 거야!!"
"고개 숙여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