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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지와 메이스가 셜로크의 첫 번째 관문에 진입한지 30분 째.
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뛰고 있는 켄지가 메이스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야이 개자식아! 그냥 단순한 방탈출 카페라매!"
켄지보다 조금 앞에서 뛰고 있던 메이스가 대답했다.
"나도 그냥 방탈출 카페인줄 알았지"
쿠콰콰쾅
켄지가 지나온 길의 바닥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무너진 바닥 아래에는 보기만 해도 섬뜩한 죽창들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으헉!"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던 켄지가 앞 쪽에서 가만히 서 있는 메이스를 발견하고 다시 한번 큰소리로 외친다.
"가만히 서서 뒤질 거 아니면 빨리 뛰어!"
메이스의 목덜미를 낚아 챈 켄지가 발에 땀이 나도록 뛰었다.
"너 새꺄, 도와달라는건 핑계고 그냥 내가 고렙인거 배아파서 레벨 떨구려고..."
"그림이 있었어"
켄지의 말을 메이스가 중간에서 끊었다.
"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하는 켄지를 보며 메이스가 말을 잇는다.
"마치 한장의 사진처럼 잘 그려진 그림이었어. 분명히... 큰 저택 문 앞에서 밝게 미소 짓고 있는 남자랑 그 옆에 개가 한마리 있었..."
켄지가 이마에 십자마크를 그리더니 외쳤다.
"미친놈아!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상황에서 한가하게 그림 감상이나 쳐 하시고 계셨어요? 한국의 고흐(Vincent van Gogh) 납셨네 시팔. 내가 니 귀 잘라주랴?"
"아니 분명 여기를 탈출할 수 있는 단서가... 아!"
메이스가 말을 하다말고 서서히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너 진짜 죽고 싶...어?"
앞 쪽에 막혀있는 벽을 발견한 켄지도 서서히 속도를 줄였다.
"하... 친구 하나 잘못 둬서 뒤지게 생겼구나. 아까운 내 경험치. 내 랭킹..."
메이스가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켄지를 쳐다 보지도 않고 앞 쪽에 있는 벽을 꼼꼼히 살펴보기 시작한다.
'그 그림의 남자. 분명히 웃고 있었는데 아주 기분 나쁜 웃음이었어. 마치 사람을 약올리는 듯한...'
똥 싸고 뒤를 닦지 않은 찝찝한 기분으로 벽면을 살펴보던 메이스가 아까 지나온 길에서 봤던 그림을 떠올렸다.
'저택, 남자, 개, 그리고 등 뒤에 커다란 출입문...아!'
순간 눈을 반짝인 메이스가 벽면에 아예 눈을 가져다 대고 꼼꼼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켄지가 뒤를 돌아보더니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는다.
"어휴... 앞으로 남은 수명 10초 쯤 되겠네. 켄지쨩, 고멘. 주인 잘못 만나서 엄한 곳에서 죽게 만들어서 정말... 미안해, 고멘..."
눈물까지 글썽이며 중얼거리는 켄지 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벽면을 살펴보던 메이스가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찾았다!"
쾅!
말을 마친 메이스가 이음새가 다소 부자연스러운 벽면을 걷어 차자 쑥 하고 뒤로 밀리더니 사람 1명은 기어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이 나타났다.
"빨리!"
멍청한 표정으로 뒤를 바라보고 있는 켄지의 목덜미를 낚아 챈 메이스가 구멍 안으로 기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때서야 구멍을 발견한 켄지도 메이스의 뒤를 바짝 붙어 구멍 안으로 들어갔다.
쿠쿠쿵.
이윽고 등 뒤에서 바닥이 무너지면서 들리던 굉음이 잦아지자 켄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멧쨩, 스고이..."
"하아...시팔, 이놈의 개구멍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좁은 통로를 기어가며 메이스가 중얼거렸다.
"여기 개구멍 있는 건 어떻게 알았는데?"
켄지의 물음에 메이스가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아까 그림. 유독 출입문이 눈에 확 들어오더라고. 근데... 그 출입문 우측 하단에 조그만하게 개가 들락거릴 수 있는 문도 하나 있더라. 사진이면 모를까, 그림인데 굳이 그 것까지 디테일하게 그려 넣을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겨서..."
'그 것보단 남자가 웃는게 뭔가 아주 기분 나쁜 기억을 떠올리게 한게 가장 크지만...'
뒷말을 속으로 삼킨 메이스가 말했다.
"극현실주의 화가일 수도 있잖아. 현실이랑 완전 똑같이 그리려고 노력하는... 아무튼 멧쨩, 다시 봤어. 사이코!"
"뭐? 싸이코?"
"아니, 최고라고"
"제발 그 멧쨩 좀 그만하면 안될까. 차라리 이름을 부르던지 진짜 올라올 것 같은데..."
메이스의 말에 켄지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한다.
"게임은 최대한 몰입해서 즐겨야지. 이름 부르면 몰입이 안돼. 실명 거론하는게 찝찝하기도 하고"
"..."
"그리고 멧쨩 귀엽잖아? 부르기도 편하고"
"어휴, 말이나 못하면..."
메이스가 포기했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켄지가 앞에서 기어가는 메이스의 엉덩이를 툭툭 두들기며 외쳤다.
"끼럇! 빨리 가자! 와따시(나), 허리가 이따이!(아파!)!"
"야씨, 치지마!"
메이스가 빠른 속도로 기어가기 시작했고, 약 10분 뒤 어렴풋이 빛이 새어 나오고 있는 통로 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기!"
"요시! 하야쿠!(빨리!)"
잠시 후 통로를 빠져나온 메이스가 허리를 문질렀다.
"아오 허리야, 진짜 내 전생은 개였나. 왜 이렇게 기어다닐 일이 많아. 개구멍도 그렇고..."
"오... 그거 인정"
"...?"
"니가 좀 개새x같은 면이 있음. 인정"
"..."
메이스가 퀘스트고 뭐고 진지하게 켄지를 죽여버릴까 고민했다.
"어! 저기!"
켄지의 목소리에 상념에서 벗어난 메이스가 그 때서야 주변을 제대로 둘러보기 시작했다.
개구멍을 빠져나온 장소는 드래곤도 몸을 눕힐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공동(空洞)이었다.
켄지가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따라가니, 공동 벽면에 누군가 큼지막한 글자를 써놓았다.
"한글...?"
메이스의 중얼거림을 들은 켄지가 낄낄대며 말한다.
"빠가야로. 게임 자동번역 기능이잖아"
빠직
이마의 십자마크를 손가락으로 꾹꾹 누른 메이스가 벽면의 글자를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안녕, 친구.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하네.
우리 소중한 연자를 절대 개고생시키려고 준비한 관문은 아니라네.
이해하지?
마치 개고생했으면 좋겠다는 듯이 적어 놓은 것 같은 기분이 들자, 메이스가 뒷목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후우... 릴렉스, 릴렉스'
속으로 중얼거린 메이스가 계속해서 글자를 읽어 내려갔다.
첫 번째 관문은 우리 소중한 연자가 급박한 위기상황에서 얼마나 뛰어난 관찰력과 직관력을 지녔는지 시험해보기 위해 내 나름대로 준비한 관문이네.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한 자네는 평균이상의 관찰력과 판단력은 있는 것 같군, 하핫!
'핫핫은 얼어죽을. 굳이 웃는거 까지 글자로 적어 놓은 심보가 딱 약 좀 오르라고 준비 많이 하셨네'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한 연자여!
이 곳은 내가 준비한 두 번째 관문.
명석한 두뇌와 빛나는 판단력으로 이번 관문도 훌륭하게 통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믿네!
그럼 무운을 빌지.
ps. 공동에는 식수로 사용할 수 있는 지하수와 식량대용의 이끼가 많이 준비되어 있으니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두 번째 관문에 도전할 마음이 든다면 벽면 아래에 있는 야광주에 손을 가져다 대게.
벽면 옆으로 시선을 돌린 메이스가 듬성듬성 자란 이끼를 보며 눈쌀을 찌푸렸다.
'줘도 안먹겠네'
"이건 뭐지?"
메이스가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드라마처럼 켄지가 벽면 아래에 있는 야광주에 손을 가져다 댔다.
"야, 잠깐...!"
우우웅.
공동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쾅!
공동 천장의 어두운 공간에서 커다란 물체가 떨어져 내렸다.
"미친! 언데드 드래곤!?"
크기로 봤을 때 가장 약한 해츨링 언데드 드래곤으로 보이나, 그래도 드래곤은 드래곤.
레벨 300은 훌쩍 넘는 몬스터의 등장에 메이스가 침을 꿀꺽 삼켰다.
300은 커녕 30 레벨도 되지 않는 메이스는 언데드 드래곤의 콧김 한방이면 벽에 쳐박혀 죽을 것이다.
그리고 켄지는...
'가만... 저 새끼 분명 탑 100위권 내 랭커라고...'
"후훗, 드디어 내가 나설 차례가 왔군"
켄지의 말에 메이스가 조금은 기대감을 담은 눈빛으로 켄지를 바라봤다.
"랭커의 위엄을 보여주지 멧쨩"
"오..."
"이쿠조!"
켄지가 등 뒤에서 검을 뽑아 들며 중얼거린다.
"미오 스테테모... 묘-리와 스테즈(몸을 버리더라도... 명예는 버리지 않으리)"
말을 마친 켄지가 언데드 드래곤에게 달려 들었다.
"류승룡 기못.... 으헉!"
두쾅!
큰 소리로 외치며 언데드 드래곤에게 평타를 박아 넣으려던 켄지가 발길질 한 번에 공동 저 멀리 나가 떨어졌다.
그리고...
[ 파티원 '불주먹켄지' 님이 사망하셨습니다! ]
"진짜 병신..."
홀로 남은 메이스의 중얼거림만이 공동을 가득 메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