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번째 관문 공동에 도착한 켄지와 메이스가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았다.
"헉...헉... 너 야광주 함부로 손대지 마라"
메이스가 숨을 몰아쉬며 켄지에게 말했다.
"네, 네. 그래서 뾰족한 방법은 있으신지?"
나름 랭커인 켄지가 비교적 평온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기다려봐"
말을 마친 메이스가 이끼와 지하수가 있는 벽면 근처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내 생각이 맞다면..."
벽면 앞에 도착한 메이스가 스킬을 사용한다.
"관찰!"
띠링
[ '관찰' 스킬 레벨이 올랐습니다! ]
관찰(Lv.2, 숙련도 0%)
당신은 범인에 비해 뛰어난 관찰력을 지녔습니다.
대상의 기본적인 정보 외 세부 정보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스킬의 숙련도에 비례하여 세부정보, 대상의 약점, 숨겨진 비밀 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나소모 : 20
기분 좋은 시스템음에 미소 지은 메이스가 눈 앞에 떠오른 홀로그램을 읽기 시작했다.
[ 회색 마녀의 이끼 ]
남쪽 끝의 깊은 숲 속에서만 서식한다는 이끼.
구하기가 귀한 탓에 연금술사들 사이에서 고가에 거래되기도 한다.
강력한 독, 마비 성분을 포함하고 있다.
"관찰!"
회색 마녀의 이끼 정보를 모두 읽은 메이스가 이번에는 공동 안의 지하수를 대상으로 스킬을 사용했다.
[ 오래된 지하수 ]
공동 안에 오랫동안 고여 있는 지하수.
수은과 각종 독 성분이 포함되어 마시기에는 부적합하다.
"셜로크 이 그스끼....."
뿌득 이를 갈며 중얼거리는 메이스를 보며 켄지가 묻는다.
"방법이 뭐냐니까요?"
"너 가미카제(kamikaze, 神風(신풍)) 알지?"
"자살특공대잖아?"
메이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벽면에 붙어 있는 이끼들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너 설마 저 반 쯤 썩은 드래곤한테 날 카미카제로 쓰겠다는건..."
"에이, 설마. 내가 그런 경우없는 후레자식으로 보이냐? 나참"
켄지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 후레자식 맞잖아"
"..."
말을 마친 켄지가 찡긋 한 쪽 눈을 윙크하며 오른쪽 가운데 손가락을 펴 올렸다.
'고맙다, 십bird야. 니가 일말의 죄책감 마저 없애 주는구나'
속 마음을 숨긴 메이스가 애써 미소 짓는다.
"하.하.하. 그래. 둘 도 없는 불x친구를 사지로 데려온 내가 후레자식이지"
"알긴 아네"
말 끝마다 톡톡 쏘아 붙이는 켄지를 보며 가까스로 화를 삭인 메이스가 품 안에서 초보자용 포션을 꺼내 든다.
[ 초보자용 포션 ]
먹으면 체력이 조금 회복될 듯 하다.
효과 : HP 20 회복
곧바로 병따개를 열어 포션을 입 안에 넣는 메이스를 보며 켄지가 고개를 갸웃한다.
"피도 만땅이구만 포션은 왜..."
켄지의 말을 한 쪽 귀로 흘린 메이스가 이번에는 공동 안의 지하수 바로 앞으로 다가간다.
그리고 빈 포션병 안에 지하수를 조심스럽게 담기 시작했다.
"이끼에, 물에, 피크닉 갈 준비 하시나봐요?"
슬쩍 비꼬는 켄지를 흘깃 쳐다본 메이스가 이번에는 지하수를 담은 병 안에 이끼를 조금씩 밀어 넣었다.
병 안에서 순식간에 초록빛으로 변하는 지하수를 보며 미소 지은 메이스가 관찰스킬을 사용한다.
"관찰!"
[ 회색마녀의 이끼가 섞인 오래된 지하수 ]
강력한 독 성분이 포함된 지하수.
복용시 목숨은 보장 못함.
심플한 아이템 설명에 마른 침을 삼킨 메이스가 켄지를 불렀다.
"야"
"엉?"
메이스가 손가락으로 벽면을 가리켰다.
"저기 셜로크가 남긴 글자 보이지?"
게슴츠레한 눈으로 벽면을 훑어 본 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거야 뭐 처음 왔을 때도 다 본 내용인데"
"저기 이끼랑 지하수 준비해뒀다는 부분 있지?"
메이스의 말에 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뭔 며칠 숙박하라는 것도 아니고 비상식량까지 준비해뒀다냐?"
켄지의 말에 메이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식량이 아냐"
"...?"
"선두다"
"...드래x볼?"
메이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체력을 회복시켜줌은 물론 본래 능력치의 최대 3배까지 뻥튀겨 준단다"
"헐... 리얼?"
"나같은 허접 스레기가 선두먹고 저 무식한 시체 드래곤한테 달려 들어봐야 딜 한 번 못박고 죽을게 뻔한데... 라킹에서 알아주는 랭커 중 하나인 니가 먹고 쟤 잡는게 나을 것 같아서..."
말을 마친 메이스가 손에 쥐고 있던 병을 켄지에게 내밀었다.
"내가 크게 소리치고 먼저 달려 들어서 어그로 끌게. 그 틈에 니가 뒤에서 잡아주라"
"그러면 니 렙에 죽을 수도..."
켄지의 말에 메이스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이건 내 퀘스트잖아"
"..."
"그리고 넌... 내 퀘스트를 도와주기 위해 두 말 없이 달려와 준 소중한 친구고"
메이스의 말에 켄지가 감격한 얼굴로 메이스를 바라봤다.
"야... 너 갑자기 왜 그러냐. 나 조금 감동 받았다"
메이스가 켄지의 눈 앞에 주먹을 내밀었다.
"우리 친구아이가?"
켄지가 주먹으로 메이스의 주먹에 맞부딪혔다.
"하모"
"그럼... 시작한다"
말을 마친 메이스가 야광주로 손을 가져다 대자 공동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쿠쿠쿠쿠쿵.
마른 침을 꿀꺽 삼킨 켄지가 손에 쥔 병을 힘 있게 쥐었다.
쾅!
이윽고 천장에서 떨어지는 거대한 언데드 드래곤의 거체를 눈으로 확인한 메이스가 재빠르게 말한다.
"계획은 아까 말한 거랑 똑같아. 드래곤 뒤에 구멍 보이지? 아마 저 구멍으로 통과해야 2번째 관문을 통과할 수 있을거야. 내가 앞에서 어그로 끄는 동안 니가 뒤에서 폭딜 넣어서 저 시끼를 잡아 줘. 편하게 2번째 관문을 통과하자"
메이스의 말에 켄지가 믿음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만 믿게, 토모다찌여"
"준비됐지?"
"물론"
켄지가 등 뒤에서 검을 뽑아 들더니 언데드 드래곤 뒤로 돌아갔다.
켄지가 뽑은 검에서 조금씩 빛이 흘러 나오는 것을 확인한 메이스가 큰 소리로 외쳤다.
"지금!!!!!"
거대한 공동 안에 메이스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고, 곧이어 메이스가 제자리에서 뛰어가는 듯한 적절한 발소리 효과음까지 첨가해주자 켄지가 재빠르게 손에 쥔 지하수를 복용한다.
"용이 내가 된다!"
지하수를 복용함과 동시에 공중으로 높이 뛰어 오른 켄지가 그림 같이 검을 내지르며 스킬을 사용하려고 하는 그 때.
언데드 드래곤의 거대한 머리가 뒤 쪽으로 서서히 돌아간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낀 켄지가 급히 멈춰 서려고 했지만...
띠링
[ 회색마녀의 이끼가 들어 있는 지하수를 복용하였습니다! ]
[ 강력한 독에 중독됩니다! 체력이 서서히 하락합니다! ]
[ 몸이 마비되었습니다! 1분간 움직일 수 없습니다! ]
"뭣...!?"
크롸롸롸롸롸롸롹!
아가리를 쩍하고 벌린 언데드 드래곤이 그대로 공중에 떠 있는 켄지를 집어 삼켰다.
꿀꺽.
이미 켄지가 공중으로 높이 뛰어 오른 순간부터 뛰기 시작한 메이스가 더욱 재빠르게 발걸음을 놀리기 시작한다.
[ 파티원 켄지님이 사망하였습니다! ]
경쾌한 시스템음을 한 귀로 흘린 메이스가 순간 눈을 크게 뜨며 바닥에 몸을 굴렸다.
쿠쾅!
얼굴 바로 옆으로 지나가는 언데드 드래곤의 발바닥을 보며 식은땀을 흘린 메이스가 급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크르르르르르르...
낮은 괴음을 흘리며 반 쯤 썩은 두 눈으로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언데드 드래곤을 보며 메이스가 욕지꺼리를 내뱉었다.
"이걸 어떻게 깨. 이 씨팔!"
체념한 얼굴로 제자리에 멍하니 서있던 메이스가 한참이 지나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고개를 갸웃한다.
"...?"
손가락으로 옆에 있는 언데드 드래곤의 발을 쿡쿡 찔러도 요지부동.
"...아하!"
무언가 알 것 같다는 얼굴로 메이스가 씨익 미소지었다.
"우리 귀여운 시드(시체 드래곤). 불량식품 먹어서 배탈이 났구나"
손바닥으로 언데드 드래곤의 발을 토닥토닥 두드린 메이스가 여유롭게 뒤 쪽의 구멍으로 걸음을 옮겼다.
"퉷!"
곧게 뻗은 언데드 드래곤의 꼬리에 침까지 뱉어 준 메이스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구멍 안으로 사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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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슐 밖으로 몸을 빼낸 원규가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원래 그런 놈이었다는 걸 깜빡했다..."
재원에게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원규가 4년 전, 대학생 때 있었던 일을 떠올린다.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그 소식을 듣고 병문안을 와준 친구가 2명 있었다.
한 친구는 원규가 대학교에 와서 사귀게 된 같은 학과 친구였는데, 원규가 입원했다는 소식에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한걸음에 달려와 입원기간 동안 원규의 과제까지 챙겨주던 친구였다.
그리고 다른 한명... 아니 다른 한놈은...
원규의 입원 소식을 알지 못하고 있던 다른 친구들까지 데려와 낄낄거리며 기부스한 다리에 '븅신, 그냥 죽지' 같은 글자들을 적어 넣던 김재원.
'이런게 진짜 친구' 라면서 병실이 떠나가라 웃어 제끼던 놈의 얼굴을 떠올린 원규가 이를 뿌드득 갈았다.
"김재원 개십색볼펜 시베리야 벌판에 얼어 죽을 신발색...."
원한에 가득 찬 원규의 중얼거림이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