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이 아니라면 혹시 목숨을 내놓으라던가..."
큰 결심을 한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저 따위 말이라니...
검이 어이가 없다는 듯 메이스의 머릿속으로 빽하니 소리를 질렀다.
'너 따위 하찮은 놈의 목숨, 가져다 뭐하게!?'
"윽"
순간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은 메이스가 다급히 대답한다.
"아, 계약하겠습니다. 한다구요."
메이스가 말을 마치자 검의 한 가운데 박힌 홍옥같은 보석에서 붉은빛이 번쩍였다.
그리고 검이 스스로 바위틈에서 서서히 뽑혀 나오기 시작한다.
'아니 내가 뽑아야지! 나도 아서왕 한번 해보자!'
쓸대없는 잡생각에 빠져있던 메이스가 이윽고 바위틈에서 완전히 뽑혀 나온 검을 홀린 듯 멍하게 바라봤다.
약 2m는 될 듯한 장검은 오랜 시간 관리가 되지 않았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칼날에 녹 하나 슬지 않고 매끈하게 뻗어 있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날카로운 예기를 줄기줄기 뿜어내는 검의 위압감에 압도된 메이스가 손잡이 한가운데 박힌 홍옥같이 붉은 보석을 멍하니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아름답다..."
우우웅
검이 한 차례 크게 부르르 떨며 공명음을 내더니 메이스의 손잡이에 빨려 들어왔다.
'계약은 성립되었다'
다시 머릿속을 울리는 중년 남성의 목소리에 메이스가 환희에 가득 찬 표정을 지었다.
"마치 이순신 장군님이 된 것 같네요"
박물관에 전시된 이순신 장군의 장검 길이가 197.5cm였다는 것을 떠올린 메이스가 중얼거린다.
'시간이 다 되었군'
우우웅
검의 떨림이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했다.
"예? 그건 무슨 말씀..."
'약해빠진 네놈과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잊지마라. 계약은...'
검이 말하던 도중에 떨림이 완전히 멈췄다.
"에...검님?"
자신의 부름에도 검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자 메이스가 손에 쥔 검을 여기, 저기 휘둘러보기 시작했다.
"오오오..."
한가운데 보석의 움직임에 따라 붉은 꼬리를 만들어내며 잔상을 남기는 검을 보며 메이스가 감탄사를 터뜨렸다.
"아이템 정보!"
레드 티어즈 (등급 : 성장형 아이템, 현재lv.일반)
판타스대륙 5대 명검 중 하나인 레드 티어즈, 길이 2m에 달하는 대검임에도 그 재질 때문인지 무게가 무척 가볍다.
레드 티어즈의 최초 주인 아발론이 판타스대륙에 강림한 식탐의 마왕을 일도양단(一刀兩斷)할 때 그 잔상이 마치 붉은 눈물을 흘리는 것 같다고 하여 레드 티어즈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마지막 주인이었던 셜로크가 자취를 감추면서 함께 사라져 현재 대륙인들에게는 하나의 전설로만 남아 있는 검이다.
사용자가 성장함에 따라 검도 함께 성장한다.
공격력 : 280~400 ( 사용자의 능력치에 비례하여 증가 )
마법 공격력 : 280~400 ( 사용자의 능력치에 비례하여 증가)
명중률 : +20%
크리티컬 확률 : +30%
공격속도 : +20%
모든 능력치 : +10
스킬 쿨타임 감소 : 25%
검 계열 모든 스킬레벨 1증가
고유스킬
1. 홍룡승천 (lv.1, 검의 등급에 따라 레벨이 증가)
땅바닥으로 붉은 기운을 한 순간 응축시켜 폭발한다.
그 모습이 마치 붉은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것과 비슷하다.
스킬 공격력 : 기본 공격력 최대치의 150% (스킬레벨이 상슴함에 따라 공격력 증가)
주변의 모든 대상들도 같은 피해를 입는다(Splash Damage)
2. ???????(능력부족으로 미개방)
3. ???????(능력부족으로 미개방)
끝이 보이지 않는 아이템 정보를 읽어 내려가며 메이스가 입을 쩍하고 벌렸다.
"대박..."
현재 메이스의 레벨이 37.
현재 판매되고 있는 아이템 중 메이스가 착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아이템이 '검사의 명예' 라고 불리는 검이다.
착용조건이 낮아 저레벨 유저들에게 인기가 좋고, 옵션도 다른 고레벨 무기들에 비해 뛰어나 일단 구매하면 100레벨까지는 무기 교환 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희귀등급의 아이템.
물론 저레벨 무기 주제에 현금거래가가 무려 500만원이나 하는 탓에 일반 저레벨 유저들은 꿈도 꾸지 못하는 검이다.
그 '검사의 명예'의 공격력이 140~180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미친 옵션은...심지어 성장형 아이템"
성장형 아이템이 여러 가지 게임 에피소드와도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 메이스가 감격에 가득 찬 얼굴로 부르르 떨었다.
"이참에 그냥 팔고 인생역전..."
메이스가 말을 하다 말고 인상을 찡그렸다.
"소탐대실이라고... 큰 그림 그리자, 재원아"
레드티어즈를 잘 이용한다면 게임 시작이 다소 늦은 메이스가 랭커가 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흔히 말하는 상위 100위권 이내의 초고위 랭커들이 한달에 벌어들이는 수입이 평균 3000만원, 중소기업 사회초년생 연봉과 맞먹는 수준이다.
켄지도 겉보기에는 멍청해보이지만 고위 랭커답게 하고 싶은 것은 다 하고 사는 놈이다.
생각을 끝낸 메이스가 두 뺨을 손바닥으로 소리나게 짝, 짝 두들겼다.
"황금빛 인생, 살판나는 노후를 위하여! 빌어먹을 박영우에게 갑질하기 위하여!"
자못 큰 소리로 외친 메이스가 이윽고 숲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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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빛 인생은 씨팔!"
메이스가 욕지꺼리를 내뱉으며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 뒤를 일단의 초록색 무리들이 뒤쫓고 있었다.
"취익, 취익. 인간! 서라!"
"너같으면 서겠냐? 돼지대가리 새끼들아!"
"취익, 취익! 인간, 죽인다!"
메이스의 말에 흥분한 녹색부족의 오크들이 콧김을 뿜어내며 더욱 빠르게 발을 놀렸다.
"뭔 돼지새끼가 저렇게 빨라!"
가장 낮은 오크의 레벨이 50정도로 알려져 있다.
최하급 오크들로 생각해도 메이스를 뒤쫓고 있는 놈들은 레벨 50짜리 몬스터 20마리.
레벨 40도 안되는 메이스가 붙잡히면... 뼈도 못추린다.
"으아아아아아악!"
메이스가 괴성을 지르며 나무 사이, 사이를 잽싸게 움직였다.
전방에 탁 트인 공간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자 메이스가 더욱 발걸음을 빨리 놀렸다.
"씨팔, 씨팔..."
메이스가 욕지꺼리를 중얼거리며 숲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일을 생각했다.
처음 숲에 진입할 때 까지만 해도 메이스의 기분은 최상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득템, 아름다운 숲 속 풍경을 감상하며 지저귀는 새소리에 발 맞춰 기분 좋게 숲을 거닐던 메이스.
메이스의 이동방향에 따라 레드티어즈가 작은 떨림으로 가야할 길을 알려줌으로써 3번째 관문에 대한 걱정도 완전히 잊었다.
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숲을 걷던 메이스가 어느 순간 바람을 타고 풍겨 오는 향긋한 냄새에 딱하고 걸음을 멈췄다.
"킁, 킁... 삼겹살 냄새?"
특별히 식량을 준비해오지 않아 배가 고팠던 메이스에게 '숲 속에서 왠 고기굽는 냄새' 라는 이성보다는 '이건 빼박 삼겹살!' 이라는 본성이 메이스를 지배했다.
냄새를 따라 이동하던 메이스가 숲 속 안의 작은 부락에 이르렀을 때 '그 것'을 목격하고 말았다.
"엥...?"
무언가를 목격한 메이스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중얼거린다.
"동족상잔(同族相殘)?"
부락 한 가운데에서 오크 20여마리가 모닥불을 피운 뒤, 돼지를 나무꼬챙이에 끼워 열심히 돌리고 있었다.
"무슨 돼지새끼들이 돼지를 잡아 쳐먹어?"
그 모습을 보고 곰곰히 생각하던 메이스가 무언가 떠올린 듯 사악한 미소를 짓는다.
"이 것이야 말로 몰이사냥의 가장 완벽한 조건이 아닌가?"
좁은 부락 한가운데에 돼지고기를 구워 먹어 보겠답시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오크들을 보며 메이스가 눈을 반짝였다.
짧은 시간동안 순식간에 판단을 끝낸 메이스가 나무와 바위 뒤로 은폐하며 살금, 살금 기어갔다.
후각이 발달한 오크들도 눈 앞에서 진동하는 돼지 굽는 냄새에 정신이 팔려 등 뒤까지 접근한 메이스를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이윽고 오크들과 불과 5m도 떨어지지 않은 바위 뒤에서 메이스가 벌떡 일어났다.
"!"
메이스가 자리에서 일어남과 동시에 한 마리의 오크가 메이스와 눈이 마주쳤다.
그 오크를 향해 씨익 미소 지어준 메이스가 손에 쥔 검을 오크들을 향해 뻗어 내밀더니 큰 소리로 외친다.
"홍룡승천!"
띠링
[ 마나가 부족합니다! ]
홍룡승천 필요 마나 : 300
현재 마나 : 280
경쾌한 시스템음에 메이스가 둔기로 얻어맞은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네?"
믿을 수 없다는 듯 메이스가 다시 한번 큰소리로 외친다.
"홍룡승천!"
띠링
[ 마나가 부족합니다! ]
홍룡승천 필요 마나 : 300
현재 마나 : 280
"취익, 인간이다, 취익"
"취익, 죽인다, 인간, 취익"
보기만 해도 기분 나쁜 콧김을 뿜어내며 험악한 얼굴로 서서히 다가서는 오크들을 바라보며 메이스가 짧게 중얼거린다.
"시바, x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