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해줄 건 말해주고 숨길건 철저히 숨긴다!'
이윽고 결심한 듯 메이스가 말을 잇는다.
"차원 게이트 내부는 라우스님의 예상대로 셜로크가 남긴 공간이 맞습니다. 그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었죠"
"...!"
메이스의 말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음에도 놀란 듯 라우스 턱을 다그닥 거렸다.
"...뭘 봤지?"
라우스의 물음에 메이스가 지체없이 대답한다.
"5대 명검, 그리고 셜로크의 기억을 봤습니다"
"셜로크가 가지고 있던 5대 명검이라면..."
잠시 곰곰히 생각하던 라우스의 안광이 거세게 흔들린다.
"설마... 레드 티어즈? 레드 티어즈를 말하는 건가!?"
메이스가 등 뒤에서 레드 티어즈를 뽑아 든다.
"보시다시피..."
"오오오...."
라우스가 감탄한 듯 천천히 다가오더니 레드 티어즈를 향해 손을 뻗는다.
파지지지지직!
순간 레드 티어즈에서 거세게 방출되는 붉은 전류에 라우스가 손을 멈칫했다.
"계약하지 않은 자는 레드 티어즈를 만질 수 없습니다"
메이스의 말에 다시 한번 안광이 흔들리던 라우스의 눈두덩이가 무언가 결심한 듯 딱하고 멈췄다.
"한낯 미물 따위가 건방진..."
라우스가 다시 손을 뻗자 메이스가 다급히 말을 잇는다.
"역사상 유래없는 8클래스 대마법사인 라우스님이라면 이런 검의 저주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시겠지만! 검 자체가 다른 공간으로 텔레포트 될 수도 있습니다!"
멈칫
"흠..."
자신의 말에 손동작을 멈추는 라우스를 보고 메이스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말한다.
"레드 티어즈의 마지막 주인은 셜로크! 자칫 이 검이 사라져 버리면 라우스님의 궁금증은 영원히 풀지 못할 것입니다!"
심각하게 고민하는 라우스를 보며 메이스가 쐐기를 박는다.
"그리고... 저는 레드 티어즈의 부탁을 하나 들어주는 대가로 이 검과 계약했습니다. 제가 강해진 이유는 그 때문입니다"
'셜로크의 뒤를 이었다는 사실만 숨기면 된다!'
메이스가 자신은 숨기는게 없다는 듯 라우스의 안광을 똑바로 바라본다.
"확실히... 그런 이유라면 갑자기 강해진 니 모습도 어느 정도 납득이 되는군"
라우스의 말에 미소 지은 메이스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말이지..."
"...?"
"니 목에 걸고 있는 팬던트.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분명 호므즈가의 표식, 그 가보가 아닌가?"
'아차!'
아직 목에 걸려 있는 호므즈가의 팬던트를 미처 생각하지 못한 메이스가 아차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라우스의 안광이 마치 불꽃처럼 이글이글 타오르기 시작한다.
'x됬다!'
털썩
생각은 짧았고 행동은 빨랐다.
순식간에 판단을 마친 메이스가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 것이 아니옵..."
"재미있군"
말 그대로 무릎 꿇고 싹싹 빌려던 메이스가 순간 들려오는 라우스의 목소리에 멍청한 표정을 짓는다.
"...예?"
"역사상 가장 강했던 초인 중 한 사람으로 위명이 자자한 셜로크 폰 호므즈와 인간으로서는 대륙 최초로 8클래스에 도달한 나. 과연 누가 더 강할까? 항상 생각했지"
'저기요, 그 쪽은 인간이 아니라 언데드신데요'
가슴 속에서 울컥하고 치솟아오르는 말을 가까스로 참은 메이스가 그 자세 그대로 라우스를 바라본다.
"그 말씀은..."
두둥실
라우스의 품 안에서 황금색 표지의 책이 스스로 빠져 나와 공중에 떠올랐다.
"받아라"
라우스의 말과 함께 그 책이 그대로 메이스의 눈 앞에 떨어진다.
툭
"이건..."
메이스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마음 같아서는 셜로크의 모든 것을 이어 받은 너와 겨루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내가 시간이 부족하거든. 멍청한 네놈이 그 셜로크의 모든 것을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멍청? 저 나름 헬조선에서 공무원도 했던 사람인데요?'
이번에는 메이스의 생각이 그대로 입 밖으로 나왔다.
"멍저메"
"...무슨 말이냐?"
"멍청요? 저 메이스인데요? 를 줄인 말입니다. 저희 모험가들에게 유명한 '번저강' 이라는 말을 패러디..."
라우스가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너랑 농담따먹기 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아무래도 이자크가 곧 도착할 것 같거든"
라우스의 손짓에 이번에는 구석에서 둥그런 유리구슬이 떠오르더니 메이스의 눈 앞에 도착한다.
팟!
그 구슬에서 밝은 빛이 뿜어지더니 잠시 후 구슬 속에 떠오르는 익숙한 실루엣에 메이스가 눈을 크게 뜬다.
"이자크!"
"정원이라... 느긋한 녀석의 성격을 생각해도 15분 후면 이 곳에 도착하겠군"
말을 마친 라우스가 안광을 번뜩이더니 말을 잇는다.
"내 마법을 익혀라"
"예!?"
라우스의 말에 메이스가 놀라 반문했다.
"셜로크의 모든 것을 잇고 내 마법도 익혀라. 물론 딱 봐도 멍청한게 마법적 재능도 없어 보이는 너에게 무언가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니 스스로 두 가지 모두를 익히고 판단해라"
"뭘..."
라우스의 말에 메이스가 다시 한 번 멍청하게 반문했다.
"크크크. 기대되는군. 셜로크의 주무기가 창이었나? 셜로크의 뒤를 이은 자가 내 마법에 흠뻑 도취되어 창술 따위는 내팽겨치고 오로지 나만을 찬양하고 경배하게 될 그 모습이 눈에 선해서... 크하하하하하하"
미친 듯이 웃는 라우스를 멍청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메이스가 속으로 중얼거린다.
'이거 완전 또라이잖아?'
뚝
순간 거짓말같이 웃음을 멈추는 라우스를 보며 메이스가 당황한다.
'헉... 내가 무심코 입 밖으로 말을...?'
부르르르르르르르
갑자기 온 몸이 떨리기 시작하는 라우스를 보며 메이스가 급히 고개를 조아린다.
"라우스님, 아니 스승님. 제가 완전 또라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와~ 세상에 그 유명한 셜로크의 기술과 위대한 라우스님의 마법을 한 번에 익히려다가 완전 또라이되는..."
푸학!
마침내 뚝 하고 움직임을 멈춘 라우스의 심장에서 탁한 회색을 띄는 둥그런 물체가 뽑아져 나오자 메이스가 입을 다물었다.
눈에 띄게 안광이 옅어진 라우스가 잠시 후 입을 연다.
"받아들여라"
"...예?"
"나는 네놈을 따라다니면서 마법을 가르쳐 줄 수 없다. 그러니까... 이 정수를 받아 들여라. 니가 그 책으로 내 마법을 익히고자 한다면 그 정수가 스스로 너를 안내해 줄 것이다"
"..."
"녀석이 너를... 이끌어 줄 것이다"
라우스가 말을 마치자 메이스가 감격에 찬 표정으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스승님!"
쿵! 쿵! 쿵!
큰 소리로 외친 메이스가 연달아 9번이나 머리를 바닥에 찧었다.
"못난 제자의 절을 받으십시오! 스승님!"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라우스가 입을 연다.
"곧 이자크가 도착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부탁 하나 하지"
"무엇이든 하명하십시오!"
마치 목숨도 바칠 듯 결연한 표정의 메이스를 잠시 바라보던 라우스가 말을 잇는다.
"후에 내 마법을 모두 익히거든... 혹은 니 스스로 한계에 부딪혀 더 이상 내 마법을 익힐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 마법서를 아틀란스 왕국의 왕실 마법사에게 가져다 주어라"
"예! 스승님의 마법을 모조리 마스터하고 꼭! 전해주도록 하겠습니다"
"하?"
메이스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라우스가 턱 뼈를 다그닥 거렸다.
"저... 그런데 이자크님이 이 마법서를 가져오라고 했는데... 제가 라우스님의 책을 가지고 있는 사실을 알면 혹시 뺏어가지는 않을까요?"
메이스가 불안한 듯 중얼거리자 라우스의 책상 위에서 종이가 두둥실 떠오른다.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마라"
스스슥, 스슥
종이 위에 빠르게 글자가 새겨지기 시작하더니 번쩍 빛을 내뿜으며 종이가 돌돌 말린다.
"녀석이 오면 전해주거라"
"예! 스승님!"
"그리고..."
"예?"
"책을 가져다주는 건 단순한 심부름이고 진짜 부탁은... 현 아틀란스 왕국의 3왕자를 도와주거라"
"도와주라는 말씀은...?"
"무슨 말인지는 직접 가보면 알게 될 터. 어떻게, 얼마나 도와주라고 까지는 부탁하지 않겠다. 그저... 니가 직접 보고, 느낀 후... 니 소신 껏 도와줬으면 좋겠다"
띠링!
라우스의 부탁(퀘스트 난이도 : ???)
아틀란스 왕국의 전 왕실마법사이자 8클래스 대마법사 라우스 드 베스.
그는 당신이 아틀란스 왕국의 3왕자를 도와주고 자신의 마법서 왕실 마법사에게 가져다 주기를 원한다.
제한시간 : 현 왕실 마법사가 은퇴하기 전까지 마법서를 가져다 줄 것, 현 아틀란스 왕국의 3왕자인 로이드가 성인이 되기 전인 2년 이내에 찾아갈 것.
[ 퀘스트를 수락하시겠습니까? ]
잠시 고민하던 메이스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스승님의 분부 받잡겠습니다!"
[ 퀘스트를 수락하였습니다! ]
"자, 그럼..."
메이스의 눈 앞에서 둥실둥실 떠올라 있던 회색 정수가 천천히 메이스에게 다가가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메이스가 순간 눈을 크게 뜬다.
"흐읍!"
순식간에 심장으로 파고드는 회색 정수를 바라보며 메이스가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하더니 이내 정신을 잃었다.
그런 메이스를 바라보는 라우스의 안광이 짙게 번뜩인다.
"내 마법의 위대함을 증명하는 것도 좋지만... 셜로크의 창술과 내 마법이 한 사람의 손에서 함께 펼쳐지는 모습도..."
조용히 중얼거리던 라우스가 이내 밝은 빛과 함께 그 자리에서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