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네스가 향하는 방향에 흰수염주점의 종업원 소년, 로크가 서 있었다.
"젠장!"
그대로 몸이 굳어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로크를 낚아 챈 하이네스가 앞으로 내려서는 메이스를 보며 광소를 터뜨린다.
"크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더 이상 다가오면 이 놈을 죽이겠다"
말을 마친 하이네스의 오른손 끝에 검은색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비겁한 새끼..."
"비겁하다고? 전형적인 패배자들이나 하는 말이군"
"무슨 개소리냐?"
메이스의 물음에 하이네스가 피식 웃었다.
"싸움이 끝나고 패배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들이 뭔지 아나?"
"..."
침묵을 지키는 메이스를 보며 하이네스가 말을 잇는다.
"비겁하다, 운이 없었다, 몸 상태만 정상이었으면 지지 않았을 것이다. 10명 중에 9명은 그런 변명을 한다"
"..."
"'자신의 실력이 부족해서 혹은 상대가 강해서 진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 것 같나? 10명 중에 1명? 아니면 100명 중에 1명? 아니!"
메이스의 두 눈을 마주보며 하이네스가 계속 말한다.
"지금까지 내 손에 죽은 놈들 중 그런 말을 하는 놈은 단 한 놈도 없었다"
"모순이다!"
"뭐라?"
메이스의 외침에 하이네스가 반문했다.
"지금 니 행동을 보니 확실히 알겠다. 너한테 패배한 사람들 중 단 한명도 자신의 실력부족을 인정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그래서 전투에서 패배한 사람들이 그저 핑계만 댈 뿐이라고? 웃기지 마라!"
"뭐가 우습다는 거냐! 그렇다면 묻지. 너는 단 한 번이라도 깨끗하게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느냐?"
"그렇다!"
망설임없이 대답하는 메이스를 보며 하이네스가 멈칫한다.
"봤다고? 운 좋게 셜로크의 힘을 이어받은 버러지 따위에게 패배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그런 사람이 있었다는 것은 더욱 믿기 힘들군"
"...!"
하이네스의 말에 메이스가 순간 눈을 크게 떴다.
"뭘 그렇게 놀라지?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나? 니가 셜로크의 뒤를 이었다는 것은 당장 니 손에 쥔 레드 티어즈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
"그 얘기는 중요하지 않지. 말해보거라. 과연 니 앞에서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한 사람이 누가 있었는지"
"알론이라는 기사가 있었다"
"..."
"그는 비록 주인의 명령에만 충실한 비겁한 기사였지만... 그 끝만큼은 진정한 기사였다"
"프레드릭 공작의 오른팔, 알론 드 롱을 말하는가?"
"...!"
하이네스의 말에 메이스가 또 한번 크게 놀랐다.
"그걸 어떻게..."
"알론 드 롱은 니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대단한 기사였다"
말을 마친 하이네스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뭐... 그걸 떠나서 셜로크에 대한 것은 대부분 다 알고 있지만"
"대체 너는 누구냐?"
"궁금하면 나를 이겨보거라. 니가 이긴다면 가르쳐주도록 하지, 물론..."
말을 마친 하이네스가 한 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불길한 연기가 흘러 나오는 오른손을 로크의 눈 앞에 가져다 댔다.
"니가 나를 공격한다면 이 녀석은 죽겠지만"
"..."
"하나만 묻지. 알론 드 롱은 특이한 경우다. 내 말의 어디가 모순이라는 거지?"
하이네스의 물음에 메이스가 천천히 대답한다.
"지금까지 니 손에 죽은 사람들은 모두 이런 식 이었겠지? 비열한 인질극이나 온갖 더러운 짓으로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을텐데... 그렇게 패배한 사람들이 자신의 패배를 진정으로 인정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게 뭐가 나쁘지? 전투의 결과는 두 가지 밖에 없다. 이기거나 혹은 지거나. 이긴 사람은 상대방의 모든 것을 취한다. 반대로 진 사람은 상대방에게 모든 것을 빼앗긴다. 이 당연한 논리를 부정할 셈인가?"
"결과만 중요시 하는 니 말이 모순이라는 것이다. 때로는 전투의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할 때도 있으니까"
"그야말로 모순이군"
하이네스가 피식 웃으며 말을 잇는다.
"지면 끝이다. 뒈진단 말이다. 자신의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있지?"
하이네스의 물음에 메이스가 셜로크와 엘리샤를 떠올렸다.
셜로크라면 자신이 목숨을 잃는 결과가 발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 과정에서 엘리샤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면... 기꺼이 그렇게 했을 것이니까.
"뭐, 대답은 되었다. 애초에 벌레새끼에게 대답을 기대했던 것은 아니니까"
말을 마친 하이네스가 양 손을 허공을 향해 뻗는다.
"...!"
"움직이지마라. 이 녀석이 죽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면"
"개자식..."
"크크크크크크. 잠시 후 놀랄 니 모습이 기대되는군"
하이네스의 손 끝에 따라 허공에 검은 연기가 소용돌이 치기 시작한다.
우우우우우우웅
곧이어 대기가 진동하기 시작하면서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시꺼먼 아가리가 쩍하고 벌어졌다.
"차원게이트!?"
그 모습에 메이스가 눈을 번쩍 떴다.
불길한 기운의 시꺼먼 기운을 제외하면 셜로크의 방에서 봤던 게이트와 똑같이 생겼다.
"내 비밀의 공간을 보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거라"
하이네스의 중얼거림과 동시에 게이트 안에서 무언가 삐죽 튀어나온다.
천천히 몸을 밖으로 빼내는 괴생명체를 발견한 하이네스에게 붙잡혀 있던 로크가 비명을 질렀다.
"루시!!!!!!!!!!!!!!!!!!!!!!"
이윽고 완전히 몸을 밖으로 빼낸 괴생명체의 모습은 끔찍했다.
오우거의 몸뚱이에 뱀의 꼬리, 피부는 마치 트롤과 같은 녹색으로 번들거렸고 가슴에는 늑대의 머리로 추정되는 물체가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가장 끔찍했던 것은...
괴생명체의 머리가 알 수 없는 소녀의 머리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키메라...?"
"이 개자식!!!!!!!!!!!"
메이스가 신음하듯 중얼거리는 순간 눈자위가 휙하고 돌아간 로크가 하이네스의 손을 뿌리쳤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괴성을 지른 로크가 하이네스에게 달려들던 그 때...
푸욱!
"컥"
무언가 꿰뚫리는 듯 섬뜩한 소리와 함께 로크의 초점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덜덜 떨리는 눈빛으로 아래를 내려다 본 로크가 이내 가슴 밖으로 삐죽이 튀어나온 괴생명체의 손을 발견하고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키메라를 바라본다.
"루...시?"
더듬더듬 말을 내뱉던 로크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키메라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기를 잠시...
툭
앞으로 향하던 손이 힘을 잃고 아래로 떨어짐과 동시에 로크의 몸이 축하고 처졌다.
"오, 이런. 이런 비극이 생길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군"
자못 안타깝다는 목소리로 중얼거린 하이네스가 사랑스럽다는 눈빛으로 키메라를 바라본다.
"하나 뿐인 혈육마저 그 손으로 직접 죽일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생명체가 되었구나. 크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광소를 터뜨리는 하이네스를 바라보는 메이스의 눈이 차갑게 내려앉는다.
극도의 흥분 상태에서 마음만은 오히려 차분해지는 것은 메이스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였다.
말 없이 검을 겨누는 메이스를 보며 하이네스가 혀로 입술을 핥았다.
"정말 아름답지 않느냐?"
하이네스의 물음에 잠시 침묵하던 메이스가 씹어 내뱉듯 중얼거린다.
"...쉽게 죽을 것이라 생각하지마라"
"죽어? 내가? 너 따위 벌레한테?"
메이스의 말에 하이네스가 기 막히다는 표정으로 두 팔을 활짝 벌렸다.
"제발 죽여줬으면 좋겠군. 나에게 그런 말을 지껄인 놈들 중에 지금 살아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말이야"
"..."
입을 다문 채 침묵하던 메이스가 순간 눈을 번쩍인다.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손에 쥔 레드 티어즈가 미친듯이 진동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그 떨림이 점차 강해지자 하이네스도 당황하기 시작했다.
"뭐...뭐냐!?"
"..."
말없이 힘을 집중하는 메이스를 보며 하이네스가 고함친다.
"루시! 놈을 죽여라!"
"구워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키메라가 괴성을 지르며 메이스에게 달려든다.
그 순간...
번쩍 눈을 뜬 메이스의 창 끝에서 빛이 폭사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