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파이언 용병단 (1)
“흐음…….”
데이바드 교수가 떠나고 『고양이』라는 소설을 통해 현재의 삶에 집중한 아이덴은 나흘째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지금의 삶에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과 실제로 과거로 돌아왔다는 상황을 실감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흐으으음.”
“……?”
“흐으으음.”
책상다리를 한 채 작은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좌우로 까닥이는 아이덴의 모습에 조심스럽게 차를 따르던 일리아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도련님.”
“왜?”
“괜찮으세요?”
“응?”
천천히 눈을 뜬 아이덴은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올리며 입을 달싹였다.
“안 미쳤으니까 걱정 마.”
“그게 아니라…….”
“그럼 뭐?”
“아카데미요.”
“한 달 뒤에 가잖아. 괜찮지.”
“그게 아니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고개를 좌우로 흔든 일리아나가 조심스럽게 방문을 바라보았다.
“마법학부를 선택하셨잖아요.”
“…….”
“주인님께서 아시면…….”
“죽겠지?”
“…….”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는 일리아나의 모습에 작은 미소와 함께 천천히 차를 들이켠 아이덴이 찻잔을 내려놓고 창문으로 걸어갔다.
“그럼……. 화가 풀리면 연락 줘.”
“네?”
끼이익.
아이덴은 고개를 갸웃하는 일리아나를 바라보며 작은 미소를 그려준 후에 창밖으로 뛰어내렸다.
“도……!”
“아이데에에엔!”
콰아앙!
깜짝 놀란 일리아나가 무의식적으로 창문으로 손을 뻗으며 소리치는 순간 부서질 듯 방문이 벌컥 열리며 나타난 가바인 자작이 한 손에 서류를 든 채 주위를 살피다 활짝 열린 창문으로 다가갔다.
흑발의 소년이 빠른 속도로 성문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아이데에에엔!”
* * *
가바인 가문은 대대로 기사를 배출해내는 무관 가문이었다.
중급으로 분류되는 마나심법과 상급으로 분류되는 검법을 가지고 있었기에 자작과 백작 사이로 분류되는 가문이었다. 그리고 10대 가주이자 아이덴의 아버지인 가바인 자작은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마법사들을 싫어했다.
찌질한 마법사.
샌님 마법사.
개 같은 마법사 등등등.
마법사를 향해 다양한 욕설을 내뱉는 가바인 자작이었다.
“흐음……. 한 달은 걸릴…….”
아이데에에엔!
성문을 빠져나오는 순간 귓속을 파고드는 가바인 자작의 외침에 입을 꾹 다문 아이덴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반년은 걸리겠군.”
사방을 울리는 외침이 얼마나 분노하는지를 알려주었다.
다시 걸음을 옮겨 영주성과 멀어지던 아이덴이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무관 가문인 가바인 가문처럼 곳곳에서는 병사들이 순찰을 다니고 있었고 아이들은 목검을 들고 수련관으로 향하고 있었다.
“기사라…….”
물론 아이덴도 검술을 배웠고 왕실 기사단에 입단하여 기사로서의 삶을 살았다. 하지만 『고양이』라는 소설과 데이바드 교수로 인해 마법학부를 선택한 것을 철회하지 않았다.
이왕 다시 살아가는 삶.
새로운 삶인데 똑같은 길을 가는 것보다 색다른 길을 가는 것도 괜찮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문제가 있다면 아버지를 설득해야 한다는 것인데…….”
천성적으로 마법사를 싫어하는 가바인 자작이 문제였다.
아무리 아카데미가 학생의 선택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하여도 가족들의 반발이 심하고 논리적으로 움직이면 마법학부에서 기사학부로 이전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흐음……. 마법사라…….”
천천히 걸음을 옮기던 아이덴이 영지 정중앙에 위치한 광장 벤치에 앉아 팔짱을 끼며 다시 생각에 잠겼다.
마법사의 장점을 이용하여 가바인 자작을 설득하려 했지만 지금까지 들어온 것이 찌질한 마법사, 샌님 마법사, 개 같은 마법사 등등등 다양한 욕설과 기사들을 미끼 삼아 도주하던 마법사가 떠오르니 장점이 아닌 단점만 떠오르는 것이었다.
“으으음…….”
“무슨 꼬마가 그리 고민을 하느냐?”
눈을 감은 채 생각에 잠겼던 아이덴이 갑작스레 들려오는 사내의 목소리를 따라 한쪽 눈을 뜨고 상대를 바라보았다.
‘용병?’
남자 셋, 여자 둘로 이루어져 있으며 검과 창, 활, 지팡이를 지니고 있는 이들이 자신을 바라보며 미소를 그리고 있었다.
‘그게 이상…… 하기는 하겠네.’
열다섯 살짜리가 고민하는 것이 이상한 것인가 생각하던 아이덴이 자신을 제외하고 이리저리 돌아다니거나 부모를 도와 일을 하는 또래를 바라보며 어색한 미소를 그리고는 다시 자신에게 말을 건넨 사내를 바라보았다.
“기사가 좋을까요? 마법사가 좋을까요?”
“……크크큭, 장래를 생각하는 것이냐?”
“예. 아주 중요한 선택이니까요.”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아이덴이 이상했는지 작게 웃음을 터트리던 사내가 어색한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돌렸다.
“기사가 좋냐? 마법사가 좋냐?”
“기사요.”
“마법사요.”
동시에 다른 대답을 내놓은 남녀과 서로를 바라보며 으르렁거렸다.
“자유기사와 마법사네요?”
“……호오, 잘 아는구나.”
‘형님이 자유기사로서 떠돌고 있으니 잘 알 수밖에요.’
가바인 가문은 삼남 일녀로 장남은 이미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작위 계승 수업을 잠시 미룬 후에 자유기사로서 여행을 다니고 있었고 차남은 공작가 기사단에 입단한 상태였다.
속으로 작게 중얼거린 아이덴이 눈을 껌뻑이며 서로를 으르렁거리는 두 사람을 바라보다 번쩍 손을 들었다.
“기사의 장점은? 마법사의 장점은?”
“동료를 지키고 선두에 서서 적들을 격파한다!”
남자가 똑같이 손을 들며 먼저 대답하자 여인이 발끈한 듯 똑같이 손을 들며 소리쳤다.
“후방에 자리한 채 선두에 서 있는 동료들을 보호하고 단 일격으로 적들을 처리하는 파괴력!”
“장수한다! 연약한 신체를 가진 마법사와는 다르게 계속된 수련을 통해 건강한 신체를 가지고 있지!”
자신의 근육을 보여주며 다시 대답하는 사내의 모습에 여인이 비웃듯 작게 실소를 터트리고는 무릎을 굽혀 아이덴과 눈을 마주친 채 머리를 쓰다듬었다.
“여자들은 우락부락한 사람들보다 잔 근육을 가진 남자들을 좋아한단다. 마법사도 신체 단련을 할 수 있으니 기사보다 더 인기가 있을걸?”
“후훗. 어린애한테 그런 유혹을 해봤…….”
열다섯.
아직 어린 아이에게 이상한 유혹을 한다고 생각하던 사내가 어이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흘리며 반박하려 했지만 아이덴의 표정을 보고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누나.”
“응?”
“진짜 인기 좋아요?”
“응. 마법사는 인기가 좋아. 기사보다 인기가 좋지.”
“…….”
“기사가 갖지 못한 화려함을 통해 시선을 끌잖아?”
“그렇죠.”
“그런데 기사는 그냥 우락부락한 육체만 가지고 있고.”
“맞아요.”
“화려한 마법사와 우락부락한 기사. 누가 더 인기가 좋을까?”
“마법사죠. 마법사.”
아이덴.
서른이라는 나이에 목숨을 잃은 그는 결혼을 하지 못했다.
계속된 수련과 임무 속에 미루다 보니 서른이 되어서도 결혼을 하지 못한 그에게 ‘인기’라는 것은 그 무엇보다 강렬한 유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