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가바인 가문의 삼남 일녀 (1)
아카데미로 출발하기 한 달 전은 아이덴의 생일이었다.
“바쁘게도 움직이는구만.”
과거와 똑같았다.
아카데미로 출발하기 한 달 전, 즉 자신의 생일이 다가오니 영주성에서는 작은 연회를 위해 집사와 시녀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연회장 입구에 서서 가만히 연회를 바라보던 아이덴이 고개를 살짝 저으며 몸을 돌렸다.
“뭐 생일이라고 해봤자 별거 없었지만 말이야…….”
정말 별거 없었다.
안정적인 마나심법과 상급 검술을 가진 가문이라고 하여도 가바인 가문은 자작가에 불과했기 때문에 연회에 참석한 귀족들도 가문과 마주하고 있는 가문들이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아……. 한 사람은 제외인가?”
연회가 시작되고 중반쯤 되었을 때 도착한 사람이 있었다.
연회의 주인공이었던 아이덴조차 한쪽 무릎을 꿇으며 예를 표해야 했었고 여행객으로서 참가했다며 식사를 즐기고 떠난 그로 인해 잠시나마 술렁거리기도 했었다.
물론 아이덴과는 전혀 상관없는 인물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잠시 걸음을 멈추며 과거를 떠올리던 아이덴이 피식 실소를 흘리고는 다시 자신의 방으로 향하고 있을 때였다.
“도련님!”
“일 안 해?”
“……일하고 있었거든요.”
누군가를 찾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가온 일리아나가 아이덴의 물음에 입술을 살짝 내밀며 바라보다 다시 빙긋 미소를 그렸다.
“오셨어요.”
“누가?”
“아이든 님이요.”
“…….”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잠시 일리아나를 바라보던 아이덴이 허리를 살짝 틀어 그녀의 뒤를 바라보았다.
“어디?”
“도련님 방에서 기…….”
“나갔다 올게.”
“네?”
“형님 성격을 잊었어?”
“……아.”
아이든.
가바인 가문의 삼남 일녀 중 장남으로서 아카데미를 졸업했음에도 작위 계승 수업을 미루고 수련이라는 이름으로 자유기사가 되어 왕국을 여행하는 아이덴의 첫째 형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중요한 것은 아버지에게 세뇌, 아니 주입식 교육으로 인해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마법사들을 싫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것이었다.
“화나 있지?”
“잘 모…….”
“아니야 분명히 화나 있을 거야. 그러니까 용병소에 있을 테니까 연회 시작하면 불러줘. 사람이 모인 데서 때리지는 않…….”
일리아나가 갑작스레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을 보지 못한 아이덴이 고개를 연신 끄덕이다 몸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
“…….”
가바인 자작과 마찬가지로 거구의 사내, 제대로 정비가 되지 않은 듯 몬스터의 피가 묻고 녹이 슬어버린 중갑을 착용한 사내가 눈앞에 서 있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내가 사람들의 시선을 느낄 것 같으냐?”
“아니지요.”
“그렇지 그럴 사람은 아니지.”
그럴 사람은 아니다.
과거와 똑같이 생일 전날 찾아온 그는 지금 착용한 몬스터의 피가 묻고 녹이 슬어버린 갑옷을 착용하고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거구의 사내, 아이든이 씩 미소를 그리며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고 아이덴이 무의식적으로 몸을 흠칫 떨며 눈을 감는 순간이었다.
스윽.
아이덴의 머리 위에 손을 올린 아이든이 무릎을 살짝 굽혀 시선을 마주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마법사?”
“예. 형님.”
“잘할 자신이 있느냐?”
“……예?”
“잘할 자신이 있느냐고 물었다.”
“…….”
가바인 자작과 달랐다.
마법사를 싫어하는 그였지만 진지한 표정이 자신의 선택을 응원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는 아이든을 멍하니 바라보던 아이덴이 똑같이 진지한 표정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이왕 다른 길을 선택했으니 잘할 것입니다.”
“그럼 응원하마.”
거칠게 손을 흔들어 아이덴의 머리를 헝클어뜨린 아이든이 일리아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럼 동생을 부탁하네.”
“예. 예, 큰 도련님.”
귀족이었다.
자유기사라고 하여도 귀족이었던 아이든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부탁했고 당황한 일리아나가 뒤늦게 허리를 숙이며 대답하는 순간 그가 몸을 돌리고 떠났다.
“……형님이 원래 저랬나?”
연회의 참가했던 아이든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과 똑같이 아카데미에 입학을 하면 잘하라는 응원만 했고 연회가 끝나자마자 다시 여행을 떠났었다.
자신의 머리를 매만지며 아이든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아이덴이 이내 피식 실소를 흘리며 형의 등을 바라보며 허리를 살짝 숙였다.
생각하던 것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지만 그 모습 자체가 자신의 선택을 믿어준다는 뜻이었기 때문이었다.
* * *
삼남 일녀 중 장남인 아이든은 도착했지만 아직 차남인 아이안과 일녀인 아이리아가 도착하지 않았다.
“어차피 시간은 많으니까…….”
아이든의 모습에 당황하던 일리아나와 함께 방으로 돌아온 아이덴이 책상 위에 놓인 한 권의 서적을 쥐고 펼쳤다.
파이언 용병단의 여자 마법사, 레이나는 의뢰 수행을 위해 떠나기 전에 1서클을 만들어주며 마법서와 이론서를 건네주었다.
마나 이론서와 1서클 마법서, 그리고 마법진 연성법과 관련된 서적이었고 아이덴은 세 권의 서적 중 마나 이론서와 마법진 연성법을 전부 외웠다.
기본적으로 머리가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15년간의 삶에서 마나심법과 마나 연구는 기사라도 빼놓을 수 없는 훈련이었기에 빠른 속도로 이해할 수 있던 것이었고 마법진 연성법 같은 경우에는 몬스터 토벌, 마법사들과 함께한 훈련에서 매번 보았기에 쉽게 이해하고 외울 수 있던 것이었다.
“파이어.”
화르륵.
“우와…….”
방에 들어오면 마법 수련을 시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문 앞에 자리하고 있던 일리아나가 아이덴의 손바닥 위에 생겨난 불꽃을 바라보며 작게 감탄을 했다.
마법사라면 질색하는 가바인 자작이었기에 가문에서 일을 하는 마법사가 없어 단 한 번도 마법을 보지 못한 일리아나였다.
그녀를 힐끔 보며 피식 실소를 흘린 아이덴이 손바닥 위에 생겨난 작은 불꽃을 바라보다 다시 입을 열었다.
“윈드.”
쉬이익!
화르르륵!
불꽃 위로 작은 바람이 불어오며 불꽃을 더욱더 강하게 키워버렸다.
레이나는 말했다.
1서클 마법이라도 어떻게 응용하느냐에 따라 2서클 마법에 필적하는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이다.
아무것도 모른 채 그런 조언을 들었다면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아이덴은 기사로서 15년의 삶을 살았던 소년이었다.
“…….”
작게 불어온 바람에 의해 사람 주먹만 해진 불꽃을 가만히 바라보던 아이덴이 주먹을 쥐어 불꽃을 없애고 다시 마법서를 바라보았다.
마법을 배우기 시작하며 알게 된 것 중에 하나는 2서클 경지에 오르면 1서클 마법은 무빙 캐스팅, 즉 주문을 외우지 않고 사용할 수 있으며 4서클 경지에 오르면 2서클 마법을, 6서클 경지에 오르면 3서클 마법을 주문을 외우지 않고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레이나는 그 이유를 경지가 오르면 오를수록 마나 배열이 빨라지고 마나를 이해하고 마법을 이해하는 능력이 높아진다고 했지만 아이덴은 달랐다.
유일하게 친하게 지냈던 한 마법사는 3서클 경지에 자리하고 있었지만 2서클 마법을 무빙 캐스팅으로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무빙 캐스팅이나 더블 캐스팅은 빠른 마나 배열과 마나 이해도, 마법 이해력에 따라 가능한 것이지 경지는 상관없어. 그래서 마법이 아니라 기술로 분류되는 것이고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