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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작가 : 시안
작품등록일 : 201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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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성녀, 강림하다(1)
작성일 : 17-06-04     조회 : 441     추천 : 1     분량 : 4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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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삶을 살았노라. 묻는다면. 부귀영화.

 

 금을 쥐고, 다이아몬드를 바닥에 깔았으며, 보석으로 이름을 새겼다고. 나는 대답한다.

 

 그 모든 것을 스스로 이뤘냐고 묻는다면.

 

 아니요. 저는 무엇 하나, 스스로 힘으로 얻지 않았으며. 모든 것을 손에 쥐었다고. 나는 대답한다.

 

 가증스럽다 말한다면.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부럽다고 말하면. 나는 웃어주며.

 

 나와 같이 되고 싶다고 말하면. 절대 그럴 수 없다고, 비웃어 준다.

 

 당신이 나와 같지 못한 것은, 내가 아니기 때문.

 

 그 이유가 유일하다.

 

 

 

 *****

 

 

 

 “무섭지 않아?”

 

 물어오는 말은 다정하지만, 분위기는 험악하다. 아니. ‘험악하다’라는 단어가 옳은 표현은 아니지만 느낌은 비슷하다. 더 파고들면 무관심에 가까운 것이었다.

 

 물어오는 남자를 제외하고 모든 것이 황량하기 그지없는 공간은 차갑게 공기를 내리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여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무서워요.”

 

 전혀 무서워 보이지 않으면서도 벌벌 떠는 흉내를 낸다.

 

 “혹시 나를 잡아먹으려 들지는 않을까? 여기서 성폭행당하지 않을까? 맞지는? 가진 걸 전부 빼앗길지는?”

 

 옷을 감싸 쥐며 몸을 떠는 척하지만 눈은 즐겁게 웃고 있다.

 

 “모든 걸 전부 당하고, 죽으면 어쩌지? 이런 생각 중이에요.”

 “거짓말.”

 “어라? 진짠데.”

 

 이내 몸을 떠는 행동도 멈추고 경쾌하게 웃는다.

 

 “티가 안 나는 것뿐이지 정말 생각해 봤어요.”

 “그럼 좀 무서워해 보는 건 어때?”

 

 남자는 그렇게 말했지만 빈 잔에 차를 채워줄 뿐 별다른 위협은 없었다. 하지만 어딘가 험악한 분위기(예를 들면 소리도 온기도 없이, 무엇 하나 움직이지 않는 방의 풍경이라던가)는 여전하였다.

 

 “무서워하는 것도 에너지 소모가 돼요. 굶어 죽기 싫으니까 최대한 에너지를 아낄래요.”

 “이 차, 너희 언어로는 칼로리 무지 높아.”

 “아, 다이어트 중인데.”

 “거봐, 안 무서워하잖아.”

 

 남자는 제 찬에도 차를 채웠다. 여자는 벌써 세 번째 차를 음미하며, 속삭였다.

 

 “조금만 봐줘요. 나는 납치, 감금에 익숙해서 이제는 무감각하단 말이에요.”

 

 퍽 슬프게도 들리는 말이건만, 여자가 말하니 ‘나는 아침과 점심 사이에 티타임을 가져요.’라는 말과 다를 게 없이 들렸다.

 

 퍽이나. 남자는 이제 7번째 되는 잔을 한 번에 털어 넣었다.

 

 “그런 행동을 하면서 퍽. 차라리 남들처럼 부러 더 그런다고 말하는 게 신비성이 있었어.”

 “저 말고도 있었어요?”

 

 몇 명이나? 물었지만, 시큰둥한 반응이 돌아왔다.

 

 안 새 봤어.

 

 간단한 대답에 되물어 볼까 하다가 남자가 숨기기보다는, 말하기 싫어하는 것으로 생각하여 묻기를 포기했다. 혹 그가 정말로 수를 세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그럼 이거 하나 만요.”

 “뭐.”

 “많았어요?”

 “많았어.”

 

 그럼 됐어요. 여자는 차를 마셨다. 남자는 이제 8번째 차를 따르는 중이었다. 여자는 차를 탁자 위로 내렸다.

 

 남자는 여자를 보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여자는 남자를 보고 있었다. 여자는 궁금한 것이 아주 많았다.

 

 “왜 사람들을 불러요?”

 “필요에 의해서.”

 “계약 같은 거 해요?”

 “아니.”

 “영혼 사가요?”

 “그거 사기야.”

 “그럼 운명 조작?”

 “그건 불법이고.”

 “막 영생을 주나?”

 “그거 생각보다 귀찮아.”

 “소원 들어줘요?”

 “내 소원부터 이루고 나면 생각해 볼게.”

 

 그럼 뭐에요. 이렇게 불러놓고 티타임만 즐기다 가요? 에이- 시시해. 여자의 반응에 남자는 코웃음 쳤다.

 

 “내가 너처럼 평범하게 대화 즐기는 사람을 몇 봤거든? 나이 먹은 노인들이나, 시한부 인생이나, 죽음을 각오하거나 예상하는 사람들이 다였어. 넌 뭐야?”

 

 남자는 관심이 전혀 없는 얼굴로 그렇게 읊었지만, 여자는 싱글 웃으며 잠시 고민하는 척 해 보였다.

 

 

 “22살의 파릇파릇한 새싹?”

 “세상 새싹이 다 죽었군.”

 

 여자는 까르륵거리며 웃었다. 웃음소리는 새싹 같네.

 

 “정말 뭐예요? 왜 부른 거예요? 심심해서?”

 “궁금해?”

 “네.”

 

 남자는 8번째 잔을 또다시 입안에 털어 넣었다.

 

 “너는 어떨까.”

 

 남자의 눈이 빛났다. 아니 빛났다고 여자는 생각했다. 처음으로 보이는 생기에 여자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

 

 의미 모를 흥분이 몸을 감싸고 지나갔다.

 

 “내 휘하에서, 내 능력을, 내 생명을, 내 권능을, 내 재산을, 내 추종자를, 내 신전을, 나의 모든 것을. 쥐여 주면.”

 “…….”

 “너는 미칠까.”

 

 남자의 고개가 조금 돌아갔다. 여자는 주먹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아니면 행복할까. 불행할까.”

 “…….”

 “하지만 그럼에도 살아남을까.”

 “…….”

 “궁금해.”

 

 그러니까 저 말을 즉…… 여자는 꼿꼿하게 핀 허리를 타고 내려가는 뱀과 같은 것을 느끼면서 남자의 시선을 마주쳤다. 피하지는 않았다.

 

 저보다 더 엄한 속내를 숨기고 다정하게 웃어주는 사람들도 수도 없이 만났다. 숨

 

 기지 못하는 악의와 적대도 여자는 앙큼하게 한번 웃어주고 넘겼다.

 

 다정하게 대하다가 한순간에 제 숨통을 쥐려 덤벼드는 사람도 있었고, 진실한 사람이 한순간 세상에서 가장 추악하게 돌변하는 모습도 많이 봐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 시선하나에 여자는 숨이 멈출 것만 같았다.

 

 왜? 자신에게 질문해보지만,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그 시선은 모두 제게는 비겨나갔다. 제가 아닌 제 뒤에 있는 누군가에게 향했다. 시작은 제게서부터였을지 몰라도 그 마지막은 언제나 제 뒤에 있는 사람에게 향했다.

 

 하지만 저 시선은. 저 시선만큼은 온전히 저에게 향하고 있었다.

 

 그 사실에 여자는 전율을 느꼈다.

 

 온전한 시선을 받으며 그 이상의 것도 보았다. 두려움. 그러나 여자는 티 내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모른 척 먼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남자는 여자의 속내를 아는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마지막 말을 이어주었다.

 

 “신의 딸, 또는 신의 사자가 된 것을 축하한다.”

 

 이계의 인간.

 

 남자는 말을 마쳤고, 여자는 입을 다물었다. ‘신’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눈을 뜨고 처음 보는 세상에, 처음 보는 풍경에, 처음 보는 남자가 당연하게 내미는 손과 퍽 다정 하려 꺼내는 말에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그가 ‘신’임을. 그러나 ‘신’의 모든 것을 건네받다니.

 

 그럼 제 질문에 대한 대답은 모두 OK란 소리가 아닌가? 능력도 아닌 권능을 쥐여 준다고 해놓고. 아니 그전에 영생을 살아간다 알려진 신의 생명까지 준다고 해 놓고. 그런데 아니라고?

 

 남자는 무언가 말하지 않았다. 숨기는 것과는 다르게 그저 말하지 않았다. 그 무언가를 알아내야 했다.

 

 하지만 여자는 지금은 기다릴 순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내가 멋대로 죽은 사람을 살리고, 전쟁을 일으키고, 사람을 죽이는데, 권능을 사용해도 되요?”

 “응.”

 “아까는 그 모든게 사기고 불법이라면서요.”

 “신인데 그 정도도 못하겠어? 신의 딸인데 그 정도 특권도 안 주면, 뭐하러 그런 거창한 말이 붙겠어.”

 “나 정말로 전부 할 건데?”

 

 하세요. 남자는 웃었다. 누가 하지 말래? 하라고 불러왔는데. 남자는 멍청한 표정을 기대했지만, 여자는 차분해 보였다.

 

 되려 두 눈에 흥미와 전율이 툭툭 떨어질 것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절제된 동작과 차분한 목소리는 가히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를 않는구나. 특이한 반응이야.”

 “처음 있던 반응은 아니라는 뜻이네요.”

 “물론.”

 

 남자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회상보다는 생각에 가까운 것을 하느냐 침묵은 생각보다 길게 이어졌다. 여자는 남자를 방해하지 않았다.

 

 “세상 사람들은 특이하다면 제가 처음인 줄 알지. 그런데 네 전에도 수많은 사람이 왔었어. 이곳에서 나와 차를 마시고, 돌아가 나의 자식을, 나의 사자의 역을 맡았지. 신선한 반응이야 많았지만, 이제는 대부분 한 번씩 본 반응들이 대부분이라서.”

 

 남자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서 대답은?”

 

 대수롭지 않은 말투에 여자는 마지막으로 되물었다. 여자 역시도 침묵이 이어지는 틈을 타 대답을 정한 후였다. 그래서인지 다시 한번 느긋해지는 심장을 느끼고 있었다.

 

 “내 대답도 필요해요?”

 “나 악덕 업주 아닌데?”

 “그런 말도 알아요?”

 “네 세계에 있는 언어는 대부분. 너 말고도 몇 왔었거든.”

 “대단하네요.”

 “신이니까.”

 

 남자의 간단한 대답에 한 사람이 스쳤다. 그리고 정한 대답을 밖으로 꺼냈다. 좋아요.

 

 “할래요.”

 

 신의 모습을 보고 스친 사람은 또 다른 신이었다. 사람들이 숭배하는 신. 그러나 자신을 숭배하던. 그녀가 스쳤다. 눈앞의 남자가 무슨 속셈이든 이 재미난 걸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싶지 않았다.

 

 “의외로 대답이 빠르네.”

 

 남자는 여자를 봤지만, 여자는 밝게 웃어 보였다.

 

 “재미있을 것 같아요.”

 

 여자에게 재미는, 신에게 신선함과도 같이 귀하고 드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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