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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작가 : 시안
작품등록일 : 201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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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성녀, 강림하다(2)
작성일 : 17-06-05     조회 : 244     추천 : 1     분량 : 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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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안은 대부분 흰색이었다. 건물 자체가 그렇듯 밝고 웅장한 흰색은 건물의 안과 밖으로 색칠되어 있었고 천장, 기둥, 벽지, 바닥 타일, 그리고 가구까지. 모든 건 기본적으로 흰색이었다.

 

 이 세계에서 흰색은 신의 상징이자, 예찬. 신에게 받치는 무한한 애정을 표현하기 위해 건물부터 가구며 옷까지 대부분이 흰색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아이들이 생활하는 공간은 특별히 다른 색으로 꾸며져 있었지만. 그 이유로 건물에서 한참 멀어진 곳에 별채가 지어져야 했다.

 

 애들이 노예나 식솔이야? 여자는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말은 단호했다.

 

 ‘아이들은 순수함은, 신의 것과는 다릅니다.’

 

 즉, 아이들은 흰색과 검은색의 조화를 오랫동안 보고 겪으면 미친다는 말을 저렇게 돌려 말 한 것이다.

 

 내가 아이들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이 없었다면 저 말을 고대로 믿을 뻔했지. 여자는 웃었다. 사기 치고 있네.

 

 “대신관, 카르타노 뷰네. 성녀님께, 인사 올립니다.”

 

 그렇지만 대신관은 금빛에 찬란한 복식에 값비싸 보이는 보석이 박힌 지팡이를 짚고 두르며 제 앞에 무릎 꿇었다. 대신관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위엄과 권력이 고스란히 보이는 복식이다만. 신에 대한 예찬이라는 흰색은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질 않았다.

 

 아이들의 순수는 신의 것과 달라? 흰색은 신에 대한 예찬이다? 아아- 한심해라.

 

 좀 더 그럴듯한 변명과 거짓, 그리고 위선을 기대했건만. 떨어지는 시대상만큼이나 떨어지는 사상과 조잡한 변명에 흥미가 식어버렸다.

 

 위험하고, 스릴있으면서, 역경을 이겨내고 나라와 신전 안팎으로 안전과 평화에 기여한 성녀로 자리매김하고 싶었는데. 이거야 수준이 너무 떨어져서는, 재밋거리 삼기에도 시원치 않았다.

 

 속으로 한탄하면서 지루한 인사를 이어갔다. 하지만 그 한탄도 저 대신관이라 불리는 남자 앞에서는 멈췄다. 저 가식적인 얼굴 뒤로 뒤틀어졌을 심정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못마땅해 죽겠다는 표정을 제대로 숨기지 못하는 꼴을 보자, 도저히 웃지 않고는 배길 수 없어 최대한 성심성의껏 웃었다.

 

 그래. 내가 없을 때만 해도 당신이 신의 심복이자 사자이며 천사였겠지. 황제와 왕, 태자, 공자 그리고 현자를 막론하고, 모두가 제 앞에 무릎을 조아리고 신탁을 내려달라 기도하던 권력을 고스란히 빼앗기는 기분이야 당연하다.

 

 오장육부가 뒤틀리고, 천지가 뒤흔들리겠지.

 

 “대신관, 얼굴 보기를 허락합니다.”

 

 하물며 가진 것 없이, 벌거벗은 채로 신탁의 중심. 신전 성단(聖壇) 위에 잠이 깬 여인에게 빼앗기려니 그 심정이 오죽하랴.

 

 여자는 제 앞에 나이 지긋한 얼굴로 탐욕에 번들거리는 눈을 숨기느냐 급급한 노인에게 친절하게 손을 내밀었다.

 

 난 당신보다 나이가 어려. 그렇지만 당신들보다 경험이 없지 않지. 권력이랍시고 휘두른 모든 것들. 그리고 그에 따라 무릎 조아리는 많은 사람들.

 

 나는 말이야. 절대 권력이라는 걸 손안에 쥐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야. 하지만 남들보다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었지. 그래서 당신에게 고개를 조아린 사람의 수보다 더 많은 사람이 내 것에 노렸고, 날 노렸어.

 

 당신 정도의 탐욕은…… 언제나 보던 그 수준.

 

 당신은 내 상대가 아니야. 난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순진하지도, 착하지도 않아.

 

 성녀? 당신들 마음대로 정했어. 내가 그 이름으로 날 불러 달라 한 적이 있던가?

 

 여자는 내민 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 위에 유일하게 시선을 마주 볼 수 있는 노인에게 시선을 주며 여자는 입을 열었다.

 

 “신의 가호로 보호받아왔던 그대들에게 제 가호 아래 온 것을 축복해요.”

 

 이전의 성년들이 그렇듯 흔하디흔한 ‘신의 가호가 있기를.’ 내지는 ‘신의 가호가 내리길.’ 따위를 생각하던 사람들의 표정은 흔들렸다.

 

 어라? 이게 아닌데? 표정을 확인하지 않아도, 자세가 흐트러지는 모습에 여자는 유쾌한 기분을 숨기며 제 아래 고개를 조아린 모든 사람에게 말했다.

 

 “나의 새로운 탄생을 축복하여 주시기 위해, 먼 길 오시느냐 수고하셨습니다.”

 

 사람들은 고개 들지 않았다. 오직 한 사람. 대신관만이 여자의 표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럼 앞으로도 저를 위해 수고해주세요.”

 

 성녀의 표정이라기보다는 악마의 표정을 지어 올린 여자는 망가지는 대신관의 표정과 떨리는 손끝을 확인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고개를 들길 허락했다.

 

 “축제의 날입니다. 신이 내려다보실 오늘, 무엇도 아닌 저를 위해 즐겨주세요.”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세계에, 신은 너무나도 허무하게 발버둥 치는 인간들을 심판대에 올려놨다. 그 심판대를 내려다보며, 상석에 앉아 판결을 내릴 판사는 성녀였다.

 

 

 *****

 

 

 어두운 회의장. 본디 감옥으로 쓰던 것을 개조해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피난처로 사용하고 있는 곳에 사람들이 모였다. 피난처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된 곳에는 곳곳에 피어난 곰팡이를 눈감아 준다면 그럴싸한 회의장으로 변해있었다.

 

 그곳으로 사람들이 들어왔다.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무리로 들어오는 사람 중 가장 선두에 선 사람에게 머리를 숙였다. 얼굴을 반 이상 가렸는데도 그들은 한눈에 누구인지를 파악했다.

 

 퀴퀴한 냄새가 나는 것이 불편한지 자리에 앉기 전에 잠시 물을 묻힌 비단에 코를 묻은 그는 인사를 해오는 것을 손짓으로 대신했다.

 

 그의 손짓에 따라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자리를 저지하고 자리에 앉았다.

 

 “이곳에 모인 것은 4년 만이군요.”

 

 상석에 앉아있는 사람의 왼쪽에 앉아있는 남자가 말문을 열었다.

 

 “이렇게 모일 일은 아직 1년을 더 기다려야 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저희가 안일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지요.”

 

 상적의 오른쪽에 있는 남자가 말하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준비를 늦춘 것은 아니지.”

 

 그의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말했다. 말을 꺼낸 사람 중에 가장 나이 들어 보이는 목소리였다. 노인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아직 어린아이니 참 다행이야. 잘하면 좋은 패가 될 수도 있어.”

 “어린아이라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계집은 겁을 모를 테니 더욱이 말이죠.”

 “그러니 알려줘야 하는 겁니다.”

 “겁을 먹게 만들 셈입니까?”

 “필요하다면. 그리해야죠.”

 

 순간 사방이 조용해졌다. 마지막 노인의 말에 공감하면서도 어딘가 시선이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것이 느껴지고 있었다. 성녀를 상대로 쿠데타라니. 미친 짓이 분명했지만, 그 외에 딱히 묘책이 떠오르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성녀가 괜히 성녀였던가?

 

 그녀의 뒤에 존재하는 것은 다름 아닌 그들에게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도록 한 신이었다. 모든 곳에 귀와 눈이 달린 신을 상대로 이길 수 있을 리 없었다.

 

 부산스런 시선을 느낀 노인이 말을 이었다.

 

 “아직 어리지 않습니까?”

 

 질문이었지만 주어가 없었다. 그리고 누구를 향한 질문인지도 명확하지 않았다. 그러나 상대방은 명확하게 알아들었다. 가장 상석에서 침묵을 유지하고 있던 사람이 입을 열었다.

 

 “가르쳐야죠. 교육을 시켜야죠. 배움을 멀리하게 두어서는 안 됩니다.”

 

 남자는 짐짓 비장하게 말을 이어받았다.

 

 “우리는 무엇을 가르칠지를 정하기 위해 모인 것입니다.”

 

 허튼소리. 성녀가 남자의 말을 들었다면 분명 그리 말하며 면전에 대고 비웃어주었을 정도로 남자는 전혀 다른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다.

 

 

 *****

 

 

 배움을 멀리하게 두어서는 안 된다.

 

 그 말은 맞는 말이었다. 성녀를 설득시킬 이유 없었다. 또한, 말릴 이유조차 없었다. 다만, 의외인 것은, 배움을 성녀 본인이 먼저 자청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성녀는 스스로 누구에게 배울지를 정했다. 성녀의 선택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고, 결론적으로 그들은 자신은 목적의 반을 달성했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치 못한 점은 성녀의 행동 방향이었다.

 

 ‘성녀는 파격적이다 못 해, 가히 피학적이다.’

 

 근거 없는, 그러나 무시 못 할 소문이 돌 정도로 성녀로 지목된 여자의 행동은 이해 못 할 것들이 많았다.

 

 처음 소문이 돌기 시작할 무렵 성녀는 그 소문을 제 귀로 듣고는 웃어넘겼다. 그리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공부’

 

 성녀는 철저하게 세계의 모든 것을 배워나갔다.

 

 암기가 필요하면 암기했고, 이해가 필요하면 이해했고, 기록으로 전해지는 것부터 시작해서 말로 전해 내려오는 전례부터 단순한 전래동화까지. 모조리 찾아 읽어 내렸다. 공식적인 기록부터 일종의 허영심이 깃든 야사까지. 성녀는 그 무엇 하나 놓치지 않고 읽고, 읽고, 또 읽었다.

 

 성녀가 눈을 뜬 첫날.

 

 자신이 맨몸으로 성단(聖壇) 위에 올라가 있다는 걸 안 순간, 신전을 수호하기 위해 세워둔 ‘가호 드레샤(고대시대, 신의 가호로 대마법사로서 영생을 누렸다는 드레샤 파킨의 힘이 담긴 스태프’를 뽑아 성단(聖壇)이 있던 건물을 통째로 날려버렸다.

 

 소문에는 그 후에 하늘 향해 ‘이런 장난이나 치라고, 내가 잠들어준 줄 알아요?’라며 조용히 분노했다고 한다.

 

 그리고 절차대로 일주일 후 사람들을 불러 모아 축제를 벌였다. 성녀의 탄생을 축복하고, 성녀의 이름으로 내릴 가호를 축복하는 자리에 전 세계 사람들이 모였다. 작게는 귀족부터 국왕, 황제를 제외하고도 이종족까지 모인 자리에서도 성녀는 당당하게 서 그들에게 축복을 내리는 것을 허락했다.

 

 성녀는 3일간의 축제가 끝난 바로 다음 날부터 배움을 요구했다. 세계에 대략적인 설명을 듣고 난 후, 종교에 관해 설명 들었다. 종교에 대한 배움이 끝난 다음에는 신전에 관한 것들부터 배움 받기를 원했다.

 

 특히, 그 부분에서는 실제로 신선에서 일하는 사람의 입을 빌려 듣기를 원했다.

 

 시녀 장은 그녀에게 건물의 위치부터 시작해서 정해진 이름과 어느 시기에 어떻게 사용하는지부터 가르쳤다. 그 후에 인물에 대한 설명이 시작되었다.

 

 대신관이나 다른 신전을 관리하는 사람들의 외모나 이름 따위를 그림과 글로 배운지 일주일. 어느 정도 눈에 익었는지 그 많은 사람들을(시종의 얼굴과 이름까지 전부) 한 곳에 불러들여 첫 번째 명령을 내렸다.

 

 ‘성녀를 받드는 사람은 모두 눈이 멀고, 입을 닫아야 해요.’

 

 그에 신전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그녀에게 입이 무거운 여자 몇을 찾아오겠다고 했을 때, 성녀는 웃으며 그동안 벼린 칼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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