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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작가 : 시안
작품등록일 : 201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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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성녀, 알아가다(1)
작성일 : 17-06-22     조회 : 268     추천 : 0     분량 : 5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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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릇이요?”

 

 이상하네요. 어제 제가 직접 수를 새어났는데.

 

 성녀는 입안으로 말을 삼키며 시녀 장의 보고를 상기했다. 멀쩡하게 보관 중이던 그릇이 사라졌다. 그것도 특별히 보관 중인 것이 아닌 언제고 쓸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는. 그래. 이 신전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귀한 그릇이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보고였다.

 

 정말로 곤란하다는 듯 중얼거리는 성녀에게 시녀장 올리브아는 그 외에 사라진 것들을 읊어주었다.

 

 “그릇 3개와 식기류 21개가 사라졌습니다. 모두 알판드레 가문에서 보내온 것들로 고래 모양의 문양이 있는 것들입니다. 다른 그릇 하나역시 사라졌지만, 그것은 알판드레 가문이 아닌 다른 반-드렌드 가문의 것으로. 깨져서 처리 중일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 많은 것들이 동시에 깨졌을 리는 없을 테고…….”

 “최근 일주일 동안 사용한 기록도 없습니다. 성녀님.”

 

 성녀는 짐짓 장난스러운 손짓으로 펜을 놀렸다.

 

 사라졌다.

 

 그 말이 어울릴 수 없다는 것은 시녀 장을 맡고 있는 올리브아가 더욱 잘 알 것이다. 자잘한 보고까지 받는 그녀의 입장으로는 ‘사라졌다’라는 것보다 더욱 그럴싸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올리브 아는 말을 줄였다. 그저 있는 사실만을 보고하고 담담하게 성녀의 옆에 서 있었다.

 

 땅으로 꺼졌을 리는 없고. 하늘로 쏟았을 리도 없으니. 분명 손과 발이 달린 누군가가 만졌다는 것인데.

 

 성녀로서는 그런 짓을 할 만한 사람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알판드레 가문에서 보내온 것들이야 언제나 보기 좋고, 품질 또한 뛰어난 값비싼 것들이라고 하더라도 하고많은 것 중에 식기류라니?

 

 식기류는 성녀가 사용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전부 보관 중에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보관’이랑 장식장이나 창고에 처박아 두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관리 감독 아래 저장 중이라는 것이 옳다. 그걸 모르는 멍청한 사람이 신전 안에 있을 리가 없었다. 또한, 그릇을 훔친다 하더라도, 훔친 후가 문제였다. 신전 안에 들어온 이상 신전을 상징하는 흰 날개가 찍힌 그릇을 어디에다가 배짱 좋게 팔 수 있을까?

 

 설사 운 좋게 팔거나, 경매에 내놓더라도 유통경로를 낱낱이 조사하다 보면 분명 꼬리가 잡힐 것이 분명한데.

 

 누구지?

 

 “신전을 오간 사람들을 총 몇이죠?”

 

 시녀 장은 질문을 예상했다는 뜻 이미 조사해온 자료를 넘기며, 암기한 내용을 읊었다.

 

 “신전 내부로 들어온 사람은 총 42명입니다. 기도를 올리러 온 사람 23명. 의료를 목적으로 한 사람이 11명. 음식을 배달 온 5명과 제사를 진행한 3명이 전부입니다.”

 “관광이 목적인 사람은요?”

 “정확한 수는 보고를 봐야 할 수 있지만, 대략 200명에서 300명 내외라고 예상됩니다.”

 “신관들을 포함한 신전 안의 사람의 출입은 없었나요?”

 “없었습니다.”

 “…없었다고요?”

 

 올리브아는 명단을 성녀 앞에 내려놓았다. 신전 안에 들어오는 것과 나가는 모든 것을 기록한 종이 위에는 시간과 이름이 정확하게 기재되어있었다.

 

 “보시다시피 그 누구도 출입하지 않았습니다.”

 

 그중에서 신관 내부 인물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이러니하네요.”

 “문지기를 불러올까요?”

 

 성녀는 잠시 명단에 적힌 이름을 살폈다. 딱히 눈에 띄는 성을 가진 사람이 없었다. 성이 없는 사람들도 있었고, 제법 익숙한 성도 있었지만 딱 집어 이거.'라고 말할 것은 보이지 않았다.

 

 선전포고하는 것일까?

 

 이렇게 하나씩 빼앗아 가려는 것일까?

 

 종국엔 아무것도 남기지 않으려고?

 

 성녀는 명단을 내려두었다. 고민을 해봐야 나오는 답이 없었다. 또한, 누군지. 또한 누군지 모르는 도둑을 상대로 지금의 수업을 미루고 싶지도 않았다.

 

 그깟 그릇쯤이야. 너그럽게 눈감아줄 수 있었다.

 

 “아뇨. 그보다 수업을 진행하죠.”

 

 저도 마침 업무를 다 마친 참이라. 성녀는 빙그레 웃으며 장난스럽게 말을 이었다.

 

 “대신에 부탁을 좀 드려도 될까요, 올리브아?”

 “예. 성녀님.”

 “오늘 그릇의 수를 센 사람을 내일모레 아침에 불러주세요. 또한, 일주일 전에 수를 센 사람을 내일 불러주세요.”

 “9시쯤이면 되겠습니까?”

 “그보다는 10시를 조금 넘겼으면 좋겠어요.”

 “알겠습니다.”

 

 올리브아는 성녀에게 받은 부탁을 적으면서 시간과 사람을 적었다.

 

 “또한, 이곳에 있는 그릇의 그림들을 전부 모아주세요. 오늘 저녁을 먹기 전에 확인해봤으면 해요.”

 

 지금은 너그럽게 눈 감아 줄 수 있었다. 그러나 별로 그러고 싶은 마음은 없다는 것에 성녀는 큰 고민을 하지 않았다.

 

 지금은 수업하고, 나중에는 그 도둑인지 반란을 꿈꾸는 치를 잡아 곤장을 내리치면 그만이었다.

 

 

 

 *****

 

 

 

 올리브아를 통해 받은 그림들은 하나같이 정교하게 그려져 있었으면서 보낸 사람의 가문이나 이름, 사용 용도나 보낸 이유를 자세하게 적어두었다.

 

 저녁 먹기 전에 받아 두었다가, 씻고 나와 촛불에 의지한 체 읽는 서류는 마치 동화 같았다.

 

 성녀는 침대에 누워서 종이를 팔랑팔랑 넘기며 느긋하게 보고 있자니. 보면 볼수록 놀라울 따름이었다.

 

 황제가 직접 손으로 들고 찾아온 것부터, 드레곤의 비늘을 깎아 만든 그릇까지. 그 종류도 종류였지만 값어치가 대단했다.

 

 전대 성녀가 사용했던 식기류는 대부분이 감히 살아생전 한 번 보기도 힘들 것들이었다.

 

 100년도 전에 사용됐던 식기였지만 지금에서도 감히 그렇게 가공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감탄하는 시녀들의 말에 성녀는 그저 고개만 끄덕였지만, 충분히 감탄하고 있었다. 가히 그럴 만했다.

 

 “드레곤의 눈물을 가공해 만든 디너세트라니. 미쳤네. 미쳤어.”

 

 드레곤의 비늘이야 황제나 국왕 정도 되는 사람들이 널리 사용하는 왕족의 상징이자 권력의 상징이라지만 눈물이라니.

 

 제 눈으로 읽고 있지만 어이가 없다 못해, 그것을 받쳐야 했던 황제의 울분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성녀는 제 본래 목적과 다르게 예쁜 그림들과 소설 같은 일화에 정신이 팔렸다.

 

 카시아 가문에서 보낸 것들은 대부분 직접 사냥하고, 직접 가공까지 마쳐서 보내왔는데 흔한 재료를 사용해도 완성도가 굉장히 높았다. 간혹 특별한 것을 가공해 만든 것들을 보내왔는데 대부분이 귀한 맹수나 강력한 몬스터의 뼈대를 가공한 것들이었다.

 

 알판드레 가문은 상징적으로 푸른색을 사용한 동물, 몬스터 등이 가득했는데 공통점으로는 모두 해양생물이었다. 특히 그릇에서 푸른빛이 도는 것이 특징이었다. 과연, 조선업에 있어서는 일인자인 씨에드라의 10대 가문다운 기품이었다.

 

 반-드렌드 가문은 반대로 초록빛으로 장식이 되어있었다. 백옥같이 깨끗하고 다른 것들보다 가벼운 것이 특징이었다. 특히 초록 독수리가 그려있는 것은 한해 단 30점의 자기를 만드는 장인에게서 특별히 부탁해서 만들었다고 쓰여 있었다.

 

 다행이게도 이번에 깨진 것은 반-드렌드 가문의 현가주가 사용하는 것과 똑같은 것을 보내온 것이었다. 즉, 다시 구하려 한다면 다시 구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저것 살피면서 종이를 넘기며 자신이 원하는 자료를 다 찾고도, 재미난 그릇의 일화에 정신이 팔린 성녀는 문득 바람이 분다는 것을 느꼈다.

 

 그와 동시에 노크 소리가 들렸다.

 

 “공부 중?”

 

 갑작스러운 인기척에 고개를 들었을 때 남자는 문가에 기대어 지긋이 성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음… 밑밥 준비 중?”

 “열심히 하네.”

 

 남자는 방으로 들어와서 앉을 만한 의자를 하나 끌어왔다.

 

 “어머. 숙녀의 방에 함부로 들어오면 쓰나요.”

 “뭐. 내가 내 딸 보겠다는데.”

 “아. 하긴 그렇긴 하네요. 어서 와요.”

 

 성녀는 의자를 팡팡-치며 자리를 바로 앉았다. 어디 보자. 우리 아버지 3일 동안 더 잘생겨지셨나? 장난스럽게 두 손으로 얼굴을 잡아도 남자는 무표정이었다. 놓으라는 말도 없었다.

 

 성녀는 장난치듯 이리저리 얼굴을 돌려도 별말이 없었다.

 

 “아. 나 그거 궁금했어요. 아들은 없었어요?”

 “있었지.”

 “그들은 성녀일 수 없잖아요.”

 “그들은 사자(使者)라고 불렸어. 성녀를 대신해 그 자리에 앉았지.”

 “사자랑 성녀 중에 누가 더 많았어요?”

 “비등비등해.”

 

 남자와 여자의 비율이라고 생각하면 좋아. 남자의 대답이 마치자 성녀는 손을 놓고 고개를 주억였다.

 

 “랜덤?”

 “비슷하지.”

 

 남자는 시선을 내렸다. 성녀는 그의 시선이 조금 전까지 제가 공부하던 종이로 향하는 것을 보았다.

 

 성녀는 웃으면서 종이를 넘겼다. 하지만 딱히 큰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닌지 몇 장 넘겨보더니 이내 다시 성녀에게 넘겼다.

 

 오히려 그는 종이의 형태에 관해 물었다.

 

 “불편하지 않아?”

 “책과 다르기는 하지만 이건 이거대로 익숙해요. 자잘한 서류들은 늘 이런 식으로 봤는걸요, 뭐.”

 “그래.”

 “아. 그래도 오래된 책들은 부스럼이 나오는 것 같아요. 훼손하지 않게 보는 건 거의 불가능 하겠더라고요.”

 “고쳐줄까?”

 “이미 사본을 만들고 있어요. 하지만 제가 훼손시키기 전으로 고쳐주었으면 좋겠어요.”

 “내일 보러 가지.”

 “좋아요.”

 

 내 것은 아니었지만. 성녀는 웃으면서 말을 돌렸다. 남자도 딱히 질문은 없었다. 성녀는 그 점이 좋았다.

 

 묻지 않는 것. 알려 하지 않는 것. 그러나 본질은 전부 알고 있는 것.

 

 다른 사람이었다면 질색을 했을 테지만 신은 알고 있으면서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 점을 모른 척하지도 않았다. 그냥 언제나, 그래. 넘어가 주는 것이 좋았다.

 

 기분이 좋아진 성녀는 회상에 잠기듯 잠시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꼭 동화책을 읽는 기분이었어요. 환상적이고 예쁜 그림들과 글 몇 줄. 글보다는 그림에 정신이 팔려서는 한 장을 몇 분씩 보곤 하잖아요. 어린애가 된 기분이에요. 그런데 속으로는 딴 생각이라 그런지 막 못된 생각이 불쑥불쑥 든다니까요?”

 

 회상 속에서 그녀는 깨끗하고 안락한 침실에서 가만히 앉아있었다. 좋아하는 노래가 흘러나오고, 좋아하는 간식과 커피, 좋아하는 옷을 입고 등을 보이는 자신이 그려졌다.

 

 유독 넓은 창 너머로 수많은 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고 빛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창틀에는 누군가가 있었다. 정확하게는 창틀 넘어, 창 아래로 누군가가 있었다.

 

 바쁘게 입을 움직이고, 지시하는 손동작이 보였다. 한 사람의 주위에 여러 사람이 있었지만, 모두가 한 사람만 보고 있었다. 그건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입을 열 면 고개가 끄덕여지고, 손짓하면 시선이 따라갔다.

 

 큰 동작은 없었지만 멀리서 보아도 정갈하고 카리스마 있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저는 그 모습을 어떤 눈으로 보았더라?

 

 성녀는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나 팔랑팔랑 놀기만 했지, 이렇게 공부하는 거 진짜 오랜만에요.”

 “힘들어?”

 

 성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재미있어요.”

 

 허튼소리가 아닌지 성녀는 정말로 꽤 들뜬 얼굴로 웃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언제나 이렇게 열심히 했나? 다른 사람은 이렇게 간절했나? 이렇게 머리싸움하고, 기 싸움하고, 마음이 맞는 사람들을 모아, 뭉쳐 뭉쳐 살아갔나?”

 

 조잘거리는 입술은 정말로 즐거워 보였다.

 

 “다른 사람들이 사는 평범함 일을 한다는 것. 나는 그게 가장 신나요.”

 “왜?”

 “그야 당연히…….”

 

 성녀는 입술 끝을 올렸다.

 

 미묘하게 올라간 입꼬리와 휘어지는 두 눈동자. 불그스름한 뺨과 어둑한 방안. 흔들리는 촛불. 검고 검은 머리카락에 파묻히듯 속 들어있는 얼굴 위에 붉게 자리한 입술에서 쑥스러운 단어들이 튀어나왔다.

 

 “한 번도 그래 본 적이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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