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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나이트 레전드
작가 : 염탁근
작품등록일 : 2016.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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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화
작성일 : 16-07-12     조회 : 713     추천 : 0     분량 : 6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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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롤로그

 

 

 

 봄은 계절의 여왕이라는 칭호에 걸맞게 아름다운 자태를 뽐냈다.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맑고 쾌청했고 그 아래에는 드넓은 초원이 보인다.

 초목이 무성한 초원은 사방이 탁 트여 시원한 느낌을 주었고 바람이 불어옴에 따라 파도치듯 흔들리는 것이 마치 바다를 연상시키기도 했다.

 그 바다 한가운데 홀로 떠있는 외로운 섬처럼 그림 같은 집도 하나 있었다.

 흘러간 노래의 유행 가사처럼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정을 이루어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낭만적인 발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볼 때 약간 불편한 점들이 눈에 띄었다.

 집이 초원 위에 지어진 터라 생필품을 얻기 위해선 도시까지 가야하는데 차도가 없어서 큰 불편을 주었다.

 다행히 도시 쪽으로 가는 길목으로부터 전신주가 이어져 있어 전기 공급이 되고, 집 주변에 꽃밭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 물도 나오는 모양이니 최소한의 문명 생활 조건은 갖춰진 셈이나 도시 만큼 편안하진 않을 것이다.

 이층 양옥인 집 자체도 꽤나 오래 전에 지어진 듯 척 봐도 낡고 허름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초원 위에 지어진 집은 그 존재 자체로 특별하고 편안한 느낌을 풍겼다.

 시멘트와 아파트의 정글로 변해가는 도시와는 확실히 다른 느낌을 주었다.

 인공 구조물이 아닌 자연 구조물, 자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은 분명 힘든일이지만 보는 이에게 동경심을 유발시키는데는 충분했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에게는 옛 추억을 다시 떠올리게 해주었고 젊은 사람들에게는 자연 속의 삶에 대한 매력을 강하게 어필하였다.

 동경심은 세대에 따라 다르게 작용하지만 결국 같은 뜻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넓은 의미로 봐도 사람의 아름다운 자연 환경에 대한 동경심은 어느 시대 어느 장소를 가던지 간에 결코 변하지 않는다.

 “와아~ 여긴 정말 하나도 변하지 않았군.”

 양옥집 앞에 서있던 한 남자가 말했다. 그의 나이는 대충 20대 후반 같아 되어보이는데 인상이 밝고 시원스러워 남성적으로 호감이 가는 스타일이었다.

 가죽 잠바와 청바지를 입은 전형적인 도시 젊은이지만 초원 위의 집을 꽤나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였다.

 “정말 예전에 왔을 때랑 똑같은 것 같네요.”

 노크를 한 남자의 팔짱을 끼고 있던 여자가 말했다.

 그녀는 하늘색 원피스를 입었고 남자 보다 몇 살 연하로 보이는데 차가운 미소가 어울리는 고전적 미인이었다.

 지금은 외모와 잘 어울리는 차가운 미소가 아닌 부드러운 표정을 짓고 있지만 그것 나름대로 충분히 아름답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아빠, 이제 할아버지네 집에 다 온 거야?”

 남자와 여자의 틈 사이에 있던 어린 사내 아이가 같은 또래의 계집 아이 손을 잡고 불쑥 튀어나왔다.

 사내 아이는 건강한 미소가 매력적인 장난꾸러기 같았고, 계집 아이는 그와 정 반대로 조용하고 얌전한 요조숙녀처럼 보였다.

 “여기가 할아버지 집이야. 작년에도 왔었는데 벌써 까먹은 거니?”

 남자는 두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좀 젊기는 했지만 확실히 아이를 가진 부모 같았다.

 아내와 자식이 있는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사랑의 감정이 담긴 미소만으로 다 증명시켜 보였다.

 똑, 똑, 똑.

 남편은 천천히 세 번 정도 양옥집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집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나타나지 않았다.

 “도시로 외출하신건가?”

 “한번 더 노크해봐요.”

  남편의 말에 아내는 한번 더 노크 할 것을 권했다.

 남편은 알겠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아까와 마찬가지로 천천히 세 번 정도 두드렸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열려라, 참깨!”

 아들이 쾌활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가 신중하게 아까와 똑같이 노크를 하는 모습이 아들의 눈에는 마법의 주문처럼 보인 모양이다.

 “후후, 그건 동화책에 나오는 돌문을 여는 주문이잖니.”

 아내는 인자하게 웃으며 아들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남편의 노크를 동심으로 해석한 아들이 너무나 순수하게 보였다.

 “알리바바…….”

 “오, 정답이야. 알리바바와 사십 인의 도적에 나오는 거였지. 우리 딸 참 똑똑하네?”

 조용히 서있던 딸이 한마디했다. 그러자 이번엔 남편이 대경스럽다는 듯이 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딸은 빙긋 웃으며 더 쓰다듬어 달라는 듯 머리를 내밀었다.

 아들 딸은 부모의 칭찬에, 부모는 아들 딸의 귀여움에 취했다.

 한 세대 가족 전부가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은 그렇게 눈부셔 보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끼이익~

 가족들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틈 타 양옥집 문이 천천히 열렸다. 문이 반쯤 열린 상태에서 안에 있는 사람이 문틈을 통해 밖을 내다보았다.

 “누구시오?”

 안에 있는 사람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문은 더 이상 열리지 않았지만 그것이 안에 있는 사람이 가진 적대감 때문에 그런 건 아니다.

 안에 있는 사람으로서는 최소한의 경계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버지, 우리 왔어요.”

 남편이 활기찬 목소리로 말했다. 얼굴에는 무척이나 밝고 즐거운 듯한 미소를 띄고 있었다.

 잠시 후에 문이 활짝 열리면서 누군가 집 밖으로 걸어나왔다.

 얼굴 곳곳에 파인 주름과 희끗희끗한 머리칼로 보아 50대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장년 남자였다.

 “오오, 이게 누구야!”

 장년 남자가 남편을 강하게 끌어 안았다. 그는 남편의 아버지이자 아내에게 있어서는 시아버지가 되며 아들과 딸에게는 할아버지가 되는 사람이었다.

 “문안인사 드리겠습니다, 아버님. 그 동안 별고 없으셨는지요.”

 “허허, 난 잘 지내고 있단다 아가.”

 아내는 시아버지를 향해 공손하게 인사를 올렸다. 시아버지는 너그럽게 웃으며 며느리의 어깨를 토닥였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아이들은 냉큼 달려가 할아버지의 옷 소매를 붙잡았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옷 소매를 잡은 모습은 정말이지 너무나 귀여워 보였다.

 “아이구, 우리 귀여운 아기들도 왔구나.”

 할아버지는 손자와 손녀를 번쩍 들어앉으며 함박 웃음을 지었다.

 아직 할아버지가 되기에는 조금 이른 나이지만 손자 손녀를 빨리 안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무한히 기뻤다.

 “먼 길 오느라 애썼다. 어서 들어오너라.”

 할아버지는 아들 내외를 집안으로 안내했다.

 집안은 바깥에서 본 모습과는 다르게 무척이나 깨끗하고 아담했다. 통풍이 잘되어 선풍기나 에어콘이 필요 없을 정도고, 겨울을 대비한 나무 난로도 보였다.

 1층과 2층엔 각각 방이 두 개 씩 있으며 창고나 여분의 방을 겸용하는 지하실과 다락방이 있었다.

 바깥처럼 도시와는 동떨어진 분위기를 가지고 있지만 왠만한 가정 제품은 다 있었다.

 부엌엔 냉장고와 오븐, 전자&가스 렌지, 전기 밥솥과 기타 주방 보조 용품, 거실에는 텔레비전, 비디오, 오디오, 스피커, 소파 등등 없는 게 없었다.

 “어머니는 어디에 가셨어요?”

 “장보러 도시에 가셨단다. 이따 저녁 때 즘에 돌아오실 꺼야.”

 “그럼 오늘 하루 자고 갈께요. 동생들도 최근에 여기서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왔다고 하던데 전화로 불러도 되겠죠?”

 “허허허, 그거 좋지! 온 가족들이 함께 모여 같은 상에서 밥을 먹는 것도 참 오랜만이겠구나.”

 아들이 어머니와 동생들에게 전화를 하기 위해 자리를 떠났을 때 시아버지는 며느리에게 다가갔다.

 며느리는 차분하고 공손한 자세로 선 채 시아버지가 무슨 말을 할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그런데 아가.”

 “예, 아버님.”

 시아버지가 나직한 목소리로 며느리를 불렀다.

 며느리가 부름을 받고 가까이 다가오자 시아버지는 소파에 앉아 있는 손자 손녀를 번갈아 보다가 이내 능글맞은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우리 아들이 안부 전화를 할 때마다 항상 신혼 여행 온 기분으로 살고 있다고 하던데. 이 시애비가 우리 아기들의 새 동생들을 기대해도 되겠냐?”

 “그, 그이도 참… 아버님에게 무슨 말을 하신 건지…“

 시아버지의 말에 며느리는 남편을 생각하고는 얼굴을 붉히며 몸을 비비꼬았다.

 시아버지는 며느리의 그런 반응을 보고는 그 나이 답지 않게 놀리는 재미를 느꼈다.

 “그나저나 정말 고맙구나, 아가야. 우리 바보 같은 아들 녀석과 결혼해줘서 말이다. 그 녀석은 여자한테 인기가 없어서 평생 장가 한번 못 가보고 혼자 살 줄 알았지 뭐냐.”

 시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을 낮추어 말했지만 특별한 악의는 없었다. 며느리도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특별히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이미 사회 경험이 풍부해 악의가 없는 농담이 친숙한 대화의 조미료가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아니에요, 그이야말로 제게 너무나 과분한 사람입니다.”

 며느리는 부드럽게 웃으며 자리에 없는 남편을 추켜세웠다. 시아버지는 며느리를 대견스럽게 생각하며 인자한 미소를 띄웠다.

 아들이 결혼하여 한 사람의 가장이 되어 가정을 이루었다고 해도 아버지에게 있어선 언제까지나 철부지 아들로 보이는지라 현모양처의 조건을 다 갖춘 며느리가 과분하다고 생각했다.

 “누나, 빨리와~”

 “기, 기다려…….”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다정한 때 잠시 잊혀졌던 손자와 손녀는 어느새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도착했다.

 어린 아이가 밟기에는 계단이 워낙 컸기 때문에 아이들은 최대한 조심스럽게 올라갔다.

 왜 계단을 타고 2층으로 올라가냐면 아이들이 살던 곳은 양옥집이 흔치 않은 도시였기 때문이다.

 도시에는 양옥집보다 더 싸고 좋은 주택이나 빌라, 아파트가 많이 있다. 그래서 도시 사람들은 양옥집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 이유로 아이들에게 있어서 양옥집의 2층은 동심에서 우러난 호기심을 발산할 만한 공간이 되었다.

 어른들이 볼 적에는 단순한 인공 구조물이라고 할지라도 아이의 눈에서 보면 크게 달랐다.

 “별로 다를 건 없어 보이는데. 아래층하고 똑같이 생겼잖아? 엄마랑 아빠랑 할아버지가 아시기 전에 그냥 내려가자.”

 “에이, 그러면 너무 재미없잖아. 엄마랑 아빠랑 할아버지 몰래 올라왔는데 말이야. 누나, 그러지 말고 같이 돌아다니면서 재미있는 거 찾아보자.”

 “알, 알았어.”

 누나가 동생에게 휘둘리긴 했지만 무사히 2층에 도착한 남매는 잠시 동안 이곳저곳을 돌아 다니다가 또 다른 계단을 찾았냈다.

 그곳은 다락으로 이어진 계단으로, 계단 끝에 보이는 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것이 습기가 차서 환기를 시키겠다는 뜻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이들에게 있어서는 어두운 굴로 보여 호기심을 자극시켰다.

 “오, 처음 보는 곳이다. 우리 한번 여기 들어가 볼래?”

 동생은 두 눈을 반짝이며 다락으로 통하는 입구와 누나의 얼굴을 번갈아보았다.

 누나는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의 부탁을 딱 잘라 거절할 수 없는 여린 심성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묵묵히 동생의 말을 들었다.

 “누나, 계단 조심하고 내 손잡아.”

 “으, 응…….”

 동생은 차분하고 침착하게 다락으로 통하는 계단에 올라섰고 한발자국 씩 뗄 때마다 누나의 손을 잡아 이끌어 주었다.

 남매가 다락 안으로 들어갔을 때는 시간적으로 훤한 대낮이었지만 빛이 잘 들지 않아 침침했다.

 다락의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미세한 빛. 남매는 그곳을 중심으로 빛에 의지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난 왼쪽을 찾을 테니, 누나는 오른쪽을 찾아봐.”

 “응.”

 창가 가까이 좌우로 오래된 가구들이 쌓여 있고 아이들은 그 속에 무엇인가를 열심히 찾아 헤맸다.

 허름한 옷장이나 반쯤 부서진 책상 같이 큰 가구는 손을 델 엄두를 내지 못했지만 옷장문과 서랍 정도는 열 수 있었다.

 “앗!”

 “무슨 일이야?”

 한참 동안 다락 안을 뒤적이다 동생이 반응을 보였다.

 누나는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닦으며 동생 쪽으로 걸어갔다. 동생은 말없이 고개를 저으며 눈앞에 있는 물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것은 백과사전 두 세 개를 쌓아 놓은 것 같은 크기와 두께를 가진 책으로 무척 낡아 빛이 바래있었다.

 “와, 책이다!”

 동생은 두 눈동자를 반짝였다.

 유치원에 다닐 정도의 나이라 한글을 다 떼지는 않았지만 그림책과 동화책 정돈 충분히 혼자 읽을 수 있었으며 또래 아이들 중에서도 유난히 독서를 좋아했기 때문에 책을 좋아했다.

 “우리 엄마한테 혼날지도 몰라. 우리 옷이 다 더러워졌잖아.”

 누나는 동화책 보다 지금 상황에 대한 걱정이 더 앞섰다. 다락에 있는 동안 입고 있던 옷이 먼지투성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기억으로 이런 일이 생기면 아빠는 하하 웃으며 넘어가 주었지만 엄마는 정 반대였다.

 엄마는 평소엔 부드럽지만 한번 화나면 무척 무서워졌다.

 “혼날 때 혼나더라도 보고 나서 혼나자! 어차피 혼나게 돼있잖아?”

 동생은 정말 장난꾸러기 같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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