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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나이트 레전드
작가 : 염탁근
작품등록일 : 2016.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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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화
작성일 : 16-07-12     조회 : 461     추천 : 0     분량 : 6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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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를 제외한 다른 마왕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알시아의 선택에 있어서 조언은 해줄 수 있지만 강요를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냥 가만히 앉아 알시아의 대답을 기다렸다.

 “알시아. 밤하늘의 아름다움을 지배하는 자의 후계자여. 그대의 선택은 무엇인가?”

 카오스의 묵직한 음성이 회의실 안을 비추던 불꽃을 꺼뜨렸다. 주위는 일순간 깊은 어둠에 잠기었지만 마왕들은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의 시선은 모두 알시아에게 집중되었다. 알시아는 잠시 동안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그것은 카오스의 질문을 받은 때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선택을 하지 않아도,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전 그래도 후회하지 않겠습니다.”

 알시아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녀는 지금 자기가 한 말대로 주저하지 않았다.

 평상시와는 다르게 고개를 똑바로 들고 12 마왕들을 쳐다보았다. 그 어느 때보다 더 당당한 모습으로 말이다.

 “전 문 나이트 마스터의 이름을 이어받은 자로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지배자들의 선택을 나 자신의 선택으로 받아들이리라는 것을 맹세합니다.”

 알시아의 당당한 목소리가 테이블 주위에 가라앉았다. 그녀는 처음으로 마계 회의에서 뚜렷하게 자기 주장을 펼쳤다.

 더 이상 주저하거나 긴장하지 않았다. 스스로 선택을 한 이상 무슨 일이 있어도 다 이겨낼 것이라고 굳게 다짐했다.

 “그럼 전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알시아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 안을 떠났다.

 형식적인 회의는 끝나지 않았지만 그녀 자신의 선택에 대한 기로가 결정되었기 때문에 아무도 붙잡지 않았다.

 알시아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쯤 12 마왕들은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빈 허공을 바라보았다.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그곳에서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다.

 “그가 생각나는군.”

 “그 분은 항상 필요할 때 자리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찾아나서기도 전에 불쑥 나타나 어느새 일을 다 해결해 놓았어.”

 “그래서 자리에 없을 때도 의지가 되었지.”

 “이름을 부르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사기가 올랐다.”

 “분하긴 하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돼.”

 “그 분에게 있어선 승부운 같은 것이 필요없지.”

 “강한 육체와 강한 마음의 조합…….”

 “뭐하나 부족한 것이 없다…….”

 “너무나 완벽했기 때문에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위축되었습니다.”

 “한 명의 마왕으로서 부끄러운 때였지.”

 “그렇다고 해서 융통성 없고 고지식하진 않았어. 누구보다 더 감성이 뛰어나셨지.”

 “힘의 법칙으로 따져 볼 때 제일 위에 있음으로서 진정한 무력의 표본이 되었다.”

 “마계의 모든 것을 대표했어…….”

 12 마왕들은 차례대로 한 마디씩 한 다음 묘한 그리움을 느꼈다.

 그것은 곧 그들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과 마족의 미래에 서광을 암시해주기도 했다.

 “그 아이는 부친의 피를 이어 받은 아이다. 마계의 새로운 대표자로서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고귀한 혈통과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만으로 충분한 조건을 갖추었다.”

 잠시 동안의 잡담에서 마지막을 장식한 건 카오스였다.

 다른 마왕들과는 다르게 좀 실리적으로 말을 한 것 같지만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보다 더 알시아에게 기대를 많이하는 그였다.

 

 

 

 

 

 

 

 No. 3 - 마계의 용사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은 어둠. 검은 공간 안에 터널을 뚫고 바닥을 깐 다음 입구를 몇 개 만들어 놓으면 그것이 바로 마궁이 되리라. 한참 동안 마궁의 복도에 서있던 패트릭은 그렇게 짧은 감상을 마쳤다.

 “슬슬 돌아오실 시간이 된 것 같은데…….”

 벽 한쪽 귀퉁이에 붙은 보라색 불꽃이 커다란 철문을 비추고, 그 문 앞에 패트릭이 홀로 서있다.

 주인인 알시아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신분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주인과 함께 들어가지 못했다.

 그가 할수 있는 일은 그저 주인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뿐이다.

 끼이익…

 차가운 금속음과 함께 철문이 천천이 열렸다. 열린 철문 너머로 알시아의 모습이 보였다.

 지금 그녀의 얼굴에는 슬픔과 기쁨, 불안. 기대감 등의 여러 가지 감정이 느껴졌다.

 애석하게도 패트릭으로서는 전혀 알 수 없는 모습이었다. 너무 많은 감정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어서 오십시오.”

 패트릭은 목례를 올린 뒤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알시아는 그의 인사를 보지 못했는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패트릭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알시아의 안부를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부드러운 미소로 대신 답했다.

 그러자 패트릭도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그녀가 스스로 말을 할 때까지 기다리기로 마음 먹었다.

 기다리는 것에는 이미 익숙했으니 말이다.

 두 사람은 어두운 복도를 걸으며 방으로 돌아갔다. 회의실에 도착했을 때처럼 방까지 가는 시간은 그리 많이 걸리지 않았다.

 패트릭이 먼저 나아가 방문을 열자 알시아는 갑자기 제자리에 멈춰선 채 잠시 동안 깊은 상념에 젖었다. 그리고는 아주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용사가 되어 달라더군요.”

 알시아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패트릭은 그녀가 한 말의 의미를 알겠다는 듯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그녀만큼이나 용사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과 관련된 지식은 꽤 높은 편에 속했다.

 “용사라…….”

 패트릭은 용사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가 알고 있는 바로는 용사란 무력한 이를 돕고 약한자를 지키는 개인이 아닌 전체를 위해 싸우는 강한 전사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그들은 자신들이 악의 원흉이라 치부한 마왕을 숙적으로 삼고 닥치는대로 마족을 죽였다.

 마족의 뼈와 살을 분리하면서 재물을 약탈해 이속을 챙기니 정말 잔혹한 무리가 아닐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12 마왕들은 그런 용사의 탄생을 바라는 것 같았다.

 그것도 마족으로서는 아직 어린 나이인 알사에게서 말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일까?

 용사와 마왕의 싸움이 벌어지는 상황을 분석해 보자면 혼란스럽고 힘든 지금의 시기와 딱 들어 맞았다.

 다만 마족과 인간 중 죽고 죽이는 자가 뒤바꼈을 뿐 근본적인 배경은 거의 똑같았다.

 하지만 용사에게 부모를 잃은 자식을 원수인 용사처럼 만는는 건 가혹한 일이지만 어디까지나 사적인 일에 속한다.

 공적인 입장에 선 자들은 절대 개인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억측을 하자면 미리 계획된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다.

 게다가 마왕들의 회의에서 결정된 대안이니 알시아로서는 쉽게 거부하지 못할 것이다.

 “정말 어려운 선택을 하셨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생각을 해본 패트릭은 기운이 쭉 빠졌다.

 “결국 우리들도 그들과 같은 끝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걸까요?”

 패트릭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리 마왕들의 결정이라고는 하지만 너무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마족은 본질적으로 감정 표현을 잘 안하지만 최소한의 정도는 지키기 때문이다.

 “아니에요.”

 알시아는 패트릭의 말을 부정하듯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지금 그녀의 두 눈동자는 어느 때보다 더 의지에 차 빛나고 있었다.

 “지금 우리들의 과제는 새로운 길의 발견입니다.”

 

 ***

 

 어두운 허공에 뜬 보라색 불꽃. 불꽃이 다시 나타났다는 것은 마왕들의 회의가 끝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불꽃에 비추어 보라색으로 물든 원탁의 한 자리가 비어있었다. 그곳은 방금 전 마계의 용사로 선택된 알시아의 자리였다.

 “그 아이는 강합니다.”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말이야. 하지만 자각을 못하는 것 같더군.”

 온 몸에서 차가운 냉기를 뿜는 푸른 마왕, 그와 반대로 열기를 뿜는 붉은 마왕. 속성으로 따져 보면 상극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하는 말은 죽이 잘맞았다.

 “그 말대로야, 이번 임무를 수행할만한 충분한 능력이 있지. 우리들은 기다림의 보상을 충분히 받을 수 있을 거야. 내가 직접 보증하겠어. 이건 정말 가치 있는 투자라고.”

 금가면의 마왕이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딱딱 치며 말했다. 가면 아래로 보이는 입 주변엔 미소가 담겨 있다.

 그는 마치 도박을 하는 것처럼 알시아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 아이는 알고 있어…“

 “우리들의 과제가 무엇인지 말이다…….”

 백가면 마왕과 흑가면 마왕이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처음에 녹슨 금속음을 내던 목소리가 지금은 마치 교회 조종소리와 같이 어둡고 조용했다.

 서로 상반된 모습의 가면을 쓰고 있지만 말투나 음성은 거의 똑같았고 무엇보다 말하는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마치 쌍둥이 같이 말이다.

 “기특한 녀석이야. 애송이답지 않게 아는 게 많지. 분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인정할 수 밖에 없어.”

 은발 마왕의 얼굴이 아련한 추억에 잠겼다. 그러면서 인상은 묘하게 일그러졌다.

 사나운 눈매와 굵은 눈썹을 치 뜬 게 호전적으로 보였으나 우수에 젖은 금색 눈동자는 차분했다.

 일그러뜨린 인상만 핀다면 꽤 수려한 용모였다.

 “강한 무력.”

 “뚜렷한 목표 의식.”

 “고귀한 피.”

 삼면 마왕의 세 얼굴이 서로 다른 빛의 눈농자를 번뜩이며 말했다.

 세 얼굴이 입술을 움직이며 차례대로 말하는 것이 기계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불러 일으켰다.

 “그건 바로 용사가 되기 위한 세 가지 조건이지…….”

 검은 후두를 눌러 쓴 마왕이 허공을 바라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여전히 그의 목소리는 너무나 음울해 듣는 이의 기분을 가라앉게 만들었다.

 “킥킥킥, 암 그렇지. 그렇고 말고. 그 아이는 용사가 되야해. 안되면 곤란하다고.”

 피에로 복장을 한 마왕은 여전히 키득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러다 웃음 소리가 점점 더 커지려 하자 스스로 입을 막고 꾹 참았다.

 웃기게 생긴 것 만큼 웃음이 많은 모양이었다.

 “음…….”

 카오스는 말없이 천장을 바라보았다. 다른 마왕들은 그에 상관없이 계속 잡담과 의견을 주고 받았다.

 의논할 건 없지만 대화를 나눌 하나의 주제가 생겨 회의는 끝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또 흘러 마침내 회의실 안에 있던 보라색 불꽃이 모두 꺼졌을 때 마왕들의 대화는 최고조에 달했다.

 그때까지 카오스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거기까지.”

 카오스가 천천히 한 손을 펼치자 다른 마왕들은 자연스레 입을 다물었다. 회의장 안에는 정적이 흐르자 그는 다시금 천장을 바라보며 침묵을 지켰다.

 마왕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카오스의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이채롭게 빛나는 두 금색 눈동자는 그가 지금 회상에 잠겨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

 

 마계의 어둠에 익숙해져 있는 카오스조차 한치 앞도 분간하지 못한 짙은 어둠 속에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귓가에 들리는 세 가지 목소리가 있었다.

 "자네에게 어려운 문제라는 건 잘 아네.“

 "하지만 너는 꼭 선택을 해야돼!“

 "당신의 대답을 들려주십시오."

 세가지 질문. 카오스는 질문을 한 자들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말해야 했다.

 의무이자 책임, 약간의 강압과 운명적 필연이 뒤섞인 복잡한 구조의 상황이지만 분명한 것은 대답 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절대로 그냥 넘어갈 수는 없을 걸세.”

 “다음 기회라는 건 없다.”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불가항력적. 제 아무리 마왕이라고 하더라도 결코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수레바퀴. 운명의 수레바퀴란 말 만큼 단순하고 진부한게 없지만 누구도 그것에게서 도망치진 못했다.

 아무리 카오스가 강력한 힘을 가진 마왕이라고 할지라도 운명의 수레바퀴에선 벗어날 수 없었다.

 “자네의 욕구.”

 “그리고 다른 모든 이의 욕구.”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해선 그 방법 밖에 없습니다.”

 질문자들의 말이 백 번 옳았다. 절대신이 아닌 이상 모두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그 방법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시작과 하나의 끝의 전철을 밞는 것이다. 아무 것도 바뀌지 않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무엇을 망설이는가?”

 “부끄러운가?”

 “아니면 두려운 건가요?”

 망설임과 부끄러움, 두려움 같이 작은 감정은 절대 아니었다. 뭔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감정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딱 두 번 두명의 인물에게 느낀 묘한 감정이었다.

 “지켜보겠네.”

 “너희들의 믿음이.”

 “사라질 때까지 말입니다.”

 그것이 질문자들의 마지막 세 마디 말. 아직 대답이 나오지 않았지만 질문자들은 그렇게 사라져갔다.

 그래서 카오스는 시간을 벌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재로는 이제 더 이상 남은 시간이 없었다.

 더 이상 뒤로 물러서지는 못한다. 앞으로 가야만 하고 선택을 해야 한다.

 그의 선택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선택일 수도 있지만 분명한 건 모든 선택은 하나의 답으로 통한다는 것이다.

 선택에 앞서 주저한다는 것 또한 모든 이들의 공통된 사항이다. 그게 연륜있는 마왕이든 신참내기 마왕이든 아주 평범한 인간이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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