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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나이트 레전드
작가 : 염탁근
작품등록일 : 2016.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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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 화
작성일 : 16-07-14     조회 : 473     추천 : 0     분량 : 6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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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메랄드가 사파이어의 말을 거들었다. 아무래도 뒤늦게 의구심이 든 모양이다. 상황은 점점 더 알시아 일행에게 불리한 쪽으로 돌아갔다.

 ‘큰, 큰일났어요.’

 알시아는 마음 속으로 중얼거렸다. 되도록이면 토파즈 일행들과 친구가 되고 싶었지만 이대로 계속 의심을 한다면 정말 큰일이다.

 무엇인가 지금의 상황을 타개해 나갈 방책이 필요했으나 마땅히 좋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 선에서 다 해결하겠습니다.’

 패트릭은 텔레파시를 통해 알시아를 안심시켰지만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같은 계열의 마법이 아닌 이상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설명을 하는 것은 애초에 무리였다.

 마법의 전문가라면 또 모를까 인간들이 쓰는 마법과 완전 다른 차원의 마법을 사용하는 패트릭으로서는 달리 할말이 없었다.

 “마법사라면 그런 것 정도는 간단히 할 수 있어야 하는 건데.”

 “성직자도 자신이 습득한 마법 계통의 원리에 대한 설명 정도는 할 수 있답니다.”

 사파이어와 에메랄드의 질문은 점차 집요해졌다.

 마법사로서 자기가 듣도 보지 못한 마법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원만한 관계를 위해서라면 패트릭은 그녀들의 질문에 대답해야할 의무가 있었다.

 “뭐 그런 건 아무래도 좋으니 우선 이곳에서 나가자. 여기가 막다른 곳이니, 한 2 시간 정도 거리의 통로를 메우면 된다고 보고하면 되겠네.”

 토파즈가 사파이어와 에메랄드의 질문 공세를 끊었다. 순간 알시아와 패트릭의 눈에는 그녀가 구원의 여신으로 보였다.

 “웬일이지? 도적이라면 이런 미궁을 그냥 지나칠리는 없을 텐데.”

 “맞아요. 토파즈님은 원래 이런 위험한 상황을 즐기잖아요.”

 사파이어와 에메랄드의 질문 공세는 토파즈에게 이어졌다.

 그녀가 바톤을 이어 받아 시달리는 동안 알시아와 패트릭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차분하게 주위를 살폈다.

 뚝.

 어두운 천장에서 무엇인가 떨어져 내리고 있다. 알시아는 고개를 천천히 들어 천장을 쳐다보았다.

 어느 사이에 검은 물체가 천장을 가득 뒤덮었다. 그것은 천장 이외에도 바닥과 벽을 타고 기고 다니고 있었다.

 ‘블랙 푸딩(Black Pudding)입니다. 저것들에겐 식욕 이외의 감정이란 것이 없지요. ’

 패트릭이 외알 안경을 살짝 들어 보이며 그 검은 물체의 정체를 설명 해주었다.

 ‘미노타우로스 보다 더 지성이 떨어지는 하급 마족으로 직접 사육하지 않은 이상 설득은 불가능합니다.’

 패트릭의 말이 백 번 옳았다. 블랙 푸딩처럼 지성이 없는 마족은 절대 설득할 수 없었다.

 알시아는 블랙 푸딩의 움직임을 경계하면서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섰다.

 꾸르르르르….

 탁한 흑색 점액질은 오랫동안 아무 것도 삼키지 못한 듯 검은 액체를 뚝뚝 떨어트리고 썩은 악취를 풍기며 아주 느릿느릿한 속도로 일행들을 향해 기어왔다.

 “보물과 명예도 소중하지만 그보다 생명이 더 값진 거야. 아직 조금 밖에 안 들어왔는데 저 정도의 끈적이들이 나온다면 말 다한 거지.”

 “블랙 푸딩 같은 종류의 마물을 상대하려면 불과 냉기 계열의 공격이 필요할텐데. 성직자가 사용하는 마법 중에서는 그 두가지 속성을 대신할 것이 없어요.”

 “이렇게 좁은 장소에서 그런 마법을 사용한다면 아군이 당할 위험성이 더 크지.”

 상황이 나빠지자 패트릭의 마법 이론은 토파즈 일행의 관심에서 벗어났다. 지금은 어떻게 블랙 푸딩 무리를 헤치고 탈출하냐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뭐야, 여기서 그냥 나가면 어떡해?”

 “너희들 촌장님의 명령에 불복하겠다는 거야?”

 지금까지 도망치고 비명만 질러 왔던 인간 전사들이 뭘 잘못 먹었는지 토파즈들을 질책했다.

 그녀들은 하나같이 차가운 얼굴로 혀를 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희는 당신들이 사는 마을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니 그런 투의 말씀은 삼가 해주세요. 우리는 어디까지나 의뢰를 받고 왔을 뿐 촌장님의 명령을 받은 것은 아니랍니다.”

 “그럼, 그럼. 공과 사는 마땅히 구분해야지.”

 토파즈 일행들이 하는 말은 지극히 옳았으나 인간 전사들은 쉽사리 승복하지 않았다. 남자로서의 자존심을 더 이상 억누를 수 없었다.

 “아직 나이도 어린 주제에 정말 버릇이 없군.”

 인간 전사 한 명이 짜증을 내며 노골적으로 비난을 가했다. 하지만 토파즈 일행들은 화를 내지 않았다.

 그의 도발에 코웃음을 치며 조소를 보낼 뿐이었다.

 “나이가 많은 건 자랑이 아니지. 그에 합당한 능력이 있어야 존경받는 거야. 이런 미궁 안에선 격식 따윈 필요 없어. 격식을 차리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죽을 지도 모르지. 여기에선 언제 어디서 누가 죽었는지에 대해서도 알려지지 않아. 알아듣겠어?”

 사파이어가 인간 전사들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조용하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두 눈동자는 매섭게 빛났고, 그 모습을 본 인간 전사들의 입은 자동으로 다물어졌다.

 “마법도 거의 다 떨어져 가는 상황에서 더 이상의 미궁 탐사는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야.”

 “애초에 당신들이 잘하셨다면 마법이 바닥날 리도 없었겠지요.”

 “가고 싶으면 아저씨들끼리가. 우린 돌아갈 테니까 말이야. 돈 보단 생명이 더 중요하다고.”

 토파즈 일행은 같은 동료임에도 불구하고 인간 전사들의 말을 철저하게 씹었다.

 하지만 그건 이유없는 무시가 아니었다. 인간 전사들도 찔리는 구석이 있는지 전혀 반박하지 못했다.

 “싸우지들 마십시오. 지금 중요한 것은 탈출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랍니다.”

 패트릭의 말에 일행들은 다시 긴장하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블랙 푸딩 무리를 바라보았다.

 그것들은 이동 속도가 느리지만 쉬지 않고 움직였다.

 멀리서보면 하나의 큰 물체로 뭉쳐 있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몇 가지 개체로 나뉘어져 있는 모습이 보인다.

 한 마리 당 크기는 약 3 미터 정도. 어림잡아 열 마리 정도 되어 보이는 블랙 푸딩들이 통로를 메우면서 앞으로 계속 전진해 왔다.

 “난 끈적이 종류가 싫어. 꼭 빈민가 뒷골목에 주정뱅이가 토한 술찌꺼기 같이 생긴 것들이, 으윽…….”

 토파즈가 눈썹을 찡그리며 노골적으로 싫다는 표정을 지었다.

 블랙 푸딩은 보통 사람이라면 누가 보더라도 혐오스러울 정도로 역겹게 생겼다.

 “이제 어떻게 하지? 다들 좋은 의견이 있으면 좀 말해봐.”

 토파즈가 나서서 일행들의 머리를 모았다. 하지만 그래도 달리 좋은 의견은 나오지 않았다.

 일단 이곳에서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들어왔던 일직선 통로로 다시 나가는 방법밖에 없었다.

 하지만 블랙 푸딩이 위와 아래, 좌측의 벽면을 타고 기어오기 때문에 큰 위험이 뒤따랐다.

 “블랙 푸딩에게는 불과 냉기 계열의 마법 밖에 통하지 않습니다.”

 “그건 모험가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 하지만 난 여기까지 오면서, 이 안에서 쓸 수 있는 공격 마법은 다 써버렸어.”

 “그, 그런…….”

 알시아와 패트릭에겐 마족이란 사실을 숨기고 블랙 푸딩을 무찌를 만한 방법이 없었다.

 마법도 거의 다 떨어진 토파즈 일행들도 블랙 푸딩 앞에선 무력했다.

 “흥~모험가란 것들이 겨우 진흙덩어리한테 쫄다니.”

 “저, 저 정도면 우리 둘 만으로도 충분히 해치울 수 있다고.”

 일행들의 간이 회의는 진지했지만 그것을 코웃음을 치며 그 말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바로 검과 창을 든 인간 전사들로 지금까지 계속 짐만 되었던 주제에 의기양양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간다!!!”

 인간 전사들이 각자 무기를 바로 잡고는 곧장 기합을 내지르며 블랙 푸딩을 향해 달려갔다.

 그 순간 토파즈 일행들의 동공이 커지며 그 안에 놀람이란 단어가 비춰졌다.

 꾸르르르…

 블랙 푸딩 무리는 창 검을 들고 달려드는 인간 전사들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이 꾸물거리며 움직였다.

 “기다려~이 멍청이들아! 그것들은 너희들처럼 약하지 않다고!”

 인간 전사들은 사파이어의 처절한 외침을 가볍게 씹어 주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용맹을 떨치는 게 아니라 만용을 부리는 거였다.

 그들이 만용의 대가를 톡톡히 치루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No. 10 - 순간의 실수가 초래한 일

 

 

 

 푸욱!

 인간 전사들의 창과 검이 검은 점액질로 이루어진 몸통을 찔렀다. 블랙 푸딩은 반격은커녕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이외로 공격을 쉽게 적중시켰고 블랙 푸딩 또한 움직이지 않자 인간 전사들은 의기양양했다.

 몸은 그대로 있고 고개만 돌려서 일행들을 쳐다보며 당당하게 말했다.

 “너희들 좀 부끄러운 줄 알라고. 이런 진흙 덩어리가 뭐가 무섭다고 그렇게 벌벌 떨어? 이거봐, 아주 간단하게 해치웠잖아.”

 “그, 그래. 별거 아니었어.”

 인간 전사들은 지금 무척 거만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토파즈 일행들에게 멸시당하면서 쌓이고 쌓였던 한을 그렇게 푸는 것 같았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행동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일행들의 관심사가 다른 곳으로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아저씨들. 다음에 태어날 때는 좀 더 강해지라고.”

 “부디 어둠 속에서 방황하지 마시고 무사히 신의 품으로 돌아가시길 바랍니다.”

 토파즈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고, 에메랄드는 눈을 감으며 양손을 모았다.

 그 두 사람에 의해 조의의 대상이 된 인간 전사들은 불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멀쩡하게 살아있는데 그런 말을 들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뭐, 뭐야?”

 블랙 푸딩에 박힌 검과 창이 빠른 속도로 녹아 버렸다. 당황하며 소리칠 때쯤에는 이미 다리가 검은 점액질에 잠식되고 난 후였다.

 검은 블랙 푸딩은 빠른 속도로 다리를 타고 올라가 전신을 덮기 시작했다.

 “아아악!”

 구슬픈 비명소리와 함께 검을 든 전사 한 명이 순식간에 블랙 푸딩에게 삼켜져버렸다.

 그리고 살과 피가 타는 냄새를 풍기며 형체도 없이 녹아버려 검은 점액질에 흡수되었다.

 창을 든 전사는 벌벌 떨며 동료가 당하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꾸물꾸물…

 블랙 푸딩들은 오래 만에 삼킨 먹이를 음미하기도 전에 또 다른 먹이감을 덮쳤다.

 두 다리로 서있는 인간처럼 세로로 우뚝 서니 점액질의 파도가 일어나는 것 같았다.

 “이 멍청이, 살고 싶으면 도망가!”

 “으아악-”

 사파이어의 날카로운 외침에도 불구하고, 창을 든 전사는 사방에서 밀려오는 블랙 푸딩에게 먹혀 먼저 간 동료의 전철을 밟았다.

 인간 전사 두 명은 그렇게 별다른 활약도 해보지 못하고 황천길로 떠났다.

 꾸르르르…

 블랙 푸딩들은 거의 다 녹아가는 그들의 주검을 되씹으며 이번엔 토파즈 일행과 알시아들이 서있는 쪽으로 기어갔다.

 지성이 없는 하등 생물로서 식욕 하나로 살아가는 블랙 푸딩에게 포만감 따위는 없었다.

 “오, 신이여. 부디 당신을 믿고 따르는데 충실한 이들에게 올바른 길을 열어 주시길 바랍니다.”

 에메랄드는 두손을 모아 신에게 기도를 했다.

 그리고 사파이어는 블랙 푸딩들의 움직임을 계속 주시했고, 알시아와 패트릭은 무엇을 해야할지 몰라서 가만히 있었다.

 “너무 소란을 피울 필요는 없어. 지금의 상황, 점점 재미있어 지는 것 같지 않아?”

 토파즈는 긴장감이 없는 얼굴로 검지 손가락을 척 치켜 들었다.

 여유 있게 웃고 있는 걸로 보아 아무래도 지금의 어려운 상황을 즐기고 있는 모양이다.

 “토파즈, 넌 그 발언에 합당한 타개책을 가지고 있겠지?”

 사파이어가 차갑고 딱딱한 말투로 물었다. 토파즈는 대답 대신 품안에 손을 집어넣어 무엇인가를 척 꺼내들었다.

 “헤헤, 너희들 말이야. 불 위를 걸어본 적이 있니? 나한테 아주 좋은 생각이 있어.”

 씨익 웃고 있는 토파즈의 손에 유리로 만들어진 둥근 병이 하나 들려 있었다.

 알시아와 패트릭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것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게 뭐죠?”

 “오일(Oil)이야.”

 토파즈는 웃는 얼굴로 알시아에게 답했다. 그러자 에메랄드와 사파이어의 안색이 확 변했다.

 오일은 모험가에게 필수품 중 하나로 짧게 풀어 말하자면 화염병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의 상황을 토파즈와 오일로 분석해 볼 때 나오는 결론은 딱 하나였다.

 “설, 설마 또 그 방법을 쓰시는 건 아니겠지요?”

 에메랄드의 눈썹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토파즈의 좋은 생각이란 것에 대한 불신감을 감추지 못했다. 내색을 하진 않았지만 사파이어도 마찬가지였다.

 “괜찮아,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나만 믿으라고!”

 토파즈는 씨익 웃으며 자신의 가슴을 팡팡 처보였다.

 다른 일행들은 그녀가 도대체 무엇을 믿고 큰 소리를 치는 건지 몰랐지만 별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가만히 있었다.

 “우리에겐 믿음직한 전사가 있잖아?”

 토파즈가 미노타우로스의 굵은 팔뚝을 툭툭 치며 말했다. 그러자 일행들의 시선은 일제히 미노타우로스에게 향했다.

 미노타우로스는 어리둥절한 듯이 콧김을 씩씩 뿜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알시아와 패트릭 역시 그녀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하는지 몰랐지만 같은 동료인 사파이어와 에메랄드는 대충 눈치챈 것 같았다.

 “저 녀석을 어떻게 믿지?”

 사파이어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미노타우로스를 쳐다 보았다.

 같은 마물이 아니라 종족이 달라도 완전히 다른 인간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그런 것이다.

 “이 비스트 마스터 꼬마랑 같이 있는 이상 문제없잖아?”

 토파즈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그러자 사파이어와 에메랄드는 손뼉을 탁 치며 탄성을 질렀다.

 이제는 그녀의 말에 납득을 한 듯 고개까지 끄덕여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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