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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나이트 레전드
작가 : 염탁근
작품등록일 : 2016.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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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4 화
작성일 : 16-07-14     조회 : 456     추천 : 0     분량 : 6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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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시아는 우선 그가 어떤 마족인지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일단 해골 을 가지고 있으니 종족은 언데드(Undead)지만 마치 생전에 살점이 남아 있을 때처럼 웃고 있는 듯한 표정이 뭔가 특이해보였다.

 원래 대부분의 언데드들은 자의식과 감정이 없고 눈동자가 죽어 있는 것이 일반적인 공통점이지만 저 해골은 표정 변화가 있고 말도 할줄 알며 눈알도 생생했다.

 “리치(Lich)이신가요?”

 알시아가 말했다.

 리치면 언데드 중에 최상위에 속하는 강력한 마족으로, 마계 마족인 자신에게 위해를 가할리는 없다고 생각한 다음의 물음이었다.

 “내 소개가 늦은 것 같군. 난 자네가 보는 것 같이 리치야. 아니 보통 리치는 아니고, 아크 리치(Arch Lich)정도라고 할수 있지. 정식으로 소개를 하자면 이 변화의 미궁을 지배하는 아크 리치 ‘리케이르’ 라고 하네.”

 리케이르가 자기 소개를 하자 알시아는 얼굴 빛이 변했다.

 그가 아크 리치라서 두려운 것이 아니라 자기가 무슨 실수를 저지른 것은 아닌가 하고 자책과도 같은 것이었다.

 보통 리치가 아니고 아크 리치라면 마계의 상급 마족과 필적하는 능력을 갖춘 매우 강력한 언데드다.

 아크 리치는 고위 마법사나 성직자가 불사를 다루는 고대의 비법을 습득해 자의로 변한 것인데 언데드의 유일한 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 신성마법 조차 자유자재로 사용할 정도로 높은 능력을 가졌다.

 어떤 세계를 가든지 간에 현존하는 수가 극히 드물고, 평균적으로 나이도 엄청나게 많이 먹은 상태라 마왕들에게 현자라고 불려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알시아는 리케이르 몰래 평소 버릇대로 손바닥에 침착하자 라는 단어를 쓴 다음 먹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지금 자기가 생각한 것이 맞다면 좀 더 예의를 갖추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물론 알시아의 성격상 그런 일을 할리는 없지만 아무리 마왕이라고 해도 아크 리치 정도 되는 상급 언데드를 함부로 대하지는 못했다.

 “알시아 문 나이트 마스터. 변화의 미궁을 지배하는 분이신 아크 리치 리케이르님께 정식으로 인사 올리겠습니다.”

 알시아는 엄숙한 목소리로 말하며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그녀의 바른 인사성에 리케이르는 흡족한 듯이 껄걸 웃다가, 해골로 표현할 수 있는 것 중 최고로 인자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예의가 무척 바르군. 하지만 부패해 가는 산 송장 따위에게 그렇게 격식을 차릴 필요는 없단다.

 너무 부담 갖지 말고 편하게 대하게나. 나도 그편이 더 나으니 말일세.”

 리케이르는 해골 얼굴에 자조적인 미소를 띄웠다.

 옷소매 앞으로 빠져 나온 손은 앙상하기 짝이 없는데 손가락을 까딱거리고 있는 걸 보면 그것이 언제 떨어질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알시아는 리케이르의 초라한 모습과 자조적인 미소를 산 송장이란 단어와 비교하면서 조금 당황하게 되었다.

 자신이 그에게 한 말 중에 뭔가 잘못된 것이 있어서 그런 말을 듣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건 그렇고… 자네는 무슨 일로 이 변화의 미궁에 발걸음을 하게 되었나? 만약 이 산 송장을 찾아온 거라면 그리 좋은 대답은 해주지 못할 걸세. 이제는 나이가 너무 들어서 기억력도 나빠졌고, 힘쓰는 일도 못하거든.”

 리케이르가 말했다. 말의 내용이나 음성을 들어보면 힘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크 리치라는 것 하나만으로 뭇 마족들에게 경외의 대상이 되는 것은 자명한 이치인데 어째서 그렇게 나약한 말을 하는 것인가? 알시아는 그것이 궁금했다.

 하지만 선뜻 물어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녀는 실례를 무릅쓴 용기 같은 건 부리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아크 리치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 만큼 대단한 게 아니야. 아무리 불노불사라고 하더라도 인간의 몸에데 주문을 실행한 것이니 한계가 있지. 해골이 된 후에 얻는 불노는 쓸모가 없어. 오래 살다보면 불사가 귀찮아 질때도 오지.”

 리케이르는 알시아의 심중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의 의문이 완전히 풀릴만큼 시원스러운 답변을 해주었다.

 그는 자기가 아크 리치란 것에 대해 결코 자랑하지 않았다.

 본래 리치가 세상의 일에 초연한 자세를 취하는 법이지만 리케이르처럼 자신의 일에도 집착하지 않는 것은 참 드물었다.

 지금의 알시아로서는 그의 말에 담긴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몰랐지만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상대하기 힘든 인물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문제는 알시아 자신이 맡은 첫 번째 임무에 있다.

 ‘지하 미궁에 사는 현자에게 조언을 들어라’

 불현듯 떠오르는 카오스의 말, 난생 처음으로 맡는 임무를 수행하기에 긴장이 되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그에 앞서 앞길이 막막하기도 했다.

 도대체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하였는가를 물어야할지 영 감이 잡히지 않았다.

 윗사람은 그냥 ‘현자에게 조언을 듣거라’ 라는 간단한 명령을 내릴 수 있지만 수행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그 말은 너무나 무책임했다.

 집단의 존망을 좌우하는 중대사라면 윗사람들이 직접 와서 들어야 할텐데 구태여 아랫사람에게 시키는 까닭은 뭘까?

 뭐 그렇다고 알시아가 마왕들의 처사가 부당하다거나 원망스럽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용사를 잡기 위해 용사의 방식을 따라가는 것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마왕들을 탓하기 보단 모순투성이의 용사 구조를 탓해야 할 것이다.

 “저는 마계에서 12 마왕님들에게 지상계 마족의 구원이라는 사명을 받고, 현자님을 찾아왔습니다.”

 알시아는 단도직입적으로 찾아온 용건을 밝혔다. 물론 구체적으로 무엇을 물어야할지는 몰랐지만 상황이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만약 12 마왕들에 의해 이미 만나기로 한 약조가 되어있는 상태라면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얼마 전에 온 12 장난꾸러기들이 말한 그 애가 바로 자네구먼. 이거 자네의 이름만 듣고도 눈치챘어야 하는건데 몰라봐서 미안허이.”

 리케이르는 허허웃으며 말했다. 살점과 수염이 조금이라도 붙어 있었다면 참 어울렸을 것이다.

 “모두 무사히 밖으로 나갔으니 걱정하지 말게나. 그보다 자네 문제에 더 신경을 써보라고. 나에겐 지겨우리 만큼 많은 시간이 남아있지만 아무래도 자네는 촉박한 것 같구먼.”

 리케이르를 가만히 턱을 쓰다듬었다. 알시아는 그가 말한대로 일행들이 다치치 않고 무사히 미궁을 빠져나갔기를 바랬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어. 세상은 모순과 궤변으로 이루어져 있지. 생각의 폭을 좁혀. 자네가 궁금한 것만 물어보면 그만이야.”

 리케이르의 말이 옳았다. 항상 깊이 생각할 필요는 없다. 때로는 짧고 간단명료하게 행동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앞으로 제가 가야할 길에 대한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알시아가 물었다. 지극히 간단하면서도, 해석에 따라 어떻게 보면 심오한 질문이기도 했었다.

 “후후, 좋은 질문이야. 그나마 자네는 나은 편이군. 예전에 찾아온 녀석들은 하나 같이 물어 보지도 않고 단순히 듣기만을 원했거든.”

 리케이르가 웃으며 말했다. 광대뼈와 잇몸 사이가 앞뒤로 흔들리면서 웃는 듯한 형상을 띄었다.

 아마 살점이 조금이라도 붙어 있다면 환한 미소가 보였을 것이다.

 “그러고보니 자네 성이 문 나이트 마스터라고 했지?”

 리케이르의 말에 알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순간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눈을 떴는데, 두 눈동자 안에 아련한 추억이 담겨 있었다.

 “문 나이트 마스터. 그리운 이름이야. 20년 전 이곳을 찾아왔던 혈기왕성한 젊은이가 생각나는군.”

 리케이르는 거기까지 말하고 입을 다물어 버렸다. 알시아는 눈치가 둔해서 방금 그가 누구를 떠올린지 감이 잡히지 않아서 조용히 있었다.

 “일단 지금부터 내 자네에게 몇 가지 조언을 해주지. 그러기에 앞서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두게. 자네의 길, 바꿔 말하면 자네의 운명에 대해서 들을 때는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한다네.”

 리케이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의 조언이 시작되자 알시아는 평상시 보다 더 진지한 얼굴을 했다.

 

 

 

 

 

 

 

 No. 12 - 현자의 조언

 

 

 

 운명, 지극히 단순하면서 지극히 심오한 것. 그렇기 때문에 알시아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기울였다.

 그녀 뿐만이 아니라 보통 사람이라면 누구나 의문을 가질만한 것이었다.

 알시아는 마음을 굳게 먹었지만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운명이란 단어를 풀이한다면 우주 일체를 지배한다고 생각되는 필연적이고 초인간적인 힘이 아닌가? 과연 자신의 운명이 무엇인지. 리케이르가 어떤 말을 해줄지 기대가 되면서도 한편으론 불안하기도 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게. 난 자네가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해서만 들려줄 생각이니까 말이야.”

 리케이르는 허허 웃으며 손을 저어보였다. 그는 알시아가 너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녀에게 들려줄 것은 단지 운명의 길에 대한 지침. 운명에 대한 전부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어느 누구도 신이 아닌 이상 운명이란 것에 대해 전부 알수는 없어. 하지만 간혹 운명의 일부를 보고 그 결과를 예상해서 다른 이에게 전하는 사람이 있지. 그것은 인간의 언어로는 예언이라고 한다네. 아, 물론 인간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다른 종족들도 그런 표현을 쓰기도 하지.”

 리케이르는 알시아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녀는 그의 따스한 배려를 알고 마음 속으로 감사했다.

 그리고 현자라고 불리는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접근하기 어려운 인물은 아니란 것을 새로 알았다.

 “간단하게 생각하게. 자네는 마치 인간 용사가 현자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 같이 나를 찾아 온 것이 아닌가?”

 “예, 그렇습니다.”

 “그럼 보통의 용사 이야기를 머리 속에 떠올려 보게나. 현자는 용사에게 어떤 조언을 주고, 또 용사는 그 다음에 어떻게 행동하지는 에 대해서 말이야.”

 리케이르의 물음에 알시아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녀가 생각하기에는 그가 한 질문은 현자에 대한 정의를 내리라는 것이었다.

 “제가 알고 있는 바로 보통의 용사 이야기에서 현자가 하는 일은 ‘그대는 신의 선택을 받았소, 그러니 어서 가서 마왕을 무찌르고 세계 평화를 지켜시오.’ 라는 겁니다.”

 알시아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설명을 했다.

 그리고 자신이 말하고도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현자의 정의에 대한 설명에 포함된 일반적인 대사가 유치찬란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주 잘 알고 있구나.”

 리케이르는 껄껄 웃으며 앙상한 손으로 박수를 쳤다. 알시아는 붉어진 얼굴을 푹 숙인 채 볼을 긁적였다.

 “그 정도면 충분해.”

 리케이르는 나직하게 말했다.

 그리고는 입을 꼭 다물며 두 눈을 살며시 감았다.

 해골이라 눈꺼풀이 없어서 눈알을 돌려 흰자위를 드러내었다 라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겠지만 명상하는 모습은 제법 사실감이 있었다.

 알시아는 리케이르가 눈을 뜨고 다시 입을 열때까지 기다렸다. 속마음으로는 무슨 말이든 빨리 들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무례하게 다그치거나 보기 흉하게 초조해 하지는 않았다.

 지금 이 방안에 찾아든 적막 같은 것에는 이미 익숙해진 상태였다.

 아버지인 갈시아가 죽은 이후 항상 같은 내용의 악몽을 꾸는 알시아가 잠에서 깨어나 찾아가는 곳은 텅 빈 아버지의 침실이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아버지가 사용하던 침대에 누워 조용히 잠들었다.

 이제는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는 아버지가 마치 지켜주기라도 하는 듯이 그렇게 잠이 드는 날에는 악몽을 꾸지 않았다.

 물론 그런 행동은 마왕으로 즉위하고 나서부터 체통을 지키기 위해 딱 끊었지만 악몽은 계속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피곤할 때 잠을 자기 보다는 조용히 명상에 잠겨 적막을 배웠다.

 적막은 알시아에게 중요한 것을 가르쳤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마음을 비운다면 나약한 정신 상태로 부터 독립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무감정하게 변할 수도 있지만 본인의 의지가 강하면 정신적인 강함을 얻을 수 있었다.

 정신적인 강함은 자신의 나약한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물론 알시아가 완벽한 정신적 성장을 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는 것 하나만으로, 그녀가 강해지기 위해 한 노력의 가치를 매길 수 있었다.

 “…자네가 생각하는 용사란 어떤 존재인가?”

 생각하기에 따라 길고도 짧은 시간이 지나간 뒤 리케이르는 천천히 입을 열고 물었다. 오랜 기다림과 너무 짧은 질문, 알시아가 그의 질문에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는 것은 둘 중 어느 것 때문에 그런 것일까?

 아까는 현자의 대한 정의, 이번에는 용사에 대한 정의.

 용사를 원수로 생각하는 알시아에게 있어서 용사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것은 쉽지만 리케이르가 원하는 답변이 무엇인지는 몰랐다.

 “깊이 생각할 필요는 없어. 그냥 자기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털어놓으면 되네.”

 리케이르가 한 말은 알시아가 부담감없이 그 질문에 답할수 있게 도움을 주었다. 그래도 그녀는 머뭇거리며 차분하게 자신이 알고 있는 용사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용사, 타인을 위해 자기 한목숨 바쳐 용감히 싸우며 정의를 관철시키는 존재. 어떻게 보면 상당히 이상적인 군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용사의 정의라는 것이 상당히 비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자기들의 잣대로 정한 정의의 이름 아래 반하는 무리는 가차없이 응징해 버린다.

 여기까지가 알시아가 알고 있는 용사에 대한 정의. 물론 용사를 원수로 삼다보니 객관성이 약간 떨어질 수도 있지만 그것이 그녀의 솔직한 단상이었다.

 “용사란 빛과 어둠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강한 무력의 소유자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알시아는 자신이 알고 있는 용사의 의미를 함축하고, 최대한 객관적인 입장에서 말했다.

 “그렇게 솔직한 답변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쁘지는 않았네. 그럼 하나 더 묻겠는데 자네는 그 용사란 존재를 좋아하는가?”

 리케이르가 다시 물었다. 알시아는 이번에도 역시 금방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까와는 달리 문제가 어렵다기 보다는 대답하기가 더 어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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