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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식사를 마친 뒤, 유타는 7시부터 12시까지 1시간씩 각기 다른 과목의 수업을 듣는다. 일본어, 수학, 영어, 과학, 역사, 한국어 순으로 쉬는 시간 없이 배움을 갖는데 그것은 가혹 행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생각으로만 그칠 뿐 나는 어떤 불만도 입에 담지 않았다.
유타가 수업을 받는 동안에 나 역시 검정고시 준비로 인해 수업을 받아야 했다. 나는 유타가 자신의 능력을 조절할 수 있을 때까지 경호를 맡아야 했다. 그러나 유타가 12살이 될 때까지 컨트롤을 할 수 없다면 대학 입시는 포기해야 했다.
딱히 대학에는 큰 미련은 없었지만, 쓴맛이 입안을 감도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저번에 말한 ‘능력 계열’과 ‘레지스탕스’를 확인해보도록 하지.]
[계열은 크게 4가지 타입으로 나누어집니다. 첫째, 발동계는 사용자가 시전을 했을 때 일반인에게서 볼 수 없는 이형(異形)의 힘이 드러납니다. 가령, 전기를 방출하거나 흡수하는 능력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둘째, 변형계는 사용자의 신체 일부 혹은 전체를 변형시킬 수 있는 능력 계열이 포함됩니다. 몸을 경화시키는 능력을 가지거나 신체를 축소시키거나 확대시킬 수 있는 이들이 이에 해당됩니다. 셋째, 특화계는 발동계와 그 능력은 비슷하지만, 전자와는 달리 이형의 힘을 감출 수 없도록 신체가 걸맞게 특화되어 변형된 경우를 의미합니다. 즉, 발동계와 변형계의 중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넷째, 증강계는 신체 능력 전반을 강화시킬 수 있는 능력으로, 신체가 발달할수록 그 능력이 강력해집니다.]
특히 내가 인구의 20%에 해당되는 이능력자란 걸 알게 되면서, 「이능력」이란 과목을 유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게 심히 귀찮았다. 나를 가르치는 텐도 교수는 27살로, 재생 계열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다는 이유로 개인 교사를 자원했다고 들었다.
미국에 있는, ‘국립 이능력 연구 계발 센터’인 「NESP」 기구의 수석 연구원으로 21살에 발탁된 수재 중의 수재.
20살에 발표한 논문이 무려 <능력 시전 시, 증강계 에스퍼의 근육 세포 변화 양상>으로, 에스퍼의 불가사의한 난제 중 하나를 풀어낸 이다. 그는 NESP에서 4년 정도 머무르다가 연구직을 관두고 모국인 일본으로 돌아와 ‘제 1기구 생명 공학대학교’의 교수로 취임했다.
그리고 취임한지 2년 만에 교수직도 때려 치고….
[그나저나 손톱 안 깎냐? 좀 긴 것 같….]
재생 계열에 관해 연구하기 위해 제 13기구까지 내려와, 내 손톱이나 달라고 하는….
[제 손톱 가져가서 표피 세포부터 분석할 생각이면 관두시는 게 좋을 거예요.]
즉, 특이한 인간이다.
통칭 ‘변태’라고 한다.
[치사하네.]
[레지스탕스에 관한 건 얘기 안 해도 되나요?]
[말 돌리는 거 봐라. 그나저나 수업 태도는 꽤 불량해서 제대로 안 듣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럼 레지스탕스도 이어서 말해보도록.]
[그거야 교수님께서 하시는 사담이 너무 길어서 그런 게 아닙니까? 레지스탕스는 전 세계의 에스퍼들을 관리하는, 한국 본토에 있는 ‘중앙 관리 지국’의 현 체제에 반발하는 단체죠. 최근에는 국가에 등록된 에스퍼들 일부를 빼가거나 미등록자들을 데리고 있어 그 몸집을 불리고 있죠.]
[이건 너무 성의 없이 대답하는 거 아니냐?]
[교수님께서 설명하신 게 거의 없는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뭐야? 내가 언제 그랬어?]
[스스로를 돌아보고 반성하시죠, 텐도 교수님.]
또 매우 불성실하다.
그리고 나는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고 남은 수업을 들어야 했다.
텐도 교수는 굉장히 귀찮다는 얼굴로 책상에 다리를 올린 채 설명하기 시작했다. 역시 제자의 수업 태도가 올바르지 못하다고 충고하기에는 그른 인간이었다.
[중앙 관리 지국은 말만 국가에 귀속되었다고 치지, 그들은 그냥 기업이야. 검찰이 마땅히 해야 할, 괴수 때려잡기를 본인들이 도맡음으로서 세금을 죄다 처먹는 거지. 젠장, 배 아파라.]
[애초에 괴수를 평범한 사람인 경찰이 때려잡기에는 무리라고 생각이 됩니다만.]
[아아,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그건 넘어가자고. 어쨌든 마치 독과점처럼 괴수를 제거하는 일은 그들밖에 할 수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
[슬슬 말이 모순이 되고 있는데요?]
[거, 까탈스럽게 굴지 말라니까. 더군다나 그런 세금 괴물 소속의 에스퍼들은 제대로 대우를 못 받는데, 괴수로 인해 사망하면 고작 한 달에 10만엔이 유족들에게 사망보험금으로 나오니까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는 거지.]
[뭐… 기득권 세력들이 자기들끼리 헤쳐 먹는 게 하루 이틀입니까?]
[맞아. 그래서 사실 레지스탕스가 생겨나게 된 배경은 이해하고 그들의 분노도 충분히 공감이 가.]
텐도 교수는 쓰고 있던 무테 안경을 벗으며, 손수건으로 안경알을 닦으며 조소했다.
[그래도 정신계열 능력자들로 괴수들을 길들여, 전혀 상관없는 무고한 시민을 죽여서 이목을 끄는 건 확실히 정신 나간 짓이지.]
[그렇게 진지한 척 말씀하시면서 제 머리카락을 체취하려 하시면 안 되죠.]
[앗! 언제 들켰지?]
나는 짜게 식은 눈으로 정수리를 쓰다듬는 척 머리카락 한 올을 뽑으려 한 몹쓸 손을 무자비하게 떨궜다. 그러자 텐도 교수는 아쉽다는 얼굴로 혀를 찼다.
[가뜩이나 재생 능력은 별로 없는데 협조 좀 해주지.]
[싫습니다. 교수님께 샅샅이 파헤쳐져 논문 자료에 올라온다고 생각하니 상당히 불쾌하더군요.]
[…그런 소리를 되게 무표정한 얼굴로 잘도 말한다야.]
나는 주섬주섬 텐도 교수의 필기구를 챙겨드리고 그의 손바닥에 가지런히 올려주었다.
[수업 다 끝난 거 같은데 나가시죠?]
[…매정한 것.]
그는 툴툴거리며 말하면서도 나갈 채비를 했다. 겨울용 코트를 입으며 다시 안경을 쓰던 그가 갑자기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레지스탕스는 너와 같은 재생 계열을 찾는데 혈안이 돼 있어.]
녹색 눈동자가 어두운 색감으로 침잠되었다. 별로 쓰일 일이 없는 교재를 정리하던 나는 잠시 그대로 멈췄다.
[단순히 네가 신체 회복 능력이 비이상적으로 빨라서는 아니야.]
[그렇다면 어떤 이유…?]
[일단 너는 원하든 원치 않든 이 가문의 비호를 받고 있으니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리고….]
갑자기 그가 베레모를 쓰려다가 나를 보고 멈칫했다. 그리고는 보조개가 들어간 웃음을 씩 지으며 내 머리에 그것을 씌워주며 마구 머리를 헝클였다. 모자가 커서 시야가 가려져 벗으려고 손에 힘을 주었지만 텐도 교수가 그러지 못하게 푹 눌러버렸다.
그 순간, 따스한 숨결이 귓가를 간질였다.
[아직 열여섯이란 나이는 걱정을 덜해도 비난받지 않는단다.]
손에 힘이 쭉 빠졌다. 그는 모자를 내 눈 쪽까지 내리고는 가볍게 톡톡 손가락으로 튕겼다. 그리고는 눈을 반달로 접으며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뭐… 일단 나도 네 선생이니, 위험한 일이 생기면 충분히 구해줄 거니까.]
안심하라는 듯 그가 낮게 속삭이고는 허리를 피고 그대로 뒤돌아서 손을 흔들었다.
[이만 가본다. 어서 배웅 안 하고 뭐하냐.]
어쩐지 푹 눌려진 모자를 벗을 수 없었다.
***
그렇게 정신없는 수업을 마친 뒤 텐도 교수를 보내고 자명종을 확인해보았다. 유타의 수업이 끝나는 시각인 12시까지 1시간이 남았다. 이때 할 것도 없어서 나는 주로 대청마루에 앉아서 정원 구경이나 했다. 간혹 연못에 있는 금붕어에게 물고기 밥을 주기도 했다.
“요엘 님, 일주일 만이네요.”
익숙한 나긋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감색 기모노를 입은 아야코가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그녀는 다과상을 차리며 내게 녹차를 따른 잔을 주었다. 나는 잔을 받아들이며 입김을 불어 식히면서 다시 정원을 보며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벌써 일주일이 지났네요.”
“시간은 스스로가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금방 물 흐르듯 지나가는 것 같아요.”
“이러다가 눈 감았다 떴더니 10년이 지났다, 는 말을 나중에 하게 될까봐 무섭네요.”
아야코의 소박한 웃음소리가 옆에서 들렸다. 나는 정갈한 접시에 담긴 바삭한 센베이 과자를 입에 넣었다. 와작, 거리는 소리와 함께 짭짤한 맛이 입안에 가득 퍼졌다. 맛있기는 했지만 왠지 모 제과업체의 감자 칩이 급격히 땡겼다.
모국어를 들으니 왠지 모를 향수병이라도 생길 것 같았다.
“요엘 님이 겪어본 도련님은 어떤 분이셨나요?”
갑자기 들어오는 질문에 과자가 목에 턱하니 걸렸다. 기침을 연신 하다가 아야코가 당황해하며 내게 차를 따라주자마자 그것을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뜨거워서 하마터면 입안이 데일 뻔했다. 덕분에 헛기침을 하면서 무난한 말을 골라야 했다.
“크윽, 후…. 유타 님은 착한 아이시죠.”
“맞아요. 유타 님만큼 예의바르고 친절하신 분은 또래에도 드문 편이에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하지만 가끔은 유타 님이 또래 아이들처럼 놀이터에서 뛰놀고 흙먼지를 잔뜩 옷에 묻혔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해요.”
나는 입을 다물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유타의 교육에 관해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의 나는 스스로를 추스르기에도 바빠서 타인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일주일 간 지켜본 아이를 생각하자면 마냥 잘라내기도 어려웠다.
생각이 뒤엉켜 복잡해질 때였다. 대청마루 앞에 자리한 매화나무에서 눈처럼 새하얀 꽃잎이 손바닥 위에 내려앉았다. 나는 그것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올해도 매화가 아름답게 폈네요. 이맘때쯤 겨울이면 항상 피는데, 눈이 오는 날에는 정말 벅찰 만큼 예뻐요.”
“…네, 예쁘네요.”
예뻤다. 어쩐지 눈이 시릴 만큼 새파란 하늘 위에 고공을 향해 뻗은 매화가지가 눈이 시릴 만큼 어여뻤다. 나는 천천히 주먹을 쥐어 여린 꽃잎을 짓이겼다.
“정말 예뻐요.”
매화꽃이 만개한 곳에 조용한 평화를 즐기던 그 뒷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한 달간 이곳의 자리를 비운 사토시가 휴식을 취하는 이 장소에 매일같이 오고 있다. 그리고 그가 느꼈던 고요함과 정적을 똑같이 즐기고 있다.
이곳에서 사토시가 만끽했을 안락을 곱씹으며, 그가 철저히 망가뜨린 우리 가족을 떠올린다. 이 모순 속에서 나는 몇 번이고 속으로 씹어 내뱉으며 다짐한다.
나는 사토시를 죽인다.